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961화 (1,718/2,000)

1961화. 상

*

현성 현투사들은 주자원과 주자청 오누이를 따라 그중 하나의 통로로 가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고, 다른 무리도 그걸 보고 각자 우두머리를 따라 위로 향했다.

지상으로 갈수록 환호성과 시끌벅적한 소리가 커졌다. 특히 사방팔방에서 유명한 현투사들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주자원! 주자원…….”

“풍무진…….

한립은 청양성에서도 여러 번 경합을 벌였지만, 관중석의 환호 소리에 이렇게 놀라보기는 처음이었다.

뜨거운 기운이 몰려드는 것처럼 거의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엄청난 소리에 온몸의 피가 들끓는 것 같았다.

백여 장 거리를 두고 현투대라 불리는 시합장이 총 8개가 마련되어 팔괘 방위에 고르게 분포했고, 그중 5개에 오성의 현투사들이 모여 서 있었다.

현성 현투사들이 모인 현투대에는 체구가 크고 머리에 푸른 쇠뿔이 두 개 자라난 인물들이 함께 있었다.

여덟 개의 현투대 중앙에 높이 솟은 관람석에는 검은 돌의자 6개가 놓여 있어서 각 성의 성주들 자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남는 한 자리가 누구의 것일지는 의문이었다.

“모두 조용히 하십시오. 성주 대인께서 오십니다!”

새까만 거한이 목소리를 높여 외치자 그 즉시 수라장이 고요해졌다.

이어서 바람 소리와 함께 여섯 사람이 유성처럼 중앙 관람석으로 떨어졌다.

액회 성주를 중심으로 다섯 사람이 양쪽으로 나뉘어 반걸음 뒤에 서 있었는데, 오늘따라 평범한 액회 성주의 전신에서 수사자와 같은 위압감이 풍기고 있었다.

‘저 사람은!’

한립은 슬쩍 관람석을 살피다 액회 성주 왼편에 서 있는 키는 작지만 두툼한 몸을 지닌 사내를 발견했다.

그는 머리가 반이나 벗어진 대신 턱의 수염은 무성한 연기대사 육화대인이었다.

육화대인의 신분이 높은 줄은 알았지만 현성에서 성주급으로 대접을 받는 줄은 몰랐다.

“현성에 모인 오성의 수사들이여. 오늘 수라장에서 왕좌를 차지할 자를 기다리겠다!”

액회의 외침에 고요하던 장내에 폭발적으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간단히 몇 마디를 덧붙인 액회는 뒤쪽의 의자에 가서 앉았고, 나머지 다섯 사람도 그를 따라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환호성은 오랫동안 이어지다 잦아들었다.

“이번 오성회무에서는 현투장에 나와 있는 64명의 강자들이 둘씩 대결을 해서 총 6번의 싸움을 거쳐 승자를 가리게 됩니다. 8강에 들어선 이들은 지급 인수 요핵을 상으로 받게 되고, 4강에 진입하면 천급 인수 요핵을 상으로 받습니다.”

진행자인 새까만 거한이 설명을 시작했다.

천급과 지급 인수 요핵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자원이었기에 듣고 있는 참가선수들도 가슴이 뛰었다.

“3위는 그 외에 천린운정을 받게 되는데, 이는 천만 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렵다는 최고급 재료로 그 진귀함을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물입니다.”

관중들이 천린운정이라는 말에 감탄하는 동안 한립은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3등 안에는 들 자신이 있었다.

“액회 성주님, 이번에 상이 참으로 후하십니다. 우승자에게 주어도 충분할 상을 3등에게 주시고요. 하하, 아깝지도 않으십니까?”

“모두 한 가족인데 어느 누가 상을 받든 현성을 위한 거름이 되지 않겠는가.”

중앙 관람석에서 손도가 웃으며 말하자 액회도 미소를 지었다.

“2위는 육화대인께서 친히 제련하신 인골현성갑(鱗骨玄星甲)을 얻게 됩니다. 이 갑옷은 성신지력을 머금은 크고 작은 성골 1천2백3십6 조각을 이용해 만들어졌고, 제련에 쓰인 재료 중에는 천린운정에 버금가는 것들이 다수라 합니다. 육화대인께서 공들여 만든 갑옷이라는 것만으로도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이겠지요.”

진행자의 말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풍무진 등 각 성의 이름난 인재들마저 안색이 달라져 욕심을 드러냈다.

한립은 중앙 관람석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육화대인을 보고 그가 어떻게 이번 대회의 상을 알아냈는지 알아차렸다.

이쯤 되자 다들 1등은 어떤 상을 받게 될지 추측하느라 난리였다.

적린공경에서 앞서 발표된 두 가지 물건보다 더 귀한 보물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번 대회의 우승자에게는 유염혈운(硫焱血雲)이 주어지게 됩니다!”

치열한 추측 속에 거한이 마지막 상을 발표했다.

이전 보물들과는 달리 아무도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지 수군거리기만 했다.

그저 중앙 관람석에서 액회와 육화부인을 제외한 부속성 성주들만 안색이 달라져 아연한 얼굴을 했다.

“정말 유염혈운을 상으로 주시려는 것입니까?”

신양이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지 이렇게 물었고, 다른 이들도 액회를 향해 답을 구하는 얼굴이었다.

“다들 놀랄 것 없네. 이번 우승 상품은 규모천로(竅母天露)라고도 불리는 유염혈운이 맞으니까 말이야.”

액회 성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유염혈운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혈기(血氣)의 힘이 담겨 있어, 그걸 몸에 흡수한 수사는 공법수련에 의지하지 않고 현규를 뚫을 수 있으며 어떤 후환도 남지 않는다 들었습니다.”

신양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표정을 숨기며 말했다.

“현규를 뚫을 수 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지만 위험하기도 하지. 사람의 몸이 유염혈운을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만일 강제로 그 이상을 흡수하려 하면 기혈이 역류해 몸이 터져 죽고 말걸세.”

“그렇다고 해도 정말 대단한 보물입니다…….”

다른 성주들도 분분히 찬탄했다.

액회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지 않아 청력이 뛰어난 현투장 내 참가자들은 그들의 대화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저 놀람을, 다른 이들은 갈망을 드러냈다. 그러나 한립은 신기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크게 욕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보다 현규를 뚫는 속도가 빠른 그는 오히려 천린운정이 더 절실했다.

“오성회무 제1회전에서는 총 32번의 전투가 벌어집니다. 여덟 경기가 동시에 치러져 총 4번을 이어가 오늘이 지나기 전에 32명의 승자가 가려지게 됩니다. 승자들은 7일 후에 2회전 시합에 참석할 수 있겠지요. 이제, 1회전 대진표를 공개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고 쿠릉, 하는 마찰음이 울렸다.

중앙 관람석 좌측의 바닥에서 회백색 암벽이 솟아올라 네 칸으로 구분된 구역에 대결하게 될 참가자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었다.

한립은 첫 번째 칸에 자신과 골천심의 이름이 없는 대신 청양성 소속의 도강과 손빙하가 올라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손빙하와 비무를 하게 될 사람은 현성의 현투사로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도강의 비무 대상은 통여성 단통이었다.

한립은 두 번째 칸의 ‘손(巽)’자 현투대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과 상대방인 ‘서순’의 이름을 발견했다.

서순은 백암성의 현투사였다.

“려 형도 저처럼 두 번째로 비무를 하게 되었군요. 각자 ‘손’자 비무대와 ‘이’(離)자 비무대에서 경기해서 서로의 시합을 구경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의 의식에 골천심의 전음이 울렸다.

골천심은 현지성의 ‘왕직’이라는 현투사와 대결을 하는 듯했다.

“서순이란 자를 아십니까?”

한립도 전음으로 물었다.

“지난번 대회에도 참가했었지만 등수는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오성회무에 선발된 것을 보면 그만한 실력이 되겠지요.”

“대진표가 참으로 인위적으로 짜여 있습니다. 같은 성 출신 수사들은 비무를 하지 않고, 각성의 주력 현투사들도 일부러 갈라놓았군요.”

“원래 그렇습니다만 1회전만 지나면 같은 성 수사들끼리도 맞붙을 수 있습니다. 1회전에서 각 성 참가자들이 고르게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지요. 그리고 관람객들의 흥미를 위해 3회전까지는 상위권으로 예상되는 이들은 붙여 놓지 않습니다. 미리 그들끼리 승부를 내놓으면 누가 우승할지 뻔해지니까요.”

골천심은 아는 대로 설명을 해주었다.

“오늘 첫 번째로 비무를 할 16명의 현투사들만 남고, 나머지 현투사들은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관중석에 계신 분들은 원하는 현투사에게 금전을 걸 수 있습니다. 일각 후면 비무가 시작되니 서둘러 주십시오.”

이때 새까만 거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대기자들이 떠나는 동안 관람석은 아주 떠들썩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원래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옮기거나 돈을 걸고 있었다.

대회장 면적이 너무 넓다 보니 한 곳에 앉아 여덟 경기를 다 관람할 수는 없고, 누가 비무를 할지 살핀 다음 관심 있는 무대 가까이로 가야 했다.

한립 등 대기 인원들이 머무는 장소는 관람석 아래에 있는 고리형 통로여서 거의 수라장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곳에 난 창문을 통해 통로를 돌며 바깥의 모든 경기를 볼 수 있었다.

도강, 손빙하와 친분이 있는 청양성 수사들은 거의 그들이 비무를 앞둔 ‘곤(坤)’자 비무대와 ‘태(兌)’자 비무대 가까운 창가에 서 있었다.

“도강 수사가 대진운이 좋지 않았습니다. 1회전에서 단통을 만나다니 이번 대회는 여기까지겠어요…….”

청양성 현투사 중 한 명이 탄식했다.

“어쩔 수 없지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단통보다 실력이 좀 못한 이들을 만난다고 이길 수 있겠습니까.”

또 다른 사람이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벌써 그렇게 비관적인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우리에게는 역 수사가 있지 않습니……. 엇, 어째 역 수사가 안 보입니다?”

누군가 그제야 무리에 역입애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통로의 인적 드문 구역에서 역입애는 체구가 큰 중년인과 나란히 걸으며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그간 역 수사의 경지가 상당히 높아져서 나이 많은 제가 형으로서 부끄럽습니다.”

중년인이 미소를 보였다.

“농담 마시지요, 서 형. 그보다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오늘 서 형과 대결할 청양성 ‘려비우’를 비무 중에…….”

역입애는 말없이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서 형이라 불린 중년인은 한립의 적수인 백암성 현투사 서순이었다.

“오, 역 수사와 원한이 있는 자입니까?”

서순은 재미있다는 눈빛이었다.

“하하, 그런 것은 묻지 마시고요. 이렇게만 해주시면 제가 후에 보답은 확실히 하겠습니다.”

“안 될 것은 없지만 려비우의 실력은 어떻습니까?”

“제가 폐관하던 때라 청양성 현투장에서 그자가 싸우는 걸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듣기로 현규를 마흔 몇 개밖에 뚫지 못했는데도 꽤 한다더군요.”

“마흔 몇 개요? 겨우 현규 마흔 몇 개를 지닌 자가 어찌 오성회무의 참가자격을 얻었단 말입니까. 저를 속이시는 것 아닙니까?”

“현규의 수가 알려진 것보다 많을 수는 있지만 그래 봤자일 겁니다. 이번 오성회무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도 신임 성주와의 친분 때문이고요. 소문에 신임 성주가 외부에서 데리고 들어온 자라 들었습니다.”

“성주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신양 말입니까? 그렇다면, 그 부탁 들어드리지요.”

서순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다리에 집중적으로 현규를 뚫는 공법을 수련해 속도가 빠르니 그 점을 주의하시면 됩니다.”

“사십여 개가 아니라 오십여 개의 현규를 지녔다고 해도 제 상대는 못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제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지나 생각해 두세요.”

역입애의 당부에 서순이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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