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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893화 (1,650/2,000)

1893화. 경험

*

동우의 반격에 한립은 검이나 주먹 대신 푸른 호리병박을 날려 보냈다.

핑!

호리병 입구에 비취색 소용돌이가 떠오르고 암녹색 광선 한줄기가 마기장벽으로 날아가 훼멸법칙을 발산해 그것을 붕괴시켰다.

이와 동시에 체내의 진언보륜이 급속도로 역전하면서 한립을 동우 앞으로 이끌어 손에 든 청죽봉운검이 금빛 뇌전을 머금고 동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소스라치게 놀란 동우가 검은빛을 반짝이고 마기의 형태로 흩어졌다. 이에 한립은 기다렸다는 듯 맹렬히 호리병박을 쳤다.

그러자 현천 호리병박에서 녹색빛을 머금고 녹색 소용돌이에서 강렬한 흡입력을 일으켰다.

휘이잉!

짙은 마기가 호리병 속으로 전부 빨려 들어갔다.

동우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호리병 공간 내부로 끌려 들어온 후였다.

첫 번째 공간에 들어섰을 때, 한립은 배양 중이던 수십 자루의 청죽봉운검을 방출해 찬란한 금빛을 방출해서 그를 두 번째 공간으로 내몰았다.

처절한 비명소리가 호리병 속에서 울렸다.

이에 한립은 차분히 호리병박을 흔들어보다 기울여 조각난 살점 덩어리들을 소용돌이 속으로 흘려보냈다.

동우의 태을급 원영은 현천호리병 안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오직 금빛의 저물탁만이 남았다.

그 모습에 멀리 은우의 눈에 한기가 어렸는데 분노보다는 의외라는 기색이 강했다.

장검의 거대 검빛으로 라타비파가 만들어 낸 공간장벽을 허문 그는 석천공을 아래쪽 산맥으로 날려 보냈다.

콰쾅!

검푸른 산에 모래 먼지가 피어오르고 산 절벽이 허물어졌다.

먼지 속에서 날아오른 석천공은 비파에 남은 하얀 흔적을 보며 가슴 아파하다 머리 위쪽에서 날아든 새하얀 뱀 꼬리에 휘감겼다.

은우는 동우가 죽었음에도 복수할 생각이 없는 듯 본 모습을 드러내 뱀 꼬리로 석천공을 제압하고 데리고 사라지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주변 풍경이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한립의 시간영역이 도래했다.

“인사도 없이 제 일행을 데리고 가려 하다니, 예의를 배우지 못하셨습니까?”

한립이 나타나 그 앞을 막고 물었다. 말을 하는 동안 정염불새가 그의 뒤에 떠올랐다.

“동우가 질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 녀석이 당신을 얕보고 방심하자 도리어 그걸 이용했군요.”

“맞습니다. 그런데 저를 얕본 것이 그 하나일까요?”

한립이 미소를 짓는 것을 본 은우는 돌연 안색이 변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웅웅!

아래쪽 산봉우리에서 밝은 빛이 솟아올라 금색 빛기둥과 은색 빛기둥으로 변해 교차한 뒤 허공에 거대한 진법을 형성했다.

잠시 후 머리가 어지러워진 은우는 공기의 흐름이 느려지고 온몸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마치 쇠사슬에 꽁꽁 묶인 것처럼 움직이기가 어려워졌다.

“이건…….”

은우가 정신을 놓아가며 중얼거렸다. 그의 꼬리의 힘이 풀리자 석천공이 빠져나와 한립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빛을 반짝이는 옥조각을 든 한립이 안부를 물었다.

“괜찮습니다. 저자가 단시금공진(斷時禁空陣)에 갇힌 사이에 끝내지요.”

석천공도 똑같이 생긴 옥조각을 들고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

한립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옥조각을 사이에 두고 합장해 체내의 시간법칙을 주입했다.

곁의 석천공도 똑같이 옥조각을 손바닥 사이에 끼고 공간법칙을 불어넣었다.

후우웅!

두 사람이 전력으로 법칙의 힘을 일으키자 허공의 진법이 더욱 밝아지면서 강렬한 법칙파동을 발산했다.

그러자 시간의 흐름은 더욱 느려지고 압박감이 더욱 커졌다. 견디기 어려워진 은우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펑! 펑! 펑!

은우 주변 허공이 무너져 내리면서 진법 안의 공간이 그를 중심으로 찌그러지고 있었다.

진법 내 공간이 완전히 무너지면 은우의 육체는 물론 원영까지 부서질 것이었다.

단시금공진의 위력은 강력했지만 그 대가도 적지 않아서 한립과 석천공이 각자 꺼내든 시간과 공간법칙의 힘을 지닌 법보는 망가지고 말 것이다.

거기다 진법 운용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이 소모하는 법칙의 힘도 막대했다.

한립은 담담하게 시간법칙을 주입했는데, 곁의 석천공은 벌써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은우가 밀어붙이는 바람에 억지로 라타비파를 사용하느라 공간법칙을 계획보다 많이 소모해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진법 속에서 은우는 온몸이 터질 듯 새빨갛게 변했고 꼬리는 거의 평평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때 석천공의 공간법칙의 힘이 바닥나 그가 들고 있던 옥조각이 어두워졌다.

웅.

진법이 즉시 운용을 멈추고 두 산봉우리에 심어둔 법보들이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다.

그 여파로 산사태가 일고 있었다.

‘안 돼.’

서둘러 옥조각을 거둔 한립은 은우를 향해 청죽봉운검 18자루를 분출했다.

콰콰콰콰쾅!

그러나 은우 쪽에서도 새하얀 검빛이 반짝이고 검기가 폭포를 이루어 청죽봉운검들을 막은 것은 물론 아래 산맥까지 초토화시켰다.

비검들을 전부 거둬들인 한립은 검기 폭포가 끝나고 은우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

이에 한립은 옆에 있던 정염불새를 불러들이고 앞섶이 피로 물든 석천공을 살폈다.

그는 소매를 털어 푸른빛으로 석천공을 부축했다.

“고맙습니다, 부상이야 시일이 지나면 회복될 텐데 한 놈을 놓친 것이 아쉽습니다…….”

“오늘을 무사히 보낸 것만으로도 불행 중 다행입니다. 다음 일은 차후에 생각하지요.”

쓴웃음을 짓는 석천공을 보고 한립이 말했다.

“이번에 려 형에게 정말 놀랐습니다. 제 말대로 죽자사자 달아나기만 했으면 며칠 더 늦게 잡혔겠지만, 위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이런 경험이 많다 보니 몇 가지 대책을 숙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오히려 함정을 파거나 매복했을 때 효과가 좋기도 하니까요. 다음번에는 대라경 흉수가 직접 쫓을지도 모를 일이니 어서 출발하시지요.”

한립의 말에 석천공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를 푸른 기운으로 휘감에 벽옥비차에 태운 한립은 막 출발을 하려다 동작을 멈췄다.

팟.

그의 손짓에 부적이 붙은 여덟 마리의 괴뢰들이 떠올랐다.

“석 형, 괴뢰 몇 마리를 골라 기운을 심어두시지요.”

한립의 말을 단박에 알아들은 석천공이 각혈을 하며 말했다.

“콜록, 추격당한 경험이 많다더니 정말이신가 봅니다. 허나 이런 방법이 통하겠습니까?”

“상대에게 작은 의심을 심어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손해 볼 것도 나이고요.”

그들은 괴뢰에 기운을 심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게 하고 벽옥비차를 출발시켰다.

* * *

며칠 뒤, 금서대왕 동부.

대전 안에는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기물들이 잔뜩 깨져있었고 시녀와 시종들은 벌벌 떨면서 바닥에서 고개를 떼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인 은우는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았으나 의복에 묻은 대량의 피가 부상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동우가 석천공의 인족 호위에게 죽었다는 소리더냐?”

금서대왕은 한동안 화풀이를 하다가 금색 의자로 돌아가 기대앉았다.

“그 인족은 시간법칙을 장악하였고 석천공은 공간법칙을 익혀 서로 법칙의 융합해 공격을…….”

은우의 말소리가 점점 느려지다 결국에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네가 패하고 돌아온 것도 당연하다?”

“모든 것이 제 불찰입니다.”

금서대왕이 가냘픈 목소리로 반문하자 은우가 황공하다는 듯 무릎을 꿇었다.

“됐다. 처음에부터 동우와 네가 협공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야.”

금서대왕은 탄식하며 금색 원반을 꺼냈다.

웅.

원반이 눈부신 보랏빛을 뿜어 진법을 이루고 그 위로 자포(紫袍) 중년인이 나타났다.

성주의 장자 석참풍이었다.

“금서 수사의 안색을 보니 아직 성공하지 못하셨나 봅니다?”

“대황자께서 그러기를 바라고 고의로 잘못된 정보를 주신 것이 아니고요? 석천공 곁의 인족의 실력이 상당하다 합니다. 그걸 미리 알려주셨으면 제 수하가 둘이나 목숨을 잃을 리 있었겠습니까.”

금서대왕의 질책에 석천풍은 의외라는 눈빛이었다.

“오해 마십시오. 내 아우는 장사에 소질이 있어 광원재의 일을 관장하다 얼마 전에야 선계에서 돌아왔습니다. 그 곁에 어떤 인물이 있는지 파악할 시간이 없었지요. 그렇다고 해도 겨우 태을경 수사인데 처리하기가 그리 어렵단 말입니까?”

“흥, 평범한 태을경 수사가 제 휘하의 장수 둘을 죽였단 말입니까? 그자는 시간법칙을 익혔고 당신의 아우는 공간법칙을 익혀 아주 합이 잘 맞는다고 하더이다.”

“그건……. 그들이 아직 수사의 영역에 있는 것은 맞습니까?”

뜸을 들이던 석참풍이 다른 질문을 했다.

“뭐라고요? 제 영역을 벗어났으면 대황자께서는 흑유 자식과 거래를 하기라도 하겠단 소리로 들립니다! 이미 심복을 둘이나 잃은 저를 두고 일방적으로 거래를 철회하겠다면 야양성이 아무리 멀다 해도 이 일을 고하러 직접 찾아가고야 말겠습니다.”

금서가 인상을 쓰고 협박했다.

“저를 위협하시기 전에 아직 그들이 수사의 영역에 있을 때 어떻게든 숨을 끊어주세요. 그렇게만 해주시면 약속한 보수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가격이 올랐으니 대황자께서 흑유쪽 세력을 막아주시면 제가 직접 나서겠습니다. 이제 그들은 죽은 목숨입니다.”

“그러지요.”

“은우, 당장 출병 준비를 한다. 사냥이다!”

석참풍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금서대왕이 바로 명을 내렸다.

* * *

보름 후, 십환산맥의 독무가 가득한 수풀 위를 벽옥비차가 질주하고 있었다.

비차의 앞과 뒤에 나눠 앉은 한립과 석천공은 진지한 얼굴로 주변을 경계했다.

“려 형, 보름 넘게 비차를 조종하느라 힘들지 않으십니까? 제 선박으로 옮겨 잠시 쉬시지요.”

석천공이 한립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이 정도 선령력 소모는 괜찮습니다. 수사의 부상이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으니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리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그간 경로를 몇 번이나 틀었고 기운을 숨겼으니 그들도 쉽게 우리를 찾아내지 못할 거예요. 게다가 조금만 더 가면 금서 그 빌어먹을 놈의 구역을 벗어나게…….”

석천공이 말을 하다말고 멈추었다.

“석 형,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소리가 맞나봅니다…….”

한립이 씁쓸하게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수만 리 뒤쪽에 3층으로 된 황제가 사용하던 어가(御駕)가 나타나 눈을 찌를 듯한 금빛을 방출하고 있었다.

금색 갑옷을 입고 금색 날개와 뿔이 달린 거대 말 열 마리가 어가를 끌고 있었고 그 주위로 수백 마리의 흉악하게 생긴 반인반수의 괴물들이 갑옷을 걸치고 움직였다.

“금서가 직접 쫓아왔나 봅니다.”

석천공이 서둘러 의식을 후방으로 보내고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대라급 수사는 우리가 상대할 만한 존재가 아니에요.”

미간을 좁힌 한립은 수결을 바꿔서 벽옥비차의 속도를 폭발적으로 높였다.

“어딜 달아나려 하느냐!”

어가 위로 쌓인 3층 누각 안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서대왕 옆에는 하얀 장포를 걸친 은우가 어두운 얼굴로 서 있었다.

크앙!

금서대왕이 손을 뻗자 입고 있던 금색 비단 장포의 9마리 금룡이 수놓아진 소맷자락이 날아올라 수백 배로 커졌다.

한립과 석천공은 머리 위에서 금빛과 함께 강력한 압력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꼈고 벽옥비차도 정신없이 흔들렸다.

석천공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석 형, 제 어깨를 잡으세요.”

한립은 전신에서 금빛을 터트려 수백 리를 금색 영역으로 뒤덮었다. 그러자 소맷자락도 시간영역의 범위 안에서 잠시 속도가 느려졌다.

그러던 찰나 금서대왕의 기합 소리가 들리고 소맷자락 속에서 금색 소용돌이가 발생해 영역의 파문을 밀어냈다.

위기의 순간, 한립은 비차의 난간을 잡고 체내의 진언보륜을 역전해 벽옥비차와 같이 모호한 호선으로 변해 눈 깜짝할 사이에 만 리를 벗어났다.

금서대왕은 잠시 사고가 정지된 듯 눈앞이 뿌옇게 변했고,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소맷자락이 허공을 덮치고 있었다.

의아해하던 석천공도 즉시 한립의 선령력과 힘을 합쳐 벽옥비차를 조종해 속도를 높였다.

“쫓아라!”

금서대왕은 소리를 지르며 금색 채찍으로 전방의 날개 달린 말들을 때렸다.

촤악!

채찍이 가죽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날개 달린 말들의 금색 갑옷이 갈라져 등에 기다란 상처가 생겨났다.

히히히힝!

말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날개와 네 다리를 미친 듯이 움직여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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