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1화. 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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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막 외곽이 슬슬 녹기 시작하자 여인은 빠르게 수결을 맺으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녀의 머리 위로 돌연 남색 수정빛이 응결해 거대 뱀 허상을 이루었다. 뒤통수가 납작하고 하얀 비늘 갑옷으로 온몸을 가린 뱀은 등에 사람 키만 한 남색 얼음 가시가 자라있었다.
뱀 허상의 입에서 빠져나온 남색 한기 덩어리가 분분히 보호막으로 스며들어 녹은 부분을 회복시켰다.
그녀의 보호막이 안정을 되찾자 치융은 공수천과 소류도 아직 맡은 대상을 처리하지 못한 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눈에서 붉은빛을 번득인 그는 몸에서 붉은빛을 퍼트려 삽시간에 대청 내부를 화염 영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영역 내의 화염들이 그의 머리 위로 뭉쳐 붉은색의 거대한 종을 이루었다.
고풍스러운 양식에 산과 강, 해와 달, 별 등이 새겨진 거대한 종에는 구불구불 글자들도 잔뜩 적혀 있었다.
한립은 종을 보고 흠칫 놀랐다.
종이 발산하는 화염 기운 속에 강렬한 시간법칙 파동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치융은 손을 뻗어 붉은 종을 내리쳤다.
댕댕댕.
유유히 퍼지는 종소리에는 사람의 의식을 관통하는 기이한 마력이 담겨 있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한립은 동작이 훨씬 느려졌고 그의 손을 떠난 아홉 자루 청죽봉운검도 10배는 천천히 움직였다.
열화선존, 호삼 그리고 벽사 선자도 영향을 받았지만 공수천, 소류 그리고 치융은 아니었다.
치융은 영역 안에서 8마리 화룡을 더 불러냈다.
원래 보호막을 둘러싼 불바다 속에 존재하던 화룡까지 총 9마리가 벽사 선자 주변을 맴돌며 포효했다.
“공격해라!”
화룡들이 발톱을 드러내고 남색 보호막을 찍어댔다.
쨍강!
갈라진 보호막을 지나 화룡들이 벽사 선자를 공격해 왔지만 그녀는 동작이 느려져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그 충격으로 대전 벽으로 튕겨 나갔다.
치융이 벽사 선자를 공격할 때 소류도 머리 위의 뇌전 비검을 키워 칼 끝을 호삼에서 겨눴다.
대량의 오색 뇌전이 그의 몸을 빠져나가 거검으로 주입되고 있었다.
“베어라!”
열댓 개의 뇌전 거검이 그의 머리 위에서 번득 사라져 호삼 인근에서 나타났다.
깜짝 놀란 호삼이 미간에서 수정 사슬 몇 개를 내뿜자 뇌전 거검을 향해 날아갔고, 동시에 은색 볏이 자라났다.
문제는 그의 속도가 소류에 비해 너무 느리다는 점이었다.
콰르릉!
오색 뇌전에 호삼이 매몰되었다.
한편 공수천은 한립과 열화선존의 동작이 굼떠진 것을 보고 즉시 강력한 한 수를 선보였다.
기합을 넣은 그의 손에서 화염 거검이 날아올라 웅웅 진동하며 두 줄기의 거대한 화염 검기로 변했다.
붉은 주술문자들을 가득 품은 두 줄기의 화염 검기는 법칙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다음 순간, 한립과 열화선존 뒤에 공간 파동이 일고 각각 화염 검기가 나타났다. 화들짝 놀란 그들은 피하고 싶어도 동작이 느려진 탓에 그럴 수 없었다.
공수천이 한립과 열화선존의 목이 잘려나갈 것을 기대하고 있을 때,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한립의 몸에서 금빛이 반짝이고 등 뒤로 금색 고리가 떠오르자 그의 움직임이 번개처럼 빨라진 것이다.
남색 보호막이 나타나 그의 등을 가리고 급격히 퍼져나가 수백 장 거리에 있던 열화선존까지 보호했다.
콰릉! 콰릉!
두 화염 검기가 물의 장막을 갈랐다.
심하게 떨린 물의 장막은 두 검기를 막아내 기뻐하던 공수천의 기분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립은 호삼과 벽사 선자 쪽을 보고 즉시 수결을 맺어 금빛을 퍼트렸다. 그의 몸에서 빠져나간 금빛이 신속히 영역을 이루고 대청을 감싸 안았다.
한립의 시간영역에 둘러싸인 소류, 치융, 공수천의 속도가 급격히 줄어 한립 쪽의 움직임과 비슷하거나 느려졌다.
열화선존이 금색 영역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시간영역!”
“말도 안 돼!”
소류와 치융이 깜짝 놀라 분노하며 동시에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라던 벽사 선자도 크게 기뻐하며 벽에서 튀어나왔다.
그녀는 상처를 치유하는 단약을 복용하고 힐끗 한립을 보고는 일순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때 오색 뇌전 속에서 은빛의 호삼이 빠져나왔다.
의복이 엉망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새까맣게 탄 상처들이 참혹했지만 기운이 안정적이라 벽사 선자보다 부상이 심하지는 않아 보였다.
“려 수사, 이런 큰 은혜를 입었는데 말로만 감사를 표해서는 안 되겠지요! 오늘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간다면 술을 대접하겠습니다, 하하하!”
웃음을 터트린 호삼은 녹색 부적을 꺼내 몸에 붙였다.
팟.
부적이 짙은 녹색 빛으로 녹아 몸에 스며든 후 그의 상처가 전부 사라졌다.
치융과 소류가 그들을 막으러 곧장 쫓아왔지만 이번에는 호삼과 벽사 선자가 한발 빨랐다.
하지만 결국 좁은 대청에서 싸우는 터라 그들은 다시 맞붙어서 싸우기 시작했다.
반대로 공수천은 바로 한립을 공격하지 않고 음산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만 보았다. 그 눈빛을 보고 뭔가를 알아챈 한립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네 놈이었구나, 려비우!”
공수천이 고함을 쳤다. 한립은 정체를 들켰지만 전혀 놀라지 않았다.
청죽봉운검을 부리고 시간영역까지 펼쳤을 때 이미 천정의 감찰선사에게 들킬 거라 예상했으나 다른 일행들이 무척 위태로웠기에 부득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진작 알아봤어야 했는데! 다들 공수구를 죽인 것이 교삼이라 생각하지만 난 네가 흉수라고 확신한다. 네 놈이 흑토선역에 와있었을 줄이야. 시간법칙을 익혔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부는구나!”
두 눈에 핏발이 선 공수천은 이를 갈 듯 중얼거렸다.
“마음대로 해보시지요. 저를 죽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 당신 하나 추가된다고 별로 달라질 것도 없습니다. 열화 수사, 이곳은 제게 맡겨주시고 벽사 선자를 도와주러 가세요.”
한립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열화선존에게 말했다.
할 말이 있는지 입을 달싹이던 열화선존이 결국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벽사 선자 쪽으로 날아갔다.
“미친! 오만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자신을 경시하는 듯한 한립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공수천이 달려들었다.
그의 몸에서 붉은빛이 퍼져 불속성의 영역을 이루고 그 안에서 화염 거인이 나와 불의 법칙 파동을 발산했다.
화염영역에 둘러싸인 한립은 주변 공기가 급격히 뜨거워져 화로 속에서 삶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은색 화염이 전신을 뒤덮자 숨 막히는 기운이 싹 가셨다.
“거기 서라!”
공수천은 자신의 영역이 통하지 않자 깜짝 놀라며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불길이 더욱 왕성해지며 엄청나게 큰 주먹이 한립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화염 주먹의 경로에 따라 공간이 찢어지고 검은 흔적들이 남았다.
그 아래에서 주먹의 압력에 움직임이 봉쇄된 한립은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양손을 움직였다.
솨아아.
파도 소리가 들리며 남색 방패가 만든 물의 장벽이 급격히 수축해 팔뚝 두께의 작은 벽을 이루고 그의 앞을 막아섰다.
물의 벽에는 거대한 강 허상이 떠올랐지만 화염 영역의 영향 탓인지 그 흐름이 이전보다 약했다.
그 모습에 눈썹을 꿈틀한 한립이 다른 방법을 쓰려고 할 때 화염 주먹이 다시 물의 벽을 강타했다.
쾅!
붉은빛과 남색 빛이 부딪쳐 중간에서 하얀 수증기가 형성되었고, 물의 벽 표면의 강 허상이 눈에 보이는 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때 화염 거인이 곧바로 다른 주먹을 내리꽂았다.
안 그래도 물의 벽 표면의 강이 개울처럼 줄어든 물의 벽은 화염 주먹을 이겨내지 못하고 펑! 퍼져 물안개로 사라졌다.
눈앞에 화염 거인의 주먹이 날아드는데도 한립은 태연하게 가슴 쪽의 현규 36개를 밝히고 자신의 주먹을 뻗었다.
쿠앙!
은색 화염으로 휩싸인 주먹이 거대한 화염 주먹과 충돌했다.
공수천은 자신이 아끼던 화염영역의 주먹과 팔뚝이 한립의 일격에 터져나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화염 거인의 팔은 불길이 밀려들어 원래대로 돌아갔으나 섣불리 다시 공격하지는 않았다.
“정염지화! 겨우 금선 따위가 가진 것도 많구나. 공수구가 당한 이유가 있었어. 안 그래도 아직 융합하지 못한 화염을 찾고 있었는데 잘 되었다.”
화염 거인의 머리 위에 선 공수천이 탐심을 드러냈다.
한립은 그가 뭐라고 지껄이든 개의치 않고 한 손으로 검결을 맺었다.
쉬쉬쉭!
아홉 자루의 청죽봉운검이 푸른 그림자로 변해 금빛 뇌전을 반짝이면서 공수천을 사방팔방에서 찔러 들어갔다.
청죽봉운검들의 궤적이 연꽃처럼 피어나 교차하며 공수천을 조각내려 했다.
그러나 공수천의 손바닥에 어느새 화룡 거검이 들려 있었다.
거검에서 대량의 화염이 튀어나와 화룡의 형상을 갖추고 수많은 화염 검기를 방출했다.
쉬쉬쉬쉭.
푸른색과 붉은색 검기가 공수천 주위에서 교전하는 통에 눈이 부셨다. 화염 검기가 거의 부서지고 아홉 자루의 청죽봉운검도 원형으로 돌아와 튕겨 나왔다.
화룡 형상이 그의 주위를 맴돌며 다시 빼곡하게 화염 검기를 분출할 때 공수천은 입에서 하얀 자를 내뿜었다.
하얀 자는 곧장 몸집을 키워 표면에 새겨진 오색 주술문자를 드러냈고, 공수천의 화염영역 안에서 똑같이 생긴 오색 자들이 무수히 많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수십 개에 불과했던 자들이 천 개, 만 개로 불어나 오색 화염을 머금고 한립을 집어삼키려 접근하고 있었다.
이에 한립은 팔을 뻗어 몸에 두르고 있던 은색 화염을 맹렬히 일으켰다. 그런데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무엇이든 삼켜버리던 정염지화가 오색 화염 앞에서는 간신히 버티고만 있는 것이다.
공수천이 바로 이어서 무언가를 하려는데 한립이 금색 깃발을 불러냈다. 그의 주문 소리에 맞춰 열 배로 불어난 깃발에서 금색 별빛들이 소용돌이치며 퍼져나갔다.
한립과 정염지화가 그 별빛 속에 파묻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고 오색 화염이 밀려들어 별빛을 관통했으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금색 별빛은 빠르게 퍼져 오색 자 허상과 교차했다.
그걸 본 공수천이 뒤로 물러났고 화염 거인도 몸집을 줄여 그 옆에 붙어섰다. 직접 손속을 겨뤄보니 상대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립은 별빛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 뒤, 마치 사라진 것처럼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시간영역이 여전히 건재해서 화염영역의 간섭을 막고 공수천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팟.
공수천이 어찌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인근에 파동이 일고 금빛 주술문자들이 떠올랐다.
금색 주술문자들에 둘러싸인 공수천은 즉시 움직임이 느려졌다.
후웅!
거의 동시에 금색 별빛 소용돌이가 시간영역과 공명을 하더니 은하수처럼 흘러들어 공수천을 따라잡았다.
공수천은 늪에 빠진 사람처럼 거대한 힘에 빨려 들어갔고, 화들짝 놀라 화염 거검에서 검기를 분출했다.
동시에 다른 손으로는 오색 자를 쏘아 보내 화염역령의 손에 들려주었다.
자에서 빠져나온 오색 화염이 하나로 합쳐져 순백의 화염으로 변하고 역령의 조종에 따라 화염 덩어리들을 분출했다.
그러자 주변의 별빛들이 하얀 화염에 휘말려 재가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약간의 공간이 생기자 공수천은 화룡 거검에서 발산한 검기로 자신과 역령을 보호하고 바깥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매서운 검기가 전방의 은하수를 가르고 벗어나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 전방에서 금빛이 반짝이고 수정실들이 날아들었다.
시간법칙의 힘을 일렁이는 시간법칙 정사가 무려 2, 30가닥은 되었다.
시간법칙의 실들이 모인 거대 그물이 송곳 모양을 이룬 검기들의 앞을 가로막았고, 공수천 뒤로 한립이 소리 없이 나타나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쿠아앙!
검기들이 박살나고 그 안의 공수천과 화염역령이 주먹 한 방에 튕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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