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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819화 (1,576/2,000)

1819화. 나루터

*

6층 전송진 문밖으로 나온 호삼은 청록색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 손버릇은 어찌할 수 없습니까? 이러다 조만간 큰일을 당할 겁니다.”

석천공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솜씨가 절묘하십니다. 저물반지와 상대의 의식연계를 순간적으로 철저히 차단하다니요.”

한립은 칭찬을 했고 열화선존은 말없이 자신의 저물탁이 팔목에 잘 걸려 있나 확인했다.

“임무에 쫓겨 건실하게 살았더니 손이 근질근질해서요. 하하…….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신경 쓰실 것 없어요.”

호삼이 유쾌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6층에는 지나는 이들이 많아 보였고 거의 인족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형형색색의 이종족도 많았다.

상점들은 산 벽을 타고 밀집되어 있었는데 나부끼는 깃발이나 편액을 보니 대부분은 영토나 영초를 파는 것 같았다.

그 후 일행은 계속 위층으로 올라갔다. 풍경은 비슷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상점이 많아지고 복잡해졌다.

이런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호삼은 층을 올라갈수록 움직임도 느려져서 도중에 주루에 들려 유명한 술맛을 보고 일행들과 맛좋은 요리를 즐기기도 했다.

그들이 한층 씩 올라가 지면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반나절이 지나 있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부드러운 저녁노을이 붉은빛으로 대지를 감쌌다. 한립은 거대하기 짝이 없는 성벽 건물 옆으로 커다란 선가 선박들이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언문 유적의 대략적 위치는 흑토선역 중부 부구대륙(浮丘大陸) 환연습지(幻烟習地) 일대입니다. 전송진이 많지 않아 대부분은 선박을 이용하는데, 30년은 걸릴 겁니다.”

호삼이 선박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선박이 안전하기는 하나 우리가 비행선기를 이용해 날아가는 것보다는 느릴 텐데요?”

한립은 이해가 되지 않는지 다시 물었다.

“흑토선역은 다른 선역과는 달리 함부로 비행해서 가로지를 수 없습니다. 곳곳에 금제가 설치되어 있어서 강제로 돌파하려 하면 선궁의 주의를 끌게 되거든요.”

“흑토선역이 이리 빡빡한 곳인 줄은 몰랐습니다.”

호삼의 설명에 열화선존이 투덜거렸다.

“첫째로 남쪽으로 갈수록 거대 상회들이 사적으로 운영하는 영초 밭이나 광맥이 많아 함부로 외부수사가 침입하기를 꺼리고, 둘째로 흑토선역 곳곳에 독무가 가득한 습지가 있어 만황구역처럼 수많은 요수가 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대라급의 존재도 출현하는 위험 지역들이라지요.”

“전부 흑토선궁에서 금공 금제를 강화하기 위해 세운 규칙입니다. 이런 외진 곳은 그나마 괜찮지만 거대한 성 주변에서는 규칙을 어겼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을 거예요.”

호삼의 말에 석천공이 덧붙였다.

“각 상회의 선박은 전부 고정된 노선을 지니고 있고 그걸 미리 선궁에 보고하였기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진언문이 있을 때만 해도 흑토선역이 이렇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듣고 있던 열화선존이 울컥해서 탄식을 늘어놓았다.

“그렇다면 확실히 선박을 타고 가는 것이 좋겠군요.”

한립도 수긍했다.

“이를 위해 상회에서 거액의 선원석을 상납하는데도 나루터마다 선궁이 각종 검사를 합니다. 얌전히 검사를 받으면서 일정을 몇 달 지체하든지 아니면 또 선원석을 쥐여주고 빨리 가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호삼도 안타까운 일이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수사께서 류운성에서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립이 빙긋 웃음 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석 형이 있기에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선가 선박은 몰라도 백조각과 광원재의 선박은 선궁의 구속을 받지 않거든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예 임시로 하는 간단한 점검조차 받지 않을 겁니다.”

“광원재 나루터는 약간 거리가 있으니 저를 따라가시지요.”

호삼의 말에 석천공이 웃으며 전방으로 날아올랐다.

그를 따라 남쪽으로 날아오른 한립은 생각보다 큰 나루터의 규모에 놀랐다. 규모가 수백 리에 달하고 골목골목마다 시장이 있어 사람들이 가득했다.

잠시 후 그들은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한 나루터에 내려 대전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오자 관사 복장의 회백발 노인이 마시려던 찻잔을 내려놓고 다가왔다.

그는 석천공과 아는 사이인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인사를 하려는데, 석천공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주 장궤, 오랜만입니다. 제가 또 신세를 져야겠어요.”

“신세는요, 이런 귀한 손님을 맞이하다니 저희 나루터의 영광입니다. 이분들은 친우분들이신가 봅니다? 자자, 안으로 들어가 앉으시죠.”

노인은 잠시 움찔했다가 원래 표정으로 돌아가 그들을 안쪽의 방으로 안내해 차를 내왔다.

“일 없이는 찾아오지 않는 분이시죠.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주셨습니까?”

“역시 저를 잘 아십니다. 우리 광원재에 부구대륙으로 출발하는 선박이 있습니까?”

“흠, 최근에 밭을 약간 매입했는데 거기 화연초(火鳶草)와 옥영지(玉靈芝)가 다 자랐더군요. 수확해서 담아 보내기만 하면 되는데, 출발하려면 보름 정도 걸릴 겁니다.”

“하하하, 우리가 딱 맞춰 왔습니다.”

호삼이 찻잔을 흔들며 웃음 지었다.

“허허, 좋은 때에 오시기는 했습니다. 며칠 뒤에 흑유성 투수장(鬪獸場)에서 돈을 걸고 하는 요수 싸움이 있을 예정이거든요.”

“흑란투수장(黑欄鬪獸場) 말입니까?”

주 장궤의 귀띔에 석천공이 바로 흥미를 보였다.

“맞습니다. 대전이 10번 벌어지는데 흑산선역 북방의 만황구역에서 잡아온 고계 요수를 이용해서 그중에 두 마리는 진령혈맥을 타고났다고 합니다. 당연히 돈을 잘 걸면 받을 수 있는 배당금도 높을 겁니다.”

“흥미가 있으시면 며칠 뒤에 같이 가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석천공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호삼은 술을 좋아하고 석천공은 도박을 좋아하니 잘 맞은 짝이었다.

한립은 그런 곳에 관심이 없어 바로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바둑이면 가서 구경하겠지만 투수장은 되었습니다.”

열화선존도 웃으며 말했다.

“수사도 가시겠지요?”

“가야지, 거길 왜 안갑니까! 석 형이야 걸기만 하면 돈을 잃으니, 그 반대로만 하면 분명 손해는 안 볼 겁니다.”

“허! 내가 언제 졌다고 그러십니까?”

호삼의 말에 석천공이 화를 냈다.

그들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주 장궤가 준비해준 거처로 가서 각자 휴식을 취했다.

밤이 되어 홀로 정좌를 하고 앉아 있던 한립의 방에 열화선존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한립은 그를 들어오라고 하고 차를 내주고는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분위기가 어색해질 무렵 결국 열화선존이 입을 열었다.

“려 수사, 이런 말을 해도 될지…….”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립은 손을 휙 저어 방 전체를 무형의 보호막으로 차단했다.

“마음껏 말씀해 보세요.”

“제가 올 것을 진작 알고 계셨군요.”

씩 웃는 한립을 보고 열화선존은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수사의 처지였어도 협력할 벗을 찾았을 겁니다.”

“맞습니다. 일전에 려 수사와 동행을 원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섞여 있었지요.”

“저도 다른 일로 정신이 없지 않았다면 처음 동행을 청하셨을 때 함께 했을 겁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여기까지 함께 오게 되었지만요.”

한립은 상대방을 직시하면서 담담히 말했다.

“……려 수사, 우리가 생사고락을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야학곡에서 함께한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생각해서 윤회전에서 도대체 어떤 임무를 준 것인지 솔직히 알려주실 수 있을까 하여 찾아왔습니다. <대오행환세결>과 관련된 임무입니까?”

“열화 수사, 저는 윤회전의 진정한 핵심회원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저 호삼 수사를 도와 진언문 유적을 조사하라는 임무를 받았을 뿐이지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 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 말을 믿겠습니다. 호삼와 석천공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나 어쨌든 각자 원하는 바가 있을 것이니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요. 유적에 도착하기 전에 려 수사에게 분명한 답을 듣고 싶습니다.”

열화선존은 이를 악물고 결연하게 물었다.

“……윤회전에서 받은 임무가 있어 제가 할 일을 하지 않을 도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열화 수사의 목숨과 관련된 일이라면 절대 수수방관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도움을 줄 것이라 이 자리에서 약속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수사의 그 말이 정심환을 삼킨 것보다 제 마음을 편하게 해줍니다. 이번 일을 마치면 꼭 보답하겠습니다.”

열화선존이 포권을 하자 한립도 예를 취했다. 그는 한운산에서 지냈던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 거처로 돌아갔다.

* * *

10일 후, 아침.

한립과 열화선존이 나루터가 있는 성벽 위로 올랐을 때 호삼이 홀로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석 수사는 보이지 않는군요?”

한립은 인사를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석 형은 일이 있어 조금 늦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고먹으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아직 실컷 쉬지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호삼을 하품하며 느긋하게 말했다.

“어제 투수장에 다녀오셨나 봅니다.”

“어휴, 말도 마세요…….”

그렇게 잡담을 하며 일각이 지났을 무렵 주 장궤와 같이 나타난 석천공은 늦어서 미안하다며 사과하고는 함께 선박에 올랐다.

선박에는 광원재의 금선 후기 수사가 공봉으로 있고 진선 초기 수사가 관사를 맡았다.

공봉은 한립 일행과 몇 마디를 주고받고는 방으로 들어가고 관사가 그들에게 일일이 객실을 배정해 주었다.

커다란 선박에는 화물을 싣는 곳 외에도 3백 개의 객실이 있었는데 보통 외부인을 태우지 않고 상회 사람들만 이용했다.

한립은 위층 객실보다 넓지는 않지만 다른 이들의 방과 떨어져 있어 조용한 가장 아래층에 있는 객실을 골랐다.

진선 관사를 따라 창고를 지나던 한립은 가지런히 쌓인 네모난 검은 상자들을 보고 눈에 의혹이 어렸다.

“호 관사, 저 검은 상자들의 영력 파동은 저물대와 비슷한 것 같네만.”

“맞습니다, 전부 저물법기입니다. 저물대보다 만들기는 쉬우면서 각각 크기의 백 배에 달하는 화물을 실을 수 있지만 저물대보다는 보존 기간이 짧습니다. 대량의 영토를 실어 나르기에는 안성맞춤이지요.”

“그렇구만.”

창고를 지나 걸어가던 한립은 특수한 재질의 우리도 보게 되었다. 그 크기는 팔뚝만 한 것부터 집채만 한 것까지 다양했는데 창살에 뇌전빛이 흐르고 봉인 부적들이 붙어 있었다.

그 안에 엎드려 있는 요수와 괴물들은 상처가 가득하고 하나 같이 힘이 없어 보였다.

“이런 신기한 괴수들을 좋아하는 분들은 고가를 주고서라도 구하고 싶어 합니다. 저기 만사사자(蠻沙師子)는 영소성(靈沼城) 투수장에서 구해달라고 해서 운송하는 것인데, 저희도 만황구역에서 데려오는데 고생을 좀 했습니다.”

진선 관사는 한립이 묻기도 전에 어느 우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미간을 좁힌 한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걸 본 관사는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립을 객실 문 앞까지 안내해주고는 한 번 더 확인했다.

“더 좋은 객실로 바꿔드리지 않아도 될지요?”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괜찮네. 관사의 호의만 알아두지.”

한립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다른 분부가 있으시면 찾아주십시오.”

관사가 물러가고 한립은 안으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안이 넓어서 침실을 제외하고 수련할 만한 공간과 거실이 따로 있었다.

수련실과 거실은 선박 뱃전에 붙어 있는지 각각 작은 창을 통해 하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한립은 휙 둘러보고 객실 전체에 진법을 설치했다. 금제를 발동한 그는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겼다.

밤이 드리우자 서늘한 달빛이 창을 통해 객실 바닥에 하얀 무늬를 만들어냈고 한립은 품에서 암녹색 병을 꺼내 달빛 아래 두고 연신술 5성이 담긴 옥간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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