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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808화 (1,565/2,000)

1808화. 천마

*

한립은 손을 저어 부서진 비수와, 하얀 병 그리고 푸른 나무 자를 불러냈다.

전부 은은하게 공간 파동이 느껴졌다.

부서진 비수는 공수구에게 얻은 것이고 하얀 병은 경매에서 낙찰받은 단시호, 푸른 나무 자는 경양상인에게 받은 선기였다.

그는 양손으로 수결을 맺어 진언보륜을 불러내고는 진실안의 금빛으로 비수 잔해를 비추었다.

비수는 법칙 파동을 내뿜더니 요란한 금빛을 내며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비수가 품은 시간법칙은 그리 크지 않았고 그가 수련한 3가지 공법의 시간의 힘과도 달라서 혼잡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립이 고민하다 수결을 풀고 금빛을 거두자 비수가 원래대로 변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진실안의 금빛이 이번에는 단시호를 비추었다.

병은 요란한 금빛을 내며 새것처럼 변해 강렬한 시간 파동을 발출했다. 한립은 눈을 감고 감응을 해보고는 바로 눈을 떴다.

단시호가 함유한 시간법칙은 진언보륜과 유사하게 느리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굳이 연구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병을 내려놓고 장천병을 꺼내 녹색 액체를 한 방울 떨구고 의식 감응을 해보았다.

한참 후에 눈을 뜬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단시호의 능력은 세월을 완전히 멈추는 것이 아니기에 녹액은 이전보다는 느린 속도지만 여전히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으로 푸른 나무 자에 진실안을 발동했다.

웅!

나무 자는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지만 강렬한 시간 파동을 발산했다.

단시호 이상의 반응에 눈을 감은 한립은 감응에 들어갔다.

나무 자가 함유한 가속 효과는 역전진륜 신통과 흡사했는데, 또 역전진륜과 달리 일정 구역의 시간 흐름을 바꾸어 주었다.

이 점에서는 ‘환진사해’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한립은 진언보륜을 거두고 길게 숨을 내쉬면서 세 가지 종류의 시간법칙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졌다.

십여 일 뒤, 눈을 뜬 그는 무언가 깨우친 얼굴이었다.

푸른 나무 자가 함유한 시간법칙을 곱씹어 보니 <진언화륜경>과 <환진보전> 사이의 연관 관계에 실마리가 잡혔다.

수결을 맺어 진언보륜을 불러낸 그는 광음정병까지 띄워 놓았다. 그러자 금빛들이 주위로 흩어져 알알이 모래로 변하고 사막을 이루었다.

세 가지 시간공법을 동시에 펼치자 공명하면서 불경 소리 같은 것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공명이 더욱 강하고 특히 진언보륜과 환진사해 사이의 시간의 힘이 무언가 달랐다.

희색을 드러낸 한립은 차분히 세 가지 시간법칙을 융합해 보았다.

쉬쉬쉭.

세 개의 금빛이 한곳으로 모여 소용돌이치기 시작하자 한립은 푸른 깃발들을 밀실 곳곳으로 날려 보내 두꺼운 푸른 금제를 펼쳤다.

이어서 그의 소매 속에서 노란 깃발들이 쏘아져 나가 허공에 반투명한 노란 금제가 펼쳐졌다.

푸른 금제와 노란 금제가 융합되어 더욱 견고해졌고 여러 방어용 선기들이 그를 감쌌다.

금색 소용돌이는 점점 빨리 돌면서 응축되어갔다.

쿠쿠쿵!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주술문자들이 소용돌이 중심에서 흘러나와 충돌했다.

그것을 보고도 한립은 수결을 풀지 않았고 소용돌이는 눈을 찌를 듯 밝은 빛을 뿜어냈다.

한립은 더욱 맹렬히 법결을 집어넣어 세 개의 공법을 운용했다.

금빛 소용돌이가 터지기 직전, 세 가지 시간법칙이 돌연 하나로 합쳐졌고 금색 주술문자들이 모여들어 아주 작은 고리를 이루었다.

지난번에 시간법칙을 융합한 게 우연이 아니었다.

그때 장천병이 그의 품을 떠나 고리 가까이 다가갔다.

놀라운 것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시간의 힘을 품은 선기 세 개도 같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엇!”

금색 고리는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더욱 밝게 빛났고 세 개의 선기와 장천병이 슉! 그 안으로 들어갔다.

퍼퍼펑!

세 개의 선기가 터져 금빛으로 흡수되었다.

수정빛을 반짝인 고리에서 8개의 금색 수정실이 빠져나와 한립의 몸을 통과해 진언보륜 위로 옮겨 갔다.

이제 진언보륜의 시간정사는 26가닥이 되었다.

한립은 그걸 보고 이채를 띠었다.

시간의 힘이 융합된 고리가 시간 선기에서 법칙의 힘을 추출해 법칙정사를 만들 수 있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때 장천병에서 뿜어져 나온 녹색 빛이 금색 고리로 흘러 들어갔다.

집채만 하게 커진 장천병이 녹색 구름을 응결하고 진언보륜에서 저절로 진실안이 발동해 금색 수정실을 그 안으로 뿜었다.

예전보다 훨씬 굵은 실이었다.

그걸 흡수한 녹색 병은 굵직한 빛기둥으로 허공을 가르고 공간의 틈에서 수정빛들이 뭉쳐 수정벽을 만들었다.

수정벽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한립은 웃음 지었다.

시공간 초월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 점점 방법을 익혀가는 중이었다. 수정벽 위로 커다란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콰르릉.

강력한 흡입력이 그를 덮치고 몸이 붕 떠올라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몸까지 빨려 들어간다고?’

한립은 화들짝 놀랐으나 흡입력이 부족했는지 몸은 다시 바닥에 내려서고 의식이 빨려 들어가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천천히 의식을 차린 그는 잿빛 공간에 은색 강이 흐르는 공간을 둘러보았다. 이전에 왔던 곳이었다.

한립은 서둘러 움직이지 않고 방금 겪은 일을 되뇌었다.

수정벽의 소용돌이는 그의 육체까지 집어삼키려고 했다. 분명 이전과 수행이나 시간법칙에 대한 깨달음은 별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늘어난 것은 시간정사의 수뿐이었다.

“시간법칙의 실이 더 늘어나면 육신도 시공간 초월이 가능하단 건가.”

그는 생각을 정리하며 몸을 일으켜 강으로 다가갔다. 강에는 물방울들이 여러 가지 모습을 담고 있었다.

이전의 경험으로 이제 그 물방울들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각 방울이 과거에 발생했던 어떤 상황을 보여주고 그걸 이용해 시공간 초월을 할 수 있었다.

한립은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도 의식으로 물방을 건들지도 않았다. 그러자 물방울도 얌전히 흐르면서 그의 의식을 흡수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마음을 놓고 하나씩 물방울 속의 풍경을 살폈다. 유속이 빨라도 그의 안력에 여러 가지를 볼 수 있었다.

물방울 속 화면은 다 달라서 수많은 계면과 수많은 이들을 담고 있었다. 게다가 구슬의 크기는 안의 풍경과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저건!”

한립은 흘러오는 거대한 물방울 구슬을 하나 보았다.

검은 사막에 수많은 이들이 싸우고 있었는데 삼두육비의 흑자색 법상이 언뜻 보였다.

“그날 석천공이 펼친 공법 같은데…….”

거대 구슬은 그를 지나 먼 곳으로 떠내려가려고 했다.

눈을 반짝인 한립은 즉시 의식 한 줄기로 구슬을 건드렸고 흡입력에 빨려 들어갔다.

차차 정신을 차린 그의 귓가에 함성과 폭음이 밀려 들어왔다.

온 세상이 쩌렁쩌렁 울리고 흔들리고 있었다.

한립은 실눈을 뜨고 자신이 검은 사막에 와있고 고공에는 검은 구름이 떠있는 것을 보았다.

굵직한 흑자색 뇌전들이 구름 사이를 오가는 것이 기세가 엄청났다. 검은 구름 아래에서 두 무리의 수사들이 격렬하게 전투를 벌였다.

보라색 갑옷을 입은 이들은 대부분 인족 수사와 짐승 머리에 등 뒤로 날개가 달리거나 꼬리가 달린 이종족이었고 몸에서는 천마기를 발산했다.

뜻밖에도 전부 마족(魔族)이었다.

2, 30만 명은 되는 마족 수사들은 수행도 대체로 연허기에서 합체기까지 높은 편이었고, 진선경, 금선경에 그리고 태을경 수사도 열댓 명 보였다.

그중 한 사람이 등 뒤에 삼두육비의 보라색 법상을 응결한 것을 물방울에서 본 것이었다.

그는 태을경 수사가 열댓 명이나 모인 전투를 보고 그 규모에 감탄했다.

마족 대군 앞에는 금색 갑옷을 입고 금빛을 번쩍거리는 거의 맞먹는 수량의 대군이 버티고 있었다.

감찰사의 갑옷과는 차이가 있어도 천정 복색을 한 수사들이었다.

천정 대군 중에도 태을급 존재가 열댓 명 되어 마족의 태을경 존재와 맞붙어 싸우고 있었다.

천정 대군 뒤로 수십 리에 달하는 거대한 금색 소용돌이가 떠올라 그것을 통로로 계속해서 천정 대군들이 쏟아져 나왔다.

쌍방의 험악한 전투로 강이 갈라져 그 사이로 용암이 나오고 허공 곳곳에 공간균열이 벌어지는 등 아주 난리였다.

공간 자체가 이대로 가다가는 붕괴할지도 몰랐다.

‘마족과 천정이 전쟁을 벌인다고?’

그는 지금 마족 시체에 깃들어 있었다. 화려한 보라색 갑옷을 입은 육체는 생전에 수행이 상당히 높았던 것 같은데 배가 뚫려 죽어 있었다.

크오오!

별안간 땅속에서 괴성이 들리고 마족 대군 앞쪽 지면이 불룩 튀어나와 갈라졌다. 그 안에서 몸을 일으킨 한립은 거대한 무언가를 보고 헛바람을 들이켰다.

비대한 괴물은 대충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는 했지만 두 눈이 길고 코는 평평한데 입은 또 기이하게 커서 입안 가득 누런 이빨들이 드러나 있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지 이빨에서 뚝뚝 침을 흘리는 괴물의 생김새는 아주 추악했다.

거대한 몸을 일으킨 괴물은 누런 피부에 용암과 암석이 묻어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거대한 낭아봉을 들어 올렸다.

풍기는 기운이 태을경 수사와 비슷했다.

크오오!

엄청난 괴성을 내지른 괴물은 바닥을 쿵쿵 찧으면서 천정대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건 또 무슨 괴물이란 말인가…….’

그가 놀라고 있을 때 마족 대군 앞에서 지면이 크게 갈라지고 비대한 괴물 2, 30마리가 더 튀어나와 낭아봉을 휘두르며 뛰어갔다.

낭아봉의 위력에 천정 수사들은 한 방에 맞아 죽었다.

그때 천정대군에서 호각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천정 수사들이 물러나고 수백 명의 은색 거인들이 나왔다.

비대한 괴물들보다는 훨씬 작은 은색 거인들은 그래도 웬만한 산보다 컸고 몸에 뾰족뾰족한 바늘이 잔뜩 박혀 있었고 등 뒤로는 은색 날개를 펼쳐 뇌전을 번득였다.

원숭이처럼 갸름한 뺨과 튀어나온 입을 지닌 은색 거인들은 양손에 은색 송곳과 망치를 들고 달려드는 비대한 괴물들을 노려보았다.

은색 거인들은 동시에 송곳을 치켜들었다.

콰르르!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수백 줄기의 은색 뇌전들이 창처럼 날아가 비대한 괴물의 몸에 떨어졌다.

뇌전법칙 파동이 담긴 뇌전을 보고 비대 괴물들도 놀라 전신에서 노란빛을 발산하며 낭아봉을 휘둘러 몸을 보호했다.

그러나 은색 뇌전은 낭아봉 허상들을 뚫고 비대한 괴물들의 몸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괴물 대다수가 무너져 내리고 일부만 중상을 입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은색 거인들도 뇌전을 다 소모했는지 피로한 기색으로 어두워진 송곳을 내렸다.

곳곳에 금이 간 송곳은 일회성 보물 같았다.

바로 그때, 은색 거인 머리 위의 검은 구름에서 새까만 뇌전들이 수십 마지기 크기의 뇌전 손바닥으로 뭉쳐져 떨어졌다.

콰콰콰…….

무시무시한 압력이 다가오는데, 은색 거인들 상공에 불현듯 금색 화염으로 둘러싸인 누군가가 치솟았다.

쾅!

금색 화염으로 만들어진 거대 손이 새까만 뇌전 거대 손을 받쳤다.

“역마자, 태석거마(泰碩巨魔)들을 내 뇌신부(雷神部)를 흡수하려 한 걸 모를 줄 알았습니까?”

금색 화염 인간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가요…….”

먹구름 속에서 냉소가 들렸을 때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비대한 괴물 한 마리가 입을 벌려 눈부신 핏빛을 발사했다.

핏빛은 신속하게 은색 거인 인근에 나타나 혈홍색 구슬로 변했다. 세밀한 핏빛 실이 구슬에서 꿈틀거리며 퍼져 나왔다.

“만액혈원주(万厄血源珠)!”

금색 화염 인간이 그걸 보고 다급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 쉽게 보내줄 줄 아셨습니까?”

새까만 뇌전 손이 금색 화염 손의 손가락을 비틀어 그 사이로 검은 구름에서 뇌전 두 줄기가 떨어졌다.

쾅! 콰릉!

뇌전 줄기들은 금색 화염 인간의 앞을 막고 가위처럼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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