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화. 다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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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도인과 빛의 문을 나서 동부로 돌아온 한립은 얼굴이 아주 밝았다.
“뇌부정법을 연구하러 가보겠습니다.”
은색 빛의 문이 사라지자 해 도인은 한립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그러세요.”
해 도인이 자신의 방으로 가고 한립도 밀실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었다. 그는 기다란 뼈를 만지작거리다 오랜만에 백맥련보결을 떠올렸다.
거대 쥐 꼬리뼈는 크기가 커서 목걸이나 그 밖에 장신구로 만들어 허리에 달고 다니는 것은 불편했다.
그렇다고 거대 공간을 지닌 동천보물을 함부로 저물탁 속에 넣어 두는 것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거대 쥐가 이것을 자신의 꼬리뼈로 만들었으면 그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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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부운산맥 북쪽 산기슭에 눈부신 검빛이 하늘로 솟구쳐 주변에 금빛 뇌전을 터트렸다.
쿠쿠쿵!
대량의 금빛 뇌전이 숲으로 떨어져 주변 수십 리가 새까맣게 변하고 나무들이 가루가 되었다.
그 중앙에 비취색 나무 한 그루가 온전히 서 있고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세운 한립이 나무 끝에 서서 고공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속세의 무술 ‘이지선(二指禪)’을 수련하는 자세 같았다.
한립의 두 손가락은 옥처럼 변해 은빛의 꽃무늬가 반짝거렸고, 그사이에 날카로운 푸른 검 끝이 끼워져 있었다.
“동천보물을 제련해 손가락 속에 집어넣었더니 이런 능력을 지니게 되는구나. 청죽봉운검의 공격을 쉽게 막아내다니 금동이 물어뜯지 못할 만해.”
장검을 집어넣은 한립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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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곡 동부로 돌아간 한립은 의식을 이용해 오른손 식지와 중지의 꽃무늬에서 빛을 발해 은색 문을 불러냈다.
그간 백맥련보결을 이용해 화지 동천을 손가락과 일체화시키느라 한 번도 안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하얀 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간 그는 약재밭 일을 마친 괴뢰들이 흩어져서 숲속에서 원래 자라던 영초들도 같이 돌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한립은 지시를 내려 오솔길을 따라 자라난 영초들을 전부 캐내서 약재밭으로 옮겨 심게 했다.
꽤 시간이 흘러 약재밭은 천지영기가 왕성해져 있었다.
한립은 흡족하게 한 바퀴를 둘러보고는 거원 괴뢰들에게 여러 영약들을 나눠주어 심게 했다.
광염초, 극목초 등 이전에 모아둔 영초들의 성질이 다양해서 여러 구역을 나눠 분리해서 길러야 했다.
한립은 명한선부에서 얻은 황갈색 나무뿌리를 약재밭 가장 안쪽에 심고 얼마 전 한 방울이 모인 녹색 액체를 뿌려 주었다.
옅은 녹색 빛이 감돌다 순식간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바삐 돌아다니다 보니 그가 모은 영약 종자들이 너무 많아서 이 정도 규모로는 다 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거원 괴뢰들을 불러 약재밭을 확장하고 아직 기운이 약한 새로운 땅은 일단 아무것도 심지 않았다.
그는 새로 개척한 밭 한쪽에 선령력으로 감싼 흑자색 진흙들을 떨구고 거대 손을 불러내 주물주물 섞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습지가 형성되어 열기와 보라색 기포가 올라왔다. 예전에 퍼온 뇌택식토를 이곳에 안착시킨 것이다.
한립은 이 뇌택식토 밭에는 도병의 모두를 심어두었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자, 그는 대나무 숲을 돌아보려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옥함을 하나 꺼냈다.
그는 그 안에 있던 은색 대나무 뿌리까지 좋은 자리를 골라 심었다. 그러자 마치 파종을 마친 농부처럼 뿌듯한 마음이 들었고 약재밭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화지 동천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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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안, 한립은 잠시 고민하다 마광이 수련하는 곳으로 가서 그를 깨웠다.
오랜 시간 수련해서 회선 시체와의 연계가 더 긴밀해졌는지 금선 최고봉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제 비술을 사용하면 향이 세 개 탈 시간 동안 태을경 초기 최고봉의 수행을 유지할 수 있어 앞으로 그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무슨 일로 저를 깨우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마광 수사가 수련하면서 지내기 좋은 곳을 찾았습니다. 이제 이 좁은 곳에 갇혀 있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골짜기 바깥으로 나가도 된단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 동천보물을 손에 넣어 그곳에 마광 수사를 위한 거처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한립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축하드립니다, 한 수사.”
잠시 멈칫하던 마광이 웃으며 답했다.
한립은 곧장 은색 빛의 문을 불러냈는데 마광은 바로 들어가지 않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들어가시지요. 안에 흉살기가 상당히 남아 있어 마광 수사의 수련에 도움이 될 겁니다.”
마광은 그 말에 더는 고민하지 않고 동천 안으로 들어갔다.
홀로 하얀 오솔길을 따라 걷던 그는 주변 기운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보고 웃음 지었다.
“영기와 흉살기가 공존하게 만들어두다니 만만찮은 동천보물이 아닌가…….”
그때 바깥에서 한립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안심하고 그곳에서 수련하시면 됩니다. 앞으로는 별일이 없으면 수련을 방해하지 않지요.”
그 말을 끝으로 은색 빛의 문이 사라졌다.
* * *
보름 뒤, 한립은 뒷짐을 쥐고 바닥에 놓인 은으로 만든 연단로를 보고 있었다.
화륵!
그가 의식을 움직이자 은염불새가 떠올라 장난스럽게 은색 화로 뚜껑에 엉덩이를 붙이고 발을 동동거렸다.
“이곳에 온 뒤로 제대로 보충도 시켜주지 못하고 가둬두어 답답했겠구나. 숙살단을 제련해 살쇠의 겁을 해결하면 떠날 수 있을 것이다.”
한립은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은염 소인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의 어깨로 뛰어올라 위로하듯 토닥여 주었다.
“숙살단의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기는 하나 일단 제련해봐야 알겠지.”
연단로 아래에 불길이 치솟고 한립은 현지정석과 다른 재료들을 줄줄이 꺼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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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 한립은 은색 화염으로 가득한 밀실 속에서 연단로를 지켜보고 있었다.
뚜껑이 부들부들 떨려 당장이라도 펑! 하고 날아오를 것 같았는데, 화염 속의 은염 소인이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손으로 뚜껑을 누르고 버텼다.
한립은 신중하게 연단로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때 흉살기 같은 검은 안개가 뚜껑과 화로 틈에서 새어 나와 은색 화염에 치직 타들어 갔다.
“됐다.”
눈을 번득인 한립의 말에 은염 소인이 곧바로 뚜껑을 팍! 밀면서 일어났다.
이에 연단로를 뒤덮고 있던 화염도 분리되어 은염 소인을 따라갔고, 뚜껑이 열리면서 3개의 검은 빛덩이가 푸른 광채에 싸여 한립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용 눈알 크기의 검은 단약 3개는 먹처럼 새까맣고 매운 냄새가 났다. 코끝을 찡긋한 한립은 은색 연단로를 거두고 방석에 주저앉았다.
그때 은염 소인이 다가와 눈을 크게 뜨고 그가 들고 있는 단약 3개를 살펴보았다.
한립이 숙살단에 거는 기대가 컸는데 만들어 놓고 나니 뭔가 불안했다.
약방에도 일정 확률로 흉살기를 떨쳐내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분명히 실패 가능성도 명시하고 있었다.
“되고 안 되고는 해봐야 알겠지. 너는 나를 도와 호법을 서거라.”
한립은 쓴웃음을 지으며 은염 소인에게도 한마디 했다. 은염 소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날아올라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았다.
나만 믿으라는 뜻인 듯했다.
미소를 지은 한립은 눈을 감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반 시진이 지나 기운을 안정시킨 그는 지체하지 않고 단약 하나를 입에 털어 넣었다.
목구멍을 타고 지독한 매운맛이 느껴졌다. 마치 불덩이를 삼킨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는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열기를 해결하기도 전에 갑자기 뱃속에서 얼음장 같은 한기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한립은 속수무책으로 온몸의 구멍에서 검은 기운을 방출하고 있었다.
츠즈즛…….
검은 안개가 뭉실뭉실 그를 뒤덮고 소용돌이치자 은염 소인이 즉시 화염으로 안개를 불살랐다.
“난 괜찮으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이때 검은 안개에서 불쑥 한립의 손이 튀어나와 은염 소인을 말렸다. 고통이 섞인 기쁨의 목소리였다.
검은 기운은 끊임없이 흘러나와 밀실을 가득 채웠고 한립은 저물대를 두 개나 꺼내 그 안에 검은 안개를 채워 넣었다.
대량의 안개가 빨려 들어가 밀실은 차차 맑아지는데 한립 주변은 먹물처럼 검은 기운이 뭉쳐 있어 멀리서 보면 검은 누에고치 같았다.
시간이 흘러 두 저물대가 가득 차자 다른 저물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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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검은 안개를 뿜던 고치가 드디어 더는 흉살기를 내뿜지 않게 되었다.
한립은 뱃속의 열기와 냉기가 주는 고통이 사라지자 주변 연기를 흩어 버리고 창백한 얼굴로 눈을 떴다.
‘이런…….’
호흡이 고르지 못한 그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겨우 제련한 숙살단의 효과가 이렇게 미미하다니?
3년이나 흉살기를 밀어냈는데 완전히 해결하려면 앞으로 갈 길이 멀었다. 선규에 뿌리박힌 흉살기들은 여전히 그가 대도로 향하는 것을 방해했다.
평범한 수사였다면 살쇠를 벗어나고도 남을 효능이었는데 그에게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한립은 남은 단약 두 개를 동시에 입안에 털어 넣고 다시 자욱한 검은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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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이 뜨고 지고 10년 세월이 금방 지나갔다. 눈을 뜬 한립의 눈동자는 여전히 괴이한 은회색이었다.
숙살단 3알은 살쇠 발작의 시간을 연장하는 것 외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임시로 살쇠 발작에 대응할 방법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은 기뻐할 일이었다.
‘숙살단으로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어차피 수련하면서 이런 문제를 한두 번 겪어본 것도 아니었고 한 걸음씩 포기하지 않고 걷다 보면 길이 열리기 마련이었다.
고심하던 그는 용오 가면을 쓰고 무상맹에 흉살기를 몰아내 살쇠를 넘기는 방법을 찾는다는 임무를 걸어두고 전신법기를 불러내 몇 군데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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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곤성, 백조산 지부가 위치한 목재 누각.
누각 바깥에는 커다란 꽃밭이 둘러싸고 있었다.
경양상인이 느긋하게 누각 안에 앉아 있다가 하얀 전신법기를 불러내 살피고 몸을 바로 세웠다.
“실패할 줄이야……. 허나 달리 말하면 이건 기회가 아닌 가…….”
그가 중얼거리며 손끝에서 하얀빛을 튕기자 곧바로 그의 뒤에서 녹포 소녀가 나타나 예를 올렸다.
열예닐곱 살로 보이는 아름다운 소녀는 무척 영민해 보였다.
“부산주 대인, 분부가 있으신지요?”
“명을 내리게. 어떻게든 흉살기를 구축할 방법을 알아 오게 해.”
“…….”
“왜 그러지?”
“이미 지닌 선원석을 다 쓰셨지 않습니까? 다음 자원은 배분받으시려면 백 년은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흉살기를 구축하는 방법이 무엇이든 대가가 적지 않을 텐데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혹시 지부의 백조산 내의 자금을 쓰시다 발각되시면…….”
녹색 장포 소녀는 머뭇거리다 우려를 드러냈다.
“괜찮으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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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안, 한립은 전신법기를 넣어두고 있었다.
경매에 은호가 등장한 뒤로 최곤성의 경계가 삼엄해져서 그가 직접 오가기는 그렇고 경양상인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했으니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이제 앞으로의 수련 계획을 짤 때였다.
살쇠를 해결하기 전에 태을경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했고 진언보륜 외에 다른 두 가지 시간 공법을 익히기에는 갈 길이 멀었다.
게다가 나머지 두 공법은 서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고, 느낌이지만 완전한 공법 같지도 않았다.
지금 그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은 은호가 연신술을 사용해 공수천과 소류 등의 공격을 흩어 버리는 장면이었다.
연신술을 운용해 당장 수련을 하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은호의 일로 흑산선역은 북한선역이나 만황구역 같은 변두리가 아니라 천정의 감시가 매우 심한 곳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경매 때도 감찰사가 셋이나 나타났는데, 은호가 도망가고 아직 두 감찰사가 떠났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연신술을 수련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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