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914화 (1,671/2,000)

1914화. 통치

*

석천공은 한립과 날아가다 불규칙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긴…….”

“여깁니다.”

의아한 얼굴의 한립을 향해 석천공이 말했다.

“이곳이 야양성이란 말입니까?”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간단히 말해서 이 공경지약(空鏡之鑰)은 야양성과 다른 성역 공간으로 통하는 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공간이라……. 어쩐지 처음 볼 때부터 이상하다 했습니다. 아주 가까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주 멀리 있는 것 같기도 하더니 여러 공간이 중첩되어 그랬던 것이군요. 도주가 와도 옮길 수 없다고 한 이유를 알겠습니다.”

“갑시다. 이제 도착한 거나 진배없습니다!”

미소를 띤 석천공이 마족의 문자가 적힌 검은 영패를 꺼내 다면체의 가장 튀어나온 부분에 가져다 댔다.

파아앗.

영패가 마치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강렬한 공간 파동이 전해졌다.

석천공은 한립을 향해 빙긋 웃어 보이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한립도 잠시 생각하다 성큼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사라지고 기괴한 다면체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머리가 빙빙 돌고 주변 공간의 힘이 압박을 가하는 것은 전송진을 이용할 때와 비슷했지만 그 강도가 훨씬 셌다.

이런 느낌이 한동안 이어지다 눈앞이 밝아졌다.

태양이 하늘 위에서 찬란한 빛을 발산하고 아래쪽에서는 야트막한 언덕에 녹색 풀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마기가 바깥보다 배는 농염해서 공중에 마기가 뭉친 흑자색 검은 구름이 몽글몽글 떠 있고, 천지영기는 매우 희박했다.

“석 형, 이곳이 야양성이 있는 곳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직접 만드신 계면 공간, 야양경(夜陽境)입니다.”

석천공은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면서 상쾌하게 답했다. 그는 베틀 북 오신비사를 불러내 한립과 함께 올라탔다.

“직접 만들어낸 계면 공간!”

한립은 깜짝 놀랐다.

작은 비경을 만드는 일이라면 그도 가능했지만, 이렇게 안정된 고정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바깥의 세상과 마찬가지도 해와 달, 별과 같은 천체들이 움직이는 공간을 보고 있자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역의 주인이라는 인물의 능력은 그의 상상 이상인 듯했다.

“여기서 야양성까지 보름 정도입니다. 그동안 시간을 많이 지체했으니 여기서라도 서두르지요.”

석천공은 오늘에서야 오신비사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그가 소매를 펄럭여 펑! 하고 보라색 부적을 날리자 보라색 주술문자들이 흘러나와 베틀 북을 덮었다.

웅!

베틀 북 앞쪽이 왜곡되면서 새 머리 모양으로 변하고 가운데에서는 기다란 보라색 깃털 날개 한 쌍이 나타나 펄럭였다.

“석 수사의 형제들이 우리가 야양성으로 향하는 것을 알 텐데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마음 푹 놓으셔도 됩니다. 바깥이라면 몰라도 이곳은 부황의 이목이 닿는 곳이니까요. 아무도 이곳에서 우리를 공격할 수는 없을 겁니다.”

석천공이 웃음 짓자 한립은 마주의 신통에 놀라는 한편 불편한 감정도 느꼈다. 누군가의 감시 하에 움직이는 것이 좋을 리 없었다.

“아, 부황의 야양성 감찰은 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라 그리 세세하게 감시하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내 묻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물었다.

“뭐든 말해 보시지요.”

“수사가 목숨을 걸고 라타비파를 야양성으로 가져오고, 다른 형제자매들은 그걸 빼앗으려 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야양성에 도착해 말하려고 했는데 물으신 김에 답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야양성으로 급히 돌아온 이유는 성역의 만물창생을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다음 대 성주의 선출이지요.”

“설마, 수사의 부황께서 퇴위라도 하시는 겁니까?”

씩 웃으며 답하는 석천공을 보고 한립이 놀라 물었다.

“부황께서는 아주 오랜 세월 성역을 다스리셨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다음 대 성주를 선출하겠다고 공표하셨지요. 그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석천공도 그 결정에 대해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석 수사도 성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급히 야양성으로 돌아온 것입니까?”

“후후, 그런 일에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 사실 제가 라타비파를 가지고 야양성까지 온 것은 전부 셋째 형님을 돕기 위해서예요.”

석천공은 손을 내저었다.

“3황자를 위해서요?”

“성역은 무를 숭상하기 때문에 부황의 13명의 자식 중에 자질이 뛰어난 천재가 많습니다. 그중 큰형님, 셋째 형님, 다섯째 누님, 일곱째 형님이 단연 뛰어나고요. 허나 천하를 통치하는 자질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셋째 형님이 최고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석 수사도 국가를 통치하는 데 유능한 인재라 생각합니다. 임산성을 관리한 것만 보아도 그렇고요.”

“에이, 임산성을 다스리는 방법도 셋째 형님께 배운 겁니다. 제 능력은 셋째 형님의 일만분의 일도 못 됩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셋째 형님은 어릴 적부터 재능이 남달라서 진작부터 부황을 도와 야양성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당시 성역과 천정의 대규모 전쟁이 끝나고 각지의 민심이 불안하고 여러 세력이 암암리에 쟁투를 벌일 때, 부황께서는 중상을 입어 어쩔 수 없이 요상을 하셔야 했지요.

이에 황자들에게 이 일에 대해 논의를 했지만 큰 형님은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어 중책을 맡으려 하지 않았고, 셋째 형님만이 휘하의 수하들을 이끌고 각지를 3백 년간 돌아다니며 걸출한 강대 종족들을 일일이 설득시켰습니다. 또 후에 상업을 발달시켜 성역이 전쟁의 여파에서 벗어나 생기를 되찾도록 했고요. 그러니 성역 전체에 셋째 형님의 명성이 자자할 밖에요.”

석천공은 셋째 형님을 진심으로 우러러보는 듯했다.

“과연 비범한 인물이기는 합니다. 수련에 관해 천부적인 자질을 지니는 동시에 드넓은 성역의 세력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다스릴 정도로 통치에도 능하다니요.”

한립은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저도 처음에는 셋째 형님의 행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다가 천하를 유람하고 선역까지 가본 후에야 느꼈습니다. 셋째 형님은 먼 앞날을 내다보고 부황께 천정과의 화해를 청해 냉전을 극복하고 광원재 영역을 지금처럼 넓힐 수 있었지요.”

“3황자의 안목과 재능은 감탄스럽습니다. 그런데 수사의 부황께서는 어째서 바로 그에게 선위하지 않는 것입니까?”

“셋째 형님이 성역의 위기를 극복하며 민심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적잖은 강력한 세력과 척을 지게 되었습니다. 큰형님은 그런 세력들과 연합해 줄곧 셋째 형님과 대적하고 있고요.

부황께서 셋째 형님의 통치능력을 높게 평가하시더라도 성격적인 면에서 차이가 큰 것도 이유입니다. 부황은 한번 결정을 내리면 단 한마디로도 많은 이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데, 셋째 형님은 온화하고 살생을 좋아하지 않아 교화를 위주로 하다 보니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지요. 큰형님이 아첨을 잘하다 보니 부황께서 셋째 형님이 다른 형제들보다 효심이 못 하다 여기시는 걸 수도 있고요.”

“그렇군요.”

“지금 야양성의 상황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저는 성역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셋째 형님을 도울 겁니다.”

석천공은 굳게 다짐했고, 한립은 그를 보며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 * *

십여 일 뒤.

야양경은 넓고 마기와 산물이 풍부한 덕에 적잖은 마족 범인들이 국가를 이루고 밀집해 있었다.

두 사람이 거칠 것 없이 이동하는데도 적이 나타나지 않자 한립도 점점 마음을 놓았다.

야양성이 가까워질수록 지형이 평평해지고 사람의 키보다 몇 배는 큰 금색 곡물들이 가득 자라고 있었다.

농부 복장을 한 마족들이 금빛 밭을 일구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원기가 가장 충만한 곳 중 하나인 치금평원(熾金平原)입니다. 이곳에서 자라는 금도미(金刀米)의 대부분은 야양성으로 옮겨지고, 나머지는 다른 구역으로도 운송되지요. 성역의 거대한 양식창고라 할 수 있는 땅입니다.”

“금도미요? 쌀알들이 발산하는 마기가 강한데 어떤 용도로 쓰입니까?”

한립은 칼날 형태의 곡물 알갱이가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것을 보고 질문했다.

“금도미는 성역의 특산 곡물로 땅을 근원으로 하는 정기를 품고 있습니다. 이런 지원정기(地元精氣)는 수행에도 도움이 되고 체질도 개선해 주어서 몸을 강인하게 만들어 주지요. 성역에서도 몸을 단련하는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금도미를 주식으로 해서 몸이 엄청나게 단단합니다. 노 수사도 그중 하나인데 중상위 정도의 실력이지만 최고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요. 야양성에서 이런 체수(體修)로 최고봉에 이른 이들은 육신의 힘으로는 려 수사 못지않을 겁니다.”

석천공이 웃으며 설명했다.

“과찬이십니다. 제 몸이 조금 건강하기는 해도 그들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육신을 단련하는 것으로는 마역이 진선계 보다는 한 수 위겠지요.”

한립도 하하 웃음을 지었다.

“각자의 상황이 다른 만큼 각자의 걱정거리가 있는 거겠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석천공의 얼굴에 웃음기가 점점 걷혔다.

“오는 동안 보니까 금도미의 품질에 차이가 있어 보였습니다. 품계나 급이 있는 것입니까?”

“영초와 마찬가지로 얼마나 오래 자랐는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고 품계는 없습니다. 금도미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까?”

“성역의 진귀한 재료나 보물에 대해서는 전부 관심이 많습니다.”

“이게 무슨 진귀한 재료라고요! 야양성에 이르면 셋째 형님께 부탁해서 제일 질 좋은 금도미로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웃으며 답하는 한립의 눈빛이 묘했다.

금도미라는 단어는 육인갑의 저물법기에서 찾아낸 ‘금강철골단’이란 도단 약방에서 본 적이 있었다.

다만, 금강철골단의 주재료인 금도미는 용문금도미(龍紋金刀米)라 적혀 있어 특수한 품종이 아닐까 싶었다.

<대주천성원공>을 완벽하게 익힌 뒤로 적합한 연체공법을 찾지 못해서 육신의 수련은 정체된 지 오래였다.

마역까지 왔으니 야양성에서 틈날 때 이런저런 것들을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멈추지 않고 날아 며칠 만에 야양성에 도착했다.

한립은 석천공을 통해 야양성에 대해 들어왔으나 느닷없이 솟은 거대한 하얀 산맥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만 리를 가로지르는 하얀 산맥의 봉우리가 구름을 뚫고 솟아 하늘과 땅을 잇는 기둥처럼 보였고, 그 주위로 뿌옇게 굉장한 기세가 어려 있었다.

산맥의 남쪽에는 폭을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강줄기가 구불구불 흘러 거대한 산맥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백룡(白龍)처럼 보였다.

그 강에 돛대가 나무처럼 솟아 크고 작은 선박들이 빈번하게 오갔다.

야양성은 바로 그 만리산맥과 끝없이 펼쳐진 강 사이에 위풍당당하게 세워져 있었고, 산맥 전체와 강물 일부가 그 안에 포함되어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검은 바위를 조각해 쌓은 새까만 성벽만 해도 웬만한 산봉우리보다 높았고 수많은 건물이 솟아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야양성의 높고 뾰족한 건물들은 이전에 보았던 마역의 건축양식과는 달랐다.

성안은 하얀 산맥이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고, 강이 산맥과 수평으로 흘러 그것들을 경계로 3구역으로 나뉘었다.

성 남쪽에 들어선 한립은 빼곡하게 들러선 낮은 건물들이 마치 벌집 같다고 생각했다.

중간 부분의 건물들은 그곳보다 높이가 높고 간격도 여유가 있어 마차와 사람들이 가득했다.

가장 북쪽은 하얀 산맥으로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는데 각 구역이 이전에 본 거대성만큼 넓어 그가 살면서 본 가장 큰 성이라 할 수 있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