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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828화 (1,585/2,000)

1828화. 뜻밖의 기쁨

*

한립의 기함할 만한 기세에 얼굴에 핏기가 가신 임호는 남색 그림자로 변해 방향을 틀었다.

동시에 9개의 선기가 그의 소매 속에서 튀어나와 대전을 보광으로 가득 채웠다.

한립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마신의 팔을 휘둘러 녹색 광채로 아홉 개의 선기를 휘감았다.

녹색 광채에 휩쓸린 선기들은 즉시 빛을 잃었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허공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한립이 손짓해 녹색 광채와 선기들을 모조리 치우기까지 한 호흡도 걸리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임호는 달아나면서도 방금 일어난 일에 적잖이 당황했고, 한립의 방대한 몸은 흐릿하게 변해 사라졌다.

순간 다시 임호 앞에 나타난 그는 푸른 거검을 휘둘렀다. 그의 시간영역 안에서 얼마나 빠르게 도망가든 한립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목숨을 걸고 싸워주겠다.”

절망할 것 같던 임호는 커다란 파도 소리를 내며 남색 거검을 휘둘렀다.

챙강!

남색 거검은 푸른 거검에 부딪쳐 두 동강이 났다.

이에 눈꼬리가 찢어질 듯 눈을 부릅뜬 임호는 피를 토해 갑옷에 흘러 넣고는 체내의 선령력을 사정없이 갑옷으로 불어넣었다.

갑옷에서 한립의 진극막과 비슷한 두꺼운 남색 막이 형성되어 푸른 거검을 막아섰으나 강렬한 시간법칙의 힘을 품은 공격은 막을 뚫고 갑옷에 닿았다.

“안 돼! 분명 후회하게 될…….”

절규하던 임호의 갑옷이 갈라지면서 퍽! 터져 피를 뿌렸다. 청죽봉운검의 더없이 날카로운 검기가 침투해 육신과 원영을 터트린 것이다.

뒤늦게 남색 갑옷도 갈라지더니 결국 산산조각이 났다.

삼두육비 마신은 임호의 잔해에서 남색 저물반지를 거둬들이고는 즉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한립은 푸른 청죽봉운검까지 거두었으나 그를 보는 풍림의 눈에는 경계심이 어려 있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어찌 보든 개의치 않고 바로 머리가 큰 아이 시체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 전투로 기력을 많이 허비하지는 않았지만 풍림의 피리를 빼앗아 불필요한 분쟁을 일으킬 마음은 없었다.

솔직히 남색 물고기 인간 그리고 임호와 격투를 벌일 때에도 일부러 의식 한 줄기를 머리 큰 아이 시체에 남겨두고 살피고 있었는데 아직도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침음하던 그가 푸른 빛을 날려 시체를 연못에서 끌어올리려 할 때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

큰 머리 시체가 아무 징조도 없이 그를 향해 달려들어 거의 이마와 이마가 맞닿고 코와 턱이 닿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반응 속도가 빠른 한립도 이번만은 시체의 움직임이 너무 괴이해서 시간법칙의 힘에 제압된 듯 어찌할 바를 몰랐다.

코앞까지 다가온 머리 큰 시체의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고 물빛의 투명한 눈동자가 그의 두 눈을 직시하면서 입에서 남색 빛을 뿜었다.

빛이 미간을 통해 한립의 의식 세계로 들어오자 두 귀에 천둥이 내려치는 것 같은 충격이 전해졌다.

그가 의식의 이상을 수습하기 전 큰 머리 시체는 “기마자를 죽여라”는 말을 남기고 눈과 입을 닫았다.

차카칵.

이어서 시체에 세밀한 균열이 퍼져 도자기처럼 깨져나갔다.

한립은 눈앞에서 남색 연기가 흩어지는 것을 보고 몸을 부르르 떨었는데 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

그와 거리를 두고 있던 풍림은 갑자기 한립이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다 놀랍게도 연못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솨아!

연못이 갑자기 소용돌이치면서 지면으로 빨려 들어가 어느덧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까이 있던 한립이 퍼뜩 손을 뻗어 손끝이 물길을 스쳤는데 연못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탄식하며 광음의 물이 든 병을 저물대 속에 넣은 그는 연못 바닥에 남은 수천 개의 남색 돌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풍 수사, 물 속성 재료들이 남아 있군요. 괜히 서로에게 칼을 겨누지 말고 함께 나눠 가지시지요.”

“바라던 바입니다.”

한립이 웃으며 먼저 손을 내밀자 풍림도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마족 여인과 연못 내의 물 속성 재료들을 나눠 챙긴 한립은 3층을 샅샅이 수색하고 같이 궁전을 빠져나왔다.

“저는 이 길을 따라 계속 가보려 하는데 동행하시겠습니까?”

한립은 궁전 뒤쪽의 안개로 자욱한 구역을 가리켰다.

“굳이 그럴 것 없이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다른 길들을 살펴보려고요.”

풍림은 그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알아듣고 바로 답했다. 그의 실력을 보고 감히 단둘이 동행할 만큼 겁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몸조심하십시오.”

한립은 풍림이 뒤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의식 세계를 살폈다.

평온한 의식 세계 속에 남색 광채 덩어리가 유유히 떠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그가 의식으로 건드리자 톡! 하고 흩어져 수천 개의 금색 문자를 만들어냈다.

놀랍게도 그가 북한선역 창류궁에서 얻은 것보다 더 많은 총 9권 분량의 <수연사시결> 공법이었고 끝부분에 머리 큰 아이가 수련하며 깨달은 바가 정리되어 있었다.

그가 모든 내용을 기억해 두었을 때, 금색 문자와 남색 물결이 소실되었다.

그는 뜻밖의 소득에 무척 기뻤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궁전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울창한 산속에 안개가 자욱해서 시야도 제한적이고 의식도 제약을 받았지만 천천히 걸어가면 갈만했다.

가는 동안 가끔 수풀 속에 진언문이나 천정 인물의 유골이 놓여 있는 것을 제외하면 어떤 위기도 없었다.

세 시진 뒤, 나무들이 듬성듬성해지고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완전히 숲을 빠져나온 한립은 규모가 천장에 이르는 거대한 연꽃 연못을 발견했다.

푸른 연잎과 분홍색과 하얀색이 뒤섞인 연꽃이 가득한 연못에 뭉실뭉실 안개가 피어올라 무척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한립은 바로 날아올라 가로지르려다 중간에서 미간을 좁히며 멈추었다.

“천지원기가 짙은 이유가 있었구나.”

허공에 떠오른 그의 눈에 분홍 연꽃들이 연못 곳곳에 퍼져 거대한 진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들어온 것이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 두 눈에 보랏빛을 일으켜 수면을 훑었다.

화르륵.

한립은 손을 펼쳐 은색 화염으로 된 불새를 불러내 연못 위의 푸른 연잎들을 전부 불살랐다.

은색 화염이 연잎을 재로 만들어 생기가 넘치던 연못이 어두침침해졌으나 하얀 안개와 분홍 연꽃들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은색 불새는 한립 곁에서 화염을 거두고 은염소인으로 변해 어깨 위를 뛰어다녔다.

연못에 불을 지르라고 해놓고 깨끗하게 태우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한 눈치였다.

파파팟.

은염소인의 궁금증이 깊어지기 전에 연못에 변화가 일어났다.

분홍 연꽃들 주위로 녹색 수정빛이 몰려들어 싹을 틔우고 몇 호흡 지나기도 전에 푸른 잎이 뻗어 나가 연못을 가득 채웠다.

환술로 만들어낸 허상이 아니라 물 속성 영력이 충만해서 진법의 힘으로 연잎을 다시 자라게 만든 것이다.

그걸 본 은염소인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다시 불사르려는데 한립이 손을 들어 어깨 위의 은염소인을 토닥여 말리고 체내로 돌아가게 했다.

진법의 배치를 한참 동안 살펴본 그는 휙! 하고 날아가 어느 분홍 연꽃 앞에 섰다.

푸른 거대 손이 나타나 연꽃을 들어 올리자 그 뿌리가 남색 수정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남색 수정 연꽃이 물을 떠난 순간 연못의 모든 분홍 꽃들이 시들어 버렸고 방금 소생한 연잎들도 광택을 잃었다.

거기다 자욱하던 하얀 안개도 바람에 따라 슬슬 흩어지는 중이었다.

남색 수정 연꽃을 살피던 한립은 농염한 물 속성 법칙의 기운을 느끼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 손가락에서 보광을 반짝여 빛의 문을 불러낸 그는 화지 동천 안으로 들어가 누각 앞의 금색 연꽃이 있는 연못에 남색 수정 연꽃을 함께 심어 두었다.

바로 뿌리를 내린 남색 수정 연꽃은 그리 크지 않은 연못에 금방 여섯 송이의 분홍색 연꽃을 피워내고 자욱하게 수증기를 뿜었다.

“…….”

누각 2층에서 수련 중이던 마광이 동천 안의 영기가 더욱 풍성해진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가 한립이 연못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눈을 감았다.

약재밭 쪽에 새로 지은 누각에서는 해 도인이 바깥을 보면서 이채를 띠었다.

* * *

그 시각 진언문 유적 모처의 건물이 밀집한 구역.

무너진 궁궐 담과 기둥 속에 수많은 진언문 제자들과 천정 수사들의 유골이 깔려 있었다.

생전에 얼마나 높은 수행을 지녔든 지금은 세월이 흘러 반들반들한 뼈만 남겨 놓고 있었다.

그 중앙에 비교적 온전하게 보전된 거대 궁전은 외형이 특이했다.

붉은 화염을 형상화해 놓은 것 같은 건물의 대문에는 수직으로 류화궁(流火宮)이라고 적힌 편액이 걸려 있었다.

건물 재료가 특이한 것인지 아니면 내부의 연단, 연기 재료가 특이한 것인지 수시로 벽에 열기가 번져 주변 공기가 어른거렸다.

콰쾅!

그런 궁전 바깥에서 굉음이 들려오고 보라색 영역과 노란색 영역이 중첩되어 보라색 궁장 차림의 요염한 여인과 얼굴이 누렇게 뜬 병색 짙은 노인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요염한 여인은 환연성 성주 안자연이었다.

노기 가득한 얼굴로 인상을 찡그려서 미간의 붉은 반점이 도드라진 그녀는 품에 보라색 옥 비파를 안고 빠르게 연주하고 있었다.

디디디딩!

소리가 울리 때마다 환영과 연기가 응결해 만들어진 절색의 여인들이 보라색 굽은 칼을 들고 표표히 날아 병색 짙은 노인을 공격했다.

노인은 대전 앞 광장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움직이며 여인들의 공격을 피했고, 수행이 상대방보다 높아 그녀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즐기는 표정으로 달려드는 미녀들을 감상했다.

끈적한 눈길로 안자연의 가슴을 살핀 노인이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자연 성주, 이 황량한 유적 안에서 남녀가 만났으면 운우지정을 나눠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어째서 이리 사납게 구십니까?”

“나를 안단 말이냐?”

그 말을 들은 안자연이 얼굴을 굳혔다.

“부 대궁주의 정부를 모를 리가요. 왜요? 부원해의 이름을 들먹이면 나를 겁줄 수 있을 줄 알았습니까?”

“……입을 아주 더럽게 놀리는 놈이로구나. 역포회의 거짓 모습을 버리고 본모습으로도 내게 정부란 소릴 지껄일 수 있다면 내 네 놈의 조상에게까지 절을 올리겠다.”

안자연은 당당하게 쏘아댔지만 노인을 얕보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상대가 자신을 갖고 노느라 설렁설렁 공격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이제껏 무사하지 못했으리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큼, 어느 사내가 미인을 만나 정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병색 짙은 노인이 갑자기 몸을 바로 세우고 헛기침을 하더니 외투를 벗어 던졌다.

마치 옷과 함께 껍질도 벗겨진 듯 새하얀 의복을 걸친 잘생긴 사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떠십니까? 이 모습이면 부인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도 될지요?”

모습이 변한 사내는 말투도 바뀌어서 이전의 음흉하던 노인과는 천지 차이였다.

“…….”

안자연은 상대가 기운을 감추거나 모습을 변화시킨 낌새가 느껴지지 않자 오히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본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자신을 필히 죽이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여인의 표정이 달라지며 입을 다물자 백의 청년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활짝 웃음 지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을 아까워 어찌 죽이겠습니까? 고이 데려다 가축처럼 잘 키워드리리다.”

그 말을 들은 안자연은 소름이 돋아 보라색 비파를 들어 활을 쏘듯 현을 당겼다.

웅!

보라색 빛기둥이 현에서 튕겨 나가 박쥐로 변해 음파를 쏘아댔고 보라색 영역이 음파를 증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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