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971화 (1,728/2,000)
  • 1971화. 폭풍

    *

    한 달 뒤.

    두 인수 무리가 천 장 거리를 두고 서서히 협소한 산골짜기를 지나고 있었다.

    키아악!

    앞선 무리가 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후방 부대가 막 진입했을 때, 고공에서 괴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머리 둘 달린 참새 인수가 날아드는 중이었다.

    거대한 몸이 검은 비늘로 뒤덮인 괴조 때문에 그림자가 드리워 산골짜기가 어둑해졌다.

    두 날개가 움직일 때마다 하얀 기류가 맹렬히 산골짜기 양쪽의 산맥을 쳤다.

    쿠릉.

    양쪽 산이 무너져 내리며 먼지가 풀풀 날리고, 후방의 인수들이 놀라 뒤로 물러났다.

    앞쪽 인수 괴뢰들은 이런 상황에도 동요 없이 속도를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방 안에 앉아 있던 한립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마침 전방에 거대한 바위들이 떨어져 골짜기를 채우고 있었다.

    현성 사람들도 분분히 석전에서 나와 오린상 등 위에서 전방을 살폈다.

    그 순간, 전방 산골짜기 출구에서 요란한 하얀빛이 폭발하며 강대한 성신지력이 고공으로 치솟았다.

    쾅!

    대량의 바위와 흙들이 화산처럼 솟아올랐다가 사방으로 떨어졌다.

    강력한 기류가 나선형으로 회전하면서 길을 막은 바위들을 관통해 길을 뚫고 있었다.

    먼지가 내려앉자 한립은 오린상 괴뢰 중 하나가 고개를 쳐들고 코끼리처럼 코를 위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코끼리 코에서 하얀빛이 서서히 잦아드는 중이었다. 괴뢰로 제련한 오린상의 위력에 한립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 * *

    반년 후.

    검은 돌들로 이루어진 황량한 사막에 돌풍이 몰아쳤다. 모래바람이 태양을 가려 천지가 어둑했다.

    평평한 사막 위를 두 부대가 백 장 거리를 두고, 각각의 인수들이 머리를 안으로 꼬리를 바깥으로 둔 채 원형을 이루어 바람에 날아드는 암석과 모래를 막고 있었다.

    그중 한 인수의 등에서 석전의 돌 지붕이 콰쾅! 하고 날아올라 돌풍에 휩쓸려 버렸다.

    이어서 거구의 그림자가 솟구쳐 지붕을 쫓아갔다.

    두 다리에서 현규들을 반짝이던 사내는 돌 지붕을 잡아 다시 석전 위에 올려놓았다. 보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의복을 정리하는 사람은 바로 한립이었다.

    한립은 그 잠깐 사이에 모래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방안을 둘러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두 달째 흑사폭풍이 그치지 않으니 언제 다시 출발할 수 있을지…….”

    한숨을 내쉰 그는 침상의 모래를 털고 그 위에 가부좌를 틀었다.

    * * *

    시간은 쉼 없이 흘러 또다시 몇 년이 지나갔다.

    끝 모를 평원에 호각 소리가 울리고 괴성 부대가 멈춰 섰다. 이어서 백여 장 거리를 두고 따라가던 현성 인수 부대도 약속이나 했다는 듯 멈춰 섰다.

    부대의 오린상 중 한 마리에 한립 등 세 사람이 모여 앉아 있었다.

    “또 멈췄네요…….”

    골천심이 호각 소리를 듣고 얼굴을 찡그렸다.

    “또 습격인가 봅니다. 깊은 곳으로 갈수록 공간 압력도 강해지고, 공격해 오는 인수들도 강해지니 이동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어요.”

    한숨을 내쉰 헌원행이 말했다.

    “전에는 줄곧 수련하며 기다리면 되었는데 지금은 틈만 나면 인수들이 습격을 해와 상대해야 하니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인수를 죽여 요핵을 얻을 수 있으니 다행이지요.”

    한립도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어디 이번에는 뭐가 나타났는지 볼까요?”

    골천심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머지 사람들도 석전 바깥으로 나왔다.

    오린상 등에 선 그들은 예상과 달리 주변이 고요한 것을 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백 리 밖 땅 위에 공간이 눈에 띄게 일그러져 있고, 공간 틈새에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런 공간 틈새들 아래,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계곡의 틈이 두 방향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 심연 안에서 검은 안개가 솟아올라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어 마치 악마의 눈을 보는 듯했다.

    “저게 뭐죠?”

    “잘은 모르겠지만 멀리서 보기에도 엄청난 파괴력이 느껴지는군요. 우리가 찾는 대허가 저기가 아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골천심의 말에 한립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신양이 해 도인을 데리고 건너왔다.

    “성주님.”

    헌원행이 먼저 포권을 하고 한립과 골천심도 예를 취했다.

    “검은 안개가 가득한 심연은 보셨지요? 우리가 찾는 대허가 그곳입니다.”

    신양은 웃는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그 말에 헌원행과 골천심이 동시에 한립을 쳐다보았다. 입이 방정이라는 눈빛이었다.

    “저길 어떻게 건너가려 하십니까?”

    “모르겠습니다. 액회 성주께서 사심과 만나러 가셨으니 회의를 마치면 우리도 알 수 있겠지요.”

    한립의 질문에 신양이 대답했다.

    “어떻게 저길 건너갈지 막막합니다.”

    헌원행은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액 성주님의 말에 따르면 그래도 저 흑연(黑淵) 폭풍이 가장 약할 때가 지금이라 합니다. 백 년 전만 해도 공간균열들이 수백 리까지 퍼져 있어 우리가 서 있는 여기까지도 올 수 없었다는군요.”

    “그럼 왜 더 기다리지 않는 거죠? 백 년만 더 기다리면 더 약해질 텐데요.”

    골천심이 의문을 표했다.

    “현성과 괴성이 이곳을 탐낸 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서로 조금이라도 먼저 진입하려 눈치를 보고 있었고, 액회 성주님께서 이번에 오성회무를 연 것도 대허에 들어갈 이들을 선발하기 위해서였는데 사심이 먼저 찾아와 합작하자는 바람에 일정이 앞당겨진 겁니다.”

    “직접 와서 보니까 괴성이 합작을 요청할 만했네요. 그들의 힘만으로 건너갈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신양의 설명에 침음하던 골천심이 말했다.

    “이유가 그뿐만이 아니겠지요. 대허 내부로 정예가 들어갔을 때 현성에서 괴성을 칠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겠지요.”

    고개를 저은 한립이 덧붙였다.

    “현성에 지낸 시일이 길지 않은데 형세를 잘 파악하고 계십니다.”

    신양이 그 소리를 듣고 미소 지었다.

    그때 누군가 괴성 부대에서 날아올랐다.

    보통 체구의 평범한 얼굴을 했지만 엄청난 위엄이 넘치는 액회였다. 그는 한 손을 펼쳐 허공을 기운으로 누르며 가볍게 소머리 인수 위에 안착했다.

    “현성 수사들은 들으라. 흑연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한다. 공간균열들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휩쓸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그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울렸다.

    “출발합시다.”

    신양이 해 도인을 데리고 떠나고, 괴성과 현성 부대도 서서히 이동했다. 흑연 동쪽으로 이동을 하자 분포되어 있던 공간균열들이 커졌다.

    가끔 몇몇 인수들이 실수로 공간균열에 휘말려 찢겨나가는 끔찍한 일도 종종 벌어졌다. 비행에 능한 인수들도 심연 상공을 날다 소용돌이에서 발생한 흡입력에 빨려 들어갔다.

    한립은 날개가 네 개나 달린 익린응(翼鱗鷹)이 흑연을 지나려다 갑자기 늑대의 이빨에 물어 뜯기기라도 한 듯 몸이 갈라져 추락하는 것도 보았다.

    * * *

    다시 반년 뒤.

    해가 기울고 평원에 황혼이 드리웠다.

    두 무리의 인수 부대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두고 이상하게 생긴 거대한 산맥으로 이동 중이었다.

    후방의 인수 부대에서 검은 장포를 입은 한립이 석전 지붕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전방을 주시했다.

    멀리 산맥의 절반은 석양 때문에 황금빛으로 물든 반면 나머지 절반은 어두운 남색이었다.

    잠시 지켜보던 한립은 산맥에서 기이한 파동을 감지했다. 가까이 갈수록 파동은 분명해져서 음산한 기운을 발산했다.

    이에 많은 이들이 이상함을 느끼고 석전을 나와 바깥을 살폈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는데, 두 무리는 7일을 더 가서야 산 아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괴성 부대는 먼저 안으로 진입하지 않고 그 앞에서 현성 부대를 기다렸다.

    한립과 골천심은 오린상 등에 나란히 서서 끝없이 펼쳐진 산맥이 흑연까지 닿아 있는 것을 보았다.

    눈앞의 산맥은 절반은 푸른 수정처럼, 나머지는 붉은 홍옥처럼 빛나 특별해 보였다.

    “우리 같은 사람도 서늘함을 느끼게 하다니 조심해야겠어요.”

    골천심은 두 손으로 팔을 비비면서 말했다.

    “산맥 절반의 암석은 얼음처럼 차갑고 나머지는 불처럼 뜨겁군요. 얼음과 불이 만나는 이런 기이한 절경을 찾기는 어려운데요.”

    헌원행이 산맥을 가리켰다.

    그동안 한립이 말없이 미간을 좁히고 있는데, 호각 소리와 종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시선을 마주친 세 사람은 몸을 날려 두 번째 부대 앞에 내려섰다.

    곧 다른 현성 사람들도 모여들었고, 약간의 간격을 두고 괴성 사람들도 집합했다.

    한립은 예전에 보았던 익린조가 짧은 창을 멘 잘생긴 청년을 태우고 내려서 맨 앞에 서는 것을 보았다.

    청년 왼쪽으로 키가 크고 사나운 인상을 지닌 사내가 머리 반절을 밀어 남은 머리를 땋은 채 서 있었다.

    약간 교활한 인상을 지닌 거한은 상반신을 드러내 조각과 같은 근육질의 몸을 노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잘생긴 청년 오른쪽으로는 키가 아주 작은 난쟁이 사내가 새하얀 갑옷을 입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그 세 사람 뒤에 있는 십여 명의 사람들은 대부분 곱게 생긴 여인들로 검은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한립의 시선이 가장 뒤쪽의 세 사람에게 닿았다.

    다른 이들과 같이 검은 장포를 입고 있는데도 무언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때 두 사람이 고공에서 내려와 현성 무리 앞에 섰다.

    현성 성주 액회와 동작 하나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하얀 치마를 입은 여인이었다.

    여인인 골천심 조차 그녀의 등장에 넋을 놓는 것 같았다.

    ‘별다른 술법을 부린 것 같지 않은데…….’

    한립은 그녀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자령의 모습을 떠올렸다. 눈앞의 여인이 자령일 리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말이다.

    “대허는 흑연 너머에 있고 얼음과 불이 교차하는 이 산맥을 지나는 것이 우리가 찾은 유일한 길이다. 괴성과 현성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가까운 사람이 서로의 손에 죽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사심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괴성과 현성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마주 보며 원망과 적의를 드러냈다.

    “그 원한은 없앨 수도 무시할 수도 없겠지…….”

    사심의 말에 적잖은 이들이 격동해 성보로 손을 가져가며 살의가 짙어졌다.

    “조용.”

    액회는 평소처럼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현성 사람들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대신 다들 기운을 거두었다.

    “그 원한이 얼마나 깊던 이곳에서만은 잠시 내려놓고 합심해서 움직이기를 바란다.”

    사심은 그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끝맺었다.

    “이 산은 상상 이상으로 위험하다. 당연히 산맥에 진입하면 이전처럼 거리를 둘 수 없고 한데 뭉쳐 이동해야 하니 서로 협조하도록.”

    액회가 그 말을 이어받아 덧붙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으나 손도가 먼저 대답했다.

    “성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의 말에 호응하듯 다른 이들도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모두 한빙산맥 쪽으로 진입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양쪽 성의 무리는 섞여서 간격을 두고 이동한다.”

    “출발한다.”

    “존명!”

    사심과 액회의 명에 모두가 대답하고, 인수에 올라 산맥으로 향했다.

    한립이 다시 고개를 돌려 괴성 부대 뒤쪽의 세 사람을 살피려 했을 때는 이미 모두 사라진 뒤였다.

    액회와 사심이 탄 인수는 나란히 앞에서 걸어갔고, 그 뒤로 괴성과 현성 인수들이 교차하면서 한 마리씩 산골짜기로 진입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여인이 구슬피 우는 것 같은 바람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와 가슴이 서늘해졌다.

    한립은 미간을 좁히고 골짜기 내부를 살피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와 수련을 재개했다.

    처음 며칠은 수련할 수 있었는데, 수시로 파고드는 서늘한 기운에 깜짝깜짝 놀라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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