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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886화 (1,643/2,000)

1886화. 진화

*

한립은 금색 뇌전 연못이 은색 뇌전 연못보다 훨씬 강해서 자신이 태을옥선의 몸을 이루었다고 해도 반드시 이겨내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류기 노조의 말대로 분혼이 죽은 것을 안 음승전 본체가 오고 있다면 사슬을 끊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려 수사, 금색 연못의 뇌전의 힘은 이미 영성을 지닌 듯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석 수사. 선배님,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줄곧 말이 없던 석천공이 우려를 드러냈지만 한립은 가볍게 날아올라 금색 연못 쪽으로 향했다.

그가 들어가자마자 뇌전의 물들이 솟구쳐서 금색 뱀들처럼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뇌전 연못에 들어가기 전 키를 한 뼘 정도 키우고 두 팔과 다리가 굵직하게 변해 비늘이 자라난 한립은 곧 금색 뇌전에 휩싸였다.

눈을 반짝인 류기 노조가 바로 주문을 외며 두툼한 꼬리로 금색 사슬을 붙들어 끌어당겼다.

사슬이 반응을 보이면서 뇌전 연못의 대량의 뇌전들이 사슬을 타고 흘러가 한립에게 전해지는 압박이 줄어들었다.

동시에 류기 노조의 입에서 회백색 빛이 뿜어져 나와 수십 가닥의 빛으로 흩어졌다.

파앗!

바닥에 떨어진 빛들이 꾸물꾸물 기어 진법을 이루고 대청 입구를 봉쇄했다.

“수미분계(須彌分界)!”

회백색 빛이 대청 내부와 외부의 세계를 단절시켜 독립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보고 석천공이 중얼거렸다.

류기 노조가 펼친 것은 공간 비술의 일종으로 외부와의 연계를 철저히 차단해 내부를 고립시켰다.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서려면 공간 전체를 함몰시키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고명한 수법이었다.

석천공은 지그시 류기 노조를 보다 은색 뇌전 연못 옆으로 내려섰다.

“석 형은 또 왜 그러십니까?”

호삼이 깜짝 놀라 따라붙었다.

“하하, 흉살기를 아직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걱정하는 호삼을 향해 석천공이 웃어 보였다.

“려 수사도 죽다 살아난 곳입니다. 일단 노조를 따라 위험에서 벗어난 다음에 흉살기를 처리해도 될 것인데…….”

“한순간에도 상황이 만 번은 변하고 있습니다. 강적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데 어찌 미루겠습니까. 호 형, 관심을 고맙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저는 도전할 겁니다!”

석천공은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은색 뇌전 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입을 뻐끔거리던 호삼이 고개를 젓고 금색 뇌전 쪽을 보았다.

대량의 뇌전구슬, 뇌전고리 같은 것이 한립을 둘러싸고 쾅쾅 터지며 난리였다. 원체 몸이 튼튼하고 태을옥선의 경지에 가까워진 한립도 견디기 어려워 보였다.

두 눈을 감은 한립은 이마에 힘줄이 솟은 상태로 고통을 감내하면서 <대주천성원공>으로 오장육부를 보호했다

앞서 세 곳의 뇌전 연못을 통과하며 뇌전의 힘의 이치를 어느 정도 깨우쳐 금방 뇌전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립은 갑자기 몸이 저릿하면서 선령력 운용이 멈춘 것을 알고 분노와 놀라움이 교차했다.

선령력을 운용할 수 없으면 뇌전의 기운을 받아들인다 한들 이곳을 어찌 벗어난단 말인가?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미리 일러주지 않은 류기 노조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류기 노조만을 원망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한립은 뇌전의 기운을 적셔야 하는 것도 개의치 않고 체내의 선령력을 어떻게든 움직여 뇌전법칙에 대응하려 했다.

그저 뇌전법칙이 너무 강해서 몸이 마비되는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이건!’

이때 갑자기 의식세계에 뇌전법칙이 침식해 그의 혼백의 힘으로 둘러싸인 유혼충을 향해 다가갔다.

음괄이 죽고 꼼짝하지 않던 유혼충이 꿈틀거리면서 마치 절규하는 것처럼 입을 벌렸지만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무언가 무시무시한 힘이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뇌전법칙이 유혼충을 감싸고 금색 주술문자가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유혼충이 부풀어 오르다 퐁! 하고 터져 검은 연기로 흩어졌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깜깜해졌던 한립은 금방 정신을 차렸다.

혼백 속의 유혼충은 안 그래도 근심거리였는데 이참에 사라졌으니 다행이었다. 그러나 좋은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대주천성원공>의 힘으로 보호하고 있던 오장육부에도 뇌전법칙이 스며들 낌새를 보였기 때문이다.

입가에 피를 흘린 한립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웅웅웅.

그가 극단적인 방법이라도 써서 뇌전법칙을 뚫고 나가려는데, 단전의 청죽봉운검 72자루가 움직이면서 가느다란 금색 뇌전을 일으켰다.

단전으로 접근하던 뇌전법칙을 청죽봉운검들은 고래가 바닷물을 삼키는 것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깜짝 놀란 한립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어찌 된 일인지 몰라도 단전의 뇌전법칙이 사라지고 선령력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쉬쉬쉬쉬쉭.

그가 선령력을 이용해 뇌전을 밀어내려 할 때 청죽봉운검들이 이번에는 제멋대로 바깥으로 떠올라 그를 가운데 두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화려한 검무 속에서 주변 뇌전 연못의 뇌전의 힘들이 꿀럭꿀럭 청죽봉운검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검신 주변에 쌀알 크기의 금색 뇌전 주술문자가 맺혀서 강력한 뇌전법칙 파동에 허공이 징징 울렸다.

한립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던 뇌전의 힘도 줄어들어 고통도 사라지고 있었다.

본명법보인 청죽봉운검과 긴밀한 의식연계를 이루고 있던 한립은 검들이 뇌전 연못의 뇌전법칙을 흡수해 드디어 변이를 일으켜 선기로 진입하려는 것을 감지했다.

명한선부에서 흡수한 대량의 검원으로 영력이 막강해져 선기와 다를 바 없는 위력을 냈지만, 아직 함유한 법칙의 힘이 부족해서 품계를 지닌 선기만은 못했다.

그러다 오늘 기연을 만나 선기로의 진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흥이 난 한립은 <대주천성원공>으로 몸을 보호하면서 달려드는 금빛 뇌전의 고통을 참고 청죽봉운검의 상태에 집중했다.

그의 본명법보인 청죽봉운검 72자루는 단 한 자루라도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되었다.

“어?”

호삼이 한립을 살피다 놀란 얼굴을 했고 류기 노조의 눈빛도 달라졌다.

72자루의 청죽봉운검들이 한립의 주위를 돌면서 뇌전법칙 주술문자를 품고 있었다.

검은 시간이 지날수록 크기가 커져 72마리의 상어들이 뇌전 연못 안을 노니는 것처럼 보였다.

선기가 함유한 법칙의 힘은 재료에 따라 크게 좌우가 되어서 배양한 시간이 짧고 재료가 품질이 떨어졌다면 대량의 법칙의 힘이 주입될 시 붕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청죽봉운검은 재료 자체도 비범했고 현천호리병 안에서 오랜 세월 배양해 그걸 기초로 선기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었다.

한립은 청죽봉운검이 별 다른 이상 없이 뇌전연못의 법칙의 힘을 흡수하는 것을 보고 눈을 감고 체내의 상황을 살폈다.

청죽봉운검의 진화는 반가운 일이었으나 지금 가장 급한 일은 서둘러 몸에 뇌전의 기운을 덧입히는 것이었다.

파파팟!

눈을 감은 그의 몸 위로 진룡, 청란, 오색공작, 산악거원 등의 진령 허상들이 줄줄이 떠올라 각각이 강대한 진령혈맥의 기운을 발산했다.

그동안 한립의 몸도 부풀어 올랐으나 진령혈맥의 영향을 견딜 만 했다.

몸이 금빛 뇌전으로 둘러싸여 밝게 빛나는 순간, 그는 눈을 번쩍 뜨고 높이 치솟았다.

이전의 뇌전 연못들이 그랬듯이 금색 연못의 뇌전들도 그를 따라 솟구치면서 그물을 이루었다.

금색 뇌전그물은 매우 조밀한데다 뇌전법칙까지 품고 있어 그를 공중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했다.

쉬쉬쉬쉬쉭!

눈살을 찌푸린 한립이 무언가를 하려는데 아래쪽에서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거대한 검기들이 날아올라 푸른 숲을 이루었다.

금빛 뇌전 줄기들을 휘감은 검기는 법칙의 힘을 가르고 그물을 끊어냈다. 한립도 검기의 영향권에 있었지만 전혀 부상을 입지 않았다.

금색 뇌전 근처에서 지켜보던 호삼만이 안색이 변해 뒤로 백여 장을 물러났는데 이미 팔에 깊은 상처가 나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흥!”

호삼은 상처 부위를 손으로 덮고 녹색빛을 뿜어 회복했으나 금색 연못 안의 검기를 보고 일순 두려운 감정이 들었다.

검기가 노린 것이 그가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큰일을 당할 뻔했다. 류기 노조도 무궁무진하게 날아오르는 검기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검기들 틈에서 유유히 빠져나온 한립은 연못 옆에 착지해 단약을 삼켰다.

어느새 연못의 검기들이 사라져 허공에 남겨진 공간균열의 흔적들은 봉합되었다.

쉬쉬쉬쉭!

투명한 형태로 변한 청죽봉운검들은 보광을 반짝이는 굵직한 금색 뇌전을 감고 연못을 빠져나왔다.

각 비검들의 검기파동이 한립이 지닌 품계가 있는 선기들 못지않았다.

한립은 72자루 청죽봉운검들이 금빛 잔영을 남기면서 단전으로 돌아간 것을 확인하고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휘었다.

“축하드립니다, 려 수사. 금색 뇌전의 기운을 받아들이는데는 성공하신 겁니까?”

호삼이 날아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안목이 있는 자라 청죽봉운검에 일어난 일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성공했습니다.”

한립은 미소를 지으며 몸에 옅은 금빛 뇌전 광채를 떠올려 보였다. 그걸 본 류기 노조의 눈동자 깊은 곳에 격한 기쁨이 차올랐다.

“주인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제혼이 그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켰다. 비술을 사용한 것인지 놀랍게도 기운을 대부분 회복한 상태였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 말하려는데 은색 뇌전에서 맑은 포효소리와 함께 석천공이 날아올랐다.

말 그대로 살가죽이 한 겹 벗겨져 근육과 살점이 드러난 석천공은 두 팔이 뼈까지 드러나 체구가 한결 왜소해 보였다.

그러나 참담한 겉모습과는 달리 살쇠를 이겨내 전신에 하얀 옥빛 광채가 맴돌고 있었다.

은색 뇌전이 그를 뒤따라와 붙잡아 두려하자 얼굴을 굳힌 석천공은 눈부신 은빛 비파를 불러내 딩! 하고 튕겼다.

음파에 의해 은색 뇌전이 흩어진 사이 연못을 벗어난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급히 단약 여러 개를 입에 집어 넣었다.

그러나 중상을 입은 석천공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드디어 살쇠를 벗어난 것이다!

녹색과 붉은색이 번갈아 반짝이고 새살이 자라난 그는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석 형, 살쇠를 무사히 벗어난 것을 축하합니다! 여기까지 온 것이 헛고생은 아니었어요.”

호삼이 함께 웃으며 공수를 했다.

“하하, 고맙습니다!”

석천공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말은 내가 사슬에서 벗어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어서 금색 사슬을 잘라. 누군가 빠르게 이곳으로 접근하고 있어, 어서!”

이때 류기 노조가 매섭게 소리쳤고 안색이 변한 한립 무리는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한립은 핏빛 천호화혈도를 불러내 심호흡을 하고 선령력을 미친 듯이 불어넣었다. 호삼과 석천공도 곧장 뒤로 이동해 손을 뻗어 선령력을 분출했다.

그리고 금색 뇌전빛과 함께 해 도인이 나타나 두 손에서 금빛 두 줄기를 뿜었다.

후우우웅…….

천호화혈도가 밝게 달아올랐다.

핏빛 태양이 대청을 가득 채우듯 빛이 만발하고, 장도의 여우머리에서 거대한 핏빛 여우 허상이 튀어나왔다.

여우 허상의 눈빛이 익숙하다고 느낀 한립은 흠칫 놀랐다.

‘석경후!’

핏빛 여우 허상이 장도 속으로 흡수된 뒤 천호화혈도는 몇 배로 커져 이번에는 초승달 형태의 곡도(曲刀)로 모양이 변했다.

장도 곳곳에 핏빛 눈동자 수십 개가 나타나 괴이한 느낌을 주었다.

크하아앙!

장도는 몸을 부르르 떨며 야수처럼 포효하고 천호화혈도를 쥔 한립은 바다와 같은 막대한 흉살기를 느꼈다.

두 귀가 울리고 오장육부가 뒤집어져 온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호삼과 석천공도 고통스런 표정이었으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한립보다는 나았다.

한립은 손에 힘이 빠져나가려는 것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장도를 휘두르려 했다.

그 순간, 천호화혈도가 스스로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 핏빛 그림자로 변해 호되게 금색 사슬 위로 떨어졌다.

콰콰콰쾅!

금색 뇌전 연못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수백 장에 이르는 찬란한 물결이 솟아올랐지만 모종의 금제에 막혀 연못 바깥으로는 흘러나오지 못했다.

천호화혈도 역시 금색 사슬을 딱 절반만 가르고는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흉흉한 파동이 천호화혈도와 금색 사슬 사이에서 일어 뿌연 돌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이에 한립 무리는 돌풍에 휘말려 벽으로 날아갔다.

쿠쿠쿠.

그들이 나뒹굴고 있을 때 대청 바깥에서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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