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968화 (1,725/2,000)
  • 1968화. 대회 중단

    *

    이번 오성회무에서 가장 격렬하고 치열한 접전에 지켜보는 이들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방선은 어떻게든 우위를 점하려 했지만, 연체성보의 도움으로 육신의 힘에서도 그를 앞서는 골천심이 창술과 신법도 뛰어나 그를 구석으로 몰고 있었다.

    조급해진 그는 쌍도끼를 횡으로 움직여 금색 장창을 떨쳐내고 입을 쩍 벌려 수정빛 음파를 방출했다.

    특히 콧구멍 주변의 현규들이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웨앵!

    하얀 음파가 호선을 그리면서 골천심을 뒤덮었다.

    그녀도 짐작하던 수였지만 이전과 달리 훨씬 빨라진 음파는 잔영을 남기면서 쾌속으로 다가왔다.

    음파의 영향권이 수백 장에 이르러 멀리 떨어져 있는 현투대 아래 사람들도 몸이 저릿하고 손발이 마비되거나 호흡이 거칠어졌다.

    마침 음파 범위 내에 있던 한립도 온몸이 뻣뻣해지고 손가락을 굽히기 어려웠다.

    골천심이 아무리 빨라도 음파보다 빠를 수 없어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 멈춰 섰다.

    그러나 다음 순간, 창백하던 얼굴에 기이한 핏기가 올라와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마비에서 벗어나 금색 장창을 내질렀다.

    ‘롱주술? 아니야, 기혈을 극성으로 발동해 음파의 영향으로 마비가 된 몸을 깨운 거야.’

    그 모습을 보고 현투대 아래에서 한립이 차분히 생각을 마쳤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몸에 무리를 주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방선은 골천심이 이렇게 빨리 정상으로 돌아와 바로 반격할지 몰랐기에 서둘러 옆으로 피하려 했다.

    서걱!

    하지만 공격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허리에 뼈가 드러날 만큼 깊은 부상을 당해 선혈을 쏟고 말았다.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든 방선은 곧바로 온몸에서 으드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체구를 두 배로 부풀렸다.

    피부가 검붉게 변하고 푸른 혈관과 구불구불한 근육들이 솟아나 한 마리의 거대한 짐승으로 변한 것 같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의 몸의 현규가 하얀빛이 아닌 핏빛을 내기 시작하며 기이한 기혈의 기운을 방출한다는 것이었다.

    그 파급력이 현투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중앙관람석에 있던 신양과 손도 모두 얼굴을 굳혔고, 늘 차분한 액회마저 흥미롭다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원래는 주자원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한 수인데, 골천심 당신이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야수처럼 변한 방선이 광소를 터트렸다.

    골천심은 담담한 얼굴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는 척, 그가 변신하는 순간 방선의 뒤로 돌아가 잔영을 남기며 장창을 찔렀다.

    그러나 장창은 방선의 핏빛 기류에 미끄러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방선은 항아리처럼 굵어진 팔뚝을 뒤로 돌려 검은 도끼로 장창을 내리쳤다.

    쩌정!

    두 팔을 부들부들 떤 골천심은 손아귀가 저릿했고, 하마터면 장창을 놓칠 뻔하다 뒷걸음질 쳤다.

    순식간에 몸을 돌린 방선이 그런 골천심을 향해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뛰어들었다.

    그의 몸에서 핏빛 기류가 두 폭의 핏빛 비단처럼 늘어져 골천심을 갈랐다.

    쿠쿠쿵.

    다급히 몸을 피한 골천심 대신 핏빛 비단은 그녀를 스쳐 현투대를 두부처럼 갈랐다.

    “모두 뒤로 물러나 시합에 영향을 미치지 말라.”

    액회가 하는 말에 현투대 인근에서 관람하던 이들이 자리를 피했다. 그중에는 한립도 있었다.

    거의 무너져 내린 현투대 위에서도 골천심과 방선은 미친 듯이 충돌했다.

    쾅콰콰콰!

    마신처럼 변한 방선의 도끼가 떨어질 때마다 돌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골천심도 정면으로 상대하지 못하고 피하기 급급했다.

    중앙관람석의 신양이 긴장된 표정으로 손에 땀을 쥐었다.

    손도 역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방선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하하, 그래 이거지!”

    극도로 흥분한 방선은 앙천대소하면서 파도처럼 핏빛 도끼 허상들을 날렸다.

    골천심은 핏빛 바다에 뜬 돛단배처럼 보여서 언제라도 전복될 듯 보였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간발의 차이로 피하며 고요하게 방선을 주시했다.

    “죽어! 죽어! 죽어!”

    폭풍 같은 공격을 쏟아내던 방선 주위에 핏빛 기류가 줄어든 순간 골천심이 눈을 빛냈다.

    몸을 비틀어 이상한 각도로 두 도끼를 피한 골천심은 그대로 앞으로 튀어 나가 금색 장창을 뻗었다.

    금색 그림자로 변한 장창이 쌍도끼의 틈을 비집고 방선의 몸을 꿰뚫기 직전이었다.

    “으하하, 속았구나!”

    그때 방선이 광소를 터트리며 두 팔을 모아 쌍도끼를 교차해 챙, 하고 금색 장창을 막았다.

    시간차를 두지 않고 그의 코에서 이전보다 짙은 하얀 음파가 분출되어 골천심을 뒤덮었다.

    핏빛 기류가 다시 짙어진 방선은 골천심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핏빛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허공에 검은 흔적을 남기는 것 같았다.

    중앙관람석의 신양은 얼굴을 굳혔고, 손도는 희색을 드러냈다.

    바로 그 순간, 골천심이 누군가가 끌어당기는 것처럼 기이하게 허리를 꺾으며 쾌속으로 옆으로 물러나 음파와 핏빛 화살을 피하고 창으로 방선의 측면을 공격했다.

    상상도 하지 못한 공격에 화들짝 놀란 방선이 급히 몸을 돌리려다 갑자기 고통스러워했다.

    피부의 현규들이 발산하던 핏빛이 바르르 떨리면서 온몸이 굳고 얼굴색이 파랗게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슉!

    그걸 본 골천심은 차가운 눈으로 몸의 현규를 펑펑, 일깨우며 배로 두꺼워진 팔로 금색 장창을 방선의 태양혈을 향해 찔렀다.

    맹공을 펼치느라 기운이 빠진 방선의 핏빛 기류가 뚫리고 그가 죽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때, 휙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하얀 실 같은 것이 날아들어 금색 장창을 쳐서 경로를 틀었다.

    안색이 달라진 골천심은 급히 장창을 거두고 중앙관람석을 올려다보았다.

    “비무는 끝났다. 청양성 골천심, 승리.”

    그 위에서 액회가 하얀빛이 어린 손가락을 거두고 있었다. 눈을 반짝인 골천심은 장창을 거두었다.

    장창이 다시 금색 뼈 사슬로 떨어지며 그녀의 허리에 휘감겼다.

    자신의 몸 두어 곳을 손끝으로 푹푹 찌른 방선은 다시 몸이 원래대로 돌아와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이번에는 방심했지만, 다음에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방선은 지긋이 골천심을 바라보다 현투대에서 내려갔다.

    역전승을 한 골천심을 향해 관중들이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보내왔다.

    청양성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며 현투대에서 내려오는 골천심을 둘러싸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한립은 그녀가 마지막 순간 괴이하게 피하던 자세를 되뇌며 생각에 잠겼다.

    중앙관람석의 신양은 들뜨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던 한립과 골천심이 연달아 승리했기 때문이다.

    육화부인도 즐거운 얼굴이었다.

    방선의 패배에 손도는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기분 나쁜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성주님, 제 제자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손도가 방선을 대신해 액회에게 인사를 했다.

    “손 성주의 제자는 현성의 인재인데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네.”

    액회가 손을 내저었지만 그래도 손도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신양에게도 축하 인사를 건네고는 자리에 앉았다.

    바로 그때, 검은 장포를 입은 매부리코 사내가 급히 중앙관람석으로 올라와 다급히 액회의 귓가에 무언가 보고를 했다.

    그 말을 들은 액회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서늘하게 성 밖을 노려보았다.

    “성주님, 무슨 일입니까?”

    신양 등 다른 성주들도 액회의 태도에 깜짝 놀라며 긴장했다.

    매부리코 사내의 전음을 듣고 액회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큰일이 터진 것이 분명했다.

    “오성회무를 중단한다! 모두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 함부로 나오지 않도록!”

    액회의 목소리가 웅장하게 수라장 전체에 울렸다. 당황스러운 명령에 다들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특히 ‘건’ 무대에서 격전을 펼치던 두 선수의 황망함은 더 심했다.

    “성주들도 각자의 별원으로 돌아가 성 밖 출입을 금하게!”

    액회는 대중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다른 부속 성주들에게 이 말을 남긴 채 휭하니 사라졌다.

    그를 따라 사라지는 매부리코 사내를 본 성주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액회 성주의 명령도 놀라웠지만 그를 따라나선 매부리코 사내의 신법이 그들을 능가했기 때문이다.

    웅성거리던 관중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액회의 명령에 따라 바깥으로 쏟아져 나갔다.

    신양 등 성주들도 휘하의 사람들을 이끌고 급히 별원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들이 수라장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둥’ ‘둥’ 하는 북소리가 현성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그윽하게 퍼지는 북소리는 자연히 사람들의 심박수를 올려놓았다.

    “천위전고(天威戰鼓) 소리!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신양이 걸음을 멈추었다.

    “비상사태가 아니면 치지 않는 북이거늘, 설마 현성이 공격당하는 것인가!”

    손도도 침음했다.

    “콜록콜록, 괴성이 습격한 것 아닙니까?”

    진원이 다른 성주들을 보며 말했다.

    “정말 그렇다면 참으로 때를 잘 골랐습니다.”

    그 말에 뒷짐을 진 부견이 냉소했다.

    한립은 성주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현성 바깥을 응시했다.

    “어찌 되었든 액회 성주님의 말씀에 따라 어서 별원으로 이동하시죠.”

    “맞습니다. 별원으로 가서 대책을 논의하지요.”

    이때 골천심이 입을 열었고, 신양도 다른 성주들과 시선을 교환하고 걸음을 서둘렀다.

    “거처에 머물며 함부로 돌아다녀서는 안 됩니다. 사태를 파악하면 지침이 내려올 것이니 그때까지 경거망동 마세요.”

    신양은 별원에 도착하자마자 청양성 사람들에게 당부했다.

    그가 떠나고 다른 사람들도 임시 거처로 향했다.

    방으로 돌아온 한립은 생각이 많아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액회가 오성회무를 중단했을까?’

    ‘정말 괴성이 마침 이때 공격을 해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골천심에게 소식을 보내려다 그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소식을 보내지 않았다.

    어차피 현성과 괴성의 분쟁에는 하등 관심이 없었고, 이번 비무에서 연승을 거둔 것도 천린운정을 얻어 흑겁충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한립은 고개를 저으며 무의미한 추측을 그만두었다. 상황을 보아가며 행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안의 경계는 삼엄해 졌고, 곳곳에서 검은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나타나 성벽으로 올라갔다.

    쿠쿠쿵!

    성벽이 둘로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새까만 석탑이 나타났고, 그곳에 장착된 거대 쇠노들이 바깥을 겨냥했다.

    화살탑 외에도 성벽 위에는 각종 투석기(投石機)와 기관 그리고 다양한 괴뢰들이 서 있었다.

    누가 보아도 대규모 전투가 임박한 모양새였다.

    * * *

    방에 앉아 반나절을 보낸 한립에게 청양성 시종이 찾아와 신양이 찾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거처를 나서 신양 거처의 대청으로 들어서니 골천심, 역입애 및 헌원행 등 일고여덟 명이 와있었다.

    “성안의 경계가 삼엄해졌어요.”

    그가 들어오자 고개를 끄덕이며 골천심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한립은 말없이 미간을 좁혔다.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압니다. 오성회무가 이대로 취소되더라도 제게 천린운정을 구할 방법이 있으니 도와드리지요.”

    골천심이 전음으로 말했다.

    “대가 없는 선물은 받지 말아야 한다던데, 저를 돕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연히 이유가 있지요. 간단히 말해서 당신은 이용가치가 있거든요.”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안심이 됩니다.”

    골천심의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한립이 웃음 지었다.

    “다들 모이게 한 것은 바깥의 소란에 대해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현성 북쪽 만 리 밖에 괴성의 대규모 병력이 주둔하고 있답니다.”

    신양이 모두를 둘러보고 신중히 입을 열었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다양해졌다.

    누군가는 두려워했고, 또 누군가는 복수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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