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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967화 (1,724/2,000)

1967화. 전설의 성보

*

일촉즉발의 순간, 한립의 두 다리에서 <우화비승공> 현규들이 빛을 발했다.

18개의 현규 속에서 성신지력이 힘차게 흘러나왔다.

펑펑.

한립의 두 발이 허공을 박차 주변 공간을 뒤흔들자 그는 엄청난 반탄력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수로 풍무진의 검을 피한 것이다.

“이럴 수가!”

풍무진이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관중석에서도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신양이 한시름 놓은 것과 달리 진원은 약간 긴장을 한 표정이었다.

“녀석, 실망스럽지 않은 모습이로구나…….”

고개를 끄덕인 육화부인은 생각에 잠겼다.

액회도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분명 ‘곤’ 무대를 보고 있었다.

‘건’ 무대 쪽은 거의 주목하는 이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위기를 기민하게 벗어난 한립은 바로 자리를 피하지 않고 반대로 몸을 돌려 허공답보를 하듯 풍무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 내 차례입니다.”

한립의 몸에서 펑펑, 하는 소리와 함께 더 많은 현규들이 빛을 발해 그 수가 180개까지 늘어났다.

이번에는 관중석의 평범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앙관람석의 거물들도 안색이 달라져 그를 살폈다.

한립의 실력이 그들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다.

태연하던 액회도 눈썹을 꿈틀하고 힐끗 신양의 표정을 살폈다. 신양도 그의 눈빛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실은 그도 엄청나게 놀랐지만 워낙 감정을 숨기는데 능숙한 터라 진작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

풍무진은 한립의 몸에 드러난 조밀한 현규를 보고 눈에 두려움이 스쳤지만 지금은 피할 수도 없었고 피해서도 안 되는 때였다.

이런 생각이 들자 풍무진은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힘을 끌어올려 괴성을 질렀다.

그가 양손을 움직이자 나머지 유엽세검 한 자루가 돌아와 장검과 결합하면서 표면의 40개의 성규에서 대량의 성신지력을 뿜었다.

동시에 몸의 168개 현규도 빛을 뿜고 있었다.

장검의 검신이 튀어나와 성신지력이 응결된 거대한 빛의 검으로 변해 한립을 공격했다.

한립은 이 치열한 격전의 순간 마음이 아주 고요했다.

묵묵히 <천살진옥공>을 발동해 공중에서 기괴한 자세를 취하며 찬란하게 빛나는 현규들이 모인 오른손을 아래로 뻗었다.

그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는데 손바닥에 밀려난 허공이 쭈글쭈글 겹치며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진아, 안 돼!”

기겁한 진원이 벌떡 일어나 외쳤지만, 너무 늦고 말았다. 한립의 손바닥이 이미 풍무진의 검 끝에 닿아 있었다.

카카카캉!

지속적인 마찰음 속에 빛의 거검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이에 풍무진이 든 두 자루의 유엽장검도 거북이 등딱지처럼 갈라져 조각나고 있었다.

한립은 장검 조각들을 스쳐 손바닥으로 풍무진의 어깨를 내리쳤다.

순식간에 찢겨나간 의복 아래로 풍무진은 고풍스러운 하얀 갑옷을 숨기고 있었다. 부드러운 별빛이 갑옷에서 흘러나와 그를 감싸고 한립의 손바닥을 막았다.

쿠웅-!

보호막이 세차게 갈라지며 갑옷도 망가져 풍무진의 오른쪽 어깨와 팔이 핏덩이로 변해 터져버렸다.

등으로 바닥에 쿵, 떨어진 풍무진은 산발이 된 장발을 휘날리며 기절했다.

게다가 대량의 성골로 견고하게 짜인 현투대가 견디지 못하고 갈라졌다.

한립은 골천심의 부탁을 기억하고 즉시 오른손 주먹을 쥔 채 풍무진을 향해 다가갔다.

“네 놈이 감히!”

누군가 노호성을 터트리며 하늘에서 쿵! 하고 떨어져 안 그래도 거미줄처럼 금이 간 무대를 박살 냈다.

한립이 고개를 틀어 보니 진원이 노기등등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바로 이어 액회 등 다른 사람들도 유성처럼 떨어졌다.

신양은 내려서자마자 한립 옆에 섰다.

“액 성주님, 상대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시합이 끝났다고 볼 수 있는 겁니까? 진원 성주님께서는 왜 그러시는지요?”

공수를 한 한립이 태연하게 물었다.

“려 수사의 실력이 확연히 뛰어난 것을 확인했네. 상대의 오만을 용서하고 이 정도에서 봐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액회는 온화하게 웃으며 물었다.

“성주님의 말씀인데 당연히 따라야지요.”

한립은 공격태세를 풀고 바로 신양 뒤로 가서 섰다.

직접 무릎을 꿇어 풍무진을 안아 올린 진원은 검은 약병을 꺼내 붉은색 단약 몇 개를 입에 넣어 주었다.

“액 성주님, 죄송하지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진원은 맨날 달고 살던 기침도 하지 않고 빠르게 말했다.

“가보게.”

액회는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관중석에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다 야유를 보내며 비무 중간에 끼어든 진원의 행태를 비난했다.

“양아들의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그가 청양성에 보상을 하게 할 것이네.”

액회는 그들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신양과 한립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액 성주님!”

신양이 포권을 하고 한립도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

“자, 다음 경기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되겠지. 계속해서 비무를 진행하게.”

액회는 이 말을 남기고 펄쩍 뛰어올라 중앙관람석으로 돌아갔다. 손도와 부견도 시선을 마주치고 그를 따라갔다.

“려 수사, 수고했습니다……. 이번 경기를 통해 수사도 명성을 날리겠지만 그 덕에 저도 성주 지위가 탄탄해 졌어요. 후에 반드시 보답할 것입니다.”

신양은 암암리에 전음을 보내 고마움을 표했다.

“괜찮습니다. 상대가 먼저 도발했기에 싹을 자르려던 것뿐입니다. 이 일로 신양 수사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됐습니다.”

한립도 웃으며 전음으로 답했다.

“려비우!”

“려비우!”

관중들이 뜨겁게 외치는 소리가 수라장을 울렸다.

‘건’ 무대에서는 중앙관람석이 막고 있어 ‘곤’ 무대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자원은 근공과 비무를 하며 시시각각 한립이 싸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쪽이 승부가 나자 그도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주먹으로 근공을 쳐서 현투대에서 밀어내며 시합을 마쳤다.

시종일관 새하얀 골창도 쓰지 않고 끝난 싱거운 싸움이었다.

약 두 시진 뒤, 두 번째 시합이 시작되었다.

‘건’ 무대는 그대로 시합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골천심과 방선의 시합이 예정되어 있던 ‘곤’ 무대는 폐허가 되어서 ‘간’ 무대로 옮겨 진행해야 했다.

‘간’ 무대 위.

골천심과 방선이 대치하고 있었다.

두 성의 수석 현투사의 싸움이라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고, 빈틈없이 관중석을 메운 사람들은 누가 이길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무대를 내려온 한립도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조용히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방 수사, 당시 일전으로 많은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이번에도 4강전에 이르러서야 만날 수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일찍 실력을 겨루게 될 줄은 몰랐네요.”

골천심은 방선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감정 없는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골 수사와 다시 겨뤄보게 되어 저도 기쁩니다.”

평소의 바보 같은 모습을 사라지고, 지금의 방선은 전의가 흘러넘쳤다.

“경기 시작!”

곁에 서 있던 심판이 낭랑하게 선언하고 현투대를 내려갔다. 그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골천심이 발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쿠쿵.

그녀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긴 현투대 위로 화살처럼 날아올라 방선에게 주먹을 뻗었다. 이에 팔에 밀집된 2, 30개의 현규가 빛나며 강대한 힘을 내뿜었다.

방원 몇 장의 허공이 치직치직 터져나가는 것이 예전에 두청양을 상대할 때보다 위력이 강해 보였다.

중앙관람석에 앉은 신양은 언뜻 미간을 좁혔다가 다시 폈다.

방선은 음파 공격도 강했지만 몸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단단한 것으로 유명했다.

오성회무에 참석한 이들 중 주자원과 버금가는 실력자로 속도가 약간 느린 것이 흠이었다.

그런 그를 상대하면서는 신법을 빠르게 펼쳐 기회를 노리다 상대의 허점을 파악해 치명적인 일격을 날리는 것이 정석이었다.

손도도 놀란 눈빛이었다.

방선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흐릿하게 변한 오른팔로 번개처럼 주먹을 날렸다.

까만 방선의 주먹과 하얀 골천심의 주먹이 맞부딪쳤다.

콰앙!

두 사람 사이로 폭음이 터졌다.

안색이 달라진 방선은 연달아 쿵쿵쿵 세 걸음을 물러서며 걸음마다 바닥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신양, 손도 등은 기뻐하거나 놀라워했고, 주변 관중들도 환호했다.

충돌의 충격으로 골천심의 옷소매가 찢어지자 새하얀 팔목에 걸린 일곱 빛깔 팔찌가 노출되었다.

21개의 하얀 별빛이 반짝이는 칠채(七彩) 팔찌는 골천심의 팔에 딱 달라붙어 거의 일체화가 된 듯했다.

“연체성보(連體聖寶)! 육화 수사, 자네가 개발한 것인가?”

칠채 팔찌를 보고 표정이 미미하게 달라진 액회가 육화부인을 돌아보았다.

“십만 년의 연구 끝에 이제야 만든 겁니다.”

육화부인이 빙긋 웃으며 하는 말에 중앙관람석의 성주들이 놀라워했다.

한립도 이채를 띠고 골천심을 보았다.

성주들이 전음으로 대화를 나눈 것이 아니기에 청력이 뛰어난 이들은 그것이 연체성보라는 말을 들었다.

“려 수사, 연체성보란 성보를 몸에 융합해 그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는 겁니다. 수사의 성두순과 달리 연체성보를 사용하면 힘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신의 힘이 강해지지요. 예를 들어 골천심 수사의 팔찌는 그녀에게 현규 20여 개가 더 생긴 것과 같은 위력을 낸단 말입니다. 이전에도 연체성보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지만, 이론으로만 가능하다 여겼는데…….”

신양의 목소리가 한립의 귓가에 울렸다.

연체성보의 대단함을 깨닫자 한립도 육화부인에게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적린공경 제일의 연기 대사라 불릴 만했다.

그가 볼 때 연체성보를 제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골천심의 팔찌도 그녀의 모친이 지니고 있던 환린채사(幻鱗彩蛇) 혈맥과 연관이 있어 그녀와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았다.

“육화 수사의 실력이야 따라올 자가 없지요. 그런데 골천심 수사와는 무슨 관계이기에 저런 보물을 내주신 겁니까?”

손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제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제련하든 손 성주께서 관여할 일입니까?”

“그럴 리가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육화부인이 눈을 곱지 않게 뜨자 손도가 액회의 눈치를 살피며 사과했다.

중앙관람석에서 이런 대화가 오가는 동안 골천심은 주저하지 않고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그녀가 손을 털자 금빛 뼈 사슬이 허리에서 풀려 곧은 장창으로 변해 방선의 얼굴을 찔렀다.

방선은 골천심의 압도적인 힘을 느끼면서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호승심이 커진 얼굴을 했다.

힘차게 바닥을 박찬 그는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양손으로 등을 훑어 두 자루의 검은 도끼를 들고 장창을 가격했다.

쩡!

금색 장창이 밀려난 뒤, 그 여파로 현투대 인근 사람들이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허리를 꺾으며 금색 장창의 방향을 튼 골천심은 방선의 허리를 노렸다.

이에 기합을 넣은 방선은 손에 든 쌍도끼 중 하나를 장창을 향해, 다른 하나는 골천심을 향해 내리쳐 동시에 공격과 방어를 했다.

민첩하게 옆으로 물러난 골천심은 금색 장창을 빙글 돌려 수많은 금색 장창 허상을 만들어냈다.

방선은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검은 도끼를 휭휭 돌려 돌풍으로 금색 장창허상을 돌파하며 반격을 했다.

두 사람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비처럼 공격을 쏟아부어 순식간에 100여 합이 지나갔다.

비슷비슷한 실력을 지닌 그들은 각자의 장점이 분명했다.

골천심이 아랫배에 손바닥만 한 상처가 났을 때, 방선의 몸에도 창에 찔린 상처가 두 개나 생겨났다.

채채채챙!

콰콰콰콰쾅!

그러나 그들은 부상도 돌보지 않고 공격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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