소설리스트

학사신공-1974화 (1,731/2,000)
  • 1974화. 해 도인의 방문

    *

    어둠 속을 두리번거리며 계속해서 진입할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괴성 진영은 괴뢰들이 주위를 순찰하고 두 개의 탑을 쌓아 괴뢰 병사가 높은 곳에서 감시하는 탓에 틈이 없었다.

    한립이 궁리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톡톡 쳤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벌어진 일에 그는 화들짝 놀라 몸을 휙 돌리며 물러서다 곧 긴장을 풀고 멈춰 섰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해 도인이 서 있었다.

    “조용히 하고 저를 따라오세요.”

    해 도인은 먼저 산맥 먼 곳으로 이동했다. 미간을 좁힌 한립은 잠시 괴성 진영을 돌아보고 그를 따라갔다.

    “자령을 찾기 위해서 야밤에 괴성 진영을 맴도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녀와 비슷한 사람을 본 것 같아서요.”

    해 도인에게 숨길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런 어리석은 짓을! 적린공경 안에서는 선령력도 사용할 수 없어 기운을 숨기는 것이 극히 어려운데 무턱대고 괴성 진영에 침입하려 했단 말입니까? 자신의 목숨이 몇 개라고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해 도인이 코웃음을 치며 하는 말에 한립은 이채를 띄었다.

    그를 다그치는 해 도인의 언행은 평범한 사람과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해 수사의 말이 맞습니다만, 자령이 그곳에 있다면 그냥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요. 지금 괴성 진영에 들어가는 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수사가 보았다는 사람이 정말 자령이라고 해도 당장 어디로 달아날 것도 아닌데 서두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한립은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무슨 방법으로 기운을 감추신 겁니까? 저도 미처 감지하지 못 할 뻔했습니다.”

    “별 것 아닌 조잡한 수법입니다.”

    자신을 아래위로 훑는 해 도인을 보고 한립이 담담히 웃음 지었다.

    <천살진옥공>의 은신술인 ‘만규공적술(万竅空寂術)’을 발동해 몸의 모든 현규를 막은 것이었다.

    이 신통의 최대의 단점은 기운을 노출하지 않는 대신 현규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 저를 찾은 것은 다른 할 말이 있어서가 아닙니까?”

    “상의할 일이 있기는 합니다. 성준비주는 보름 정도면 완성이 될 테니 대허로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수사에게 도움을 구할 일이 있습니다.”

    “대허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은데 기억이 되살아 난 것입니까?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 보여서요.”

    한립의 질문에 해 도인은 바로 답하지 않고 복잡한 눈빛으로 대허 쪽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 꽤 많은 기억을 되찾았습니다. 허나 몇 가지 일들은 수사에게 털어놓을 수가 없겠습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해 도인이 입구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이해합니다.”

    “신양의 곁을 오래 비울 수 없어 제가 부탁드릴 일을 적어 두었습니다.”

    입에서 하얀 옥간을 꺼낸 해 도인이 그걸 한립에게 주었다.

    “이건…….”

    “반드시 여기 적힌 대로 해주세요. 수사에게 해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히려 큰 수확이 있을 거라 장담합니다.”

    한립의 말을 막은 해 도인은 지긋이 그를 쳐다보다가 검은 그림자로 변해 신속히 사라졌다.

    해 도인의 속도는 한립과 비교해도 많이 빠지지 않았다.

    옥간에 의식을 불어넣은 한립은 곧 놀란 얼굴로 눈빛이 불안해졌다.

    파삭.

    잠시 그렇게 서 있던 그는 결심했는지 옥간을 바스러트려 제거하고 현성 진영으로 몸을 날렸다.

    성준비주 제작이 진행되는 동안, 한립 등 다섯 명은 거처에서 휴식을 취했고 가끔 육화부인이 네 사람을 불러 성준비주의 금제에 대해 언질을 주었다.

    * * *

    십여 일 뒤, 괴성 사람들이 드디어 성준비주 제작을 마쳤다.

    은회색 선박은 금속의 서늘한 광택을 발산해 굉장히 단단해 보였고, 유려한 곡선 구조는 비상할 준비를 마친 제비를 떠올리게 했다.

    선박 내부 양쪽에는 창문이 투명한 재질로 막혀 있어 바깥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모여든 현성 사람들 앞에서 액회가 손을 뻗어 선박을 탁탁 쳐보았는데 속이 꽉 찬 것처럼 견고했다.

    “고성의 기술이 뛰어납니다. 한 달도 되지 않아 이렇게 정교하고 튼튼한 괴뢰 선박을 완성하다니요.”

    “칭찬 감사드립니다, 액 수사. 다른 곳에서라면 괴뢰의 힘을 이용해 땅에서 떠서 이동할 수 있겠으나 흑연 상공에서는 아래쪽의 흡입력에 대항해야 해서 육화 수사의 도움이 꼭 필요한걸요.”

    사심이 일고여덟 명의 괴성 사람들을 데리고 서서 웃으며 답했다.

    한립은 괴성 사람들을 보고 실망했다.

    그중에는 그때 보았던 보라색 장포를 입은 여인이 보이지 않았다.

    “육화 수사, 부탁하겠네.”

    사심의 말을 들은 액회가 육화부인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선박을 둘러본 육화부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그걸 본 액회는 바로 입을 열었다.

    “사심 수사, 선박 벽면에 은류즙(銀劉汁)을 주입해 두신 겁니까?”

    육화부인은 사심에게 직접 물었다.

    “맞아요. 괴성 비결이 담긴 즙인데 알고 계시네요. 은류즙을 주입해야 각각의 재료들이 더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서 선박의 방어력을 높일 수 있답니다.”

    눈을 번득인 사심이 답하는 말을 듣고 육화부인은 침묵했다.

    “육화 수사, 이상이 있는 것인가?”

    액회가 질문을 했다.

    “하하, 큰 문제는 아닙니다. 은류즙은 은류석(銀劉石)을 주재료로 하는데 제가 배합한 성액과 상성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류즙을 주입한 벽면에는 진법을 새기기 곤란해서 예상한 것보다 더 시간이 걸릴 듯싶습니다.”

    육화부인은 웃으며 말했지만 한립은 힐끗 그를 보고 입을 달싹이다 말았다.

    상대가 고개를 돌려 그에게 매서운 눈빛을 보냈기 때문이다.

    “오, 그렇다면 다행이군. 어서 시작해서 하루빨리 작업을 끝마쳐주게. 흑연의 저조기가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으니 말이야. 언제 이변이 일어날지 알 수 없네.”

    액회의 분부에 시원하게 답한 육화부인은 한립 등 네 명을 데리고 선박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 구경하던 양쪽 성의 사람들도 오래지 않아 흩어졌다.

    성준비주는 특수한 재료로 제작이 되어서인지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방음효과가 있었다.

    “선배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한립은 창문으로 떠나는 양쪽 성의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성신금제를 설치해야 해서 뼈대에 문양만 새겨 넣을 때와 달리 들어가는 재료들도 많고 공정 속도도 느렸다.

    그런데 은류즙 문제까지 발생했으니 일이 더 어려워진 것은 분명했다.

    한립이야 최선을 다하면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겠지만 공정이 복잡해지면 나머지 세 사람이 따라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를 눈치 챈 헌원행 등 세 사람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흥, 괜찮을 리가! 우리가 하는 일에 약간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이미 새겨 놓은 진법 문양이 붕괴되는 것은 물론, 진법을 구축하느라 들인 도구와 재료까지 싹 날리는 거다. 사심, 안 그래도 바쁜데 일을 더 만들어내고 말이야!”

    울화가 치민 육화가 짜증을 내며 사심을 욕하자 보조를 맡은 네 사람의 표정이 달라졌다.

    “설마 진법 재료가 충분하지 않은 겁니까?”

    한립이 슬쩍 그를 찔러 보았다.

    “재료를 두 배나 챙겨와 원래는 충분했는데, 이제는 확실치 않아졌다.”

    “그렇다면 어째서 액회 성주님께 말씀을 드리지 않으십니까?”

    “이런 사소한 일로 성주님을 귀찮게 할 것 없다. 내게 방법이 있으니 너희도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할 일만 잘하면 된다.”

    순간 표정이 이상해진 육화가 손을 내저었다.

    “그럼, 여기 나머지 분들은 성신금제에 익숙하지 않으니 앞으로 작업은 저와 선배님 둘이서 하시지요. 일정이 더 느려지더라도 액회 성주님께서 뭐라고 하지는 못하실 겁니다.”

    “안 된다. 성신금제는 노부가 네 가지 형태를 따서 개발한 것이라 우리 다섯 사람이 네 방향에서 동시에 작업을 해야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내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더는 아무 소리 하지 말거라.”

    한립의 건의를 들은 육화부인이 이전보다 온화한 태도로 말했다. 이에 한립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이어서 다섯 사람은 예전처럼 육화부인이 중앙 구역을 맡고 한립이 좌현, 려강과 양벌이 우현 그리고 헌원행이 선미를 맡아 일을 시작했다.

    성란필을 들은 한립은 성벽에 문양을 칠할 때 확실히 은류즙이 성액의 성신력과 충돌해 작업이 몇 배나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숨을 고르고 대량의 의식으로 힘을 실어야 성액이 안정적으로 새겨졌다.

    그나마 한립은 순조롭게 작업을 하는 편이었는데, 헌원행 등 세 사람은 아니었다.

    특히 홀로 선미를 맡은 헌원행은 반나절 만에 네다섯 번이나 실패해서 재료를 상당히 날려 먹었다.

    짐작하던 일이었음에도 육화부인은 아까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세 사람만 따로 불러 다시 지도를 해주어야 했다.

    8, 9일이 흘러 성준비주 안의 벽에는 진법문양들이 교차하면서 은은하게 은빛을 내었다.

    이때 중앙에 다섯 사람이 모여 있었다.

    헌원행을 비롯한 세 사람은 면목 없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옆에선 한립은 말이 없었다.

    어두운 얼굴의 육화부인이 쉼 없이 주위를 서성이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전력을 다해 일한 덕에 거의 작업이 끝나가기는 했는데 보조 셋이 연달아 실수하는 바람에 대량의 재료를 낭비해서 재료가 떨어져 버렸다.

    “크흠, 재료가 없는데 대책은 있으십니까?”

    한참을 기다려도 다들 아무 소리가 없자 한립이 헛기침을 하고 물었다.

    “진법 도구는 내게 약간 남아 있고, 망가진 것들도 훼손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수리하면 쓸 수 있을 거다. 진짜 문제는 해응옥(海凝玉), 비정(緋晶), 지조석(地潮石) 세 개의 재료가 부족하다는 것이야.”

    육화부인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으시군요?”

    “한빙산맥에 빙린구여(氷鱗犰狳)라는 인수가 산다. 머리에 난 뿔이 해응옥과 비슷해서 대체할 수 있지. 한빙산맥에 진입한 후에 빙린구여의 흔적을 본 적이 있는데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아 이틀이면 다녀올 수 있다. 비정은 부견 성주에게 약간 있다고 알고 있으니까 가서 받아오면 되고, 지조석이 제일 문제인데…….”

    “괴성의 괴뢰 중에 지조석을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있네. 사심 수사가 지조석을 지니고 있을 것이니 내가 구해오지.”

    이때 두 액회와 신양이 선박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액 성주님…….”

    육화부인이 약간 민망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것은 여전하구만. 내게 성준비주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조를 했다지만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으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도움을 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일세.”

    액회가 웃으며 하는 말을 듣고 한립도 육화부인이 그를 향해 긴말하기를 싫어했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휴, 제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생긴 일을 어찌 액 성주님께 해결해 달라 청하겠습니까. 허나 기왕 그리 말씀을 하시니 성주님의 말씀대로 하지요.”

    표정이 달라지던 육화 부인이 한숨을 쉬듯 말했다.

    “빙린구여를 잡아 오는 일은 신양 성주에게 맡기겠네. 나도 오는 길에 빙린구여의 흔적을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여기쯤일 것이야.”

    고개를 끄덕인 액회가 곁의 신양에게 어느 지점이 표시된 한빙산맥 지도를 주었다.

    “알겠습니다.”

    지도를 확인한 신양이 바로 떠나려 했다.

    “잠깐, 한빙산맥도 위험한 곳이라 신양 성주의 실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홀로 가는 것은 아닌 것 같군. 려비우 수사와 같이 가게. 해응옥에 익숙할 테니 도움이 될 거야.”

    액회는 신양을 불러 세워 다시 명을 내렸고, 움찔한 한립은 알겠다고 답했다.

    “진법을 설치하면서 저 때문에 많은 재료를 잃었습니다. 성주님, 저도 함께 사냥을 떠나 양심의 가책을 덜고 싶습니다.”

    갑자기 헌원행도 나서서 같이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게. 다들 서둘러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게.”

    액회의 허락이 떨어지자 세 사람은 곧바로 진영을 떠나 어딘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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