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930화 (1,687/2,000)
  • 1930화. 새 사냥

    *

    이렇게 해가 거의 넘어갈 무렵 그들은 섬의 끝에 이르렀다.

    태양이 절반쯤 사라지고 주황색 석양이 비추자 곳곳에서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립은 섬 바깥으로 검은 안개가 자욱하게 퍼져 인접한 섬과 구분되는 것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건너가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수백 장 밖에는 안 되어 보이는데 그냥 뛰어서 지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한립의 혼잣말을 듣고 석천공이 입을 열었다.

    해 도인은 아무 말 없이 바닥에서 갈색 돌을 집어 반대편 섬을 향해 던졌다.

    쉭!

    파공음과 함께 돌멩이가 호선을 그리다가 검은 안개 위에서 무형의 손바닥에 막힌 듯 뚝 떨어져 사라졌다.

    세 사람은 귀를 기울였지만, 한참이 지나도 돌멩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깊이가 어마어마한가 봅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검은 안개 아래에는 바닥이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그 안으로 추락하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계속 떨어지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이 작은 섬에 갇힌 꼴 아닙니까? 소리를 들어보니 밤이 되면 더 많은 짐승들이 활동을 시작할 것 같은데…….”

    한립의 말에 석천공이 걱정스레 말했다.

    파스스!

    이때 검은 안개가 깔린 해안에 기이하게 크고 목이 긴 거대 새가 나타나 검은 안개에 바짝 붙어 이쪽을 향해 날아들었다.

    눈에 보랏빛을 일으킨 한립은 회백색 머리와 푸른 날개를 지닌 새가 날개를 힘껏 움직이는 동시에 두 발을 동동거리면서 물살을 가르는 오리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이한 것은 새가 허공을 밟을 때마다 공기 덩어리가 폭발하듯 반탄력이 생겨 검은 안개가 위쪽의 공간 압력에 저항하게 돕는다는 사실이었다.

    “새의 몸에 난 푸른 깃털이 거대한 압력을 경감시켜주고 있습니다. 저 새를 잡기만 하면 타고 다른 섬으로 넘어갈 수 있겠어요.”

    한립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검은 안개 속에서 파스스 하는 소리가 들리고 수백 마리의 같은 새들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한립 일행을 신경 쓰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바닥에 두 다리가 닫자마자 미친 듯이 섬 중앙의 산을 향해 달렸다.

    “와, 저 정도면 우리가 타고 가고도 남겠습니다!”

    “따라갑시다!”

    한립 일행도 당장 방향을 틀어 그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거대 새들은 평지를 달릴 때도 발밑에서 공기 폭발이 일어나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엄청난 거리를 이동했다.

    한립은 그나마 빨랐지만 석천공과 해 도인은 벌써 십여 리나 뒤처져 있었다.

    그들이 새 떼를 쫓기 시작하고 얼마 후 태양이 완전히 넘어가 어둑한 하늘에 별이 떠올랐다.

    한립은 뛰어가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황량한 평원에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표범, 뱀, 다람쥐 같은 모습을 한 요수들이 바닥에 엎드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 능선까지 새들을 쫓아왔을 때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밝은 달과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 떠올랐다.

    별이 쏟아지는 것 같은 풍경에 한립 일행도 눈이 번쩍 뜨였다.

    수많은 백갑해들이 나타나 바닥에 고르게 퍼지더니 전부 등딱지에 별빛을 반짝이면서 아름답게 반짝였다.

    한립은 게들뿐만 아니라 바닥에 엎드려 자리 잡은 짐승들 전부 빛을 반짝이는 것을 알아차렸다.

    미약하지만 아주 익숙한 힘이었다.

    대주천성원공을 수련할 때 도움을 받았던 성진지력이었다!

    한립은 이런 황폐한 적린공경에서 백갑해나 다른 요수들이 수행을 쌓을 수 있었던 밑바탕에 밤하늘의 별빛에서 오는 성진지력이 있다고 확신했다.

    코코콕!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괴조들이 긴 목을 빼고 검은 부리고 바닥에 깔린 백갑해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백갑해들은 그럴 때마다 도망갔지만 멀리 가지도 않았고, 대낮에 보았을 때처럼 괴조를 둘러싸고 공격하지도 않았다.

    평원에서도 소란이 일고 체구가 큰 짐승들이 작은 짐승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사냥을 하기 위해 몰려온 것이었군요. 바로 때려잡아 볼까요?”

    석천공이 달려와 호기롭게 물었다.

    “조금만 기다리죠.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립의 제안에 세 사람은 자세를 낮추고 몸을 숨길만 한 곳을 찾았다.

    반 시진이 지나 식사를 마친 괴조들이 두 다리를 뻗어 왔던 방향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할 때 한립은 석천공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그걸 보기도 전에 이미 석천공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말이다.

    쏜살같이 튀어 나간 그가 두 발로 땅을 박차고 괴조의 옆으로 다가가 등으로 뛰어올랐다.

    막 등에 올라타려는데 괴조가 몸을 옆으로 틀면서 굵은 다리를 들어 석천공의 가슴을 걷어 차버렸다.

    멍청하게 생긴 괴조가 이렇게 기민하게 움직일 줄 몰랐는지 석천공은 피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이걸 맞았다가는 큰일이 나겠어!’

    깜짝 놀란 석천공의 앞가슴에서 펑펑펑! 소리가 연달아 올리고 현규가 빛을 발했다.

    아홉 번째 현규에 빛이 들어왔을 때 괴조의 발톱에 난 공기 구멍에서 무형의 힘이 폭발해 석천공을 덮쳐왔다.

    “헉!”

    엄청난 괴력에 석천공은 순간적으로 숨이 막혀 와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멀리 튕겨 나가야 했다.

    그 모습에 한립은 괴조의 등에 오르려다 아래로 피해 날아드는 다리를 피했다. 그리고 그대로 괴조의 아래쪽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 다른 쪽으로 등에 올라탔다.

    거대 괴조는 갑작스럽게 실린 무게에 잠시 흔들렸지만, 곧 미친 듯이 달려나갔다.

    해 도인은 한립의 당부대로 싸우지 않고 석천공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그는 바닥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며 옷자락에 낀 백갑해를 대수롭지 않게 빼내고 있었다.

    “발에 기혈이 뚫려 있어 그곳으로 강력한 힘을 분출합니다. 검은 안개 위를 뛰어올 만해요.”

    석천공은 해 도인을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설명했다.

    이때 괴조의 등에 올라탄 한립은 기다란 목을 두 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괴조를 흔들어 붙들려 했지만 괴조는 그대로 뛰면서 갑자기 목을 돌려 검은 비수 같은 부리로 그의 왼쪽 눈을 공격했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이었다!

    괴조의 기습을 예상했던 한립은 몸을 뒤로 물리며 부리를 피했다.

    그가 다시 자세를 잡기 전에 괴조는 두 발로 땅을 박차고 고공으로 날아올라 두 날개를 펼쳤다.

    두 다리로 몸통을 붙들고 있었지만, 자세가 어정쩡해서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이때 한립이 괴조의 목을 감은 두 손을 풀어 괴조의 등을 내리쳤다.

    쿵!

    그의 두 팔에 천근의 압력이 담겨 괴조는 어쩔 수 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까마귀처럼 깍깍거리던 새가 운석처럼 바닥에 처박혀 바닥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였다.

    괴조는 한립에게 제압되어서 구덩이 안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주변에서 별빛을 쬐던 짐승들이 놀라 그 주위에서 멀리 달아났다.

    석천공과 해 도인이 달려와 한립이 괴조를 타고 한 손을 머리에 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잠시 후 손길을 완강히 거부하던 새는 가볍게 그의 손바닥에 머리를 비비고 친밀감을 표하고 있었다.

    한립이 살짝 등을 때리자 괴조는 두 다리로 일어나 펑! 하고 공기 폭발을 일으켜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잠시 평원을 돌며 빠른 속도로 날던 괴조는 한립을 태우고 석천공과 해 도인 앞에 내려섰다.

    “정식 명칭은 모르니 앞으로 부행조(浮行鳥)라 부르겠습니다. 야성이 강해 굴복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잡자마자 의식의 힘으로 통제해야 합니다.”

    한립은 새에서 뛰어내렸다.

    “그래서 머리에 손을 대고 있던 거군요.”

    석천공이 괴조가 도망가지 않는 것을 보고 웃음 지었다.

    “부행조는 한 사람을 태우고 비행할 만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반대편 섬이 그리 멀지 않으니 우리를 데려다줄 수 있을 테고, 평원에서의 달리기 속도도 쓸 만하죠.”

    “좋습니다! 그렇게 이동하면 되겠어요!”

    석천공은 손뼉을 치며 동의했다.

    “석 형, 아까 부행조의 공격을 막을 때 현규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현선 공법을 익히신 겁니까?”

    “그게 현선 공법이라면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요. 성족은 원래 강한 몸을 타고나서 연체술에 인족만큼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만, 저는 공간법칙을 수련하는 터라 강력한 몸이 필요해서 태을경에 이르기 위해 약간 익혀두기는 했습니다.”

    한립의 물음에 석천공은 잠시 머뭇거리다 숨김없이 말했다.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어쩐지 저와 같이 이곳에 오신다고 했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육신의 힘에 자신이 있으셨군요.”

    “하하,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 려 형에게 도움은 되겠다 싶어 따라나선 거지요.”

    “부행조가 아직 한 마리뿐입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듣고 있던 해 도인이 앞으로의 일정을 물었다.

    “오늘 밤 부행조 사냥은 여기까지만 하지요. 섬의 짐승들도 별빛에 이끌려 나온 것이지 우리를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섬이 그럭저럭 안전하니 이곳에서 하루 묵지요.”

    “좋은 생각입니다!”

    한립의 결정에 석천공도 동의하자 세 사람은 비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했다.

    두 눈을 감은 한립은 대오행환세결 공법을 운용해 보았지만 체내의 선령력을움직일 수 없었다.

    해 도인과 석천공도 눈을 감고 앉아 있지만 선령력 흐름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눈을 감고 연신술을 발동했다.

    늦은 밤.

    별안간 눈을 뜬 한립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별빛은 선계에서보다 더욱 밝은 듯했다.

    그는 잠시 생각해보다 수결을 바꿔 대주천성원공을 운용했다. 그러자 현규들이 연달아 밝아지고 하늘의 별처럼 깜빡깜빡했다.

    석천공과 해 도인이 기척을 느끼고 그를 보았지만, 해 도인은 금방 흥미가 없어졌는지 다시 눈을 감았다.

    한립은 이미 대주천성원공을 극성까지 익혔는데도 천상의 별빛이 흘러드는 장관을 연출할 수가 없었다.

    수결을 푼 한립은 품을 뒤져 용 눈알 크기의 황갈색 돌을 꺼내 들었다.

    긴 꼬리 거대 도마뱀의 요핵이었다.

    눈을 가늘 게 뜬 한립은 그걸 쥐고 연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긴 선령력을 쓸 수 없는데 연화라니 말도 안 되었다.

    그런데 문득 부행조가 백갑해를 잡아먹던 광경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망설이던 그는 요핵을 입안에 넣고 꿀꺽 삼켜 버렸다.

    넘어갈 때 불편한 느낌이 들었지만 금방 뱃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고 희미한 기류가 허벅지 쪽으로 흘렀다.

    서둘러 고개를 숙여 보니 허벅지 안쪽의 새로운 혈자리가 아주 미약하게 빛나고 있었다.

    보일 듯 말 듯한 변화였지만 한립은 더없이 기뻤다.

    대주천성원공을 대성하면서 더이상 현규가 늘지도 다른 발전이 있지도 않았는데 처음 겪는 변화였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몸에 어떤 부담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석천공이 멀리서 그를 지켜보다 일어나 다가왔다.

    “려 형, 방금…….”

    석천공이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전에 준 요핵을 아직 지니고 계십니까?”

    “여기 있습니다.”

    석천공은 곧장 지네 요핵을 꺼내 한립에게 주었다. 한립은 요핵을 받더니 곧장 입안에 넣고 삼켜 버렸다.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더 있어야 해요.”

    “대체 뭘 하고 계신 겁니까?”

    격동한 한립을 보고 석천공이 미간을 좁혔다.

    “두 짐승의 요핵에 모두 성진의 힘이 담겨 있었습니다. 현규를 뚫는데 특수한 효과를 지닌 힘이요. 연화를 할 수 없으니 그대로 삼켜 흡수한 겁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섬의 짐승들은 밤마다 별의 힘을 받고 있습니다. 수사도 아무 짐승이나 잡아 요핵을 취해 확인해 보시지요.”

    한립은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을 반짝인 석천공이 곧장 일어나 단단한 비늘 갑옷을 입은 다람쥐를 닮은 작은 짐승을 잡아 왔다.

    검은 장도로 머리를 가른 석천공은 손톱만 한 요핵을 꺼내 들었다.

    “너무 작은 녀석이라 요핵도 쌀알만 하군요. 더 큰 걸 찾으려 했는데 다들 너무 빨리 도망가 버려서 겨우 이 녀석만 잡았습니다.”

    석천공이 불퉁거렸다.

    “괜찮으니 삼켜보시지요.”

    한립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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