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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877화 (1,634/2,000)

1877화. 4색 뇌전 금제

*

크오오오!

그때 혼후가 다시 고개를 쳐들고 울부짖었다.

검은 업화가 수많은 구렁이처럼 그의 손과 머리를 빠져나가 사슬을 감싸고 녹이기 시작했다.

음허와 귀목이 굳은 얼굴로 검은 영패에 더욱 강한 힘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들이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혼후의 업화가 떨어져 나와 거대한 화염 손바닥으로 변해 그들을 내리쳤다.

깜짝 놀란 음허는 전신에서 검은빛을 뿜어 새까만 눈동자 같은 존재를 응결했다. 검빛이 거대 눈동자 속에서 빠져나가 화염 손바닥을 찔렀다.

퍼펑!

검빛이 폭발했지만 화염 손바닥은 미미하게 흔들렸고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음허는 거대 눈동자 신통을 펼친 다음 귀목을 잡아끌어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나 겨우 화염 손바닥을 피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손바닥이 떨어진 곳에서 폭음이 터져 나오고 족히 수 천장은 되는 구멍이 파였다.

“엇!”

진작 멀리 벗어나 있던 한립이 보랏빛 눈으로 구덩이를 살펴보더니 불현듯 몸을 날렸다.

“모두 따라오세요!”

머릿속에 울린 그의 목소리에 호삼과 석천공은 흠칫 놀랐지만 한립에 대한 믿음으로 구덩이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구덩이 바깥에서 혼후와 음허, 귀목의 싸움이 계속되는지 쿠르릉 거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려 수사, 여기는 왜 들어온 겁니까? 잠시 위험을 피할 수는 있어도 빠져나갈 곳이 없을 텐데요.”

호삼이 한립을 향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한립은 대답 없이 한팔로 제혼을 안아 선령력을 불어 넣어 주면서 다른 손으로는 푸른 검기를 날려 아직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새빨갛게 변한 구덩이 벽을 갈랐다.

서걱서걱!

바위들을 한참 쳐내다 보니 그 안에 검은 통로가 드러났다.

“여긴……. 알았습니다, 조금 전 혼후의 공격으로 수라성 지하의 또 다른 통로까지 길이 뚫린 거군요. 이걸 발견하다니 대단하십니다, 려 수사.”

석천공이 좋아하며 말했다.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닙니다. 수라성 전체가 이곳에 소란이 인 것을 알았을 테니 다른 대라경 수사, 혹은 더 무서운 존재가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한립은 긴장을 풀지 않고 검은 통로로 날아들었다.

호삼과 석천공도 따라 들어가며 뒤쪽으로 손을 저어 하얀 화염으로 통로를 녹여 길을 막았다.

꽤 넓은 검은 통로의 양쪽 벽에는 봉인 금제로 보이는 주술문자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설마 이 앞에도 무언가 봉인되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석천공이 작게 중얼거렸다.

“하하, 혼후 한 마리로도 구유족들이 분주해 졌을 텐데, 한 마리 더 풀어 놓으면 아주 난리가 나겠습니다.”

호삼이 웃음 지었다.

“아까 봉인을 푸느라 저는 정말 지쳤습니다. 이제 다른 봉인이 나타나도 어찌할 여력이 없다고요.”

석천공이 투덜거리는데 한립이 두 눈의 보랏빛을 키우고 속도를 높였다.

호삼과 석천공도 입을 다물고 속도를 높이자 세 사람은 금방 통로 끝의 거대한 공간으로 나왔다.

거대한 대청의 가장 깊은 곳에 석문이 하나 있고 그 위로 여러 겹의 금제가 펼쳐져 있었다.

마지막 금제는 화려한 은빛을 반짝이는 공간 금제로 이전 봉인과 같았다.

문제는 그 내부에 네 개의 뇌전 금제가 더 있다는 것이었다. 각각 푸른색, 보라색, 은색, 금색으로 나뉘는 금제는 패도적인 뇌전법칙 파동을 발산했다. 그중에서 금색 뇌전은 완골금뢰였다.

“완골금뢰! 저 안에 그럼…….”

석천공이 눈을 빛냈다. 석문을 본 호삼도 기뻤지만 뭔가 그냥 기뻐하는 것 같지만은 않았다.

“석 수사, 공간 금제는 이번에도 수사께서 맡아주셔야겠습니다.”

한립이 금제들을 보고 석천공을 향해 말했다.

“공간 금제는 아까 보았던 것과 똑같습니다. 경험이 쌓였으니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을 거예요.”

아까 힘이 빠졌다고 투덜거리던 것과는 달리 석천공은 주저 없이 수결을 맺고 소매 속에서 은색 깃발들을 날렸다.

도울 방법이 없는 호삼은 옆으로 물러나 혹시 쫓아오는 자가 있는지 후방을 경계했고 한립도 공터로 내려서서 제혼을 내려놓고 여러 장의 녹색 부적을 붙여 주었다.

상처가 녹색빛에 휩싸여 서서히 아물고 있었다.

외상이 거의 회복된 것을 본 한립은 제혼의 입에 핏빛 수정실이 섞인 검은 단약을 넣어 주었다.

검은빛이 그녀의 배에 퍼져나가자 피폐해 보이던 제혼의 안색이 조금 돌아왔다. 그러나 속눈썹을 바르르 떨며 눈을 뜬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파리했다.

“주인님…….”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일단 체내의 약성부터 흡수하도록 해.”

한립은 감사 인사를 하려는 그녀를 말렸다. 고개를 끄덕인 제혼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기운을 일으켰다.

아직은 귀목과 음허가 쫓아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은색 진법 설치를 마친 석천공이 은색의 라타비파를 불러내 열 손가락으로 튕겼다.

허공이 찢어져 나가면서 덜덜 떨리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보물을 장악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디딩디딩디디딩!

은색 음파가 폭풍처럼 몰아쳐 다섯 자루의 검 그림자를 이루고 방대한 법칙 파동을 일으켰다.

쾅!

다섯 줄기의 검 그림자에 은색 보호막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가 눈처럼 은빛을 흩날렸다.

연달아 강력한 신통을 쓰느라 석천공의 얼굴이 해쓱해지기는 했으나 공간 금제는 파훼되었다.

길게 숨을 내쉬며 그가 한립과 호삼을 부르려는데 이변이 발생했다.

석문의 네 가지 뇌전 금제가 느닷없이 무시무시한 기운을 터트린 것이다.

콰르릉! 콰쾅!

물항아리 굵기의 푸른색, 보라색, 은색, 금색의 뇌전이 석천공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헉!”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던 석천공이 뒤늦게 뒤로 피하려 했지만 뇌전이 떨어지는 속도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그 순간, 그 앞에 녹색빛이 나타나 현천호리병박으로 변했다.

호리병박 입구에서 흘러나온 녹색 광채가 네 줄기의 뇌전을 감쌌고 속도가 크게 줄어든 뇌전들은 표면에 주술문자를 번득이며 발버둥 쳤다.

한립이 번득 나타나 호리병박을 치면서 명을 내렸다.

“거둬라!”

그러자 녹색 광채가 회전해 네 줄기 뇌전으로 수축한 다음 호리병박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호리병박 내부의 두 번째 공간에 손톱 크기의 뇌전 네 덩이가 떠올랐다. 크기는 작아도 웬만한 선기 부럽지 않은 강력한 뇌전법칙을 품고 있었다.

안 그래도 호리병박에 축적해 둔 법칙의 힘이 얼마 남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이로써 다음 전투를 대비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런 말씀 마시지요, 석 수사. 시간이 없으니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한립이 현천 호리병박을 집어넣고 고개를 저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호 형, 제혼 수사 얼른 이리 오세요.”

석천공이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불렀다.

호삼과 같이 날아든 제혼은 처음보다 상태가 나아 보였다.

석천공이 손가락으로 비파를 튕기고 은빛으로 빛의 진법을 형성해 일행을 감쌌다. 흐릿하게 사라진 그들은 금제 너머의 또 다른 거대한 대청 안으로 이동했다.

너비가 만 장 가까이 되고 높이는 수 천장에 이르는 그야말로 웅장한 공간이었다.

그 중앙에 네 개의 연못이 각각 푸른색, 보라색, 은색, 금색을 띠고 차올라 있었다.

지면에는 주술문자와 문양들이 새겨져 대청 전체에 극히 복잡한 진법을 펼치고 있었고, 네 개의 뇌전 연못에서 뇌전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진법이 하얀 안개를 일으켜 그것을 막았다.

한립 일행이 가장 놀란 것은 네 개의 뇌전 연못 중앙에 십(十) 자 형의 나무판이 놓여 있고, 그 위에 새하얀 털을 지닌 거대한 여우가 9개의 꼬리를 늘어트리고 힘없이 누워있는 것이었다.

거대 여우는 사지가 굵은 사슬에 묶여 십자 나무판에 묶여 있는 듯했다.

각각 푸른색, 보라색, 은색, 금색을 띠는 사슬에서는 연못처럼 수시로 뇌전이 피어올랐고, 양쪽 끝은 여우의 단전과 연못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들은 만황신수를 눈앞에 둔 듯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다. 거대한 여우는 천천히 눈을 뜨고 은은한 잿빛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선계 사람들이라……. 어찌 여기까지 온 것이냐?”

“누구신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당신은 류기 노조가 아닙니까! 드디어 찾았습니다! 천호족 9대 자제 류삼성이 노조께 인사 올립니다!”

한립의 질문에 갑자기 호삼이 격동한 목소리로 말했다. 잔영을 남기며 앞으로 튀어 나간 그는 거대한 설호 앞에 엎드렸다.

“회계에서 천호족 자제를 볼 줄은 몰랐구나. 족인들은 무탈하더냐?”

거대 설호가 호삼을 내려다보며 눈빛이 흔들렸다.

“노조께 아룁니다. 다들 무탈하십니다. 그저 노조께서 갑자기 실종되시는 바람에 이전보다 세력범위가 많이 줄었지만요.”

“그래? 류청은 어떠하냐?”

“족장께서는 삼시를 베어내시고 대라경 후기에 이르셨습니다.”

호삼은 일행들의 눈치를 살피다 답했다.

“많이 늘었구나…….”

한립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요동쳤다.

호삼과 눈앞의 거대 설호는 북한선역과 흑산선역 중간의 만황구역에 서식하는 천호족이 분명했다.

저들이 말하는 류청 족장은 그렇다면 그가 마주쳤던 호족의 백의 대라경 수사일 것이다.

류낙아가 천호족에서 수련하고 있고, 흑산선역에서 호삼을 마주친 데다 그 노조라는 거대 설호까지 만났으니 그와 천호족의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노조 신분의 류기가 어쩌다 회계까지 와서 이곳에 갇혀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너도 나이가 많지 않아 보이는데 벌써 태을경에 이르다니 훌륭한 자질을 타고났구나. 나를 찾아 회계까지 온 것이냐?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어찌 알고?”

“노조께서 실종되시고 류청 족장께서 족인들을 파견해 찾아보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저도 같은 임무를 받고 활동하다 우연히 윤회전에 들어가게 되어 노조께서 회계에 있다는 정보를 얻었지요. 오늘 노조를 뵙다니 하늘이 저희 천호족을 비호하시나 봅니다!”

호삼은 감격에 차서 답했지만 류기 노조의 눈에는 이채가 스쳤다. 한립이 두 사람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다 눈썹을 끌어올려다.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곳에 갇히게 된 것입니까?”

“그 일은 나중에 이야기하고 구유족 금지인 세살뇌지까지 어찌 오게 되었는지부터 말해 보거라.”

한립은 ‘세살뇌지’라는 말에 세살지를 떠올렸다. 이미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급히 도망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석천공도 옆에서 기뻐했다.

“노조께 아룁니다. 그게 어떻게 된 것이냐면…….”

호삼은 일행들을 힐긋 살피고 수라성에 잡혔다가 제혼의 도움으로 탈출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삼역회맹에 혼후라……. 그런 일들이 겹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구나. 허나 음승전의 능력에 이곳에 있는 너희들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미 수라성 전역에 경계령이 떨어졌을 테니 너희들의 힘으로 달아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저희만으로는 당연히 안 되겠지요. 하지만 노조께서 함께하신다면 수라성을 떠나는 것이 뭐가 어렵겠습니까.”

“허허, 나와 함께 가겠다? 말이 쉽지 이 뇌오(雷鏊)사슬은 음승전이 직접 설치한 것이다. 내 선령력과 법칙의 힘을 가두기 위해서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수행은 높지 않아도 따로 준비해 온 것이 있으니 금방 금제에서 벗어나게 해드리겠습니다.”

호삼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고 천호 노조는 눈을 가늘게 떴으나 말리지 않았다.

하얀빛이 일고 태양처럼 빛나는 주술문자가 조밀하게 새겨진 은빛 장검이 나타났다. 호삼이 꺼내든 장검은 최소한 6품 이상의 선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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