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878화 (1,635/2,000)

1878화. 3품 선기?

*

“명검입니다!”

석천공이 자기도 모르게 찬사를 했다.

한립은 은빛 장검을 오래 살피지 않고 호삼의 모습에 집중했는데, 평소와 달리 반원 형태의 빛들이 그를 겹겹이 덮고 있어 눈이 시리고 두통이 찾아들었다.

오른손에 검을 든 호삼은 왼손에서 금빛을 일으켜 부적을 불러냈다.

“저건 금소취령검부(金霄聚靈劍符)…….”

석천공이 놀랐다는 듯 부적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석 수사, 금소취령검부가 무엇입니까?”

“검의 위력을 잠시 증폭해 주는 부적입니다. 부적의 재질에 따리 위력이 천차만별인데, 호삼 수사가 지닌 것은 상급에 속해서 그 가치가 성 하나와도 맞먹는다고도 하지요.”

석천공이 부적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한립에게 설명해주고 있을 때 호삼이 기합을 넣고 부적을 장검 위에 붙였다.

화륵!

부적이 금빛 불길로 타오르며 검신을 타고 흐르자 과연 장검의 기운이 10배는 증폭되어 5품 선기에 가까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갈라져라!”

호삼이 더없이 신중한 얼굴로 앞으로 튀어 나가며 장검을 번쩍 들었다.

쩡!

날카로운 충돌음이 들리고 눈부신 검빛과 푸른 사슬이 충돌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밝은 빛을 터트렸다.

휘이이이.

강풍이 일어 대청 안 수사들의 장포가 펄럭였다.

“엄청난 기운입니다.”

호삼이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제혼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한 걸음 뒤로 물러난 한립만이 두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주시하다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호삼의 일격이 충분히 강하지 못해 푸른 사슬이 꿈쩍도 하지 않은 것이다.

콰릉!

그때 세살지 깊은 곳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오더니 푸른 뇌전 줄기가 사슬을 타고 올라와 은색 검빛을 조각내 버렸다.

뇌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둥글게 호삼을 감싸고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호삼은 제때 몸을 빼내지 못해 입에서 신음을 흘렸다.

콰쾅! 콰콰쾅!

“큰일입니다…….”

석천공이 깜짝 놀라 도우려 했지만 겁을 치를 때 떨어지는 천뢰보다 백 배 이상은 강력한 위력에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몰랐고, 제혼도 미간을 좁히고 한립만 쳐다보았다.

한립도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무턱대고 나서지 않고 슬쩍 천호 노조를 살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아쉬움이나 후손이 고통을 당해 마음을 아파하는 기색이 없었다.

호삼이 거의 버티지 못할 무렵 습관적으로 눈을 깜빡인 천호 노조의 꼬리 중 하나가 움직여 푸른 사슬을 감았다.

치지직!

느닷없이 거대한 설호의 몸에서 검은빛이 물씬 흘러나와 사슬을 타고 흘렀다.

“가라.”

사슬을 감은 꼬리가 바닥을 쾅! 내려치고 검은빛이 거대한 파도처럼 뇌전 덩어리로 향했다.

쾅!

검은빛과 뇌전 덩어리의 충돌에 빛줄기와 뇌전 줄기가 사방으로 튀어 대청이 웅웅 진동했다.

한립 무리가 보호막을 일으키며 얼른 뒤로 물러나고 천호 노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설호의 거대한 꼬리 중 하나가 날아들어 그들 앞을 가려주었다.

뇌전이 잦아들자 천호 노조는 꼬리로 호삼을 감아 일행들 곁으로 옮겨 주었다.

호삼은 의복은 물론이고 피부도 새까맣게 타들어 갔지만 내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들고 있던 은색 장검이 어둑해져 있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랬으면 큰일을 당할 뻔했습니다.”

호삼이 장검을 넣어두며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인사를 올렸다.

“네 수행에 이 정도 힘을 발휘한 것만으로 되었다만, 아직 수련이 덜 되었구나. 정확히 상황을 살피지 않고 조급하게 무엇을 한 것이냐? 너는 6품 보물을 부적을 이용해 5품까지 끌어올렸지만, 청뢰(靑雷) 사슬은 4품 선기로도 끊을 수 없다.”

천호 노조는 느긋하게 호삼이 잘못한 점을 지적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한립은 속으로 늙은 여우가 그걸 알았으면 진작 호삼을 말릴 것이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호삼은 전혀 그런 의문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4, 4품 선기로도 안 된단 말입니까?”

“그래, 네 개의 사슬은 구유족이 회계와 선계에서 찾아낸 진귀한 재료로 제련을 해 완벽하게 세살지와 결합이 되어 있다. 그렇기에 노부가 오랜 세월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4품 선기로도 끊을 수 없다면,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겠습니다…….”

석천공이 미간을 좁히고 말했다.

“너희의 수행에 사슬을 끊으려면 3품 이상의 선기가 있어야 한다.”

눈을 가늘게 뜬 천호 노조가 슬쩍 한립을 훑었다.

“대라경 수사도 구하기 어렵다는 3품 선기를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도조급이나 숨겨 뒀을 만한 물건인데, 회계에서 저희가 어찌 그것을 찾아내겠습니까.”

호삼이 울적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말에 석천공이 뭔가 망설이다 결국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지닌 라타비파가 바로 3품 선기였지만 마족에게 막대한 의미가 있는 물건이라 쉽게 나설 수 없었다.

그런데 천호 노조가 그들을 쓱 훑고 한립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네가 3품 선기를 지닌 것 같은데 노부를 위해 힘을 빌려줄 수 있겠느냐?”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거대 설호와 눈을 마주치자 한립은 심장이 철렁했다.

그가 말하는 것이 진언문에서 얻은 금색 원반인지 아니면 천호화혈도인지 그것도 아니면 목에 걸어둔 장천병인지 알 수 없어서였다.

한립이 대답하기 전에 호삼이 알겠다는 듯 화색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려 형, 혹시 그 핏빛 장도가 3품 선기 아닙니까?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시면 후에 본족에서 후한 보상을 할 것입니다!”

한립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석경후와 연락을 취하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답이 없었다.

잠시 후, 그가 손바닥을 뒤집어 천호화혈도를 불러냈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핏빛 장도를 보자마자 천호 노조의 눈빛이 달라졌다.

“선배님,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하지만 천호화혈도가 있다고 해도 제가 사슬을 끊어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봅니다.”

“네 혼자의 힘이라면 그렇겠지.”

“그게 무슨 뜻입니까?”

“선기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려면 금선의 선령력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허나 너희 모두가 선령력을 융합한다면 그럭저럭 될 것이야.”

천호 노조는 한립 무리를 보며 느긋이 답했다. 한립은 고민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

“려 형, 지금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구유족에게 쫓겨 막다른 골목에 몰렸고, 세살지에 들어가 살쇠를 벗어난다고 해도 탈출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 노조를 구해드려야 우리에게도 살길이 열린단 말입니다…….”

호삼이 다급히 그를 설득하려 했다.

“여기까지 온 것이 세살지 때문이었느냐? 하긴 선인의 몸으로 회계의 흉살기 침식에서 무사하기 어렵겠지. 허나 흉살지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는 모르고 있는 것 같구나.”

“선배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류기 노조의 말에 석천공이 의아해했다.

“푸른 사슬의 위력을 모두 보았겠지? 뇌오사슬을 타고 올라온 힘이 이 정도라면 연못 안의 뇌전은 백배는 강하다는 뜻이다. 너희 수행에 맨몸으로 들어갔다가는……. 흉살기를 씻어내기도 전에 뇌전의 힘에 온몸이 타버리고 말 것이야.”

‘늙은 여우같은 이.’

한립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상대의 말에 믿음이 가는 동시에 경계심이 일었다.

호삼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슬을 자르게 놔둔 것은 그들이 지금 이 말을 믿게 하기 위한 초석이었다.

“선배님 말씀은 저희가 무턱대고 세살지에 들어가면 반드시 목숨을 잃을 거란 소리로 들립니다.”

한립은 깜짝 놀란 척하며 되물었다.

“당황할 것 없다. 노부도 연못 옆에서 오랜 세월 놀고 지낸 것은 아니니까. 내가 뇌전의 힘을 막아준다면 푸른 연못에 들어가 흉살기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이야. 그 대신 너희들은 나를 도와 사슬을 끊어줘야겠지. 어떠하냐?”

“그렇게만 된다면 모두에게 좋겠지요. 저희가 살쇠에서 벗어난 뒤 힘을 합쳐 천호화혈도를 이용한다면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한립은 잔잔히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그들이 세살지에 들어가 먼저 흉살기를 씻어낼 것을 제안했고, 그 말을 들은 석천공도 입꼬리가 들썩였다.

“허허, 젊은 나이에 신중하구나. 안 그래도 나 역시 너희들이 먼저 세살지에 들어가게 해주려 했다. 세살지가 위험한 만큼 그 안에서 성공적으로 버티고 나오면 흉살기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 혼백을 단련해 수행을 높이는 효과도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어서 세살지로 들어가지요.”

그사이 호삼이 검은 의복으로 갈아입고 서둘렀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닙니다. 일단 단약을 복용하고 한 시진 정도 기운을 정리한 다음 세살지로 들어갑시다.”

한립이 고개를 젓자 호삼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 이렇게 세 사람은 각자 떨어져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제혼은 흉살기 침식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에 그저 부상을 치유하면서 나중에 사존인 음승전에게 어떻게 죄를 청할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 시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호삼이 가장 먼저 눈을 뜨고 일어나자 석천공과 한립도 그가 재촉하기 전에 몸을 일으켰다.

“뇌전 연못 중에 푸른 연못의 위력이 가장 약하다. 너희들의 흉살기를 씻어내기에는 충분할 것이야.”

여전히 십자 나무판 위에 웅크려 앉은 류기 노조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제혼이 한립을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한립은 심호흡을 하고는 가장 먼저 연못으로 들어갈 결심을 했다.

막 걸음을 떼려던 그가 미간을 좁히더니 화지 동천 입구를 열고 죽루 1층을 들여다보았다.

“려 수사, 저를 내보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압당해 있던 열화선존이 의식을 차리고 그를 향해 소리쳤다.

“열화 수사, 정신을 차리신 겁니까?”

“수사의 동천 안에서 충만한 천지영기를 쐬다 보니 겨우 이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허나 오래가지는 못할 테지요.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려 수사.”

“무슨 일입니까?”

한립의 물음에 열화선존은 미간에 갑자기 흉살기가 밀려들어 인상을 찡그렸다가 전음으로 바꿔 답했다.

“흉살기에 너무 오랫동안 침식당해 회복을 바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정신을 놓고 괴뢰처럼 살아가지 않도록 려 수사가 저를 죽여 윤회할 수 있게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립이 뭐라 말을 하려는데 열화선존의 말이 이어졌다.

“지니고 있던 보물들은 구유족에서 전부 압수해 가고 유일하게 체내에 남겨둔 본명법보만 남아 있습니다. 제가 숨이 끊어지면 가져가세요. 그 밖에 사문에서 전수받은 공법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진언문은 이미 망했고, 저도 이렇게 되었으니 무슨 희망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열화 수사, 벌써 세살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체내의 흉살기를 씻어낼 수 있다고는 하나 극도로 위험할 겁니다. 그래도 시도해 보시겠습니까?”

한립이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세살지요? 정말 흉살기를 씻어낼 수 있는 곳이 있단 말입니까!”

“제가 수사를 속여 무엇 하겠습니까? 하지만 극도로 위험해서 수사의 몸 상태로는 십중팔구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겁니다.”

“시도해 보겠습니다! 당연히!”

열화선존은 눈시울이 붉어져서 외쳤다.

“석 수사, 호삼 수사…….”

한립이 돌아보자 두 사람도 그 뜻을 알아듣고 열화선존의 금제를 풀어주었다.

“제혼, 열화 수사의 몸에 심어진 구유족 금제를 풀어 줄 수 있겠느냐?”

비틀비틀 걸어 나오는 열화선존을 보고 한립이 제혼에게 물었다.

“가능은 한데, 그러면 체내의 흉살기가 발작을 일으켜 당장 미쳐버릴 거예요…….”

“낭자, 저는 괜찮으니 그렇게 해주십시오. 발작이 일어나면 려 수사가 저를 연못 안으로 집어 던져 주면 되니까요. 목숨을 잃으면 그것도 하늘의 뜻이겠거니 하겠습니다.”

망설이는 제혼을 향해 열화선존이 씁쓸하게 웃으며 부탁했다.

“마음을 정했다면,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때문에 번거롭게 해드립니다.”

공수하는 열화선존을 보고 제혼이 암홍색 빛을 일으켜 두 손을 뻗었다.

열화선존은 제혼의 손바닥에 맞을 때마다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지고 고통스러워했고, 그럴 때마다 그의 몸에서 검은 흉살기들이 풀풀 날렸다.

한립은 열화선존의 눈이 회백색으로 변한 것을 보고 상대의 흉살기 침식 정도를 짐작했다.

소매 안에 숨겨진 그의 손에는 격원법련이 들려있었다.

펑!

제혼의 마지막 일격에 열화선존이 울컥 피를 토하고 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키가 한 뼘은 자라나 회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한립이 긴장해 바로 나서려는데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려 수사……. 당황하지 마세요. 아직은……버틸 만합니다.”

열화선존은 띄엄띄엄 말을 하면서 푸른 연못으로 힘겹게 걸어가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한립이 말리려 했지만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치지지직.

그가 뛰어들자 연못은 기름을 끓이는 솥처럼 폭발적으로 들끓었다.

마치 만여 마리의 뇌전 뱀들이 열화선존을 잡아먹으려 달려드는 것 같았다.

“쯧쯧, 하나같이 어찌 이리 성격이 급한지…….”

류기 노조가 그걸 보고 걱정스레 말했으나 눈빛 속에는 멸시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보고만 있지는 않고 거대한 꼬리로 푸른 사슬을 잡고 검은 빛을 일으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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