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2화. 성관(星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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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이 흐릿해진 한립은 놀란 공수천을 뒤쫓으며 삽시간에 금털 거원으로 변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쾅! 쾅!
거대 금색 주먹 허상이 튕겨 날아가는 공수천에게 떨어졌다.
그걸 본 공수천은 다급히 수결을 맺어 몸에서 화염을 뿜어내 팔뚝 크기의 방패들을 이루고 앞을 막아섰다.
작은 방패들은 주먹에 무참하게 망가졌으나 계속해서 수가 늘어나 아직까지 뚫리지는 않았다.
공수천이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한립의 미간에서 수정 사슬이 튀어 나가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동시에 공수천의 뒤에서는 아홉 자루의 청죽봉운검이 떠올라 푸른 연꽃 모양의 검진을 이루고 예리한 검기로 그를 가두었다.
금색 그물은 공수천이 아닌 화염역령 앞을 막아섰다.
한립은 단번에 여러 가지 강력한 신통을 발휘해 공수천을 확실히 죽일 심산이었다.
의식 우리를 사용한 것을 바깥의 소류가 감지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겨우 이걸로 날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공수천도 한립의 살의를 느끼고 냉소를 흘렸다.
그는 입에서 피를 뿜어 화룡 거검에 흡수시키고 핏빛으로 물든 거검을 휘둘렀다.
웅웅!
거검이 진동하며 핏빛 검기 수천 개를 날려 금빛 주먹 허상을 무너트리자 푸른 검기의 연꽃도 더는 접근하지 못했다.
의식 사슬도 공수천의 머리에서 돌연 떠오른 하얀 빛덩이에 펑! 하고 부딪혀 앞이 가로막혔다.
“이제 내 차례다!”
한립의 안색이 달라지자 공수천이 괴성을 지르면서 거검을 뻗었다.
길쭉한 초승달 형태의 검빛이 쏘아져 나와 한립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기이한 한기를 품은 핏빛 초승달 검기에 한립은 피가 얼어붙는 듯했고, 멈칫 한 사이 피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한립의 북슬북슬한 팔에 초승달 검기가 박히고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자금색 빛을 일으킨 그의 등 뒤로 진령 허상들이 떠올라 몸속으로 녹아들었다.
급격히 몸을 부풀린 금털 거원은 삼두육비의 자금색 마신으로 변신해서 전신이 비늘로 뒤덮였다.
초승달 검기가 파고드는 속도가 급격히 느려진 사이, 마신의 양쪽 머리가 입을 벌려 분출한 자금색 빛이 날아갔다.
쩡!
핏빛 초승달 검기는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흩어졌다.
“헉!”
깜짝 놀란 공수천이 몸을 돌려 거리를 벌리려 했다.
차갑게 눈빛이 가라앉은 자금색 마신은 초승달 검기에 부상을 입은 팔 말고 나머지 다섯 주먹을 내질렀다.
다섯 개의 금색 빛구슬이 주먹을 빠져나가 공수천 가까이에서 융합되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동선금광!”
무시무시한 파동이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와 공수천을 휘감았다. 이에 공수천은 꼼짝하지 못했고 굳은 얼굴로 전신에서 화염을 분출했다.
그의 화염영역이 급격히 수축해 어마어마한 열기를 내는 적금색 화염으로 변했다.
치지직!
공수천 주위의 금색 소용돌이도 적금색 화염에 의해 조금씩 불타 사라지고 있었다.
이때 자금색 마신이 흐릿하게 공수천 앞에 나타났다.
마신 등 뒤로 나타난 금색 고리가 빠르게 회전하며 공수천과 그의 화염 영역을 금색 파문으로 둘러쌌다.
공수천은 물론 화염영역의 적금색 불길도 동작을 멈추었다.
진언보륜의 구금 효과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공수천의 화염영역도 위력이 대단해서 금색 파문이 진동하고 있었다.
한립은 시간을 끌지 않고 수결을 맺었다.
휘휘휘휙!
아홉 자루의 청죽봉운검은 공수천의 육신을 마구 베어 산산조각냈고 원영조차 강력한 검기에 소멸했다.
이 모든 일이 몇 호흡 만에 지나갔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린 한립은 진언보륜을 거두었다.
진언보륜이 소실되자 공수천의 화염영역과 역령이 흩어져 사라지고 한쪽에 붙들려 있던 한립의 또 다른 청죽봉운검 아홉 자루도 화염 우리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았다.
화염 우리가 열 개의 깃발로 분리되자 청죽봉운검들도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한립은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열반성체 변신술을 풀자마자 주변 동정부터 살폈다.
진언문 유적 내의 상황이 복잡한데 진언보륜을 들켜서 좋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금색 은하수 속으로 공수천을 끌어들여 전투를 펼친 것이다.
외부의 수사들이 서로 싸우느라 진언보륜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한 것 같자 한립은 그제야 조금 안심했다.
이어 그는 청죽봉운검과 공수천의 선기들을 거두고 시체를 훑었다.
푸른빛이 열 개의 붉은 깃발과 화룡 거검, 새빨간 저물탁 그리고 하얀 부적을 가지고 돌아왔다.
한립은 다른 것보다 하얀 부적에 집중했다.
공수천의 머릿속에서 찾은 것이었는데 구불구불한 주문이 적힌 부적의 기운은 혼백의 힘과 비슷하면서도 또 달랐다.
그가 녹색 부적을 불러내 팔에 붙이자 갈라진 상처가 봉합되며 옅은 흔적으로 변했다.
흡족한 표정을 지은 그는 금색 은하수를 흩어버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
금색 은하수가 사라지고 공수천의 잔해가 떨어져 내리자 소류와 치융 그리고 호삼, 벽사 선자의 표정이 확연히 달라졌다.
한립은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열화선존이 수행은 낮아도 금색 거울이 상대의 움직임을 늦추는 데 효과가 있었기에 단시간 내로 패할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호삼 쪽이 불리했는데, 소류의 뇌전 공격을 방어하는 데 급급해 공격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소류는 한립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입에서 오색 뇌전에 둘러싸인 작은 솥을 불러냈다.
콰릉.
뇌전빛을 번득인 솥은 오색 뇌전 실 다발을 퍼트려 그물을 이루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치융의 뒤로 뇌전빛이 반짝이더니 한립이 나타나 손을 뻗었다. 청죽봉운검 아홉 자루가 거대한 푸른 검 그림자들로 변해 치융의 목을 노렸다.
식겁한 치융은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리면서 전신에서 붉은빛을 방출해 수많은 주술문자를 만들어냈다.
잠시 후 머리 위에서 정신없이 교차한 주술문자들이 거대한 붉은 방패를 형성하고 9개의 검 그림자와 충돌했다.
콰콰쾅!
붉은 방패는 심하게 떨리면서도 9개의 검 그림자를 막아냈으나 창졸간에 펼친 술법이라 금이 가기 시작했다.
치융이 옆으로 피하려는 순간 그의 앞쪽 시간영역이 번뜩이고 금색 거대 그물이 나타났다.
시간법칙의 실이 얽혀 만들어진 그물이었다.
강렬한 시간법칙을 발산하는 그물이 치융을 감싸 붙들어 두고 한립이 서늘해진 눈빛으로 손날을 세워 허공을 갈랐다.
동시에 치융의 머리 위로 커다란 금빛 손바닥 허상이 나타나 떨어져 내렸다.
퍽!
치융의 몸이 머리부터 터졌으나 피가 난무하기는커녕 붉은 화염 덩어리들이 주변에서 몰려들어 귀곡성을 내며 합쳐졌다.
복원된 치융의 얼굴은 훨씬 창백해 보였다.
한립과 치융의 교전이 너무 빨리 진행되어서 열화선존과 벽사 선자는 어쩔 줄 몰라 하다 한립 옆으로 다가왔다.
“금선 주제에 수행이 훨씬 높은 공수구를 죽이다니 놀랍구나. 근 만 년 사이 날 이렇게 자극한 상대는 네가 유일하다.”
치융이 얼굴 가득 살의를 드러내 한 자 한 자 힘주며 말했다. 한립은 그와 대화를 나눌 마음이 없었기에 이미 검결을 맺고 있었다.
청죽봉운검들이 몸집을 키우고 거검들로 변해 금색 뇌전을 방출했다.
콰르르…….
천둥소리가 크게 울리고 시간법칙의 실로 이루어진 그물이 시간영역 안으로 스며들어 종적을 감추었다.
열화선존과 벽사 선자도 그것을 보고 재빨리 움직였다.
열화선존은 파초선을 부쳐 꼬리 아홉 달린 불 봉황을 날려 보냈고, 벽사 선자도 남색 빛으로 거대 뱀 허상을 만들어 그 입에서 남색 안개 뱀들을 분출했다.
세 사람이 힘을 합쳐 공격하자 위력이 하늘을 찌를 듯했고 시간영역의 보조로 치융은 피할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수행이 높은 치융도 감히 맨몸으로 부딪힐 생각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며 하얀 보따리를 날려 보냈다.
푸확!
하얀 보따리가 터지며 쌀알 크기의 암홍색 벌레들이 빠져나와 윙윙 울어댔다.
작은 벌레들이 품은 불길은 무척 괴이해 보였는데 세 사람의 공격이 벌레 떼에 흩어지며 떨어졌다.
마치 공격을 당해 죽어 나가는 것 같았다.
“저, 저건…….”
열화선존이 벌레들을 보고 멈춰 섰다.
한립과 벽사 선자도 움찔해 다가서진 않았으나 공격은 유지하고 있었다.
팟.
치융이 암홍색 피리를 꺼내 불기 시작하자 처량한 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윙윙윙윙.
그 소리에 암홍색 곤충들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 쏟아지는 공격을 빙 돌아 세 사람을 공격했다.
얼굴을 굳힌 한립은 전신에서 푸른 빛을 일으켰고 벽사 선자도 양손을 모았다.
“려 수사, 벽사 선자, 저 곤충은 수명을 불사르는 화세형충(火歲螢蟲)입니다! 절대 가까이 오게 하면 안 되니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열화선존이 소리치며 암홍색 칠현금을 꺼내 공중에서 빠르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딩! 디리링! 디딩!
칠현금 소리가 용울음 소리처럼 울려 퍼져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화세형충들도 마치 술에 취한 듯 제 자리를 빙글빙글 돌면서 이상행동을 보였다.
“창해용음곡(滄海龍吟曲)! 이 곡을 어찌 알고 있는 것이냐!”
치융이 경악하며 열화선존을 보고 소리쳤다. 그가 공격을 멈춘 동안에도 세 사람의 공격은 점점 가까워졌다.
딸랑 딸랑 딸랑…….
치융은 허둥거리지 않고 커다란 붉은 종을 불러내 울렸다. 종소리가 퍼지자 주변의 모든 것이 느려져 세 사람의 공격도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치융의 주변에서 불빛이 반짝이더니 주변의 화염영역과 그가 동시에 사라졌다.
그 순간 세 사람의 공격이 붉은 종에 부딪혀 느려졌던 시간의 흐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때 한립 무리 뒤에서 붉은빛을 반짝이며 나타난 치융은 열화선존을 보면서 눈을 부릅떴다.
“당신은…….”
열화선존도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혹시 화치자 사형?”
치융이 상대를 빠르게 훑고 반색했다. 그걸 본 한립이 달려들다 멈추었고, 벽사 선자도 미간을 좁히고 손을 내렸다.
그때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쇼! 이쪽도 신경 써줘야 할 것 아닙니까!”
한립이 고개를 돌리자 호삼이 소류에게 호되게 당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양손으로 수결을 맺었고 소류의 머리 위로 금빛이 반짝이고 금색 그물이 나타났다.
그물이 떨어지기 전 웅장한 시간법칙이 폭발적으로 들이닥쳤다.
소류는 호삼과 싸우면서도 한립 등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오색 작은 솥을 하늘 높이 날려 막았다.
콰릉.
오색 뇌전 실이 솥 안에서 튀어나와 뇌전 그물을 이루었다.
뇌전 그물과 오색 솥은 금색 그물의 위력에 꼼짝하지 못했지만 금색 그물이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소류는 한 줄기 오색 뇌전으로 변해 옆으로 피했고 호삼도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소류 수사, 잠시만 공격을 멈추세요. 저들에게 볼일이 있습니다.”
치융이 목소리를 높이자 소류가 금색 그물을 잠시 바라보다 더는 신통을 부리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제 위로 사형이 한 분 있다고 말씀해 주셨었습니다. 사부님의 화세형충을 굴복시킬 수 있는 분이라면 분명 화치자 사형이실 테지요.”
치융은 열화선존을 향해 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사부가…….”
표정이 달라진 열화선존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뗐다.
“제 사부님의 함자는 기마자라 합니다.”
치융은 옆쪽 허공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사, 사부님께서 아직 살아 계시단 말입니까!”
열화선존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듣고 있던 한립은 열화선존을 보며 이채를 띠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사형. 사부님이 어떤 분이신데 쉽게 목숨을 잃으시겠습니까?”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사부님께서 살아계시다니…….”
열화선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형제의 대화를 들은 소류는 침음하고 있었다.
“멸문을 당해 종문의 천만년 유구한 역사가 훼손되었는데, 사부님께서 화를 피하셨다니 이리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지금 어찌 지내십니까?”
열화선존은 기쁜 마음을 억누르고 물었다.
그러나 치융은 한동안 말을 고르다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사부님께서는 천정에 계십니다. 가장 존경받는 성관(星官) 중 한 분이십니다.”
그 말에 열화선존은 입이 딱 달라붙은 것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사부님이, 어째서 천정에…….”
한립은 짐작하고 있었기에 열화선존과 치융을 번갈아 보았다.
소류도 당시의 내막을 알고 있는지 입꼬리를 비틀고 흥미롭게 두 사형제를 쳐다보았다.
“사형, 당시 상황이 퍽 복잡했습니다. 이후 사부님을 직접 뵙고 그때 설명을 들으시지요. 마음이 복잡하겠지만 우리와 힘을 합쳐 우선 윤회전 폭도들을 정리한 다음에 차차 이야기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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