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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923화 (1,680/2,000)

1923화. 상

*

석천풍도 보물을 보고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석파공과 석경연만 초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석파공은 온화한 얼굴이었고 석경연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석 수사, 천청령롱단이 혹시 도단입니까?”

“도단은 아니고 연체성약입니다. 수만 년 전에 부황께서 십환산맥 깊은 곳에서 대라경 천청마우(天靑魔牛)를 죽이시고, 그 피와 수백 가지 진귀한 재료를 사용해 수백 년 만에 제련해낸 81개의 단약이지요. 황자들은 한 알씩 상으로 받았는데 그간 이렇게 저렇게 쓰여 이제는 몇 알 남지 않았지요. 단 한 알만 복용해도 십여 개의 현규를 뚫을 수 있어 연체술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석천공이 길게 숨을 내쉬며 답했다.

“갑옷과 검도 보통 보물이 아닌 듯합니다.”

“태초성갑과 용상진옥검 모두 강력한 보물들입니다. 금선급의 수사가 저 갑옷을 걸치고 검을 들면 태을경 수사와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요. 부황께서 큰형님께 엄청난 상을 내리신 거죠.”

한립은 그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석천공의 말에 따르면 저 갑옷과 검 열 개로 금선급 부대를 당장에 태을경 수사에 맞먹는 부대로 만들 수 있다는 소리였다.

석참풍이 물러나고 3황자 석파공이 일어나 앞으로 나섰다.

“부황, 소자 각지의 동향을 감시한 내용입니다.”

“수고했다.”

회색 그림자가 3황자가 꺼낸 옥간을 가져다주자 그걸 살핀 마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파공은 공손히 예를 올리고 바로 자리로 돌아갔다.

“셋째 형님도 참! 큰형님처럼 이 기회에 좋은 물건 몇 개를 바치고 부황의 환심을 사면 얼마나 좋습니까. 오늘 기분도 좋아 보이시는데 그렇게 했으면 얼마나 많은 상을 받을 수 있었겠어요.”

석천공이 투덜거리는 소리에 한립은 자리에 앉은 석파공을 보았다. 그는 그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황, 소녀는 오라버니들과 달리 큰일을 해내지는 못했고 백화회관(百花會館) 경영에만 힘썼습니다. 백화회관의 자매들이 모여 백 년 동안 수를 놓아 완성한 <만리강산도(万里江山圖)>를 바쳐 부황께서 하루빨리 도조가 되시어 각계를 통일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석경연이 곱게 몸을 일으켜 폭이 수십 장은 되는 거대한 그림을 바쳤다.

수를 놓아 완성한 산수도에는 굽이굽이 이어진 산맥과 강물 위로 거대한 붉은 태양이 떠올라 있었다.

그 정교한 솜씨와 웅장한 기개가 놀라웠다.

“좋구나. 신경을 많이 썼어. 벽연왕정(碧烟王鼎)을 가져다주거라.”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마주가 명을 내렸다.

그림자는 흐릿하게 사라졌다가 청록색의 세 발 달린 솥을 가지고 나타났다. 사람 반만 한 크기에 뚜껑에 뚫린 9개의 구멍에서 녹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은 무척 현묘해 보였다.

“감사합니다, 부황!”

석경연은 기뻐하며 청록색 솥을 챙겨 물러났다.

다음은 6황자 석명진 차례였다.

이렇게 황자와 공주들은 차례로 보고를 하며 선물을 바쳐 마주의 환심을 샀고, 마주는 그보다 귀한 보물을 상으로 주었다.

곧 석천공의 차례였다.

“부황, 소자가 성역에 머물지 않아 광원재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발전에 차질이 있었으니 죄를 청합니다.”

석천공도 앞으로 나서서 장부를 내놓았다.

“죄를 청할 것 없다. 성역을 떠나 있었건만 수익에 기복은 있었을지언정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앞으로 잘 관리하면 될 것이야.”

장부를 확인한 마주가 그를 격려했다.

“부황의 도량에 감사 올립니다. 소자 진선계를 유람하다 우연히 진선문 유적에서 찾은 보물이 있어 부황께 바치고자 합니다.”

석천공은 은빛이 번쩍이는 라타비파를 꺼내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대전 안의 사람들이 라타비파를 알아보고 웅성거렸다. 황자와 공주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라타비파가 드디어 돌아왔구나.”

조용히 중얼거린 마주가 직접 손을 저어 라파비파를 불러들였다. 손끝으로 가볍게 비파 현을 만져보는 그의 표정에 회한이 어렸다.

대전 안이 고요해졌다.

“잘했다. 라타비파를 가지고 돌아오다니, 큰 공을 세웠구나. 원하는 바가 있으면 말해 보거라. 무엇을 원하느냐?”

“부황을 위해 한 일에 어찌 대가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하하, 난 늘 공을 세운 자에게는 상을 내렸다. 이렇게 큰 공을 세운 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세상 사람들이 이 아비를 질책하지 않겠냐?”

마주가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리자 대전에 모인 다른 이들도 따라 웃음 지었다.

석참풍은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면서도 눈빛이 달라졌고, 5공주 석경연의 아름다운 얼굴에도 신중한 기색이 어렸다.

“13황자는 성역의 귀중한 보물을 찾아 돌아왔다. 그 공을 높이 사서 천상후(天商侯)의 작위를 내리고, 봉토는……. 아직 주인이 없는 천홍역(天虹域)을 상으로 하사하겠다.”

마주의 명이 떨어지자 다들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립도 눈썹을 끌어올렸다.

천홍역은 마역의 풍요로운 땅으로 마역의 중요한 대로가 그곳을 통과하기에 교통의 요충지로 상당한 지리적 이점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중요한 땅을 마주가 석천공에게 관리하게 한다는 것은 모두의 이목을 끌만한 내용이었다.

“부황의 은혜로운 상에 감사드리지만, 소자는 그럴만한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명을 거둬주십시오.”

석천공도 놀라 무릎을 꿇었다.

“내가 한 번 준 상을 돌려받은 적이 있더냐? 천홍성은 상업이 발달하기 좋은 곳이니 네가 관리하기 좋을 것이다. 잘 관리해서 기대에 부응하기를 바라겠다.”

“소자……. 부황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물러가거라.”

석천공이 놀라 더듬거리자 마주가 손을 저었다.

“부황, 한 가지 더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편하게 말해보거라.”

“소자가 진언문 유적에서 라타비파를 찾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려 수사의 도움이 있어서입니다. 이번에 야양성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수없이 습격을 당했지만 려 수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요. 려 수사의 공이 저보다 크니 부황께서 그를 위해서도 상을 내려주시기를 청합니다.”

석천공은 빠르게 할 말을 마쳤다.

“오, 그래?”

마주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자 한립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한립은 차분한 얼굴이었다.

“려비우, 너는 성역 사람이 아니나 성역을 위해 공을 세웠으니 그에 걸맞은 상을 내릴 것이다. 무엇을 원하느냐?”

“저와 석 수사는 고난을 함께한 벗으로 그를 도운 것으로 상을 받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허나 제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품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성주께 도움을 청하고자 합니다.”

마주의 질문에 한립은 자신을 너무 굽히지도 너무 오만하게 굴지도 않고 답했다.

“어떤 어려움이지?”

“성주께 아룁니다. 제 벗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의식에 중상을 입었습니다. 형수의 몸을 지닌 그녀가 의식을 잃고 정기를 잃어가고 있으니 성황께서 대제사 대인이 제 친구를 살펴볼 수 있게 윤허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이었군. 어렵지 않지. 참풍, 대제사를 불러들이거라.”

마주는 무슨 이야기인지 유심히 듣더니 빙긋 웃으며 대황자에게 말했다.

“부황께 아룁니다. 대제사는 10년 전에 폐관을 시작하였으니 출관한 뒤에 려 수사의 벗을 치료하게 해도 되겠습니까?”

공수를 한 석참풍이 퍽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한립을 보며 말했다.

“기다릴 수는 있습니다만, 대제사 대인께서 언제쯤 출관을 하실지요?”

한립은 예상했다는 듯 물었다.

“그게 말이네. 폐관 수련이라는 것이 몇 년 만에 끝나기도 하고, 수백 년이 걸리기도 하는 일이라서. 아무튼 대제사가 출관하는 대로 수사의 벗을 치유할 수 있게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큰형님, 제사전은 형님의 소관인데 대제사 대인이 언제 출관할지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단 말씀입니까?”

석천공이 코웃음을 치며 나섰다.

“열셋째 아우, 제사전을 내가 관리한다고 해도 대제사 대인처럼 존경받는 분을 어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더냐. 정 믿지 못하겠다면 청양 제사에게 물어보거라.”

석참풍은 정말 억울하다는 듯 두 손을 펼쳐 보였다. 그 말에 제사의 복장을 한 청수한 외모의 노인이 일어섰다.

수련한 공법 때문인지 푸른 빛이 도는 머리카락과 수염에서 은은하게 빛이 감돌았다.

“13전하께 아룁니다. 대제사 대인은 폐관 중이시고 그분의 일정은 저희가 함부로 논할 수 없기에 언제 출관하시는지 모릅니다.”

먼저 마주에게 예를 올린 청양 제사가 석천공에게 말했다.

석천공의 이마에 짙게 주름이 잡혔다. 아무리 의심이 가도 여기서 더 따질 수는 없었다.

“대제사가 폐관 중이라면 출관한 뒤에 려 수사의 벗을 치료하게 하면 될 것이다. 백여 년이 우리에게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니까.”

마주가 입을 열었다.

“감히 재촉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제 벗은 자양난옥으로 간신히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길어야 2, 30년밖에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한숨을 내쉰 한립이 마주를 향해 공수하며 말했다. 석파공이 그를 위해 중품 자양난옥을 구해주었지만, 그 수량이 많지 않았다.

“자양난옥이라면 내게 중품으로 몇 개가 있으니 내주도록 하지. 열셋째 아우가 우리 성역을 위해 해준 일에 고마움을 표할 겸 말이야. 이거면 백여 년은 버틸 걸세.”

석참풍이 웃으며 저물 반지를 꺼내 들었다. 석천공과 시선을 교환한 한립은 반지를 받아들고 눈을 반짝였다.

저물 반지 안에는 중품의 자양난옥이 8개나 들어있었고 하나하나가 품질이 매우 좋았다.

다만 석파공은 그것을 보고 우아한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대전하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이거면 백 년은 버티겠지만 백 년 뒤에는 대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한립은 석참풍을 향해 인사를 했다.

“안심하고 있게.”

그 말에 고요한 얼굴을 하고 있던 마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고 모두를 물리려 했다.

“부황, 잠시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석파공이 그걸 보고 앞으로 나섰다.

“무엇이냐? 이야기해 보거라.”

“열셋째 아우가 야양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습격을 당한 일에 대해…….”

“그건 나도 들었다. 사람을 보내 두었으니 더는 말하지 말거라.”

마주는 손을 들어 그의 이야기를 끊고 냉랭하게 답했다. 이에 석파공이 움찔하고 석천공은 억울한 얼굴로 입을 열려 했다.

“부황께서 사람을 보내 두셨다면 결과가 있겠지요.”

석파공이 그런 석천공을 말리며 말했다.

“각자 자신이 맡은 일에만 신경 쓰거라.”

“명 받들겠습니다.”

“……예.”

석파공과 석천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되었으니 다들 물러가 보거라.”

마주의 명에 황자와 공주들이 예를 취하고 물러나자, 수하들이 지위가 높은 순으로 그간의 업무를 보고했다.

이런 식으로 반나절이 지나서야 대전 안에는 마주와 그림자만 남게 되었다.

“그림자, 네가 보기에 려비우가 누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허공을 응시하던 마주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고 회색 그림자는 그 옆에 서서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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