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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962화 (1,719/2,000)

1962화. 살심

*

일각 후 1회전이 시작되었다.

한립과 골천심은 독룡과 헌원행까지 이끌고 ‘곤’자 비무대 인근의 창가에서 바깥을 쳐다보고 있었다.

도강과 단통이 멀리서 마주 서서 대치 중이었다.

신중한 표정의 도강은 약간의 두려움과 억울함이 묻어났고, 단통은 상대를 경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리 경계하지도 않았다.

그게 더 도강을 열받게 만들었다.

그때 현투대의 심판관인 흑포 노인이 두 사람의 중앙에 서서 말했다.

“특별한 규칙은 없습니다. 못 이길 것 같으면 언제든 패배를 인정하세요. 괜히 버티다 죽으면 그건 본인 책임입니다.”

노인은 도강과 단통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현투대에서 뛰어내려 자리를 피해주었다.

마주 선 두 사람은 포권을 하고 정식으로 비무를 시작했다.

중앙 관람석의 다섯 성주와 육화부인은 서로 담소를 나누며 1회전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가끔 시간이 날 때 잠시 아래쪽을 살필 뿐이었다.

‘곤’ 비무대 위.

도강의 전신에서 펑펑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린 뒤, 뜻밖에도 두 팔에 현규를 밝힌 그가 먼저 단통에게 달려들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현투대가 쿵쿵 울리는 게 힘이 세 보였다.

쿵, 쿵, 쿵…….

십여 보를 걸은 그는 기운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오른팔은 금빛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다.

단통은 몇 배로 굵어진 도강의 팔뚝을 보고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다가 상대의 주먹이 날아들고서야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서늘하게 눈을 빛낸 단통이 번개처럼 주먹을 뻗어 도강의 주먹과 맞부딪쳤다.

쿠앙!

두 주먹의 충돌에 폭음이 터졌고, 사나운 기운이 관람석으로도 전해졌다.

단통이 산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선 것에 반해 비명을 내지른 도강은 팔의 현규 몇 개가 동시에 갈라지며 팔이 부러진 채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대로 현투대 밑으로 떨어진 그는 기절하고 말았다. 그 모습에 현투대를 지켜보던 관중들이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부 수사, 통여성 단통의 실력이 또 늘었구만. 벌써 대결을 끝내고 말이야.”

“열심히는 하는데 아직 부족합니다. 특히나 성주님 휘하의 자원 수사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요.”

액회의 칭찬에 부견이 겸손하게 답했다.

“상대가 약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일격에 승부를 내다니 인재라 할 만합니다.”

진원도 웃으며 말했다.

다들 한 마디씩 단통을 칭찬하는 와중에 신양만이 묵묵히 말이 없었다.

겉으로는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으나 소매 속의 주먹은 너무 꽉 쥐어 피가 통하지 않았다.

대기실 안에 있던 청양성 수사들도 난색을 표하고 떠나갔다.

자신이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같은 성 출신 실력자가 1회전에서 낭패를 당하는 것을 보니 사기가 떨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골천심과 함께 남아 있던 한립은 도강이 들것에 실려 현투대를 내려오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제게 졌을 때보다 훨씬 강해졌네요. 도강의 대력금강결을 상대로 통현비를 사용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왼팔을 사용해 일격으로 끝냈습니다. 도강이 자신의 적수가 안 된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군요.”

미간을 좁힌 골천심이 비무를 분석했다.

“제가 볼 때 왼팔을 뻗으면서 오른팔의 힘을 빌리기는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최선을 다한 도강이 저리 처참하게 패배할 리 없었겠지요. 그래도 두 사람의 실력 차가 너무 컸습니다.”

“그러게요. 도강이 다른 신통을 사용하게끔 엇비슷한 상대였다면 좋았을 것을요.”

“하하, 벌써 어떻게 상대를 할지 고민 중이십니까? 두 번째 시합도 멀지 않았으니 이제 우리도 싸울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러시죠.”

한립의 말에 골천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1회전의 모든 경기가 막을 내리고, 손빙하도 예상대로 탈락했다. 1회전 승패를 건 투전판의 결산이 끝나자 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2회전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청양성 수사들이 꽤 출전했고, 그중에는 한립, 골천심 그리고 역입애 세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출전하지 않은 이들은 전부 골천심과 역입애의 경기를 보러 몰려들었고, 독룡마저 골천심 쪽으로 가서 한립의 ‘손’자 현투대 인근 통로에는 백암성 현투사들 몇이 다였다.

려비우와 서순 둘 다 그다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예라 관중석에서도 그들을 보러 온 이들이 많지 않았다.

구경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그득그득한 다른 현투대와 비교하면 썰렁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익숙한 얼굴이 단정하게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현투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해 도인이었다.

‘손’자 현투대 위.

한립과 서순이 멀리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검은 장포를 입은 심판이 둘 사이에서 서서 규칙을 설명해주고 물러나자 비무가 시작되었다.

한립과 서순은 곧바로 공격하지 않고, 상대방을 살피며 대치 중이었다. 그걸 본 주위의 관중들은 즉시 야유를 했다.

서순은 아무리 한립을 살펴도 기운도 얼굴도 평범해서 별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지만, 역입애가 약속한 보답을 떠올리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한립은 상대의 표정을 읽고 마음속으로 냉소를 흘리는 중이었다.

‘네가 먼저 살심을 품었으니 나를 원망하지 말거라.’

그 순간, 서순의 양발이 번득이고 발밑의 현규가 빛을 발하며 그가 떠올랐다.

고공에서 떨어지는 그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벌써 한립의 코앞이었다.

한립은 서순이 주먹을 허리까지 끌어당겼다 맹렬하게 뻗는 것을 보고도 꼼짝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나 서순의 주먹이 한립에게 닿았을 때, 순식간에 그의 신영이 사라져 버렸다.

“……!”

눈을 크게 뜬 서순은 불길한 예감에 속도를 높여 땅에 착지해 방향을 틀려 했다.

그 순간, 그의 발끝이 땅에 닿기도 전에 눈앞이 뿌옇게 변하며 한립이 질풍처럼 나타나 무릎으로 그의 가슴을 찍어 올렸다.

‘빠르다!’

서순은 현규들로 빛나는 한립의 두 다리를 보고는 깜짝 놀라 양팔로 가슴을 막았다. 그러나 엄청난 충격이 밀려들어 등이 새우처럼 휘어 튕겨 나갔다.

이어서 두 다리의 현규들을 더욱 맹렬하게 밝힌 한립은 튕겨 나가는 서순의 속도를 초월해 따라잡더니 주먹으로 등을 후려쳤다.

뻑!

그대로 수직으로 낙하한 서순이 통, 통, 통 세 번을 튕기고 바닥을 굴렀다.

눈깜짝 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그들을 지켜보던 관중들은 박수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중앙 관람석에서는 가끔 몇몇이 무슨 일이 있나 힐끗 눈길을 주었을 뿐, 집중해서 살펴보는 이는 없었다.

한립과 서순의 현규는 다른 수사들보다 적어서 누가 이기고 지든 큰 흥미를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딱 한 사람 신양만이 자주 ‘손’자 현무대를 쳐다봤지만 걱정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때 한립은 거리를 두고 서순에게 전음을 보내 물었다.

“당신과 나는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어째서 처음부터 저를 죽이려 마음먹은 겁니까?”

“퉷! 제가 당신을 얕보았습니다.”

입에 고인 핏물을 뱉은 서순이 한립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피피파팍.

몸을 일으킨 그는 두 어깨를 떨며 골격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를 냈다.

제자리에 선 한립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기합을 넣은 서순은 몸을 활처럼 굽혔다 펴며 한립을 향해 쇄도했고, 불끈 쥔 주먹과 전신의 78군데 현규가 호응하면서 진극막이 일어났다.

한립은 이번에도 피하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쿵. 쿵. 쿵…….

그의 팔에서 현규 몇 개가 빛을 발하고,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현투대가 진동했다.

‘48, 52, 56…….’

다가오는 한립의 몸에서 현규의 수가 끝없이 불어나자 드디어 서순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역입애가 잘못 안 것인지 일부러 자신을 속인 것인지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불안한 마음속에 두 사람의 거리는 급격히 가까워졌고, 기합을 넣은 한립은 팔의 18군데 현규를 밝혀 도강의 대력금강결을 펼쳤다.

첫 번째 경기에서 도강의 경기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한립이 펼치는 대력금강결은 그의 것처럼 외부로 기운을 뽐내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숨겨진 힘이 더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순은 이제 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날렸다.

주먹 끝 현규 두 개가 반짝이며 거의 실체화된 보광으로 손이 뒤덮였다.

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치려는 그때, 서순의 중지와 식지 사이에서 뾰족한 뼈가 튀어나와 찬란한 별빛을 발했다.

‘성골(星骨)…….’

눈을 번뜩인 한립은 그가 무기를 숨겨둔 것을 알고도 주먹을 거두지는 않았다.

그저 주먹을 쥔 손가락 중 화지동천인 두 개의 손가락이 볼록 튀어나와 서순의 손가락 사이에 숨겨진 뼈를 막았다.

쿵!

격렬하게 별빛이 흩어지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순식간에 충돌했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눈을 찌를 듯한 별빛 밖에는 보지 못했다.

오직 별빛 속의 서순만이 한립이 거의 백 개에 가까운 현규를 밝히는 것을 보고는 후회와 원망 섞인 소리를 냈다.

이제 와 패배를 인정하기에도 늦고 만 것이다.

“역입애, 이 망할…….”

마지막으로 이 일의 원흉인 역입애를 욕하던 서순은 피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더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눈부신 빛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엉망이 되어 쓰러진 한립과 처참한 시체로 변한 서순을 발견했다.

적잖은 이들이 이채를 띠었고, 서순을 높이 평가해 그의 비무를 살피던 현투사들은 눈을 부릅떴다.

이번 오성회무에서 처음으로 사상자가 나온 시합이었다.

‘려 수사, 제법 연기도 잘하십니다…….’

신양은 쓰러진 한립을 보며 속으로 웃음 지었다.

볼썽사나운 꼴을 한 한립이 전혀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와 해도인 뿐일 것이다.

* * *

두 명의 현성 병사들이 한립을 데리고 치료실로 향했지만, 도중에 한립이 스스로 일어나 괜찮다는 말로 병사들을 돌려보냈다.

외진 구석에 앉은 그의 입술 사이로 낯익은 이름이 흘러나왔다.

“역입애…….”

한편 다른 7무대의 경기도 속속들이 끝나고, 골천심과 역입애를 제외한 다른 청양성 현투사들은 전부 탈락했다.

다행히 비록 승리하지는 못했어도 목숨이 오락가락할 만한 부상을 입은 자는없었다.

골천심의 상대였던 현성 수사는 현규의 수나 실력에서 그녀에게 한참 못 미쳐 한참을 두들겨 맞다 초주검이 된 상태로 겨우 항복할 기회를 찾아 비무를 마쳤고, 역입애는 딱 70여 개의 현규만을 사용해 현규를 80개 이상 뚫은 현투사를 때려눕혀 기절시켰다.

그들이 대기실 통로로 돌아오자 청양성의 남은 현투사들이 축하하러 몰려들었다.

승리의 기쁨이 물씬 느껴지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본 역입애는 한립이 보이지 않자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려 수사는 어찌 되었습니까?”

“여덟 번째 현투장은 경기가 끝난 지 좀 됐는데, 려 수사가 돌아오는 것은 못 봤습니다.”

독룡도 이제 막 골천심의 비무를 다 보고 오는 길이라 려비우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져서 치료를 받으러 간 것 같은데요.”

또 다른 청양성 수사가 말했다.

“그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지나가며 다른 이들이 하는 소리를 들으니 ‘손’자 현투장에서 사람이 죽어 나갔답니다. 려비우 수사는 아마…….”

누군가의 말에 역입애의 미소는 짙어졌고, 골천심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때 헌원행이 누군가를 불렀다.

“려 수사…….”

그 소리에 다들 돌아보자 의복 곳곳이 찢긴 한립이 절뚝거리면서 돌아오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역입에는 내심 깜짝 놀라 그를 주시했다.

“려 수사, 이긴 겁니까?”

수사들은 호기심을 보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운이 좋았습니다.”

미소를 머금은 한립은 손을 저었고, 그를 보던 골천심도 미소 지었다. 한 걸음씩 힘겹게 걸어 역입애 옆으로 다가간 한립이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저는 운이 좋았는데, 제게 진 서 수사는 너무 운이 없었어요.”

그 말을 들은 역입애는 어쩐 일인지 한기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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