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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891화 (1,648/2,000)

1891화. 발본색원

*

금색 검기가 교차하자 처절한 절규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몇몇 특출한 이들이 특수한 방법으로 살아남을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죽어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검진 속에는 외뿔 거한 등 세 사람과 금선 다섯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등을 맞대고 둘러서서 선기급의 마보들을 이용해 다채로운 색깔의 보호막을 만들고 주위의 검기에 대항했다.

코웃음을 친 한립은 다시 한 번 검결을 바꾸었다.

웅웅웅웅.

검진 중심의 용 형태가 빛을 뿜으며 12마리의 금색 용들이 빠져나왔다.

크아앙!

거목 크기의 용들은 금색 뇌전과 날카로운 검기의 응결체로 검기 파동과 뇌전 법칙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용들이 다채로운 빛깔의 보호막을 사정없이 들이받자 외뿔 거한 등이 필사적으로 유지하던 보호막이 펑! 하고 터져나갔다.

동시에 금색 용 12마리도 터지면서 헤아릴 수많은 검기들이 외뿔 거한 등을 뒤덮었다.

그들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몸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얼마나 손속이 빠른지 석천공에 의해 물러난 철우가 나서기도 전에 수하들이 전멸하고 말았다.

철우는 대노했고 검은 구름 위에 남은 다른 수하들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같은 편인 석천공의 눈에도 놀라움이 스쳤다.

한립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 손을 저었다. 금색 검진이 급격히 줄어들어 12자루의 청죽봉운검으로 돌아왔다.

처음과 달린 비검들의 뇌전주술 문자가 어둑해지고 발산하는 뇌전법칙도 약해져 있었다.

한립은 청죽봉운검 12자루를 단전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공격으로 뇌전법칙을 써버렸으니 한동안 배양해야 했다.

그가 방금 펼친 검빛의 바다 ‘규룡검진(虯龍劍陣)’은 청반검진과 비슷한 무상검종의 비전 중 하나였다.

청반검진이 청죽봉운검 72자루가 있어야 펼칠 수 있는 것과 달리 규룡검진은 12자루만 있어도 펼칠 수 있었고 위력도 강력했다.

그 대신 필요한 비검의 품질이 극히 높아야 해서 구유역에서 금색 뇌전 연못에 세례를 받지 못했다면 펼치지 못했을 것이다.

이론상으로만 알았지 처음 규룡검진을 펼쳐본 한립도 그 위력에 내심 놀랐다.

철우는 외뿔 거한 등의 잔해를 보며 두 눈에 불길이 일었지만 심호흡을 하며 노기를 가라앉혔다.

수하들이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지금 중요한 일은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었다.

“흥, 고작 인족 수사가 이런 실력을 지녔을 줄은 몰랐구나. 내 너를 얕보았다. 내가 직접 네 목숨을 거둬주지!”

한립을 바라보는 철우의 두 눈이 전의로 불타올랐다.

쿠쿵!

폭발적인 위압감이 그의 몸에서 퍼져 나와 검은 구름이 흔들리고 석천공도 한참을 쿵쿵 물러나서야 몸을 가누었다.

그는 한립이 온전히 서 있는 것을 보고나서야 몸을 뒤로 날려 전장에서 멀리 벗어났다.

“…….”

미간을 좁히고 서 있던 한립은 미리 불러낸 청죽봉운검 6자루를 회수하려 했다.

비검들에 안개처럼 녹색 빛이 묻어서 괴이한 법칙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검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부식이 되는 것처럼 녹색 반점들이 퍼져나가는 것을 본 한립이 수결을 맺었다.

웅!

비검 표면의 뇌전 문양들이 빛을 발하고 뇌전법칙을 품은 뇌전들이 떠올라 녹색빛을 몰아내려 했다.

하지만 금색 뇌전이 아무리 번득여도 녹색빛은 거머리처럼 끈질기게 비검에 붙어 있었다.

“취운장(翠雲瘴)이 묻은 선기를 회수하는 일이 그리 쉬울 줄 알았더냐? 가소롭구나!”

하하 웃음을 터트린 철우가 다시 커다란 녹색 수정궁을 불러내 9개의 화살을 날렸다.

피피피핑!

아까보다 배는 빠른 속도였다.

한립은 인상을 찡그리며 전신에서 금빛을 일으켜 굵직한 뇌전으로 변해 옆으로 피하며 현천호리병박을 꺼내 청죽봉운검들을 향해 기울였다.

호리병박에서 흘러나온 녹색 광채가 비검 6자루에 붙은 녹색 독무를 쓸어가자 청죽봉운검들은 얼룩덜룩한 반점이 사라졌다.

그제야 한립은 인상을 풀었다.

“어딜 도망가려 하느냐!”

철우의 외침에 9개의 화살들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방향을 틀어 그를 쫓았다. 화살들의 빛이 서로 연결되어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한립은 피하면서 뒤쪽으로 소매를 휘저었다.

휘잉!

녹색 광채가 그의 소매 속에서 빠져나가 화살들을 감싸자 극독이 어린 녹색 빛은 어둑해졌다.

철우는 의식연계가 약해진 것을 느끼고 즉시 입을 벌려 녹색 빛덩이를 날리고 손을 뻗었다.

촤악!

그의 손에 뱀 모양의 가시 달린 암녹색 채찍이 나타나 허공을 때렸다. 채찍은 수백 장 거리를 넘어 백사의 혀처럼 화살들을 휘감고 돌아갔다.

펑!

채찍을 속박하던 녹색 광채가 끊긴 것을 본 한립이 눈썹을 끌어올리고 철우를 향해 몸을 날렸다.

금색 뇌전으로 변한 그가 십여 개로 갈라져 각기 다른 방향에서 철우를 공격했는데 기운이 똑같아 무엇이 한립인지 알 수 없었다.

표정이 미미하게 달라진 철우가 녹색 수정궁을 붙들고 화살 9자루를 시위에 걸었다.

피피피피핑!

화살들이 활시위를 벗어나 하늘을 빼곡하게 덮을 만큼 수많은 활 허상들을 만들어냈다.

화살의 극독이 담긴 법칙 파동 때문에 하늘이 어둑해졌다.

열댓 개의 금색 뇌전이 활 허상들에 뚫려 연달아 터지고 마지막 금빛에서 한립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색 뇌전을 갑옷처럼 두른 그는 전혀 다친 곳없이 멀쩡해 보였다. 이에 눈빛이 흉흉해진 철우가 수결을 맺었다.

휘휘휘휙.

사방으로 퍼졌던 화살 허상들이 전부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치치칙!

한립은 두 팔을 펼쳐 굵직한 뇌전들을 날려 뇌전법칙을 지닌 그물을 만들어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허상들을 전부 차단했다.

한립의 손짓에 청죽봉운검 18자루가 떠올라 무수히 많은 검기들을 내뿜어 금색 검빛 산을 이루었다.

채채채채챙!

하늘을 뒤덮은 화살 허상이 잘려나간 뒤에도 검빛 산은 멈추지 않고 불가사의한 속도로 철우를 향해 나아갔다.

놀란 철우가 입에서 새까만 방패를 불러내 앞을 막고 녹색빛을 크게 일으켜 쾌속으로 그 자리를 피했다.

쉬쉭!

검은 방패가 만든 방어막은 무척 단단해서 대부분의 검기를 막았지만 일부는 방어막을 뚫고 철우를 뒤쫓았다.

철우가 서둘러도 코앞에 이른 검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순간 피가 튀며, 검기에 베인 그의 몸은 선혈이 낭자했다. 괴성을 지른 철우는 눈이 새빨갛게 물들어 맹렬히 수결을 맺었다.

그의 전신에서 녹색 빛이 안개처럼 퍼져 백 리에 이르는 영역을 이루었다.

그 안에서 농염한 녹색 독무들이 꿀렁거리는 탓에 아래 산맥의 풀과 나무 그리고 암석이 녹아 끈적한 액체로 변하고 말았다.

‘헉.’

철우의 수하들은 진작 멀리 도망쳐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석천공은 독무에 갇혀 보호막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서둘러 마기들을 불러내 몇 겹의 보호막을 더 만들어내 봐도 독기가 침식해 나머지 마기들마저 녹여버렸다.

다행히 마기들이 시간을 벌어준 사이 품에 안고 있던 라타비파를 튕겨 은색 주술문자로 몸을 가리고 은색 진법을 형성했다.

은빛이 번쩍인 후 그는 녹색 영역 바깥으로 이동해 있었다.

철우는 더 이상 석천공은 신경 쓰지도 않고 핏빛으로 물든 눈으로 한립을 향해 팔을 뻗었다.

영역의 녹색 독무들이 한립을 향해 몰려들며 응집하고 거대한 독룡들로 변했다.

강렬한 극독을 지닌 독룡들의 움직임에 허공이 부들부들 떨리고 부식되려는 징조를 보였다.

그걸 보고도 한립은 놀라지 않았고 두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찬란한 금빛이 그의 몸에서 퍼져나가 주변 수십 리를 채우고 금색 영역을 형성했다.

태을경에 이른 그의 시간영역 안에서 진한 금빛이 출렁이며 달려드는 독룡들의 움직임을 열 배로 늦추었다.

“시간영역!”

기함한 철우가 무언가를 하려는데 그도 시간법칙의 영향을 받아 움직임이 느려졌다.

파칙!

한립이 먼저 금빛을 발산해 뇌전으로 진법을 만들어냈다.

극독영역에 제약을 받아 금색 뇌전도 평소보다 어두워졌지만 뇌전도 법칙의 힘을 품고 있어 뇌전진법이 그럭저럭 작동은 했다.

콰릉.

천둥소리와 함께 사라진 한립이 철우의 뒤에서 나타나 훅! 금빛 뇌전을 뿜었다.

철우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몸을 돌릴 시간도 없어 체내의 극독 법칙의 힘을 맹렬히 분출했다.

웅.

주변의 독무들이 등 뒤로 결집해 거목 크기의 흉측한 외모를 지닌 녹색 거인으로 변했다.

극독영역의 역령이었다.

역령은 입을 쩍 벌려 금빛 뇌전을 집어삼켰다.

쉭!

하지만 철우가 안심할 틈을 주지 않고 앞쪽에서 독무를 뚫고 금빛이 날아들었다. 바로 한립이 미리 날려보낸 청죽봉운검이었다.

녹색빛이 달라붙어 얼룩덜룩해도 속도는 굉장히 빨라서 번개처럼 철우의 목을 베었다.

철우의 머리가 굳은 표정으로 댕강 잘리고 한립은 무표정하게 손끝을 튕겨 검기로 그것을 터트렸다.

수박처럼 터져나간 머리통 속에서 철우의 혼백마저 완전히 소멸되었다.

머리를 잃은 몸이 목에서 피를 뿜으며 추락하는데 한립이 푸른 빛을 날려 그것을 붙들었다.

쿠릉.

철우의 죽음에 자연히 녹색 영역도 흩어졌고 역령은 포효하다 녹색 기운으로 터져버렸다.

한립은 재빨리 18자루 청죽봉운검으로 이루어진 금빛 덩어리를 불러들였다. 그 안에는 녹색 수정궁과 9개의 화살도 함께였다.

비검들은 녹색 영역을 뚫느라 손상을 입기는 했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다.

비검과 궁, 화살을 현천호리병박 안에 담아 놓은 한립은 수결을 맺어 시간영역을 회수했다.

몇 초 만에 금빛과 초록빛이 가득하던 하늘이 청명해졌다.

“강적을 순식간에 해치우시고,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석천공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멀리 물러나 있던 철우의 수하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태을경 후기의 철우가 듣도 보도 못한 태을경 초기 인족 수사에게 참살을 당했다.

누가 먼저 소리를 질렀는지 그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가 살길을 도모했다. 그것을 본 한립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철우를 죽여 어느 십환대왕의 심기를 건드렸을지 모르는데 수하들을 살려보낼 수는 없었다.

“격렬한 전투로 고생하셨는데 쉬시지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석천공이 그의 눈빛을 보고 보랏빛으로 변해 그들을 추격했다.

시선을 거둔 한립은 푸른빛으로 철우 시체가 지닌 녹색 저물탁을 거두고는 붉은 화염을 날려 시체까지 깡그리 태워버렸다.

남은 것은 흩날리는 회색 재 뿐이었다.

한립은 단약을 먹고 의식 한 줄기를 녹색 저물탁 안으로 집어넣었다.

팟.

반각이 지나 얼굴이 밝아진 그는 회색 짐승의 뼛조각을 꺼내 들었다. 옥간으로 보이는 뼛조각에는 십환산맥의 지도가 들어있었다.

그때 멀리서 흑자색 둔광이 돌아와 석천공으로 변했다.

“전부 처리했습니다. 한 명을 잡아다 추혼술을 해보니 금서대왕의 수하더군요. 려 수사가 죽인 자는 철우라는 금서대왕 휘하의 심복이라 합니다.”

“철우의 저물법기에서 십환산맥 지도를 찾아냈습니다. 보시죠.”

한립은 크게 개의치 않고 회색 뼛조각을 건넸다.

“잘 되었습니다! 이제 눈뜬장님처럼 다닐 일은 없겠어요. 금서대왕은 난폭하고 작은 일에도 이를 가는 성격입니다. 그자의 심복을 죽였으니, 추격병이 뒤따르기 전에 이곳을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옥간을 확인한 석천공이 진지하게 말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두 사람은 서둘러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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