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화. 각자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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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표범처럼 굉장한 속도로 달려든 골천심은 다섯 손가락을 비수처럼 뻗어 상대의 목을 찔러 들어갔다.
두청양은 부상 때문에 피하지 못한 것인지, 그 공격을 그대로 맞았는데도 충돌음이 울릴 뿐 목이 찢기지는 않았다.
목에 붙은 오채색 비늘들이 빛을 발하자 두청양의 목이 용수철처럼 뒤로 굽혀졌다 골천심의 힘을 고스란히 튕겨냈다.
그의 몸이 갑자기 뼈가 없는 구렁이처럼 물컹하게 변해서 모든 공격을 지면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골천심의 일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낸 그는 손바닥으로 골천심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 모습에 골천심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주먹을 뻗어 결국 손바닥과 주먹이 마주쳤다.
쾅!
두청양의 구렁이 같은 몸이 꿈틀꿈틀 대며 대부분 힘을 바닥으로 흘려보냈음에도 뒤로 연달아 밀려 나갔다.
골천심은 온전히 충격을 받아 반대편 벽으로 날아가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콰르르.
대량의 바위와 돌들이 떨어져 그녀를 묻어 버렸다.
그 모습에 신양은 중상을 입은 두청양이 아직도 이런 힘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난색을 표했다.
“신양, 그간 내 너를 섭섭지 않게 대해주었건만…….”
천천히 고개를 돌린 두청양이 말끝을 흐렸다.
그의 핏발선 눈을 중심으로 암홍색 문양이 퍼져나가고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두청양은 그대로 신양에게로 뛰어들어 손끝으로 심장을 찔러 들어갔다.
겨우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한 신양의 백골 갑옷에는 손톱자국이 깊게 남아 있었다.
이어 두청양의 몸이 길쭉하게 늘어나 비단뱀이라도 된 듯 알록달록한 몸으로 그의 허리를 휘감고 엄청난 압력을 가했다.
두 주먹을 그러쥔 신양이 현규를 전부 밝히고 강력한 힘의 파동으로 두청양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상대는 더욱 꽉 조여 올 뿐이었다.
동시에 두청양의 입이 양옆으로 찢어지면서 새빨간 구렁이의 입이 신양의 머리를 통째로 잡아 뜯으려 들었다.
신양은 발버둥을 치며 날아드는 두청양의 머리를 향해 주먹질을 가했다.
파삭!
그가 환린채사의 화신으로 변한 두청양에게 머리를 내주기 직전, 맞은편 산벽의 돌 더미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골천심이 가볍게 뛰어올라 허리에 차고 있던 짐승의 등뼈로 만든 사슬을 들고 환린채사에게 달려들었다.
채채챙!
등뼈 사슬 끝에 매달린 삼각형 뼈가 두청양의 뺨과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두청양은 멀쩡한 얼굴로 그저 신양의 머리 대신 어깨를 물고 긴 송곳니로 갑옷을 뚫었다.
골천심은 안색이 달라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바닥을 박차고 다시 날아올랐다.
기다란 등뼈 사슬이 그녀의 손짓에 차르륵 말리며 백골 장검으로 변했고, 그대로 두청양의 머리로 떨어졌다.
휘익.
백골 장검이 두청양의 뺨을 가르면서 피가 튀었지만, 머리는 박살을 내지 못하고 뼈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 순간, 골천심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전력을 다한 일격으로도 두청양을 죽일 수 없었다.
“이제야 네 어미의 혈맥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았더냐? 네가 이어받았다면 어미가 참으로 좋아했을 것을, 우하하하!”
두청양이 신양의 어깨를 놓아주며 거침없이 웃어 젖혔다.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두청양에게 물려 몸을 가누지 못하던 신양이 매서운 눈빛으로 오른팔을 들어 두청양의 배를 찌른 것이다.
팔에 밀집된 스무 개가 넘는 현규가 태양처럼 눈부신 빛을 발산했다.
푹!
두청양의 피부가 뚫리기는 했으나 신양의 칼처럼 날카로운 오른팔도 겨우 손가락 한 마디 밖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흥, 이 주제도 모르는 것이!”
두청양은 상처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그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펑! 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두청양의 배에 손을 찔러 넣은 청양의 오른팔이 폭발해 결국, 두청양의 배에 커다란 구멍을 뚫은 것이다.
고개를 쳐들고 비명을 지르던 두청양은 열이 받아 신양을 물어 죽이려 했다.
더이상 부상을 억누르지 못하겠는지 전신의 반짝이던 비늘도 불안정하게 반짝거렸다.
놀란 신양이 황급히 왼팔로 얼굴을 가렸다.
휘우웅.
이때 바람 소리가 일고 멀리서 핏물을 뒤집어쓴 흐릿한 신영이 튀어나왔다.
거구의 핏빛 신영은 한쪽 팔을 들어 퍼퍼펑, 연달아 십여 개의 현규를 밝힌 다음 두청양의 뺨에 박힌 골천심의 백골 장검을 내리쳤다.
꽝!
팔이 저릿해진 골천심은 장검을 쥐고 있지 못하고 튕겨 나갔고, 백골 장검은 막힘 없이 주르륵 아래로 밀려 내려갔다.
반짝이는 비늘을 지닌 두청양의 머리가 둘로 갈라지며 신양의 어깨에서 떨어져 나갔다.
백골 장검은 그의 단전까지 갈라 원영마저 죽여 없애고 말았다.
눈을 휘둥그렇게 뜬 신양은 왼손을 들어 공격을 막으려던 자세 그대로 피와 뇌수를 뒤집어쓰고 굳어 있었다.
너무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골천심 역시 멍하니 바닥에 떨어진 채 서 있었다.
잠시 후 피범벅이 된 신영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그는 바로 죽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희생양 려비우였다.
그때 한립의 전신에는 72개의 현규가 반짝이고 있었다.
<대주천성원공>과 <우화비승공>으로 수련한 54개의 현규 말고 두 팔에 18개의 새로운 현규가 뚫려 있었다.
“<대력금강결>이잖아……. 어떻게 이렇게 빨리.”
골천심은 그의 두 팔에 생긴 현규의 위치를 파악하고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아니 공법을 교환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대력금강결>로 현규를 18개나 뚫었단 말인가?
이게 다 가라혈진 덕이란 말인가?
골천심은 피범벅이 된 한립을 바라보며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드디어 정신을 차린 신양도 놀란 표정을 감추고 팔을 내렸다.
세 사람은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원하든 원치 않았든 세 사람이 협력해서 두청양을 해치운 셈이었다.
잠시 후, 한립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가능하다면 저는 두 분과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신양과 골천심도 동시에 뒤로 물러나며 그를 경계했다.
“려 수사, 제 뜻도 그렇습니다.”
골천심도 재빨리 답했다.
“모두가 힘을 합쳤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기왕 목숨을 부지한 것 무의미한 싸움은 하지 마시지요.”
신양도 경직되기는 했지만,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그는 품에서 검은 돌 상자를 꺼내 안에 든 핏빛 단약을 복용했다.
뼈가 드러나 있던 오른팔의 흉측한 상처가 핏빛과 하얀빛에 휩싸여 점점 재생되었고, 이어서 어디서 났는지 짐승 가죽을 꺼내 상처가 남은 팔을 둘둘 감아두었다.
“그래서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한립은 얼굴의 핏자국을 닦아내며 물었다.
“모르시겠습니까? 모든 게 저와 신양 대장, 아니 신양 성주가 오래전부터 계획한 것입니다. 물론 결국에는 려 수사께서 나서주셔서 두청양을 죽일 수 있었지만요.”
골천심이 미소를 지었다.
“제게 핏빛 액체를 복용하라고 알려준 것도 당신들이겠군요?”
한립은 담담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확인했다.
골천심은 복수를 위해, 신양은 성주 직위를 위해 가라혈진의 위력을 빌려 두청양을 제거한 것이다.
그 와중에 한립은 두청양과 나머지 대장들의 기혈의 힘과 성신지력을 흡수하고 부쩍 강해질 수 있었다.
“제가 수사에게 전한 것이 맞습니다. 광혈린서(狂血鱗鼠)가 수사의 기혈을 순간적으로 폭주시키기는 해도 몸에 별다른 후유증을 남기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골천심은 미안한 얼굴로 설명했다.
“후유증은 남지 않을 거라……. 이런 일을 벌여 놓고 말은 쉽게 하십니다?”
“저를 탓하시겠다면 변명할 생각은 없습니다. 수사를 이용해 두청양에게 부상을 입힐 목적으로 광혈린서의 피를 복용하게 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수사가 이 일로 어찌 될지도 고려하지 않았고요.”
한립이 냉소를 하는 것을 보고, 골천심은 담담하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려 수사, 이 일에 대해서는 제가 먼저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수사를 청양성으로 초대하지 않았으면 현투장에서부터 오늘까지 모든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모두 두청양의 명에 따랐을 따름이고, 수사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었습니다.”
신양이 한립을 향해 예를 표했다.
“의도했든 안 했든 이미 끝난 일이니, 저도 더는 잘잘못을 가리지 않겠습니다.”
한립은 빙긋 웃어 보였지만, 신양과 골천심은 그의 말을 단 할 글자도 믿지 않았다.
“려 형의 관대함에 탄복할 뿐입니다.”
골천심이 웃으며 예를 표했다.
“그럼 이야기도 마무리되었고, 이제 저는 가볼까 합니다.”
한립은 자신을 경계하는 그들을 보고 공수를 한 뒤 바로 떠나려 했다.
체내의 흑겁충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없었다.
“잠시만요! 두청양과 그의 심복들이 죽었지만, 아직 잔여세력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을 확실히 제압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 앞날을 장담할 수 없을 거예요. 이번에 현규를 자폭하면서 저는 오른팔을 단시간 내에 다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탁드릴 일이…….”
그가 떠나려는 것을 보고 신양이 급히 말렸다.
“청양성 성주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도움을 달라는 말입니까?”
걸음을 멈춘 한립이 돌아섰다.
“그렇습니다. 저와 골 수사의 연맹에 함께 해주십사 청하는 겁니다. 제가 청양성 성주 자리를 차지하면 앞으로는 수련에 필요한 요핵도 걱정 없이 제공해 드릴 겁니다.”
“도울 수는 있습니다만 두 가지 조건에 무조건 동의하셔야 합니다.”
“무엇입니까?”
“현투장에 돌아가면 제 몸에 심어둔 흑겁충을 제거해 주셔야 합니다. 또한 저와 함께 이곳에 온 석공 수사와 해 도인도 풀어주어야 하고요.”
“흑겁충은 두청양이 스스로 연구해 개발한 것이라 저도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모릅니다. 다만 두청양이 엄중하게 지켜온 비밀창고가 있는데 아마 그곳에 흑겁충을 제거할 방법도 숨겨져 있을지 모르지요.”
“비밀창고요? 좋습니다, 바로 가서 살펴봅시다.”
“그리고 정말 죄송한 말씀인데……. 석공 수사는 진작 두청양의 명으로 현성으로 보내져 소식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해 도인은 제가 곁에 두고 시종으로 삼았지만, 그간 막대한 적은 없고요. 그가 수사의 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신양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해 도인을 보았고, 한립도 고개를 돌렸다.
“…….”
그런데 해 도인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처럼 무심하게 서 있었다.
그걸 본 한립이 아무 말도 없자 지하동굴 안의 분위기가 다시 어색해졌다.
“음…….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상의하는 것으로 하고 신양 수사, 일단 우리를 성주부 비밀창고로 안내해 주시지요. 흑겁충을 제거할 방법을 찾아봐야지요.”
골천심이 상황을 정리하고 나섰다.
“골 수사의 말씀이 옳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이곳부터 정리하고 갑시다.”
신양은 엉망이 된 지하동굴과 피 먼지로 뒤덮인 한립과 골천심을 돌아보며 말했다.
세 사람은 지하동굴을 정리해 전투 흔적을 지우고, 두청양 등의 시체를 한 곳으로 모았다.
신양은 두청양의 시체를 뒤져 검은 영패를 찾아냈다.
삼각형 모양의 영패는 소뿔처럼 양쪽 끝이 볼록하게 나와 있었고, 각 면에 청양(靑羊)이라는 글자와 현성(玄城)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한립은 신양이 영패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게 청양성 성주의 신분을 나타내는 물건이라고 추측했다.
“그건 나중에 천천히 감상하시고 떠나시죠.”
골천심이 신양이 영패를 어루만지는 것을 보고 냉랭히 재촉했다.
“허허, 제가 두 분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신양은 영패를 집어넣고 동그란 하얀 돌을 꺼내 손바닥으로 문질러 시체 더미로 던졌다.
화륵!
하얀 돌멩이에서 불길이 치솟아 두청양 등의 시체를 빠르게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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