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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913화 (1,670/2,000)
  • 1913화. 위세

    *

    콰릉!

    한립에게 변고가 생긴 것을 알아차린 해 도인이 참정도와 단소검을 교차해 대량의 뇌전을 일으켰다.

    주변의 천여 마리 해골들이 교차하는 뇌전 속에서 튕겨 나가고 현란한 뇌전 기둥이 나선형을 그리며 한립을 향해 날아올랐다.

    해 도인이 백 장을 가기도 전에 안개 속에 흐릿한 인영이 나타나 장포를 휘둘렀다.

    쩌적!

    나선형 뇌전 기둥 속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이 터지고 해 도인이 뇌전이 흩어진 채 거꾸로 추락했다.

    그가 바다에 빠지기 전, 거대하기 짝이 없는 머리 없는 해골 두 마리가 나타나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그 위쪽 상공에 암녹색 도포를 입은 수척한 얼굴의 조골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해 도인은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한립을 응시했다.

    “골격이 구금당하는 기분이 어떠냐? 너희들도 내 백골경관(白骨京觀)의 일부로 만들어 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조골진인이 손을 뻗으며 말했다.

    고공의 백골 머리들이 하나씩 입을 벌리고 한립과 석천공을 물어뜯기 위해 날아들었다.

    백골 머리들이 스칠 때마다 한립과 석천공의 피부가 뜯겨 나가 살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살점이 파 먹히는 고통에도 한립과 석천공은 움직일 수 없어 눈을 뜨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석천공은 진마의 육신을 지녔고 한립은 현선이었으나 백골 머리들이 눈에서 녹색 귀호를 번들거릴 때마다 강력한 기운이 흘러나와 그들을 갉아먹었다.

    조골진인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단번에 그들의 숨통을 끊어놓으려던 생각을 고쳐먹고 조금씩 조금씩 그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크윽…….”

    이를 악문 석천공이 낮게 신음했다.

    백골 머리들이 뜯어낸 상처에서 녹색 연기가 피어올라 체내로 파고들고 있어서였다.

    강력한 부식 능력이 그를 미친 듯이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한립도 똑같은 공격을 당하고 있었지만, 바깥으로 드러난 뼈가 옥석같이 영롱하게 빛나며 녹색 연기의 침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태을옥선이 되며 거의 환골탈태를 거친 그의 몸은 석천공보다 몇 배는 강했다.

    “네 녀석이 태을옥선이라는 것을 깜빡할 뻔했구나…….”

    냉소한 조골진인은 망설이다 번득 사라졌다. 그리고 한립 앞에 나타난 그는 손을 뻗어 단숨에 머리를 꿰뚫으려 했다.

    조골진인의 손끝이 한립의 미간에 닿은 순간, 무력해 보이던 한립의 눈빛에 한기가 감돌며 연신술 5성 공법을 극한까지 발동한 의식의 힘이 한 곳으로 뭉쳐졌다.

    슁!

    가벼운 바람 소리 같은 게 들리고 정적이 흘렀다.

    겨우 손가락 한 마디 만한 반투명한 수정검이 한립의 미간에서 빠져나와 조골진인의 손끝으로 흡수되었다.

    빛이 번뜩이 순간, 조골진인은 손을 거두려고 했지만 이미 의식소검은 그의 의식세계에 들어와 있었고 느닷없이 거대한 산처럼 커졌다.

    기이한 문양을 번득인 의식의 검이 강력한 파랑을 일으키며 조골진인의 의식세계를 갈랐다.

    태풍이 인 것처럼 조골진인의 의식세계 곳곳에 검은 상처가 생겨 그 안의 푸른 도포를 입은 소인이 고통스럽게 눈을 부릅떴다.

    겨우 태을 초기의 존재가 이렇게 강력한 의식의 힘을 지녔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한 조골진인은 뒤늦게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때 조골진인의 얼굴을 한 소인이 소맷자락을 펄럭여 반딧불처럼 하얀빛을 일으켜 둘러쌌다.

    후우웅.

    하얀 반딧불들이 그의 의식세계 깊은 곳에 거대한 부적 진법을 이루고 있었다.

    조골진인도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구한 생사대적(生死大敵)을 만났을 때 쓰려고 의식 속에 심어둔 의식 진법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크하앙!

    진법의 하얀빛이 용맹한 호랑이를 닮은 짐승 허상으로 변해 으르렁거리며 의식 거검으로 달려들었다.

    쿠앙!

    조골진인의 의식세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하얀 호랑이가 터지며 수정실들로 변해 소인을 베려 떨어지는 의식 거검을 감쌌지만, 한립이 의식의 힘을 전부 소모해 응결한 거검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끄아악…….”

    처량한 외침을 터트린 조골진인은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은 고통에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추락했다.

    이에 그가 펼치고 있던 백골영역이 흩어지며 한립과 석천공의 뼈가 정상으로 돌아갔다.

    동시에 의식세계가 텅 빈 한립도 사지에 힘이 풀려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걸 본 석천공이 깊게 파여 나간 오른쪽 갈비뼈를 부여잡고 고통을 참으며 겨우 한립의 팔을 낚아채 달아났다.

    적이 사라지자 해 도인도 맹렬히 호리병박 바닥을 쳐 도병을 거두고 한립의 청죽봉운검들까지 빠짐없이 챙겨 그들을 뒤따랐다..

    보름 남짓한 나날이 지나갔다.

    검은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새까만 베틀 북 위에서 석천공이 원래의 잘생긴 얼굴을 하고 바닷바람에 은발을 휘날렸다.

    베틀 북 안쪽 방에 마련된 침상에는 한립이 머리 위의 자양난옥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랏빛 광채를 쐬고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공간장벽이 펼쳐져 농염한 마기를 차단해 주었다.

    해 도인이 그 곁에 단정하게 앉아 눈을 감고 있다가 무언가를 감응하고 눈을 떴다.

    “려 수사…….”

    그의 부름에 눈꺼풀을 바르르 떤 한립이 아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려 형, 드디어 깨어났군요! 몸은 어떠십니까?”

    한립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천천히 일어나자 머리 위에 있던 자양난옥이 떨어지고 석천공이 들어왔다.

    “제가 얼마나 잔 것입니까?”

    한립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보름 정도 되었습니다.”

    “조골진인은요?”

    “중상을 입은 것처럼 바다로 빠지는 것만 보았는데, 정신을 잃은 수사를 데리고 떠나느라 어찌 되었는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의식의 검으로 치명적인 일격을 날렸으니 혼백에 중상을 입어 잠깐이지만 우리를 귀찮게 하지 못할 겁니다. 이처럼 야양성에 가까워질수록 변수가 많아지겠지요.”

    “저도 그게 걱정이라 바로 야양성으로 향하지 않고 묵해역을 돌고 있었습니다. 일단 려 형이라도 깨어나야 상의를 할 테니까요.”

    “이번 전투로 조골진인만큼은 아니어도 저도 혼백에 손상을 입었습니다. 석 형이 자양난옥으로 혼백을 배양해 주지 않았다면 오랫동안 깨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럼 조금 더 회복한 다음에 출발하지요.”

    “아닙니다. 혼백을 회복하는 일은 쉽지도 않고 의식의 힘을 채우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속히 야양성으로 가는 것이 낫겠습니다.”

    “좋습니다.”

    상의를 마친 석천공이 베틀 북을 조종해 방향을 틀었다.

    * * *

    급히 이동하다 보니 어느덧 보름이 또 지나갔다.

    두 사람의 시야 끝에 은은하게 거대한 검은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려 형, 이제 곧 야양성입니다!”

    석천공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웃음이 걸렸다.

    두 눈에 보랏빛을 반짝인 한립은 검은 건물의 모양이 기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새까만 고목들을 쌓아 만든 불규칙한 다면체로 표면이 수정처럼 반짝였는데 인공적으로 조각한 흔적이 보이지 않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 같았다.

    수백 장밖에 안 되는 건물 표면에 시간법칙 파동이 흘러나와 묘한 느낌을 주었다.

    한립이 영목신통을 더 강하게 일으키려는데 석천공이 손을 뻗어 말렸다.

    “성역의 극히 귀한 신물입니다. 그러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신물이요? 그런 게 어찌 이렇게 바다에 방치되어 있단 말입니까?”

    “하하, 도주가 온다고 해도 움직일 수나 있을지 알 수 없는 물건이니 어쩌겠습니까.”

    석천공은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웃음 지었다. 이에 한립이 더 물으려다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석천공도 뒤늦게 이상을 알아차리고 표정이 달라졌다.

    그들이 바라본 방향에는 암녹색 도포를 입은 조골진인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는 매우 창백한 얼굴로 눈이 움푹 들어가 있는 데다 백발을 어지럽게 휘날리고 있어 이전의 신선 같은 풍모는 보이지 않았다.

    한립과 석천공보다 그들을 보는 조골진인의 표정이 더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그는 한립을 가리키며 혼자 중얼거렸다.

    “어째서……. 어째서 또 네 녀석인 것이냐. 어떻게 이렇게 빨리 회복을”

    “저자가 뭐라고 하는 것입니까?”

    석천공이 무슨 소린가 해서 한립을 돌아보았지만 한립은 그저 미간을 좁힌 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의식의 검에 당해 정신이 아직 온전치 않은 것일까요?”

    그가 말이 없자 석천공이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상대는 의식세계에 강력한 보호 진법을 심어두었었으니까요. 우리가 떠난 후에 무슨 일을 당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환각일 거야. 그래, 환각! 안 되겠다, 네 놈을 죽여야겠어! 반드시 죽여야 해!”

    조골진인은 정확히 한립을 노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는 한 손을 늘어트려 백골의 낫으로 바꾸고는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립은 상대의 의식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시간영역을 펼쳤고, 석천공도 서둘러 공간영역을 만들어 냈다.

    두 영역이 겹치면서 그 안으로 들어온 조골진인의 속도가 급격히 감소했다.

    “으악!”

    괴성을 지른 노인은 뼈 낫을 허공에 휘둘러 두 영역 내의 천지 영력을 가르며 부식의 기운을 퍼트렸다.

    혼란스러운 대기 속에서 속도를 되찾은 조골진인이 계속해서 한립을 노리고 다가왔다.

    침착하게 그를 지켜보던 한립은 피하지 않고 18자루의 청죽봉운검을 불러내 하나로 융합하고 체내의 진언보륜을 역전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의 몸에서 금빛 광선들이 흘러나와 조골진인을 감싸려 들었다.

    팟!

    그러나 조골진인도 가만있지 않고 다른 손을 펼쳐 거대한 백골 방패를 불러냈다.

    방패에서 부식성을 지닌 고골(枯骨) 법칙의 기운이 흘러나와 금색 광선을 막고 야금야금 파먹었다.

    동시에 조골진인은 백골 낫으로 한립의 허리를 갈랐다.

    한립은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흠칫 놀랐다.

    그의 미간에서 수정빛이 번득이며 반투명한 의식소검이 튀어나오려 했다. 의식소검이 뻗어 나가기 전, 조골진인의 눈에 절망이 어렸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다음 순간 의식소검은 가볍게 뼈 방패를 뚫고 조골진인의 미간으로 들어갔다.

    한립은 그제야 조골진인의 의식세계가 고갈되어 혼백이 변한 소인이 빛을 잃고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라경 수사라면 의식 방어 수단을 지니고 있었을 텐데 이전 공격으로 이렇게 변했다는 것이 이상했다.

    한립은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그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의식의 검이 조골진인의 의식세계로 들어가 반항하지 않는 상대의 혼백을 베자 조골진인의 육체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제 막 은소쌍경(銀霄雙鏡)의 배치를 마친 석천공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몰랐으나 기회라 여겨 바로 두 거울이 조골진인을 가리키게 했다.

    후우웅!

    그의 두 손이 교차함에 따라 공중의 진법이 번득이고 두 개의 거울은 서로 강대한 공간의 힘을 호환했다.

    조골진인의 대라경 육체는 더없이 강인해서 일그러지는 공간 속에서도 골격과 뼈가 부서지지 않았다.

    석천공이 몇 번을 시도해도 안 되자 한립은 조골진인의 손에서 검은 뼈 반지를 불러들인 다음 은색 불새를 몸 밖으로 불러냈다.

    석천공은 은색 불새가 조골진인을 불길로 휘감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은색 화염이 타닥타닥 타오르는데, 한립이 그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려 형,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그저 아까 조골노귀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서 말입니다.”

    “하하,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이제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잠시 후, 은염불새가 돌아오고 조골진인의 육체는 재로 변해 있었다.

    불새는 몸을 수축해 한립의 손바닥 위로 올라와서는 지골사리(指骨舍利)를 토해냈다.

    한립은 미간을 꿈틀하고 아무 말 없이 그것을 챙겨 두었다.

    “어서 야양성으로 가시죠.”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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