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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814화 (1,571/2,000)
  • 1814화. 습격

    *

    빠르게 검은 산맥을 지나친 한립은 전방에 흐르는 큰 강을 보았다.

    천 리에 달하는 강물이 거대한 수룡(水龍)처럼 대지를 가르고 지나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지도에 따르면 인근에 원풍국(原豊國)이라는 속세 국가가 있는 흑송강(黑松江)이 있었다.

    순간, 표정이 달라진 한립은 법칙 파동이 섞인 영기의 흐름을 읽어냈다. 최소 금선급들이 내뿜는 기운이었다.

    주변 수만 리 내에 합체급 종문밖에 없는 이곳에서 금선들이 싸우고 있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한립은 수결을 맺어 비차의 기운을 감추고 조심스럽게 의식을 퍼트렸다.

    “음?”

    무언가에 안색이 달라진 그가 주저하다 비차를 거두고 흐릿한 허상으로 변해 날아갔다.

    검은 산맥 중간의 평지에서 폭음이 끊이지 않았다.

    금색 장포를 입은 세 수사가 백발노인을 둘러싸고 공격하고 있었는데, 금색 장포는 딱 봐도 천정 복색이었다.

    험상궂은 얼굴의 누런 머리 거한은 태을경 초기의 감찰선사였고 나머지 복면 여인과 약간 뚱뚱한 청년 문사는 금선 후기의 수행을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공격 중인 사람이 다름 아닌 열화선존이란 점이었다.

    “열화선존이 왜 이곳에? 게다가 천정 인물들에게 공격받고 있다니…….”

    황발(黃髮) 거한은 두꺼운 노란 안개를 두르고 법칙 파동을 발산했다. 그가 수결을 바꿀 때마다 안개가 노한 파도처럼 열화선존을 향해 밀려들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뇌전과 보라색 검기를 이용해서 중간중간 틈을 노렸는데, 들고 있는 선기들이 꽤 강력한 것들이었다.

    세 사람의 협공은 물샐틈없었고 위력은 대단했다.

    열화선존은 혼자서 셋을 상대하며 열세이긴 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았다.

    머리 위로 은색 공작 도안이 새겨진 붉은 거대 깃발을 띄워놓고 굵직한 불기둥을 쉼 없이 분사해 주위를 불바다로 만들고 온갖 공격을 막아냈다.

    게다가 열화선존 허리춤에 걸린 금색 거울이 수시로 요란한 금빛을 뿜어냈다.

    금빛 파동의 영역에 이르면 황발 거한 등의 공격은 열 배로 느려져서 열화선존이 쉽게 피하거나 막을 수 있었다.

    강렬한 시간법칙 파동을 느낀 한립은 동공을 수축했다. 고대 거울은 그가 지닌 자물쇠에 맞먹는 품계를 지닌 시간 선기였다.

    “화치자, 항복하고 그곳의 위치를 말한다면 천정에서도 너를 받아줄 것이다!”

    황발 거한은 한참 동안 열화선존을 어쩌지 못했지만 열 받은 기색 없이 외쳤다.

    그러는 동안에도 노란 안개는 파도치고 나머지 둘은 틈틈이 뇌전과 검기를 날려 열화선존이 달아날 길을 막았다.

    “화치자가 누구란 말입니까? 나는 화엽종 장로 열화선존입니다. 아무리 천정이라도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괴롭혀도 되는 겁니까!”

    열화선존이 분개하며 깃발에 정기를 불어넣었다.

    크기가 두 배로 커진 깃발에서 더 굵은 화염 줄기가 날아가 거대한 붉은 거검을 이루고 노란 안개를 갈랐다.

    촤륵!

    노란 안개가 화염 줄기에 증발하며 길이 뚫렸다.

    “흐흐, 금선 후기의 수행으로 만리황사장(万里黃沙帳)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더냐?”

    황발 거한이 헛웃음을 흘리며 손을 뻗자 뚫고 나가던 거검 앞에 노란 안개가 뭉쳐 작은 산을 이루었다.

    쩡!

    거검이 산마저 뚫으려다 막혀 안개에 둘러싸였다.

    “지금이다!”

    황발 거한의 명에 복면 여인과 뚱뚱한 청년이 수결을 맺고 뇌전과 검기가 붉은 거검으로 떨어졌다.

    부들부들 떨리던 거검에 금이 가며 터지자 열화선존이 울컥 피를 토했다.

    펑!

    핏물을 흡수한 깃발 표면의 은색 공작이 돌연 날아올라 거검과 반대 방향으로 쏘아져 나가고 깃발이 스스로 불타올라 재가 되었다.

    열화선존은 깃발은 개의치 않고 두 손을 풍차처럼 돌렸다.

    화르르.

    대량의 은빛 화염이 공작새 몸 안에서 흘러나와 노란 안개를 공격했다. 폭음과 함께 은색 공작새가 안개 속에 길을 뚫고 열화선존이 그 뒤를 쫓았다.

    “거기 서라!”

    황발 거한이 눈을 부릅뜨고 입에서 노란 깃털 부채를 꺼내 힘차게 휘저었다.

    휘이잉!

    짙은 황토색 빛이 깃털 부채에서 빠져나와 돌풍을 이루고 열화선존과 은색 공작을 집어삼켰다.

    강력한 위력에 세상이 노란빛으로 물들고 지형이 달라졌다. 바람기둥이 백여 리의 땅과 하늘을 휩쓸어서 산과 구름이 남아나지 않았다.

    열화선존은 그 속에 휩쓸려 있으면서도 금색 파동으로 돌풍의 기세를 늦추었다.

    하지만 그의 이동속도도 늘려질 수밖에 없었다.

    황발 거한이 번득 열화선존 앞에 나타나 노란 영역을 발산했다.

    쿠쿠쿵.

    노란 영역 안에서 산만한 거대 손이 뭉쳐져 열화선존에게 떨어졌고 강력한 일격을 맞은 그는 중상을 입고 다시 적들에게 둘러싸였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한립은 노란 돌풍의 영향권 밖에 있었지만 표정이 어두웠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결심이 섰는지 흐릿하게 사라졌다.

    일장으로 열화선존을 날린 황발 거한의 시선이 은색 공작새에게 향했다.

    쉭!

    눈부신 금색 바늘이 그의 손을 빠져나가 잔영을 남기며 공작새에게 날아들었다.

    주변 돌풍의 영향을 떨치려고 날갯짓을 하던 공작새는 미간에 구멍이 뚫려 펑! 하고 터져 버렸다.

    그러자 그 안에서 넘쳐흐르던 은색 화염이 노란 돌풍에 휩쓸려 사라졌다.

    은색 공작새와 화염 거검을 연달아 잃은 열화선존은 얼굴이 창백했고 보호막도 많이 흐려져 있었다.

    주변의 금색 파동도 매한가지였다.

    황발 거한이 신이나 깃털 부채 속에 정기를 불어 넣었다.

    산만하게 커진 부채에서 법칙 파동이 폭발적으로 일어 열화선존을 노렸고, 그 공격에 휘말릴까 복면 여인과 뚱뚱한 사내는 급히 뒤로 물러섰다.

    휙!

    그때 멀리서 녹색 빛이 날아들었다.

    노란 거대 부채 앞을 막아선 것은 청록색 호리병박이었다.

    굵직한 녹색 광채가 호리병을 빠져나와 거대 부채를 막자, 부채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얼굴에 기이한 붉은빛이 떠올라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워보려던 열화선존이 놀라 하려던 것을 멈추고, 황발 거한도 안색이 달라져 노란빛을 부채 속으로 던져넣었다.

    “누구냐!”

    법결을 흡수한 깃털 부채가 녹색 광채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리는 순간, 슉! 하고 녹색 광선이 호리병 속에서 튀어나와 부채를 휘감았다.

    서걱서걱!

    노란 부채가 힘없이 암녹색 광선에 잘려나가 호리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호리병 뒤에서 푸른 인영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녹색 빛으로 둘러싸여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인영은 한립이었다.

    “누군데 선옥의 일에 끼어드는 것이지? 사는 게 지겨운 것인가?”

    황발 거한이 녹색 호리병을 훑고 한립을 향해 경고했다.

    “어찌 지겨우면 재미있게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겨우 금선 주제에 현천의 보물을 얻었다고 기고만장하게 날뛰는구나! 원영을 뽑아 고문하면 누군지 알 수 있겠지!”

    코웃음을 치는 한립의 반문에 황발 거한이 저물대를 쳐서 무언가를 하려 했으나 한립의 동작이 더욱 빨랐다.

    호리병 바닥을 치자 호리병 내부의 녹색 소용돌이가 역전하면서 청죽봉운검 한 자루가 그 중앙에서 눈부신 녹색빛을 품고 발사되려 했다.

    바로 그때, 노란 빛덩이가 호리병 깊은 곳에서 튀어나왔다. 엄청난 법칙 파동을 품은 노란 깃털 부채의 잔해들이었다.

    빛덩이가 녹색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 공명하더니 중앙의 청죽봉운검으로 강렬한 힘이 모여들었다.

    호리병 내부 상황을 감응한 한립은 놀랐지만 이미 그의 손을 떠나있었다. 노란빛이 호리병을 빠져나와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를 남기고 허공을 갈랐다.

    안색이 확 달라진 황발 거한은 뒤로 물러서며 꽃무늬가 가득한 고풍스러운 노란 방패를 몸속에서 방출해 앞을 막았다.

    쿠앙!

    방패가 격렬히 떨리고 노란빛은 번득 사라졌다.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 방패 뒤로 황발 거한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단전이 있는 아랫배가 뚫려 새까맣게 타들어가 있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황발 거한의 뻥 뚫린 상처 아래로는 얼마나 깊은지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이 땅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든 일이 전광석화처럼 벌어져 복면 여인이나 뚱뚱한 청년도 입을 쩍 벌렸고, 열화선존의 눈도 커졌다.

    눈에 희색이 어린 한립은 얼른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황발 거한 머리 위로 푸른 비검이 나타나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촤악!

    황발 거한의 몸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면서 혼백조차 날카로운 검기에 부서졌다.

    그 모습에 복면 여인과 뚱뚱한 청년은 서둘러 선기를 거두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갔다.

    그런데 복면 여인 앞에 붉은빛이 번득이고 열화선존이 나타나 두 팔을 펼쳐 금색 파동으로 여인을 감쌌다.

    “이제 노부의 차례다!”

    여인의 움직임이 느려지자 열화선존이 손을 뻗어 붉은 비검을 날렸다.

    한립은 열화선존 쪽을 힐끗 보고는 뚱뚱한 청년을 뒤쫓는 대신 호리병 위쪽을 탁! 쳤다.

    호리병에서 빠져나간 붉은 빛이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뚱뚱한 청년 뒤를 따라붙었다.

    푹!

    붉은빛은 뚱뚱한 청년의 보호막을 경쾌하게 뚫고 단전을 관통해 그 안의 원영을 갈랐다.

    거의 동시에 푸른 비검이 청년의 몸을 세로로 쫙 갈라 남은 혼백을 난도질하고 푸른 빛이 시체의 저물법기를 감싸 돌아왔다.

    한립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호리병을 바라보았다.

    붉은빛은 부서진 화염 선검을 흡수하고 호리병 안에 남아 있던 법칙의 힘이었다.

    미소를 머금은 그는 호리병을 넣어 두고 각각 보라색과 노란색 저물법기를 얹고 돌아온 푸른 비검도 집어넣었다.

    불덩이를 날려 황발 거한과 뚱뚱한 청년의 시체를 불살랐을 때 한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멀지 않은 곳에서 복면 여인이 은색 불덩이로 변해 타오르고 있었다.

    “려 수사, 맞지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립이 다가가자 열화선존이 태연하게 말했다.

    “이곳은 한담을 나눌 곳이 아니니 일단 벗어나시지요.”

    한립은 곧장 금색 뇌전을 방출해 뇌전진법을 이루고 두 사람은 뇌전빛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색 뇌전이 날아들었다. 소류가 유생 사내를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미약하지만 죽은 이들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역련 등 세 사람은 이미 살해당했군요.”

    소류가 침착하게 남은 기운을 분석했다.

    “화치자는 금선 후기 수사입니다. 역련의 수행에 금선 후기 수하 둘을 데리고 갔으면 충분히 잡아 올 수 있었을 텐데, 살해당하다니…….”

    유생 사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소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립의 호리병이 바닥에 남긴 깊은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대단하군요!”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그 안을 만져보던 소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에 유생 사내의 얼굴도 굳었다.

    “절대 화치자나 역련 등의 솜씨가 아닙니다. 세 사람을 죽이고 화치자를 구해간 인물이 따로 있어요.”

    소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생 사내가 주문을 외워 미간에서 퍼져나간 하얀 빛으로 주변 수십 리를 수색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교활하게도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마지막에는 뇌전 공간진법을 이용해 화치자를 데리고 먼 곳으로 이동한 듯하군요.”

    유생 사내는 비술을 멈추고 그들이 떠난 상황을 설명했다.

    “목적지를 알 수 있겠습니까?”

    “안 될 겁니다. 전송 거리가 너무 멀어 제가 탐색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단서가 없으니 돌아가는 수밖에요.”

    말을 마친 소류는 유생 사내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오색 뇌전을 일으켜 왔던 방향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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