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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896화 (1,653/2,000)

1896화. 뜻밖의 거래

*

한립은 조심스럽게 자양난옥 3개를 가져와 석천공이 알려준 대로 제혼의 이마와 명치 그리고 배 위에 올려놓고 법결을 던져 넣었다.

파팟!

보라색 수정돌들이 반짝 빛나다 원래대로 돌아갔고 한립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부좌를 튼 채 제혼을 살폈다.

장장 반각이 지났지만 자양난옥과 제혼은 어떤 변화도 없었다.

자양난옥이 하품이라도 직접 만져보아 혼백에 도움을 주는 것을 확인했는데 제혼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한 시진 뒤, 누각 바닥에 육각 형태의 진법이 그려지고 문양들이 교차하는 중앙의 16곳에 움푹 구멍이 파여 있었다.

한립은 잘못된 곳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피고 푸른 빛으로 제혼을 감싸 진법 중앙에 눕히고 움푹 파인 자리에 자양난옥 16개를 끼워 넣었다.

웅!

진법을 타고 자양난옥에서 흘러나온 보랏빛이 제혼에게 밀려들었다.

보라색 빛을 한 겹 두른 제혼은 호흡이 고르게 변하고 원기가 흩어지는 현상도 느려졌지만 아직까지 기운이 유실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자연히 한립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자양난옥은 특수한 기운을 지녀 기운을 발동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무척 오묘한 원리를 담은 진법의 힘을 빌려 겨우 여러 하품 자양난옥을 모아 중품 정도의 위력을 내게 되었다.

그런데도 기운의 유실이 계속되고 있었다.

제혼의 상태를 호전시키려면 하루라도 빨리 하품 자양난옥을 중품 이상으로 교체해야 했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석천공의 말대로 야양성에 가서 대제사의 도움을 구하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제혼, 걱정 말거라. 반드시 네가 깨어나게 도울 것이다.”

그는 의식을 잃은 제혼을 바라보다 화지 공간을 떠나 객잔으로 돌아왔다.

밤이 지나고 이튿날 아침, 한립과 석천공은 객잔을 나섰다.

“석 수사, 하루 더 머물기로 했으나 시간이 없으니 흩어져서 행동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한립이 문을 나서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래야 더 많은 상점을 들를 수 있을 테니까요. 항상 조심하시고 틈틈이 연락 주세요.”

석천공은 멈칫했지만, 그가 조급해하는 것을 알고 그러자고 했다.

“석 수사에게는 하품 자양난옥이 불필요하겠으나 제게는 그것이라도 필요하니 보이는 대로 구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비용은 제가 전부 드리겠습니다.”

“그러지요. 비용도 걱정하지 마세요. 수라성 지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제혼 수사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저도 거기서 생을 마감했을 겁니다! 제혼 수사에게 그 은혜를 갚는 셈 치고 자양난옥을 최대한 많이 구해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밖으로 나가자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노해가 다가와 환하게 웃어 보였다.

“려 수사께서 노해의 마차를 타시지요. 저는 다른 마차를 빌리겠습니다.”

“석 선배님께서는 어딜 가십니까?”

석천공이 다른 마차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노해가 물었다.

“다른 볼 일이 있어 오늘은 따로 다닐 것이다. 너는 계속해서 다른 상점으로 데려다주면 된다.”

한립이 손을 저었다.

“예.”

* * *

반나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한립은 노해를 따라 대여섯 개의 상점을 들렸지만 어제보다 적은 백여 개의 하품 자양난옥밖에는 구하지 못했다.

그가 상점을 나서 노해를 부르자 노해가 불안한 표정으로 검은 전음부를 꺼내 보였다.

“려 선배님께서 들어가시고 얼마 안 되어 누가 저를 부르더니 이걸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눈을 반짝인 한립은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자는 어디 있느냐?”

“그 사람은, 이걸 주고 바로 떠났습니다. 가기 전에……. 뭐라더라, 아, 매림다루에서 선배님을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노해는 한립의 표정 변화에 더욱 긴장해 웅얼웅얼 답했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매림다루로 가자꾸나.”

한립은 노해에게 분부를 내리고 마차에 올라 전음부를 들고 생각에 잠겼다. 전음부에는 자양난옥에 대한 정보가 있다는 짧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잠시 후, 결심이 섰는지 전음부를 거둔 그는 보라색 옥판을 꺼내 뭐라고 몇 마디 하고 집어넣었다.

“넌 바깥에서 기다리거라.”

마차가 이리저리 골목을 돌아 깔끔해 보이는 다루 앞에 멈추자 한립은 홀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다루에는 손님이 얼마 없었는데 네다섯 사람뿐이었다.

시종 하나가 다가왔으나 눈길도 주지 않고 그는 손님들을 훑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허나 이곳은 대화를 나누기에 적절하지 않으니 2층으로 가서 자세한 말씀 나누시지요.”

한립의 눈길이 검은 의복을 걸친 각진 얼굴 사내에게 멈추었을 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흑의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고, 한립도 시간을 두고 위로 향했다.

두 사람은 따로 마련된 작은 방에 마주 앉았다.

“이걸 남겨둔 분이 맞습니까?”

한립이 검은 전음부를 꺼내 놓았다.

“맞습니다. 저는 흑랑이라 합니다. 아무 데서나 떠들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기까지 수사를 모셨습니다.”

흑의 청년은 손을 저어 검은 깃발들을 방 곳곳에 꽂아 간단한 보호막을 쳤다.

눈을 반짝인 한립은 상대가 진선경 수사이고, 흉수족이 아닌 석천공과 같은 마족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석천공의 말에 따르면 십환산맥의 다른 종족은 몰라도 흑유성은 외부에 개방적이라 다양한 종족들이 공존한다고 했다.

“이해했습니다. 자양난옥에 대한 정보는 확실한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수사를 이곳까지 청하지는 않았겠지요.”

“수량이 얼마나 됩니까? 양이 적다면 더는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을 듯합니다.”

한립은 흥미를 느끼면서도 겉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수량은 물론 품질도 충분히 만족하실 겁니다. 일단 이걸 보시고 마음에 차시면 구체적인 내용을 이야기하시지요.”

흑랑은 웃음 지으며 옥간을 꺼내 주었다. 이에 한립은 지긋이 흑랑을 보다 옥간을 받아 내용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목록에는 하품 자양난옥 5백여 개에 중품 사십여 개 그리고 상품 자양난옥 두 개가 포함되어 있었다.

“제가 알기론 자양난옥의 생산량은 극히 적다고 들었습니다. 거대 상점도 하품밖에 보유하고 있지 못하던데 이걸 다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저도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은 아닙니다. 기왕 거래하자고 했으면 물건은 확실하니 의심은 마시지요.”

“다행이군요. 얼마에 판매할 생각입니까?”

자신만만한 흑랑의 대꾸에 한립이 물었다.

흑랑은 조금 생각을 해보다 가격을 제시했는데 뜻밖에도 시장가보다 약간 저렴했다. 뭔가 사정이 있을 거란 이야기였다.

“좋습니다. 전부 제가 매입하고 싶은데 자양난옥은 어디 있습니까? 지금 지니고 있다면 이 자리에서 거래를 마치지요.”

“잠깐, 거래하기 전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한립은 내심 ‘그러면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수사가 원하는 수량과 품질을 제공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저…….”

“그저 뭐가 문제라는 말씀입니까?”

흑랑이 머뭇거리자 한립이 다시 물었다.

“자양난옥이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데 아직…….”

“그러니까 다른 이가 지닌 물건으로 저와 거래를 하고자 하신 겁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이 거래에 대해 모르고 거래하자고 할지도 미지수라는 뜻이고요.”

안색이 어두워진 한립이 불쾌한 내색을 했다.

“아닙니다! 원래 일부는 제 것인 물건들이란 말입니다.”

흑랑은 흥분해서 쾅! 하고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고 탁자는 부서져 찻물이 바닥을 적셨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례를 범했군요.”

바로 정신을 차린 흑랑이 부리부리한 눈빛을 거두고 사과했다.

“하실 말씀이 있다면 마저 해보시지요.”

“제 물건을 보유한 사람이 거래에 응하게 할 방법이 있습니다만 수사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아직 물건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 걸리시면 그냥 가셔도 좋습니다.”

흑랑은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이렇게 이윤이 많이 남는 거래에 흥미가 없을 수 없지요. 제가 도울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말씀해 주세요.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위험이라니요, 말이 과하십니다. 그냥 눈치껏 상대가 거래에 응하게 압박을 가하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때가 되면 제가 하는 대로 따라와 주세요. 결단코 위험한 일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수사의 말만 믿고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협조하기로 약조하기 전에 제게도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한립이 곰곰이 생각을 하다 말했다.

“무엇입니까?”

“제게 동료가 한 명 있다는 것을 이미 아실 겁니다. 저희 둘이 동행하게 해주시지요.”

“그게 조건이라면 그렇게 하세요. 수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원은 많을수록 좋을 테니까요.”

흑랑의 말에 한립은 오히려 의외라 생각했다.

어쨌든 석천공과 함께 움직이면 대라경 수사가 나타나지 않는 한 무사히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기에 잘된 일이었다.

“그럼 바로 움직일까요?”

흑랑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한립도 그를 따라 다루를 나섰다.

다루 바깥에는 석천공이 서 있었다.

“급히 여기로 오라고 한 연유가 무엇입니까?”

석천공은 낯선 흑랑의 등장에 신경 쓰며 물었고, 한립은 입술을 달싹여 전음을 보냈다.

“거래 조건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흑랑 수사라고 했지요? 자, 길을 안내해 주시지요.”

거래 내용을 들은 석천공도 좋아하며 흑랑을 향해 말했다.

“하하, 좋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흑랑은 따로 요수 마차를 부르지 않고 걸어갔다.

석천공이 그 뒤를 바짝 쫓으며 상대가 무슨 수작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주변을 힐끗거렸다.

한립도 그들을 따라가려다 인근에 대기 중인 노해에게 손짓을 했다.

“이틀간 수고 많았다. 보수이니 받아가거라.”

한립은 극품 마석을 8개나 챙겨 주었다.

“후한 보수 감사합니다, 선배님!”

노해는 한 번에 많은 극품 마석을 벌자 뛸 듯이 기뻐하며 인사를 했고 한립은 빠른 걸음으로 석천공과 흑랑을 쫓았다.

세 사람은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 오래된 상점 문 앞에 도착했다.

위치도 구석지고 규모도 작은데 금색으로 쓰인 ‘천궁포(天穹鋪)’라는 명패만 기운이 넘쳤다.

장사가 그리 잘되지 않는지 손님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마른 사내가 계산대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하고 있고, 소년이 시종 차림을 하고 진열대의 물건을 정리 중이었다.

“어서 오십쇼! 찾는 물건이라도 있으십니까?”

마른 장궤는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습관적으로 활짝 웃어 보였다.

흑랑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알아서 진열대로 걸어갔고, 한립이 따라가며 보니 상점은 추레해도 물건들은 품질이 꽤 괜찮았다.

“저희는 재료를 주로 거래하고 그 방면에서는 흑유성 안에서도 최고급 상점이라 할 수 있지요. 없는 물건이 없으니 귀빈들께서 실망할 일은 없을 겁니다.”

마른 장궤는 계산대 뒤에서 걸어 나와 흑랑 뒤의 한립과 석천공을 뜯어보았다. 마른 장궤가 한립을 살피는 동시에 한립도 그를 살피다 미간을 좁혔다.

“물건을 구하기도 하겠지?”

흑랑은 내부를 대충 둘러보고 구석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매입도 합니다. 어떤 물건을 팔려고 하십니까?”

마른 장궤가 움찔하며 묻자 흑랑은 검은 옥함을 꺼내 살짝 틈을 벌렸다. 그러자 그 안에서 스산한 마기 파동이 흘러나오고 틈 사이로 검은 나무뿌리 같은 게 보였다.

눈을 반짝인 장궤가 자세히 보려 했을 때는 흑랑이 이미 옥함을 탁! 닫은 뒤였다.

“저……. 안으로 가셔서 이야기하시지요. 두 분은 바깥에서 잠시 기다려…….”

“이 두 친구도 판매할 물건이 있다네.”

마른 장궤가 한립과 석천공은 따돌리려는데 흑랑이 그 말을 끊었다. 한립이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고 목함을 하나 꺼내 들었다.

석천공도 뻔뻔한 얼굴로 뭔지 모를 상자를 들고 서 있었다.

“그러면……. 세 분 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당황한 장궤는 바로 미소를 지어 보이고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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