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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809화 (1,566/2,000)
  • 1809화. 패

    *

    금색 화염 인간은 열을 받았는지 몸집을 키웠다. 거한으로 변한 그는 강렬한 법칙 파동을 분출해 영역을 자신 주변으로 밀집시켰다.

    머리에 용의 뿔이 자라나고 전신에 비늘이 돋은 그는 두 손이 용의 발톱처럼 변해서 검은 뇌전을 막아냈다.

    콰콰쾅!

    금발 거한이 앞을 가로막는 검은 뇌전을 부숴버리고 다급히 아래쪽 핏빛 구슬을 잡아채려 했다.

    더없이 빠른 동작이었지만 이미 한발 늦고 말았다.

    쿠쿠쿠쿠…….

    핏빛 구슬이 밝은 빛을 머금고 터지면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 같은 폭음이 터졌다.

    동시에 거대한 핏빛 태양이 떠올라 수백 마리의 은백색 거인들을 집어삼켰다.

    허공의 금색 거한도 핏빛 태양의 위력에 매몰되었고, 땅과 쌍방의 대군들이 양초처럼 녹아 검붉은 핏물이 흥건하게 고여 갔다.

    “저건……. 피의 법칙!”

    홍월도 도주도 피의 법칙을 사용했었다.

    그의 법칙은 진선에 불과했던 그가 신앙의 힘을 이용해 모은 것이라 눈앞의 핏빛 태양의 위력에 비하면 정말 반딧불과 달을 보는 것 같은 차이가 났다.

    쉭!

    핏빛 태양 속에서 금빛 화염이 빠져나와 거한의 모습으로 변했다. 비늘 곳곳이 움푹 들어간 거한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금발 거한은 양손으로 수결을 맺고 전신을 금색 화염으로 불살라 상처를 회복하고 번득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핏빛 태양 속에서 수백 마리의 은색 거인들이 원래 존재하지 않던 것처럼 사라졌다.

    이에 금발 거한이 난색을 보이다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자 검은 구름 속에서 보라색 장포를 입은 흉흉한 중년인이 내려오고 있었다. 보라색 마족 문양이 가득한 중년인은 가느다랗고 긴 눈매에 매부리코를 지녀 인상 자체가 매서웠다.

    거한과 중년인의 시선 그리고 웅장한 기운이 중간에서 충돌했다.

    콰콰쾅!

    허공이 부들부들 떨리고 당장이라도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한립은 예전에 본 태을경 후기 서금선을 월등히 뛰어넘는 기운을 느꼈다. 대라경 존재들 같았다.

    아래쪽 전장도 영향을 받아 분분히 교전을 멈추고 위를 바라보았다.

    맞붙어 치열하게 싸우던 태을경 수사들도 각각 금발 거한과 자포 중년인 뒤로 물러났다.

    “흥, 뇌신부를 멸한다고 전쟁의 승패를 뒤집을 수는 없을 겁니다!”

    검발 거한은 손을 들어 올렸다.

    후방의 공간 통로에서 거대한 금색 선박 40, 50척이 빠져나와 먹구름에 금빛을 드리웠다.

    엄청난 크기의 선박들은 금은색 주술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안에 가득 탄 천정 수사들은 바삐 움직여 금생 원통형의 무언가를 바깥으로 겨누고 있었다.

    수십 척의 금색 전함들이 일렬로 서서 마족 대군들을 조준했다.

    자포 중년인은 동공을 수축했고 한립도 위기감을 느꼈다.

    “공간 통로가 존재하는 한 우리 천정 대군은 계속해서 증원될 것입니다. 마역을 멸하기 전에 한 번 더 묻지요. 천정과 함께 윤회전을 상대합시다.”

    “우리 마역은 진작 입장을 밝혔습니다. 천정과 윤회전의 쟁투에는 끼지 않겠다고요.”

    “그리 주제를 모르고 날뛴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자포 중년인의 확고한 태도에 금발 거한이 싸늘한 얼굴로 손을 저었다. 그러자 천정 대군이 밀물처럼 몰려들고 태을경 수사들도 마족 대군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자포 사내는 나서지 않고 조용히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멀리서 돌연 웃음을 터트린 금발 거한은 금색 선박 위로 이동해 오른손을 용 발톱으로 변신하고 손끝에서 주술문자들을 번득였다.

    그걸 본 자포 사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촤륵!

    용 발톱이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쿠아앙!

    어딘가에서 돌연 보라색과 금색 빛이 번지면서 엄청난 압력이 공간을 찢어놓았다.

    그 안에서 휘청거리며 빠져나온 자포 중년인은 너덜너덜해진 왼쪽 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상처에서 금색 화염이 화륵! 치솟아 그의 상처 속으로 뚫고 들어갔다.

    안색이 급변한 자포 사내는 상처에서 보랏빛을 일으켜 금색 화염을 밀어내고 멀리 물러났다.

    그제야 멀리 마족 대군 상공에 서 있던 자포 사내의 신영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런 허접한 기습이 통할 줄 알았습니까? 천진난만 하십니다.”

    금발 거한이 냉소를 흘리면서 화살처럼 물러나는 자포 사내를 쫓았다.

    이와 동시에 수십 척의 금색 선박들이 주술문자를 반짝이고 어마어마한 영력 파동을 일으켰다.

    쾅쾅쾅쾅!

    백여 개의 금색 빛기둥이 금색 선박에서 뻗어 나가 마족 대군 위로 떨어졌다.

    금색 빛기둥에 맞은 마족 대군은 신음과 절규를 터트리며 살점 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빛기둥은 수행의 고하에 상관없이 백 명에 가까운 마족들을 처참하게 죽이고 나서야 흐려졌고, 이번 공격으로 수만 마족이 죽었다.

    한립은 마족 대군 후방에 있어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금색 선박의 빛기둥은 태을경 수사의 전력을 다한 일격과 위력이 비슷했다.

    “이놈!”

    자신의 진영에서 대량의 사상자가 나오자 자포 중년인은 자신을 쫓는 금발 거한을 돌아서며 팔을 뻗었다.

    검은 뇌전이 번득이고 예스러운 고리가 날아갔다.

    팔뚝 크기의 새까만 고리에는 빙 돌아 요수 도안들이 새겨져 있고 도안들 한가운데에는 사람 형상이 있었다.

    검은 깃털 날개가 달린 사람 옆에 검은 뇌전 뱀 두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어떤 고대의 신을 형상화해 놓은 모습 같았다.

    고리가 크기를 키우며 검은 뇌전빛을 방출하자 새 인간을 포함한 도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렬한 뇌전 법칙 파동이 인근의 빛을 앗아가고 있었다.

    콰르릉!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한립은 눈을 크게 떴다.

    금발 거한도 신중한 얼굴로 수결을 맺어 화염으로 이뤄진 강이 그려진 금색 깃발을 불러냈다.

    검은 고리에 맞먹는 화염 법칙의 힘이 느껴졌다.

    금발 거한이 깃발을 발동하기 전, 검은 고리에서 날카로운 새소리가 울리고 모종의 의식 신통이 날아들었다.

    “……!”

    금발 거한이 몸을 떨고 움찔하는 사이 검은 고리에서 여덟 줄기의 굵은 뇌전이 소리 없이 빠져나갔다.

    검은 수정처럼 투명한 뇌전은 놀랄만한 뇌전 법칙의 힘을 함유하고 있었다.

    곧바로 의식을 회복한 금발 거한이 괴성을 질렀다.

    금색 깃발이 산만하게 커져 펄럭이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금색 화염들이 기다란 강을 이루어 주변으로 흘러내렸다.

    온몸에서 금빛을 방출한 거한도 거대한 금색 용으로 변했고 비늘 하나하나에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크앙!

    금색 거룡(巨龍)의 입에서 굵은 빛이 날아가 화염의 강으로 흘러들었다.

    그러자 화염 강이 몇 배로 불어나 은하수처럼 하늘을 갈랐고, 굵은 뇌전들이 그 안에 휩쓸렸다.

    눈을 반짝인 자포 사내는 양손을 휘둘러 전신에서 검은 뇌전빛을 발산해 수십 리에 달하는 영역을 이루고 금발 거한을 가두려 했다.

    검은 뇌전이 가득한 영역은 크기가 제각각인 거대한 그림자 열댓 개가 뇌전 법칙 파동을 발산하고 있었다.

    “정말 사생결단이라도 내겠다는 뜻입니까? 어디 역마자의 광뇌영역(狂雷靈域)이 어떤지 봅시다!”

    안색이 달라진 거룡도 금빛 화염을 분출해 영역을 이루었다. 하지만 자포 사내가 먼저 주술을 외고 영역 내의 검은 고리를 흡수시켰다.

    우웅.

    검은 고리는 크기를 부풀리며 반투명하게 변해 눈부신 수정빛 뇌전을 발산했다.

    열댓 줄기의 수정빛 뇌전들은 금발 거한에게 떨어지고 일부는 금색 선박으로 향했다.

    “감히 나와 겨루면서 다른 곳을 신경 쓰다니!”

    그 모습에 금색 거룡은 더욱 열을 받았는지 아직 영역을 이루지 못한 화염으로 커다란 불구름을 만들어냈다.

    주술문자들이 요동치는 구름 속에서 콰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정체불명의 신통이 완성되어 자포 사내를 노리고 날아갔다.

    그러나 뜻밖에도 선박을 향해 날아드는 뇌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수정빛 뇌전이 금색 불구름을 허공처럼 통과해 금색 거룡을 노렸고, 금색 불구름도 마찬가지로 자포 사내에게 향하고 있었다.

    불구름은 꿈틀거리며 산만한 금색 용머리의 모습을 하고 입을 쩍! 벌렸다.

    놀란 자포 사내는 뒤로 물러서며 두 팔을 펼쳤고 검은 고리가 움직여 용머리를 막았다.

    쉬쉬쉭.

    동시에 검은 영역 안의 뇌전이 뭉쳐져 그물을 이루고 용머리를 덮쳤다.

    크오오!

    금색 용머리는 맹렬히 고개를 틀어 엄청난 힘을 발산해 전방의 검은 고리를 흔들고 포효성을 날렸다.

    강렬한 음파가 수많은 칼날 허상들을 응결해 소리를 타고 검은 뇌전을 통과해 자포 사내를 뒤덮었다.

    주변 뇌전들이 거울처럼 깨져나가고 자포 사내는 음파의 홍수에 온몸이 베여 입에서 피를 뿜으며 튕겨 나갔다.

    그때 금색 거룡 본체는 화염의 강을 이끌고 수십 줄기의 뇌전과 충돌해 엄청난 굉음을 냈다.

    뇌전들은 끊임없이 흐르는 금색 화염의 강에 점점 힘을 잃었고, 동시에 아래에서는 폭발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그것은 금색 전함들이 뇌전 공격을 받아 박살 나는 소리였다. 그러나 금색 거룡은 눈길도 주지 않고 오직 자포 사내를 향해 덤벼들었다.

    “죽어라!”

    벼락같은 소리로 외치자 곧 자포 사내의 머리 위로 화염으로 된 용 발톱이 나타났다.

    바로 그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자포 사내 아래쪽 허공에서 검은 소용돌이가 나타나 자포 사내를 흡수해 용 발톱이 허공을 가르게 한 것이다.

    수십 리 밖에서 검은 소용돌이가 나타나 녹색 빛기둥을 자포 사내 체내에 주입하자 녹색 빛에 휩싸여 흉측하게 벌어졌던 온몸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에 금색 거룡은 문득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주(魔主) 대인!”

    자포 사내는 여전히 안색이 창백해 보였지만 이전보다 많이 호전돼 검은 소용돌이를 향해 예를 취했다.

    ‘마주!’

    그 말에 금색 거룡은 얼굴이 싹 굳어서 그대로 공간통로를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리 족인들을 무참히 죽여 놓고 그냥 달아나려 하느냐?”

    서늘한 목소리가 울리고 허공이 무너져 내리자 금색 거룡 위쪽 허공에 은색 거대 손이 나타났다.

    이에 움직임이 급격히 느려진 금색 거룡은 은색 거대 손이 떨어지기도 전에 엄청난 압력에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아, 안 돼…….”

    금색 거룡은 다급하게 외치며 몸의 비늘 몇 개를 이용해 활활 타오르는 화염을 분출했다.

    그를 억누르던 압력에 구멍이 뻥뻥 뚫렸으나 압박감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파삭!

    그때 은색 거대 손이 거룡을 달걀처럼 손쉽게 깨트렸다. 순식간에 거룡이 으깨진 살점 덩어리로 변하자 사람들은 직접 보고도 믿지 못했다.

    아래쪽 전장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다음 순간, 곳곳에서 파공음이 들리고 천정의 태을경 수사들이 일시에 전장을 벗어나 공간통로 쪽으로 미친 듯이 날아갔다.

    은색 거대 손은 그들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푹!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천정 태을경 수사들이 동시에 이마에 구멍이 뚫려 추락했다.

    은색 거대 손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금색 통로를 호되게 내리쳤다. 그러자 안정적이던 공간통로가 부들부들 떨리면서 안에서 금빛이 튀고 혼잡해졌다.

    하지만 공간통로 내부에서 주술문자들이 떠올라 진법을 이루고 요동치는 통로를 안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은색 거대 손이 다시 나타나 손가락을 오므려 강력한 악력을 발휘했다.

    콰콰쾅…….

    통로는 견디다 못해 무너졌고 점점 좁아지다 결국 사라져버렸다.

    천정 대군들은 그야말로 절망스러운 얼굴을 했고, 반대로 기세등등해진 마족 대군은 태을경 마족들의 명에 따라 그들을 무참히 도륙하기 시작했다.

    자포 사내가 아래쪽 전황은 신경 쓰지 않고 은색 거대 손에게 다가갔다.

    “마주 대인, 제가 맡은 바 임무를 해내지 못해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자포 사내는 송구스러운 기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우리 마역의 세력이 강하다 해도 천정에 비해서는 약하네. 오늘 그 누구를 보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테니 신경 쓸 것 없네.”

    은색 거대 손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담담히 답하자 자포 사내의 안색이 나아졌다.

    “천정 수사들은 전부 몰살하지 말고 3할만 죽인 뒤 나머지는 수행을 봉인해 수라도(修羅島)의 마노(魔奴)로 충당하게.”

    “어째서 저들을 살려주려 하십니까? 저희도 사상자가 많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천정의 주적은 현재 윤회전일세. 마역을 공격했다지만 도조가 친히 나서지 않은 것만 해도 우리와 완전히 척을 지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야. 전쟁을 빠르게 수습하고 저들의 3할을 죽여 우리 족인들의 분한 마음을 풀어준 다음 나머지는 나중을 위한 패로 남겨놓자는 말일세.”

    “현명하십니다, 대인!”

    “나머지는 자네에게 맡길 것이니 천정의 동향을 엄밀히 주시하게.”

    분부를 남긴 은색 인영은 허공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전장 뒤편의 시체에 깃든 한립은 실눈을 뜨고 상황을 지켜보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은색 거대 손이 내뿜은 위압감은 대라경 존재인 자포 사내와 천정 금발 거한보다 엄청났다.

    거대 손이 나타난 후 그는 즉시 의식의 힘을 시체의 머릿속에 꽁꽁 감추고 있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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