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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831화 (1,588/2,000)

1831화. 경천지(驚天指)

*

“맞아…….”

한립은 무언가를 떠올렸다.

수연궁 유적에서 머리 큰 아이가 의식을 통해 <수연사시결> 공법을 알려 줄 때 수련하며 얻은 깨달음도 전수해 주었다.

그때 ‘법칙신통’이라는 내용이 언급되었는데 그것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었다.

“법칙신통……. 손가락 허상이 일종의 법칙신통이 아닐까?”

한립은 금색 손가락 허상을 관찰하며 시간의 힘의 변화와 법칙의 실의 분포 등을 기억해 두었다.

시간법칙의 힘은 난해하면서도 아주 아름다워서 마치 예술품을 보는 것처럼 깊은 인상을 남겼고, 금색 손가락 허상은 빠르게 날아올라 지붕의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한립은 진실안의 발동을 멈추고 진언보륜마저 멈춘 다음 눈을 감고 방금 본 것을 되뇌었다.

한참 후, 그의 몸에서 금빛이 반짝이고 진언보륜에 다시 진실안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진실안의 금빛이 천장의 구멍을 비추고 있었다.

대량의 금빛들이 흘러나와 손가락 허상을 응결했고 한립은 그것을 지켜보며 시간법칙의 힘의 변화를 연구했다.

손가락 허상을 보면 볼수록 더 많은 것을 알아냈지만 동시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손가락 허상의 시간법칙 변화를 통째로 외워두었으니 이곳을 떠나 천천히 헤아려보면 될 거라 믿었다.

피로가 쌓였는지 더는 금색 손가락 허상을 반복해서 보아도 큰 성과가 없었다. 이에 한립은 길게 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들어 제단 구멍 속에서 태양처럼 빛나는 금빛을 바라보았다.

눈을 번득이고 역전진륜 신통을 발동한 그는 손을 들어 시간정사 십여 가닥을 불러냈다.

그의 손길에 따라 법칙정사가 금빛과 뭉쳐지면서 거대 손으로 변해 구멍 안의 금빛 덩어리를 꺼내 보려 했다.

하지만 금빛 덩어리는 바닥에 박혀 있는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한립은 다섯 손가락을 움직여 16가닥의 법칙정사를 더 불러내 시도했으나 또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결국 금색 거대 손을 거두었다.

쉭-

그때 녹색 빛이 반짝이고 호리병박이 녹색 광채를 뿜었다. 녹색 광채는 역전진륜의 범위를 벗어나자마자 주변의 시간의 힘에 구속받았다.

한립은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직접 손을 구멍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제야 녹색 광채가 그 안의 금색 빛덩이에 닿을 수 있었다.

“불러내거라.”

한립의 외침에 녹색 광채가 빛덩이를 휘감고 호리병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여전히 빛덩이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현천 호리병으로도 안 되는 건가.”

그는 호리병박을 거두고 다른 비술을 시도해보았다. 잠시 후 그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웬만한 방법을 다 써보아도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눈앞에 보물을 두고 그냥 발길을 돌려야 한단 말인가?’

금빛 덩어리가 함유한 시간법칙의 양은 금색 자물쇠와 깃발 두 개의 선기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았다.

“잠깐, 선기!”

새로운 방법이 떠오른 그는 양손을 교차하며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빠르게 회전하는 진언보륜에서 눈부신 금빛이 흘러나와 금색의 옥병을 이루었다.

바로 광음정병이었다.

한립이 수결을 변화시키자 금빛이 주변으로 퍼지면서 알알이 모래알로 응결해 금색 사막을 만들었다.

곧 세 가지 시간법칙이 교차하면서 금색 소용돌이가 등장해 회오리쳤다.

금색 소용돌이는 맹렬히 안쪽으로 수축하면서 강렬한 시간법칙 파동을 발산했고 점점 고리의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이전에 두 번이나 해봤던 과정이라 그리 어렵지 않게 금색 고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가라!”

한립이 손을 뻗으니, 금색 고리가 천천히 회전하며 금빛 빛덩이를 향해 날아갔다.

고리의 눈부신 수정빛이 대전에 가득한 금빛을 압도했고, 그 강력한 흡입력에 드디어 빛덩이가 오랜 정적을 깨고 움직였다.

한립의 입꼬리가 둥글게 말려 올라갔다.

세 종류의 시간공법을 합친 금빛 고리의 위력은 과연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몇몇 금색 빛의 실들이 억지로 빛덩이 속에서 끌려 나와 고리 속으로 사라졌다.

빛덩이는 그걸 막고 싶은지 반짝거렸으나 소용이 없었고 빛의 실들을 흡수한 고리의 수정빛이 더욱 강해지면서 웅웅 진동했다.

휘이이.

점점 더 많은 금빛이 빛덩이를 빠져나와 고리로 흘러 들어갔고, 바르르 떤 고리가 금색 수정실을 분출해 한립의 몸을 거쳐 진언보륜 위에 나타났다.

눈을 반짝인 한립은 전력을 다해 금빛 고리를 조종했다.

금빛 고리는 시간이 갈수록 강력한 힘으로 금빛을 갈취해서 시간법칙의 실을 만들어냈다.

결국 금색 빛덩이는 눈에 보이는 속도로 줄어들다 소실되고 말았다.

빛덩이가 완전히 잡아 먹힌 순간 대전 안의 금빛 파동이 모조리 사라지면서 오랜 세월 동안 정체되어 있던 시간의 흐름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후두둑!

격렬한 전투 동작을 취하고 있던 천정과 진언문 수사들이 분분히 바닥에 쓰러졌다.

“엇!”

깜짝 놀란 한립은 금빛 고리를 거두고 멍하니 대전을 둘러보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시간이 멈췄을 때는 각종 영기의 빛이 반짝였는데…….”

그는 의혹이 가득한 얼굴로 가까이에 있는 시체로 다가갔다. 시체는 상처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육신에 원영까지 남아 있었으나 혼백만이 종적을 감추었다.

의식세계에 아주 희미하게 시간법칙의 기운이 남아 있었는데 그가 수련한 시간법칙과는 달리 금색 손가락 허상에서 느꼈던 매서운 기운이 섞여 있었다.

이들은 손가락 허상의 신통에 그만 혼백이 소멸한 듯했다.

“금색 손가락 허상은 엄청난 관통력뿐만 아니라 혼백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던 것 같구나.”

수사들의 죽음을 이해한 그는 금선들의 원영만을 거두고 진언보륜을 돌아보았다.

진언보륜을 휘감은 시간정사가 39가닥으로 늘어 있었다.

한 번에 시간법칙의 실이 13가닥이나 늘어난 것에 감탄하면서도 한립은 대전을 샅샅이 뒤진 다음 빠져나왔다.

골짜기 끝에 이른 것인지 다른 건물이 없어 방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날아올랐다.

* * *

둔광 속에서 한립은 저물법기들을 꺼내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방금 진언문 제자들의 시체에서 찾아낸 저물법기 안에서 진언문 관련 소식을 찾아 앞으로 있을 위험을 대비하고 수월하게 다른 보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유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수연사시결>과 <진언화련경>공법, 시간선기인 금색 깃발과 남색 방패, 그리고 시간법칙의 실 13개까지 얻어 마음이 흡족했다.

이제는 더 대단한 보물을 기대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고 윤회전 임무도 실패하면 그냥 선원석을 낼 생각이었다.

그는 일일이 저물법기를 조사했지만 진언문에 관련된 정보를 얻지 못했다. 약간 실망했지만 곧 천정 수사들의 저물법기를 꺼내 살피기 시작했다.

“이건!”

탄성을 내뱉은 그의 손에 옥간이 나타났다. 천정 금선 수사의 저물법기에 들어있던 진언문 지도였다.

혹시 몰라 천정 수사들의 저물법기도 챙겨 왔는데 지도를 얻다니 운이 좋았다.

그는 둔광을 멈추고 어느 산으로 내려가 옥간에 의식을 불어넣고 상세히 지도를 살폈다.

지도는 굉장히 간략해 진언문의 주요 지형과 구역만 나타나 있었다.

지도에 따르면 크게 수연, 진언, 류화, 토진, 목황의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뉘고 각각이 매우 넓어 촉룡도 면적의 몇 배에 달했다.

다섯 개의 구역은 진언구역을 중심으로 나머지 네 구역이 동서남북에서 둘러싼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연궁을 발견한 곳이 수연구역이었으니, 이곳이 진언구역이겠군.”

옥간을 넣어둔 한립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하얀 안개가 옅게 깔려 있어도 구유마동으로 꽤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그가 있는 산은 지형이 평범해서 지도만으로는 이곳 위치를 판단할 수는 없었다.

한립은 크게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지도에 표시된 중요 지역 중 하나만 찾아내도 대략적인 방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7, 8일의 시간이 지나고 푸른빛이 어느 산 정상으로 떨어졌다.

푸른빛이 가시고 나타난 한립은 여기까지 오면서 진언구역의 잔해에서 소소하게 몇 가지 수확을 챙겼지만 아직도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립은 단약을 복용해 피로를 달래고 다시 전방으로 향하다가 안색이 변해 방향을 틀었다.

그가 가려던 방향에 공간균열이 벌어져 어둑한 빛을 번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공간균열을 빙 돌아 원래 경로로 접어든 한립은 더욱 조심스럽게 사방을 경계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공간 파동이 앞쪽에서 느껴졌다.

“설마…….”

미간을 좁힌 그가 조심스럽게 아래쪽의 절벽으로 내려갔다.

이곳은 대륙 조각의 끝이었고 절벽 앞쪽의 허공에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공간균열들이 떠서 서로를 잡아먹으며 점점 커지고 있었다.

더 멀리는 거대한 수정 벽처럼 공간장벽이 드리워있었다. 그 바깥으로는 난류가 요동치는 허공이 존재했다.

한립은 공간균열, 공간장벽 등은 눈길도 주지 않고 허공 깊은 곳을 주시했다.

난류 깊숙한 곳에 수정빛이 반짝이며 또 다른 공간장벽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뒤로 새로운 대륙의 조각으로 보이는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허공의 난류와 공간장벽을 뚫고 은은하게 시간법칙 파동이 전해지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고민하던 한립은 결연한 표정으로 수결을 맺었다.

파팟.

얼마 전에 얻은 시간 선기를 며칠 동안 어느 정도 연화를 시켜두었기 때문이다. 금색 깃발과 남색 방패가 그의 옆에 떠올랐다.

그가 주문을 외는 소리에 맞춰 방패는 물결과 같은 남색 빛을 퍼트려 그를 보호했고 금빛을 방출하며 몇 배로 커진 깃발은 수많은 금빛을 분출해 금빛 은하수를 만들어냈다.

한립은 두 선기의 위력에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날려 공간균열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갔다.

난류 속에서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공간균열과 달리 움직임은 없었지만 부들부들 떠는 것이 불안정해 보였다.

그는 구유마동을 극성으로 발휘해 조심스럽게 움직여 푸른 연기가 표표히 날아가는 것 같았다.

“베어라!”

검결을 맺은 그의 손에서 푸른 검빛이 튀어 나가 공간장벽을 갈랐다.

펑!

푸른 검빛이 부서지면서 비검으로 돌아가 튕겨 나왔고 공간장벽이 흔들리다 원상태를 회복했다.

한립은 비검을 거두고 손가락을 뻗어 금빛을 물씬 품은 36가닥의 금색 수정실들을 모았다.

흐릿한 금빛 손가락 허상이 그의 손끝에서 날아가 공간장벽을 강타했다.

푹!

마치 손가락으로 창호지를 뚫는 것처럼 공간장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훌륭해, 이제부터 이 신통을 경천지(驚天指)라 불러야겠어.”

얼굴이 밝아진 한립은 푸른 빛으로 변해 구멍으로 들어가 허공 난류에 이르렀다.

쿠르릉!

거대한 잿빛 돌풍이 주위에서 불어와 그를 휩쓸려 했지만 진작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한립은 두 선기로 몸을 보호했다.

금빛 은하수를 몸에 두른 그는 잿빛 돌풍을 흩어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금색 깃발은 보기 드물게 공격과 방어에 모두 유용한 선기였다.

한립은 멈추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또 다른 대륙으로 날아갔다.

그때 돌풍, 한기, 심지어 화염까지 사방팔방에서 달려들어 공간 소용돌이와 공간균열을 품고 그를 위협해 혀를 내두르게 했다.

진언문 유적에 들어와 세 번째로 난류에 휩싸인 것인데 그 위력이 나날이 강해지고 있었다.

허공의 난류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는데 그 안에 섞여 있는 공간균열의 위력이 강력해서 금빛 은하수를 최대한 발동해 부수면서 나아가는데도 속도가 아주 느렸다.

다행인 것은 두 대륙 간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벌써 거의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때 멀리서 거룡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린 한립의 안색이 달라졌다. 하얀색의 산만한 바람이 주위의 난류를 찢으면서 몰아치고 있었다.

또 공간 폭풍이었다!

하얀 공간 폭풍은 공간의 힘이 충만한 빛의 칼날을 잔뜩 품고 있어 주변의 모든 것을 깨부수고 있었는데 속도가 극히 빨라 삽시간에 그를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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