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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839화 (1,596/2,000)

1839화. 감각 소실

*

“흡광금제(吸光禁制)란 말인가? 아니, 내 눈이 먼 것이다!”

그는 재빨리 주변이 온통 암흑이 된 이유를 알아내고는 깜짝 놀랐다.

의식도 방출할 수 없는데 시력까지 봉인되면 앞으로 빛의 화살을 피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핑!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김없이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푹.

소리로 방향을 판별해 옆으로 피했는데 아랫배가 서늘해지고 참기 어려운 고통이 밀려들었다.

신음을 흘린 한립은 손을 배로 가져가 무언가에 녹은 듯 살점이 크게 떨어져 나오는 것을 느끼고, 즉시 <대주천성원공>을 운용해 36개의 현규에서 맑은 기운이 상처로 흘러 들어가게 했다.

공법을 수련한 후, 상처를 빠르게 낫게 하고 고통을 줄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체내의 아홉 자루의 청죽봉운검과 푸른 방패, 금색 자물쇠 그리고 현천 호리병을 전부 방출했다.

다른 선기들은 저물법기 안에 넣어 두고 이미 감응이 끊긴지 오래였다.

그가 그것들로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파공음이 또 들려왔다.

핑!

소리로 방향을 확인한 한립은 곧장 주먹을 내질렀다.

이에 청죽봉운검도 즉시 튀어 나가 거대한 푸른 연꽃을 이루었고 현천 호리병도 녹색 광채를 분출했다.

거의 동시에 남색 방패가 커다랗게 변해 그의 앞을 가로막고 방어용 선기가 아닌 자물쇠도 화살의 경로를 막게 띄워두었다.

하지만 또 아랫배가 서늘해지고 그 충격에 피까지 왈칵! 쏟아야 했다.

눈은 보이지 않았으나 아랫배에 뚫린 구멍을 통해 오장육부로 극독이 침식하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바닥에 착지한 그는 <대주천성원공>을 전력으로 운용해서 상체를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한립은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청죽봉운검과 방패 등과는 아직 의식연계가 되어 있어 분명 아무것도 충돌하지 않았는데 검은빛의 화살은 모든 것을 통과하기라도 한 듯 그에게 중상을 입혔다.

의식과 시력을 잃은 것도 충분히 골치 아픈데 검은빛의 화살이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핑!

그가 대책을 생각하고 있을 때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빛의 화살이 날아드는 간격이 조밀해지고 있었다.

기합을 넣은 그는 다시 모든 선기들로 앞을 가로막고 <진언화륜경>을 전력으로 펼쳐 진언보륜 영역을 펼쳤다.

그리고 방금 중상을 입은 탓에 옆으로 비켜서는 것을 잊지 않았다.

푹!

한립은 어깨를 맞고 튕겨 나갔다.

몸을 일으킨 그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인 진언보륜 마저 통하지 않은 것이다.

그 순간, 한립의 얼굴이 멍해졌다. 안 그래도 조용하던 공간의 모든 소리가 삽시간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청각도 잃은 것인가…….’

가슴이 철렁한 한립은 고뇌에 빠졌다.

‘청각마저 앗아가면 어떻게 화살을 피하란 말인가!’

급격히 머리를 굴리던 그는 피부로 주변 공기의 흐림을 감지해 옆으로 비켜섰다. 그래도 늦었는지 가슴이 갈라지며 충격이 전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심장이 뚫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제길!”

바닥에 내려선 한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기서 이렇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해왔다.

노호성을 터트린 한립은 단호하게 날아드는 빛의 화살을 무시하고 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얼마 날아가지 않아 앞쪽 기류가 달라지고 빛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안 그래도 전력으로 날아가고 있었고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피하기 어려워 오른쪽 팔뚝에 고통이 밀려들었다.

팔뚝이 아예 떨어져 나간 듯했다. 이에 한립은 눈살을 찌푸리며 날아가다 이상한 느낌에 코를 훔쳤다.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피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후각까지…….”

한립은 어이가 없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다음으로 기류가 달라지고는 오른 다리에서 극통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부상도 돌보지 않은 채 전력으로 전진했다. 이 이상한 통로는 마치 끝이 없는 것처럼 가도 가도 계속 이어졌다.

진선계에 온 이래 처음으로 절망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지만 한립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벌써 8대의 화살을 맞아 몸 곳곳에 구멍이 뚫렸지만 아직은 치명상이 없었다.

“안 돼. 계속 이렇게 당할 순 없어!”

부상이 겹쳐 강대한 몸과 혼백에 무리가 갔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돌연, 바닥에 멈춰선 그는 전력으로 날아가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여긴 자신의 천진함을 비웃었다.

<대주천성원공>을 운용해서 부상을 치료하려 했지만 워낙 상처가 많아 회복력이 따라가지를 못했다.

“이제 어쩐다…….”

대책을 궁리하던 그가 몸을 떨었다.

피부의 감각이 사라진 것이다!

“촉각마저 사라졌군.”

쓴웃음을 지은 한립은 이제 빛의 화살을 피할 수 없을 거라 직감했고, 그 순간 서늘한 힘이 단전을 뚫었다.

“이렇게 끝인가……. 아냐, 그럴 수 없어!”

폭발적인 고통에 의식이 흐릿해져 가던 한립은 괴성을 내질렀다.

그때 몽롱한 의식 속에 고운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남궁완이었다.

“완이!”

한립은 그녀의 잔상이 흩어지려 하자 끈질기게 정신을 집중해 막고는 어떻게든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 썼다.

그의 의식은 팽팽하게 당겨져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실 같았다.

시간이 흘러, 머릿속에서 무언가 깨져나가는 느낌이 들고 따뜻한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팽팽하게 당겨진 의식의 실이 그제야 느슨하게 풀렸다.

“려 수사, 려 수사…….”

누군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할 무렵, 한립은 정신을 차렸다.

푸른 대전 안에 선 그는 몸에 상처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열화선존이 옆에 서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살피고 있었다.

“방금…….”

움찔한 한립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뒤를 돌아보았는데, 새까만 통로에서 검은빛들이 생명을 지닌 것처럼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들고 있었다.

“미라노조께서 펼쳐 놓으신 육식진언금제(六識眞言禁制)입니다. 저도 이제야 깨어났고요. 의식을 단련하는 금제 중 하나라 자기도 모르게 환각에 빠져 여섯 가지 감각이 봉인되는 과정을 겪게 되지요.”

“환각이었다고요?”

열화선존의 설명을 들은 한립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굳은 의지력을 지닌 사람이라도 처음 금제에 휘말리면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감각상실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놓고 맙니다. 세, 네 번째까지 버티는 이도 손에 꼽히고요.

이 금제는 적을 막을 때만이 아니라 종문 제자들을 시험할 때도 쓰이는 것입니다. 저는 이전에 몇 번 겪어보아서 간신히 참고 이겨냈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금제를 버티다니 려 수사의 굳센 심성이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저도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간신히 벗어났습니다.”

한립은 담담히 손을 저었으나 속으로는 욕설을 금치 못했다.

“저도 이런 금제가 펼쳐져 있을 줄은 몰랐으니 너무 탓하지 마십시오. 비록 위험하기는 해도 금제를 이겨낸 만큼 얻게 되는 이득도 상당할 테니까요. 려 수사, 직접 의식의 힘을 확인해 보시지요.”

열화선존도 한립이 내심 불편한 마음을 가진 것을 알고 화제를 돌렸다.

그 말을 듣고 슬쩍 확인을 해보자 그제야 한립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 의식의 힘이 강해져서 연신술 5성을 돌파하려는 낌새까지 느껴졌고 감각이 강탈당하는 경험 후에 ‘법언천지’ 신통에 대한 깨달음도 깊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수련이나 깨달음을 논할 때가 아니었기에 한립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푸른 대전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리 넓지 않은 내부에는 네 개의 돌기둥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 안쪽에 어디로 통하는지 모를 검은 통로가 이어져 있었다.

“제가 의식을 잃은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고, 대략 일각 정도 되었습니다.”

한립의 질문에 열화선존이 대답해주었다.

고개를 끄덕인 한립은 의식연계를 통해 화지 공간의 해 도인에게 말을 걸었다.

“해 도인, 제가 의식을 잃었을 때 열화선존이 이상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열화선존을 믿으면서도 최소한의 경계는 늦출 수 없었다.

“아니요, 그저 이곳 환경만 조사하더군요.”

해 도인이 전음을 보내왔다.

“저 때문에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계속 가시지요.”

한립이 안심하며 이렇게 말하자 열화선존도 반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대전을 지나 전방의 통로로 들어섰다.

무척 어둡기는 해도 다른 금제는 펼쳐져 있지 않았고 구불구불하게 난 길을 걷다 보니 문이 있는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빛의 문 깊은 곳에서 검풍인듯한 바람 소리와 무언가 터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와 주변이 덜덜 떨렸다.

한립은 열화선존과 눈짓을 주고받고는 이곳에 다른 이들이 먼저 들어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각자 은신술을 펼쳐 어두운 그림자로 변한 그들은 소리 없이 빛의 문으로 날아들었다.

눈앞이 환해진 한립은 네모반듯한 거대 전당 안에 하얀 돌기둥이 2열로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드넓은 공간에서 다섯 사람이 치열하게 싸워 건물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많았다.

다섯 명의 인물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중 두 명이 유적에 들어와 흩어진 호삼과 남색 피풍의를 입은 여인이었다.

옅은 남색 피부에 짙은 초록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은 아름다운 뱀 요괴와 같은 분위기를 풍겼으나 사람의 눈길을 끄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반대로 상대편은 오색 뇌전을 두르고 엄청난 기세를 발산하는 소류, 화룡 모양의 거검을 든 공수천, 철탑 같은 굵은 몸을 지니고 귀에는 커다란 금귀고리를 찬 거한이었다.

한립이 몸을 날려 돌기둥 뒤로 숨자 열화선존도 그 옆의 또 따른 돌기둥 뒤로 가서 숨었다.

호삼과 남색 피부 여인이 열세이기는 했지만 당장 지거나 살해당할 것 같지는 않아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한립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다섯 명 중에서 남색 피부 여인과 귀고리 거한은 모르는 이들이었지만, 여인이 입고 있는 남색 피풍의는 역포회 거한이 입고 있던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귀고리 거한의 복색 역시 금포로 이루어진 천정의 것이었다.

한립은 시선을 정당 안쪽으로 돌리고 눈을 반짝였다.

처음에는 치열한 전투 때문에 발견하지 못했는데 제단같이 높은 탑이 하나 설치되어 있었고, 그 위로 검은색과 하얀색의 보호막이 진언궁 바깥 양의미진진의 축소판으로 보이는 작은 원형진법을 보호하고 있었다.

진법 속의 하얀빛과 검은빛이 어우러져서 흑백의 태극무늬를 이루고 음과 양을 뜻하는 각각의 위치에 금색 원반과 은색 비파가 놓여 있었다.

문양들이 새겨진 금색 원반은 가운데가 볼록 솟아 있고 그곳에 꽂힌 금색 바늘이 천천히 회전했다.

원반이 금빛을 반짝일 때마다 시간법칙의 파동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한립이 지닌 여러 시간선기보다 품질이 뛰어난 선기였다.

은색 비파가 발산하는 화려한 빛에서도 강렬한 법칙 파동이 전해졌고 공간 법칙을 품고 있었다.

그 밖에 양의미진진 위에 작은 탑도 하나 더 있었다.

5층으로 이루어진 탑에는 빼곡하게 문양이 들어가 있었고, 각 층의 색깔이 달라 위에서 아래로 금색, 녹색, 남색, 홍색, 황색의 다섯 가지 색깔을 띠었다.

이 다섯 가지 빛이 문장을 이루고 괴이한 시간법칙의 힘을 발산했다. 한립은 다섯 가지 시간법칙의 힘 중 세 가지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진언화륜경>, <수연사시결>, <환진보전> 세 가지 공법의 기운과 같았으나 탑이 발산하는 시간법칙의 힘은 훨씬 현묘했다.

보일 듯 말듯 오색 광채가 탑에서 내려와 양의미진진과 금색 원반, 은색 비파를 감쌌고, 원반과 비파가 내뿜는 금빛과 은빛은 오색 광채와 충돌하지 않고 서로 균형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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