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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844화 (1,601/2,000)

1844화. 고정

*

소류는 한립의 의식의 힘이 이곳에 모인 태을경 수사 이상이란 사실에 놀라 그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석천공과 풍림을 공격했던 네 명의 신영이 회색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우두머리인 골 선생은 한립 무리 너머의 진법 안에서 세 가지 보물을 발견했고, 특히 그 중 은색 비파를 보고는 눈알구멍 안 하얀 화염을 일렁였다.

“저건 나타비파(羅吒琵琶)! 저게 있으면 역계진법을 완벽하게 완성해 아주 안정적인 통로를 만들 수 있겠습니다. 수많은 우리 대군이 선역으로 넘어올 수 있게 될 겁니다. 어서, 어서 저 은색 비파를 가져오세요!”

회백색 해골이 격동해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나머지 셋이 대답하고 앞으로 나섰다.

“어딜 감히 선계의 보물을 노리는 것이냐!”

소류는 그들을 막지 않고 도리어 몸을 돌려 먼저 보물을 취하러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다른 이들도 바보가 아니라 회선을 막느라 다른 이들이 보물을 손에 넣게 두고 볼 수 없어 분분히 보물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눈을 반짝인 한립은 그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시간영역을 방출해 자신의 몸 지척까지만 아주 강력한 구금 효과를 응축해 두었다.

회선들은 눈앞에서 보물을 빼앗길 것 같자 얼굴에 핏대를 세우고 달려들었다.

회색 갑옷을 입은 청년은 보라색 십자 창끝에서 한 마리 용 같은 회색 빛줄기를 방출해 가장 앞서가는 소류를 공격했다.

아름답게 생긴 묘령의 여인은 채찍을 휘둘러 회색 채찍 허상으로 그물을 만들고 석천공 등의 앞길을 막으려 들었다.

흉하게 생긴 회색 장포 노인은 옆구리 아래 매미처럼 얇은 하얀 날개를 펼쳐 속도를 높여 다른 이들을 제치고 소류를 따라잡기 직전이었다.

기합을 터트린 소류가 오른손을 펼쳐 새까만 주술문자를 띄웠다.

파칙!

오색 뇌전빛이 그의 다섯 손가락 사이에서 폭발해 화려한 뇌전 장막을 터트려 회색 빛줄기를 흩어버렸다.

동시에 오색 뇌전을 휘감은 그는 속도가 더 빨라져 나머지 인물들과 더욱 거리가 벌어졌다.

콰콰쾅!

그 뒤로 폭음이 들려왔다.

치융이 붉은 태양처럼 떠올라 화염 덩어리를 날려 회색 그물을 끊어내었다.

뒤쪽에 있던 회색 해골이 그것을 보고 하얀 뼈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리고 주문을 외웠다.

잿빛 화염이 그 안에서 튀어나와 쟁탈전에 참여하지 않은 한립을 포함한 선계 수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한립은 뻔히 그것을 보고도 피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청죽봉운검에서 벽사신뢰를 응결했다.

펑!

회색 화염과 벽사신뢰는 충돌하고도 사방으로 불꽃이나 뇌전을 뿌리지 않고 서로를 밀어내면서 대치했다.

전방의 호삼 등도 나름의 신통을 펼쳐 회색 화염을 막았으나 어쩔 수 없이 속도가 느려졌다.

그중 가장 많은 공격을 받은 소류는 보호막처럼 두른 오색 뇌전이 상당히 소모되어 흉한 노인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노인의 손이 진법을 뚫고 들어가 나타비파에 닿으려는데 뒤쪽에 있던 석천공의 신형이 아무 징조도 없이 사라졌다.

팟.

이와 동시에 진법 옆에 검은 구멍이 나타나 그 안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눈가에 피가 고인 석천공이 튀어나와 먼저 은색 비파를 가로채려 했다.

그걸 본 한립은 가슴이 쿵쿵 뛰며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석천공의 손끝이 진법 상공을 스쳐 은색 비파에 닿는 순간 비파의 현이 스스로 튕겨진 것이다.

딩-

비파소리를 따라 은색 파동이 주위로 퍼졌다.

눈을 휘둥그렇게 뜬 석천공은 강력한 타격을 맞은 것처럼 허공으로 튕겨 올라 떨어지지도 않고 그대로 멈추었다.

은색 파동이 닿는 곳마다 다른 수사들도 석천공처럼 허공으로 날아올라 아무리 발버둥 쳐도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우웅!

이어서 진법 중앙의 금색 나침반이 어떤 힘에 자극을 받은 듯 나침반의 바늘에서 금빛이 튀어나와 은색 파동처럼 퍼져나갔다.

대전 안 수사들은 속이 쓰렸으나 금빛 파동에 저항하지 못하고 허공에 고정되었고,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 대전 밖의 회색 안개까지 출렁이지 않았다.

다들 의식까지 구속이 되었는지 눈빛이 멍한데 오로지 한립만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눈알을 굴렸다.

그는 시간영역을 수축해 외투처럼 둘러 두 가지 파동을 막았기 때문에 느리지만 계속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쿠쿵.

느닷없이 귀천이라는 흉한 노인 뒤에 기다란 검은 공간균열이 생겨나 강렬한 공간 파동을 방출했다.

풍림의 목 옆에도 조그만 검은 균열이 나타나 그녀의 귓불을 베고 있었다. 완벽하게 구금된 두 사람은 이런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진언문이 무너지고 있어.’

한립은 진언문 유적이 균형을 잃고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체내의 진언보륜을 힘껏 발동했다.

시간과 공간의 구금에 그의 선령력도 느리게 움직여서 진언보륜은 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쿠쿵!

이때 허공에 등장한 두 개의 공간균열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풍림의 목 옆에 나타난 검은 균열은 결국 그녀의 목을 베었고, 잘린 머리와 몸 사이에 검은 구멍이 뚫려 있는 무척 괴이한 광경을 만들어냈다.

귀천 뒤쪽의 검은 균열도 배로 늘어나서 검은 창처럼 그의 가슴을 찌르고 심장과 뼈를 뚫었는데 피는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귀천의 가슴을 뚫은 검은 균열이 더욱 길어져 석천공의 등까지 한 뼘 거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급해진 한립은 체내의 선령력을 최대한 빨리 움직여 진륜을 역전시켜보려 했으나 몸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고 눈알을 굴리는 속도와 사고능력만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쿠쿠쿵.

그때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

천천히 전방을 바라본 한립은 두 개의 공간균열이 안정을 되찾아 더는 확장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안심하려다 발아래를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언제부터인지 커다란 검은 균열이 새까만 보따리처럼 입을 벌리고 그를 집어삼키려 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커지면 그는 끝이었다. 한립은 최선을 다해 체내의 진언보륜을 움직이려 했으나 헛수고였다.

‘혹시 연신술을 사용하면…….’

문득 든 생각에 묵묵히 연신술 구결을 암송해 보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쿠쿵!

이때 음침한 소리가 들리고 열화선존 옆 허공에 새로운 검은 균열이 형성되었다.

긴장감이 최고조인 상황이었지만 한립은 굳건한 의지로 기어코 연신술을 운용하는 데 성공했다.

연신술의 보조로 의식의 흐름이 원래대로 돌아가 진언화륜경 공법을 발동하는 것도 쉬워지고, 드디어 체내의 진언보륜도 감응할 수 있게 되었다.

쿠웅-!

허공이 진동한 뒤, 그의 발아래 공간균열이 확장해 그의 장포 자락을 찢어냈다.

가슴이 서늘해진 한립은 즉시 온 힘을 다해 공간과 시간법칙의 이중 구금 속에서 진언보륜을 등 뒤로 불러냈다.

일단 몸 밖으로 나오자 진언보륜은 태양처럼 금빛을 만발해 한립 주변의 영역과 같이 주위의 법칙의 힘에 대항했다.

한립은 굳은 몸이 풀리자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고 이제 전처럼 막막하지는 않았다.

화륵!

그는 잠시 고민하다 진언보륜에 감긴 시간정사 두 가닥에 더없이 밝은 금색 불길을 일으켰다.

시간정사가 함유한 시간법칙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 불사른 것이다.

진언보륜의 시간도문들이 빛나기 시작하고, 이전보다 더 밝은 빛을 방출하며 강렬한 시간 파동을 퍼트렸다.

시험 삼아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마치 바위를 얹어 놓은 듯 팔을 들어 올리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발아래 균열이 거의 발에 닿을까 말까 했기 때문에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었다.

그가 이를 악물고 진언보륜을 쳐다보자 세 번째 시간정사에 불길이 일었다.

그 안에 함유된 시간법칙의 힘도 방출되어 진언보륜 주변의 금빛이 짙어졌다.

희색을 드러낸 한립은 진언보륜을 조종해 조금씩 이동해 보았다.

진언보륜이 향하는 곳은 시간과 공간법칙이 늪처럼 진득하게 풀어져 힘들어도 한립이 전력을 다하면 한 발씩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간신히 발아래 공간균열의 범위를 벗어난 한립은 멈추지 않고 대량의 선령력을 소모해 대전 안쪽의 세 개의 보물을 향해 나아갔다.

쿠쿠쿵…….

허공의 진동이 점점 빈번해지자 한립도 초조해졌으나 의지만은 확고했다.

움직일 수 있게 된 후 바로 달아나지 않고 대전 깊은 곳으로 향한 것은 보물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 공간 구금의 범위가 얼마나 방대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벗어나려 하느니 세 개의 선기를 취해 금제를 제거하는 것이 나았다.

그렇게 되면 유적이 붕괴해도 균열 틈에서 살길을 찾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어렵게 열화선존 옆까지 온 그는 주저하다 결국에 멈춰서 상대의 어깨를 잡고 검은 균열의 끝에서 벗어나게 밀어주었다.

그 후, 한립은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갔지만 선기에 가까워질수록 다시 의식이 굳어갔다.

시간이 멈춘 대전 안에서 그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세 개의 선기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석천공이 손을 뻗어 선기를 잡으려 했을 때와 비교해 선기는 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허약해져 있었다.

한립은 먼저 가장 가까이 있는 금색 나침반을 잡아챘다. 이번에는 어떤 이상 현상도 벌어지지 않고 나침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금빛이 반짝이고 나침반이 한립의 저물탁 속으로 들어가자 대전 안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미세하게 확장되던 공간균열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풍림의 잘린 목과 귀천의 뚫린 가슴에서 각각 선혈과 잿빛 안개가 쏟아졌다.

두 사람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닫기도 전에 공간균열에 말끔히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나머지 수사들도 대경실색해 분분히 몸을 피했다.

열화선존도 공간균열을 피했으나 한립이 그를 미리 옆으로 밀어 놓는 수고를 하지 않았더라면 풍림, 귀천과 비슷한 꼴이 되었을 것이다.

압박감이 줄어든 한립은 진언보륜의 시간정사 세 개가 전부 불타 사라진 것을 보고 미라경당으로 손을 뻗었다.

쿠릉!

그의 손이 탑에 닿기 전 격렬한 공간 파동이 느껴졌다.

무시무시한 공간균열이 미라경당과 나타비파 뒤에 횡으로 나타나 대전을 거침없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거대 균열을 본 한립은 아깝게 생각하면서도 서둘러 진언보륜을 체내로 회수해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 석천공이 어느새 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기괴한 갑옷으로 온몸을 두르고 제 자리에서 사라져 나타비파 옆, 그러니까 심연과 같은 거대 균열 인근에 흐릿하게 나타났다.

‘정신이 나갔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 한립은 그를 무시하고 대전 바깥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열화선존과 소류 등이 분분히 대전 밖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회색 장포를 걸친 해골만 역행해 한립을 지나쳐 석천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른 회선들이 ‘골 선생’이라 칭하던 해골은 잿빛을 터트리며 손이 낫처럼 변해 허공을 갈랐다.

막 균열의 틈을 벗어나 안색이 창백하고 입고 있던 흑색 갑옷도 어두워진 석천공은 그 공격을 막는 것은 물론 피할 가능성도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결연한 표정의 그는 손바닥에 하얀 낫이 파고드는데도 나타비파로 다가가 비파의 현을 튕겼다.

디잉…….

날카로운 비파소리가 울리고, 대전 문쪽으로 향하려던 한립이 무형의 힘에 이끌려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뒤쪽에서 강력한 공간 파동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석천공과 골 선생은 보이지 않고 잿빛 안개가 가득한 가운데 거대한 소용돌이가 등장해 대전을 철저히 무너트리고 있었다.

‘윽!’

시간정사를 다시 발동하기에도 늦은 터라 한립은 움찔하며 산만한 잿빛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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