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2화. 경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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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사들은 비취색 뼈를 돌아가며 보더니 곤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이 물건을 맡기고 선원석 몇 개를 받아 가실 생각입니까?”
머리를 맞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백발노인이 고개를 들고 남포 거한에게 물었다.
“선원석 3만 개!”
거한의 말에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원석 3만 개면 <벽해천파공>의 경매가보다 높았다.
“무척 특이한 재질의 뼈이지만 영력 파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게 어떤 물건이기에 선원석 3만 개를 부르신 것인지요?”
중년 문사가 차분히 물었다.
“그건 제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만황의 어느 유적에서 찾아낸 보물입니다. 영력 파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음에도 뇌전, 화염은 물론 어떤 날카로운 선기로도 그 뼈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습니다. 여러 연단 대사를 찾아가 감정을 맡기고 선기로 만들려 했으나 뼈를 가공하지 못했지요. 대단한 보물일 거라 확신합니다.”
남포 거한은 얼굴이 붉어진 채 소리를 높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중년 문사는 조소하는 기색으로 나머지 두 사람과 시선을 교환했다.
감정사 생활을 하면서 특이한 물건을 엄청난 보물이라 자랑하며 뽐내는 이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 말씀은 수사께서도 정확한 가치를 모르신다는 뜻이 아닙니까. 정말 죄송합니다만, 경매의 공정성을 위해서 분명하게 가치를 지닌 물건만 선원석으로 받아 가실 수 있습니다.”
눈짓으로 의사소통을 마친 중년 문사가 미소를 유지하고 말했다.
“저런 죽은 생선만도 못한 눈깔을 가지고 무슨 감정사를 하겠다고…….”
귀빈실에서 눈을 번득인 경양상인이 웅얼웅얼 욕하는 소리를 듣고 한립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당신들…….”
남포 사내도 큰 모욕을 당한 것처럼 분노했다. 주변 수사들도 감정사의 결론에 비웃음을 흘리자 그는 더욱 난색을 보였다.
사실 고수들이 구름처럼 몰려든 이번 경매에서 물건의 가치를 알아봐 줄 이를 기다렸는데 자신이 실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아무 가치도 없는 물건이었단 말인가?
“잠깐. 내가 그 물건을 사겠네. 선원석 3만 개를 내주지.”
돌연 어느 귀빈실에서 금관(金冠)을 쓴 풍채 좋은 중년인이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태을경 수사인 그는 비취색 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말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지고 대부분이 뼈를 다른 눈빛으로 훑었다. 무대 위 감정사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포 사내가 기쁨에 차서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잠깐! 저는 3만5천 개를 드리겠습니다!”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바로 경양상인이었다. 남포 사내는 움찔해서 반쯤 벌린 입을 다물었다.
“4만!”
“5만!”
“6만!”
“7만!”
눈살을 찌푸린 중년인과 경양상인이 계속 가격을 올리는 통에 비취색 뼈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까지 올라갔다.
다른 수사들도 그 뼈가 분명 평범한 물건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고 재산이 두둑한 태을경 수사들은 경쟁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남포 거한은 흥분한 얼굴로 얼굴이 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대 위 흑산선궁 감정사들은 반대로 아주 민망한 얼굴이었고, 늘 느긋한 모습을 보여주던 경매관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별안간 비취색 뼈의 가격은 선원석 20만 개까지 올라갔다.
가치를 모르고 아무렇게나 끼어든 태을경 수사들이 한 명씩 포기하는데도 금관 중년인과 경양상인은 여전히 물러설 줄 몰랐다.
“22만!”
경양상인이 이를 악물고 가격을 불렀다.
“25만!”
금관 중년인은 상대가 슬슬 한계에 다다른 것을 보고 냉소했다.
“……26만!”
경양상인은 어두운 얼굴로 가격을 높였다.
“27만!”
“28만!”
“30만!”
금관 중년인의 얼굴은 그나마 아직 편안했고 한 번에 2만이나 가격을 올렸다.
“30……. 5만!”
경양상인이 문득 이채를 띠고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 소리에 다들 놀라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선원석 35만 개? 그럴 여력은 되는가? 만일 모두 앞에서 선원석이나 그에 상당하는 보물을 보인다면 내가 포기하지. 허나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장난을 한 것이라면……. 부 수사께서 공정하게 처리할 것이라 믿겠습니다.”
금관 중년인은 서늘한 눈빛을 하다 무대 아래 부옥해를 보았다.
부옥해가 경양상인 쪽을 보고 미간을 좁히다 평정을 회복하고 경매대 위로 올라갔다.
“물론입니다. 경매의 규칙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이니까요.”
“어디, 선원석을 내놔보시게.”
금관 중년인이 바늘 같은 눈빛으로 경양상인을 재촉했다.
한립은 경양상인을 힐끗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바로 옆에 앉은 그는 경양상인이 불안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 많은 선원석을 여기에 쏟아내기라도 하란 말씀입니까? 경매가 끝나는 대로 저기 남색 장포를 입은 수사께 지불할 것이니 상관하지 마시지요.”
“그건 이번 경매 물품이 아닌 것으로 아는데 어째서 경매가 끝나고 지불한다는 것인가? 어차피 그만한 재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는데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좋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금관 중년인이 계속해서 밀어붙이자 경양상인은 담담히 웃으며 일어나 소매를 펄럭였다.
하얀빛에 휩싸인 열댓 가지 물건들이 감정사들이 모인 탁자 위로 날아갔다. 대부분이 재료였는데 그중 두 개는 선기, 한 개는 단약병이었다.
“값이 얼마나 될지 살펴주시지요.”
경양상인의 말에 시선을 마주친 중년 문사 등이 하나 같이 영력 파동이 강하게 발산되는 물건들로 다가갔다.
그걸 본 금관 중년인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려 수사, 혹시 남는 선원석이 있으면 좀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한립의 머릿속에 갑자기 경양상인의 전음이 들려왔다.
“얼마나 말입니까?”
“선원석 8만 개면 되겠습니다.”
“……적은 액수는 아니군요.”
“저도 압니다. 딱 10년만 주시면 전부 갚을 테니 빌려주시지요.”
경양상인은 한립이 딱 잘라 거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전음을 보냈다.
“경양상인께서 전 재산을 털어 얻으려는 보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의식으로 살펴보아도 특별한 점을 모르겠던데 가르침을 청해도 될지요?”
“음……. 사실, 저건 공간 보물입니다. 극히 고명한 금제로 기운이 가려져 있어 려 수사께서도 알아차리지 못하신 것뿐이고요.”
한립의 질문에 머뭇거리던 경양상인이 뼈의 내력을 알려주었다.
“공간 보물…….”
“이렇게 하시지요! 려 수사께서 선원석을 빌려주시겠다면 저 안에 무엇이 들어있든 3분의 1을 넘겨 드리겠습니다.”
“경양 수사께서 부탁하시는데 벗으로서 거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겠지요. 그저, 실례가 아니라면 수사께서 보물을 열 때 제가 옆에서 참관해도 되겠습니까?”
미소를 머금은 한립이 조건을 걸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때 보고 들은 것을 다른 이에게 전해서는 안 됩니다.”
표정이 달라진 경양상인은 고민하다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립은 즉시 작은 저물반지를 꺼내 슬쩍 상대의 손아귀에 밀어 넣어주었다.
의식으로 안에 든 선원석을 확인한 그는 기뻐하며 겉으로는 표정 관리를 했다.
중년 문사 등 세 감정사는 빠르게 감정을 마치고 선포했다.
“저희 셋이 공동으로 내린 결론으로는 총 12만 선원석의 가치가 있습니다.”
경양상인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뻗어 검은색과 하얀색의 저물 반지를 그들에게 날려 보냈다.
“나머지는 안에 들었습니다.”
두 개의 반지를 받아 확인한 중년 문사가 낭랑하게 외쳤다.
“반지에는 각각 선원석 8만개와 15만개가 들어있고 여기 재료들을 합쳐 총 35만개 선원석을 확인하였습니다.”
“아직도 의심스러우시면 아예 직접 저물반지들을 가져다 확인해 보시지 그러십니까?”
경양상인은 힐끗 금관 중년인을 보면서 히죽 웃어 보였다.
그 말에 금관 중년인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고 경매관은 비취색 뼈의 귀속이 결정되었음을 알렸다.
무려 35만 선원석이라는 가격을 주고 얻은 비취색 뼈가 드디어 경양상인의 손에 쥐어졌다.
경양상인은 뼈를 쥐고 그 안의 보물을 바라보기라도 하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는 한립이 옆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소중하게 뼈를 넣어두었다.
그 시각, 그가 넘겨준 선원석과 재료는 남포 사내의 손에 들어갔다.
“하하, <벽해천파공>에 선원석 2만3천 개를 걸겠습니다.”
남포 사내는 자신만만한 웃음을 흘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깃털관 도사가 더는 가격을 부르지 않아 공법은 남포 거한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경매는 계속되어서 경매관의 진행 하에 남은 두 가지 보물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도병을 소환할 수 있는 두루마리 그림과 금빛 찬란한 도끼는 대단한 가치를 지닌 보물이었으나 비취색 뼈로 인해 다들 깜짝 놀라서인지 경매는 차분하게 지나갔다.
경매회는 경매관의 끝을 알리는 인사말로 드디어 막을 내렸다.
각자 원하는 것을 얻은 경양상인과 한립은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들처럼 뜻을 이룬 이들은 희희낙락 즐거워 보였고 고대하던 보물을 차지하지 못한 이들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본래 원하는 보물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성안의 여러 소규모 경매나 사적 거래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빠져나가 경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경양상인이 선원석 35만 개나 주고 차지한 뼈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그래서인지 경양상인에게 예의를 차리며 다가와 보물의 내력을 떠보려는 이들도 종종 있었다.
백조산 부산주인 경양상인은 당장이라도 거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 다가오는 이들 중 원래 친분이 있거나 신분이 높은 이를 제외하고는 상대하지 않았다.
경양상인에게 시선이 집중되면서 한립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이들이 줄었고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가 미소를 띠고 경양상인의 뒤를 따라 출구로 향할 때 그와 몇 번이나 같은 물건을 두고 경쟁했던 흑포인이 지나갔다.
검은 장포로 전신을 가린 상대는 비정상적으로 창백하고 수척해 보이는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흑포 청년은 마침 그를 쳐다보고 있는 한립을 향해 눈인사를 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그 뒤를 보라색 의복을 입은 수사가 쫓는 것이 일행인 듯싶었는데, 자금색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흘러내리고 얼굴이 백옥처럼 하얘서 사내인지 여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한립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려 수사, 아는 분이라도 만나셨습니까?”
머릿속이 비취색 뼈 생각으로 가득하던 경양상인은 그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한립이 갑자기 멈춰서고 나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아닙니다.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
“그럼 서둘러 가시지요.”
경양상인이 조급해하는 것을 보고 한립도 걸음을 서둘렀다.
“저를 따라 이쪽으로…….”
경양상인이 한립을 향해 작게 속삭이며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려 할 때, 허공에 붉은빛이 반짝이고 붉은 구름이 떠올랐다.
바닥에서 새빨간 문양들이 나타나 진법을 이루고 허공의 구름과 공명했다. 경매가 끝나고 막 옥곤루를 나서던 이들이 진법이 만들어낸 장막에 갇히고 말았다.
절대적인 힘이 그들의 몸을 구속하고 손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랍니까!”
“구금진법?”
“누가 감히 내성에서 이런 짓을!”
많은 이들이 놀라 노호성을 터트렸다.
“경양 수사, 어찌 된 일입니까?”
한립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취곤성 내성에서 이런 짓을 벌였을 때는 목표가 있겠지요. 상황을 지켜봅시다.”
경양상인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붉은 진법은 매우 위력적인 구금진법으로 강력한 법칙의 힘이 융합되어 있어 모두의 이목을 속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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