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965화 (1,722/2,000)
  • 1965화. 성보(星寶)

    *

    역입애를 안아 든 신양은 그대로 수라성을 떠나서 한립과 별원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는 안쪽 방에 역입애를 눕히고 한립이 기다리고 있던 대청으로 나왔다.

    “역 수사는 괜찮습니까?”

    “부상이 심하기는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닙니다. 롱주술을 쓴 대가로 기혈에 손상을 당해 한동안은 깨어나지 못하겠지만요.”

    신양의 대답에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용건을 묻지 않았다.

    “……어째서 수사를 불렀는지 알고 있습니까?”

    “다음 비무를 위해서겠지요.”

    “맞습니다. 풍무진을 어떻게 상대할 요량입니까?”

    “아직 대책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니 염려 놓으셔도 될 겁니다.”

    “수사가 현재 현규를 몇 개나 뚫었는지는 모르나 학봉과의 일전을 보아하니 그보다 적지는 않을 듯합니다.”

    신양이 지긋이 한립을 보았다. 미소를 머금은 한립은 가타부타 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수사의 실력에 체내의 진령 혈맥이면 풍무진과 싸워볼 만할 거라 여겼는데 상대가 성보(星寶) 한 쌍을 지니고 있으니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성보가 무엇입니까?”

    “그걸 모르십니까?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현성에는 처음이실 테니……. 성보란 육화부인이 이곳의 성신지력으로 제련한 최고급 무기입니다. 위력이 무척 강하고 수행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그 수가 극히 적지요. 그런 걸 진원이 어디서 났는지 한 벌로 된 검을 양아들에게 내주었나 봅니다.”

    신양은 씩씩거리며 답했다. 그 말에 한립도 다시 한 번 풍무진이 들고 있던 한 쌍의 검을 떠올렸다.

    “허나 수사가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씩, 웃음 지은 신양이 품에서 하얗고 조그만 방패를 꺼내 건넸다. 방패에는 성신지력으로 이루어진 성신문자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중심에 18개 도안이 전체적으로 용의 형상을 이루고 하얀빛을 깜빡깜빡 내뿜고 있었다.

    “이건?”

    하얀 방패를 받은 한립은 몸 안의 현규가 하얀 방패와 은은하게 호응하는 것을 느꼈다.

    “이것도 성두순(星斗盾)이라 불리는 성보입니다. 원래는 정혈을 이용해 점차 배양해야 좋은데,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까 바로 정혈로 제련해서 며칠만 배양을 해두세요. 3차전에서 치명적인 공격을 한 번은 막아낼 겁니다.”

    “고맙습니다. 3차전에서 실망하시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채를 띤 한립의 말에 신양이 웃으며 성보를 제련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고 내보냈다.

    똑.

    성두순을 들고 방으로 돌아간 한립은 손가락 끝을 깨물어 피 한 방울을 방패 위에 떨구었다. 그러자 피를 흡수한 방패가 즉시 하얀빛을 머금고 웅웅 진동했다.

    미약하기는 했지만 방패와 연계가 생기자 한립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어서 그는 신양이 알려준 대로 미간에서 의식의 힘 한 줄기를 불러내 성두순에 주입하고 정혈의 힘을 발동했다.

    시간이 흘러 대략 반 시진이 지났을 때, 바깥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난 한립은 성두순을 품속에 넣고 밖으로 나갔다.

    청양성 사람들이 수라성에서 돌아왔는데, 다들 흥분한 얼굴로 골천심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리 속에 헌원행은 보이지 않았다.

    “골 수사, 승리하고 돌아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운이 좋았습니다.”

    한립의 인사에 골천심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몸에 상처 하나 없는 것으로 보아 아주 쉽게 승리를 따낸 것이 틀림없었다.

    다른 이들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었다.

    “헌원 수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비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헌원 수사도 승리했습니다. 적의 실력이 더 강했는데도 전술을 잘 써서 승리를 이끌었지요. 대신 상처가 깊어 치료 중입니다.”

    “그런 가요…….”

    골천심의 설명에 한립의 얼굴에 이상하다는 표정이 지나갔다.

    “려 수사의 3회전 상대는 풍무진인데, 그자가 구한 성보의 위력이 대단해 보이더군요. 대책은 세우셨나요?”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성주와 대책을 상의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한립은 구체적인 것은 말해주지는 않았다.

    “다행이네요.”

    한립은 그녀와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거처로 돌아가 성두순 제련에 전념했다.

    방패의 빛은 점점 더 진해졌고, 이를 감지한 한립의 현규들도 활기를 띠었다. 방패가 아니라 자신의 팔다리처럼 피와 살로 연결된 것 같은 끈끈한 연대였다.

    * * *

    7일은 또 금방 지나갔다.

    이날 아침, 수라장 안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각축전을 펼쳐 5성의 현투사들 중 16명만이 남아 ‘건’과 ‘곤’ 현투대에 올라갔다.

    이제 이들이 일대일 비무를 펼쳐 8강에 오를 강자를 뽑게 될 것이다.

    다섯 명의 성주들이 육화부인과 같이 자리를 잡자 관중석에서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환호를 보냈다.

    ‘건’ 무대에 서 있던 새까만 거한이 환호성이 잠잠해질 무렵 입을 열었다.

    “본 오성회무의 8대 강자를 선발하는 날입니다. 오늘 우승하게 되는 모든 분께 지급 인수의 요핵이 상으로 주어지게 되니 다들 승리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8강, 8강, 8강…….”

    잦아들던 환호성이 다시 커졌다.

    “오늘은 ‘건’, ‘곤’ 두 현투대에서 경기가 치러져서 8경기, 총 4번의 비무를 끝으로 종료됩니다. 자, 오늘의 첫 번째 선수들을 소개합니다. 현성의 ‘주자원’ 대 현성의 ‘근공’, 그리고 현지성의 ‘풍무진’ 대 청양성의 ‘려비우’!”

    중앙관람석의 신양은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예선전인 1차전에서 승리한 32명 중에 청양성 선수가 4명밖에 되지 않아 떨어졌던 체면이 2차전에서 그중 3명이 승리하며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그런데 오늘 대진표를 보면 한립은 풍무진과 싸우고, 두 번째 경기에서 골천심은 백암성의 방선과 싸우게 되었다.

    그러나 두 경기 모두 이길 거라는 기대는 생기지 않았다. 한립은 말할 것도 없고 골천심도 이전에 졌던 방선과 싸우게 된 것이다.

    네 번째 경기에서 현성의 나충위와 싸우게 되는 헌원행은 그나마 승산이 있어 보였는데, 확실한 것은 경기가 끝나봐야 알 수 있었다.

    청양성 참가자들이 4강은커녕 8강에도 못 들어갈 거라는 생각이 들자 벌써 얼굴이 굳어졌다.

    두청양 때보다도 못한 성적을 내면 액회 성주의 상을 못 받는 것은 차치하고 청양성 전체의 위엄이 깎일 터였다.

    “관례에 따라 각 성의 수석 현투사들은 8강에 이른 후에야 맞붙게 되는 것으로 압니다. 청양성 골천심은 어쩌다 백암성 방선이랑 붙게 된 겁니까?”

    육화부인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콜록콜록……. 관례는 관례일 뿐, 규칙에 그렇게 쓰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뭐, 순서에 따라 두 수석 현투사가 조금 일찍 맞붙을 수도 있지요. 콜록, 어쨌든 오늘도 재미있는 구경을 좀 하겠습니다.”

    평소대로 기침을 쏟아낸 진원이 입을 열었다.

    “앞서 두 경기를 보니 골천심의 실력도 매서워졌더군요. 방선을 벼르고 나왔을 텐데, 이러다가 손 수사가 좋은 선수 한 명을 벌써 잃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부견이 손도를 힐끗 보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러나 신양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대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지난번 오성회무에서 골천심이 방선에게 졌으니 누가 더 승산이 높은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방선 저 아이는 먹는 것 아니면 자는 것밖에 몰라 계속 놀기만 했어요. 이번에 정말 골천심에게 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손도가 그 말을 받아 한숨을 내쉬는 척하며 농을 했다.

    “콜록콜록, 그 경기 말고도 유심히 볼 게 많습니다. 풍무진이 역입애에게 중상을 입히고 승리한 뒤 려비우를 도발하지 않았습니까. 콜록……. 다들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진원은 화제를 돌렸다.

    “처음 오성회무에 참가한 려비우 수사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현지성 최고 현투사의 도전을 차분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 깊었네. 괜찮은 싹 같으니 신양 성주는 잘 키워보게.”

    그때 무대를 내려다보던 액회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진원의 웃음기가 옅어지고 동시에 신양을 쳐다보는 눈빛이 묘해졌다.

    “액 성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청양성이 아직 다른 세 개의 성보다는 못해도 앞으로 키워볼 좋은 싹은 꽤 있는 곳입니다.”

    신양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진짜 웃을 기분은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누가 그걸 모르겠는가.

    풍무진이 이긴다면 려비우에게 앞으로 성장할 기회 따위는 주지 않을 것이다.

    한립 등 참가자들은 중앙관람석에서 이런 신경전이 오가는 줄 모르고 관중들이 보는 가운데 ‘건’, ‘곤’ 무대로 올라섰다.

    ‘건’ 무대 대결을 펼칠 주자원과 근공의 승패는 너무 뻔해서 낮은 돈을 거는 이들이 적었고, 대부분은 한립과 풍무진 쪽에 판돈을 쏟아부었다.

    한 명은 무명의 현투장 신입이지만 떠오르는 대세였고, 다른 한 명은 수석 현투사로 전력이 화려한 고수였다.

    당연히 풍무진의 승산이 높게 평가되는 만큼 한립에게 돈을 건 사람들의 배당률이 훨씬 높았다.

    관중들의 환호성 속에서 골천심 등 나머지 대기자들은 다른 현투대 쪽으로 물러났다.

    떠나기 전 골천심이 전음으로 뜻밖의 말을 남겼다.

    “려 수사, 가능만 하다면 풍무진에게 중상을 입혀 주세요. 죽여주시면 더욱 좋겠고요. 후에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하하, 제 실력을 너무 높게 평가해 주신 듯합니다. 풍무진과 동수를 이루기도 어려울 텐데 제가 그를 봐줘 가며 싸울 수 있겠습니까?”

    그녀와 현지성의 은원을 아는 터라 한립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골천심은 이 말을 끝으로 멀어져 갔다.

    독룡 등 부상을 입었던 이들도 상처가 나았는지 청양성 출신 참가자들과 함께 한립과 풍무진의 경기를 보러 왔다.

    그중에는 단통과 싸우다 중상을 입은 도강과 역입애도 있었다. 둘 다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와서는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은 요리가 한립을 보는 눈빛이 흔들렸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는 평범한 외모의 인족을 골천심이 중시하는 이유를 몰랐는데 자신이 안목이 졸렬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골천심이 진작 그녀에게 려비우를 잘 대해주지는 못해도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라고 충고한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독룡 수사, 려 수사가 이길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요리가 옆에 앉은 독룡에게 물었다.

    독룡은 난감한 듯 곁의 역입애의 눈치를 살피다 입을 뗐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청양성에서도 실력을 숨기고 있던 탓에, 저도 도통 얼마나 강한지 파악이 안 되어서요.”

    “흥, 골천심도 풍무진에게는 적수가 못될 텐데, 저자가 이길 거라고 생각합니까?”

    역입애가 곧장 기분 나쁜 티를 냈다.

    “하하, 자기가 이기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려 수사는 모르겠고 우리 골 수사는 이길 수 있을걸요?”

    요리가 듣다가 가차 없이 조소를 날렸다.

    “골 수사는 일단 방선이나 이기는지 봅시다.”

    역입애의 말에 요리가 말문이 막혀 씩씩거렸다. 과거에 방선에게 졌던 골천심이 그를 이기기가 쉽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시작합니다. 두 분 다 그만 싸우시지요.”

    독룡이 헛기침을 하고 그들을 말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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