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801화 (1,558/2,000)

1801화. 뼈

*

한립은 원하던 보물을 낙찰받았고, 그 후로는 더욱 고가의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는 의식의 힘에 도움이 되는 물건이 두 가지 나와 한립도 경쟁했는데 흑포인이 그를 노린 것처럼 뛰어들어 물건들을 고가에 채갔다.

이런 물건들은 시간법칙을 지닌 보물보다는 중요하지 않았고, 과도하게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아 한립도 일정 가격을 넘어서면 포기했다.

금세 3시진이 지나고 경매도 절반 이상 진행이 되었는데 현지정석은 등장하지 않았다.

“경양 수사, 현지정석이 언제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는 없습니까?”

약간 초조해진 한립이 경양상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려 수사를 이리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화심석밖에 없겠군요. 이 다음에 나올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경양상인은 간신히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를 달랬다.

그때 경매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소개할 물건은 정말 대단한 보물입니다. 혼백들이 모여든다는 만장 심연의 독기 속에서 태어나 만혼의 정화로 불리는 금선 수사의 의식을 3할은 강대하게 만들어 준다는 영초입니다.”

그의 묘사에 한립도 눈을 번쩍 뜨고 경매대를 보았다.

“그래서 의식 선초라고도 일컫는 만혼초(万魂草)! 시작가 선원석 1,000개입니다.”

경매 순서가 알고 있던 것과 달라 경양상인의 표정도 의아해졌다.

“경양 수사께서 잘못 기억하고 계신 게 아닙니까?”

“제가 술을 좀 좋아한다고 겨우 백여 개 물품의 순서를 헷갈릴 리가요. 게다가 려 수사가 그리 원하던 물건인데……. 잠시만 기다리세요, 바로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한립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민망한지 경양상인이 눈을 감았다. 그 사이 만혼초의 가격은 선원석 2천 개까지 치솟아 있었다.

의식을 강화하는 물건은 연신술 수련에 도움이 될 수도 있어 한립이 경쟁에 참여하려는데 경양상인이 누군가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눈을 떴다.

막 가격을 부르려던 한립은 말을 삼키고 그를 바라보았다.

“허허, 누가 갑자기 출품할 물건을 내놓아서 순서가 밀렸답니다. 이 다음에 나온다는군요.”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아니요, 저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경매 직전에 명단을 추가하거나 빼는 것은 급히 감정도 해야 하고 성가신 일이 많아지니까요.”

“어차피 기다린 것 조금 더 기다려 보지요. 그런데 물건을 끼워 넣은 이의 신분이 아주 높은 것 같군요.”

“누가 알겠습니까! 성내의 감찰사와 관계가 깊은 인물이라는데 아마 저 만혼초가 끼워 넣은 물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양상인이 하는 말에 한립은 가격을 부르려던 마음을 접었다. 예상치 못한 일에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격렬한 경쟁 끝에 흑의인이 선원석 3,500개를 주고 만혼초를 가져갔다.

“다음 보물을 기다리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경매관은 경매품이 고가에 낙찰되자 기뻐하며 다음 물품 소개로 넘어갔다.

곧이어 청록색 비단함을 든 소녀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팟.

소녀가 겹겹이 붙은 금제용 부적을 떼어내자 뚜껑이 열리면서 주먹 크기의 청록색 수정돌이 드러났다.

푸른 빛을 발산하는 수정돌에는 자연적으로 꽃봉오리 모양의 무늬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청록색 수정돌에서 퍼져나간 향기가 수사들의 오장육부를 씻어내듯 몸과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었고, 한립도 눈을 반짝이면서 몸을 바로 세웠다.

“다들 알아보셨겠지요? 바로 ‘현지정석’입니다! 화심석이라고도 불리는 이 보물은 흉살기를 구축해서 살쇠를 이겨내는 단약의 재료로 쓰이지요. 태을경에 이르기 위해서 누구나 원해 마지않을 물건인데, 이번에 저희가 선보인 현지정석은 무려 20만 년 이상의 현지화(玄芷花)에서 얻은 것입니다. 시작가는 선원석 1,000개, 100개씩 가격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1,000개!”

“선원석 1,100개!”

“1,300개!”

경매관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소리를 높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격은 시작가의 두 배로 올랐고 여전히 오르는 중이었다.

“나서지 않으십니까, 려 수사?”

경양상인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반드시 구해야 하는 물건이지만 저처럼 현지정석을 꼭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이들이 아직 경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나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한립은 주위를 둘러보고 담담히 말했다.

가격이 선원석 2천5백 개를 넘었을 때 앞다투어 가격을 부르던 이들이 뜸해졌다. 마지막 가격은 화려한 복색의 상인처럼 보이는 뚱뚱한 거한이 부른 것이었다.

사내는 곁에 아리따운 여인들을 끼고 그들이 먹여 주는 대로 차와 과실을 먹고 있었다.

“천보상행(天寶商行) 귀 수사께서 천원석 2,500개를 불러주셨습니다. 다른 분은 없으십니까?”

경매관은 웃음을 머금고 장내를 둘러보았다.

“선원석 3,000개!”

아까 만혼초를 낙찰해간 흑포인이 나른한 목소리로 무려 선원석을 500개나 올려 불렀다.

이에 다른 수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현지정석이 아무리 진귀해도 적정 가격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3,100개.”

뚱보 거한이 난색을 보이다 가격을 높였다.

“3,500개!”

흑포인은 코웃음을 치며 선원석 몇백 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듯 다시 가격을 확 올렸다.

턱살을 부들부들 떨던 뚱보 거한이 결국에는 포기했다.

“3,600개!”

또 다른 노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백발의 노인이 작은 보라색 검을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거기서 엄청난 뇌전 빛이 번득거렸다.

한립이 수행을 파악할 수 없었던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저 회백발 노인이었다.

“경양 수사, 누군지 아십니까?”

“흑산선역 동북쪽 단계산맥(斷界山脈)에 있는 자전검종(紫電劍宗) 태을경 장로 ‘풍천요’입니다. 보아하니 현지정석의 가격이 한참 더 오르겠어요. 행운을 빕니다, 려 수사.”

경양상인은 동정 섞인 눈빛으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립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3,800개!”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흑포인이 가격을 불렀다.

“4,000!”

새로운 목소리가 경쟁에 끼어들었다. 바로 한립이었다. 새로운 인물이 가세하자 회백발 노인과 흑의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4,100!”

“4,200!”

회백발 노인과 흑의인이 연달아 가격을 불렀다.

“4,300!”

한립도 느긋하게 따라붙었다.

경쟁하다 보니 흑의인이 5천 개까지 가격을 불렀고 태을경 수사인 회백발 노인도 기막히다는 듯 냉소를 흘렸다.

“선원석 5,000개? 하하, 다들 눈이 삐었나 보구만. 나는 됐으니 알아서들 해보게.”

“5,100개.”

한립은 회백발 노인이 비웃든 말든 경쟁을 이어갔다.

“5,200!”

“5,500!”

다들 한립과 흑의인을 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려 수사……. 우리가 벗이니까 해주는 말인데, 현지정석이 귀하다고는 해도 이렇게 선원석을 낭비할 정도는 아닙니다. 선원석 4, 5천 개도 상당한 금액인데 더 올라가면 낙찰을 받아도 남는 게 없을 겁니다.”

경양상인이 참다못해 그를 말렸다.

“조언은 감사하지만 제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고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어 그럽니다.”

한립은 그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휴, 이것 참. 아무튼 선원석이 모자라면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세요.”

어깨를 으쓱한 경양상인도 더는 끼어들지 않았다.

“……5,600개!”

침묵하던 흑의인이 천천히 가격을 불렀다.

“6,000!”

한립이 다시 엄청나게 가격을 높이자 그를 지긋이 바라보던 흑의인은 더는 입을 떼지 않았다.

이를 아주 흥미롭게 지켜보던 경매관은 이렇게 끝내기 아쉬웠는지 세 번을 확인하고 더 높은 가격이 나오지 않자 현지정석 낙찰을 결정지었다.

‘으으…….’

무표정하게 앉아있던 한립도 실은 속이 엄청나게 쓰렸다.

“허허, 이제 보니 려 수사께서 주머니가 정말 두둑하셨습니다! 원하던 물건을 얻은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를 놀리시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를 지니고 있든 감히 백조산의 부산주와 비할 수 있을까요.”

“백조산은 려 수사와 같은 인재에 항상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흥미가 있으시면 백조산으로 가서 객경 노릇을 해주셔도 좋습니다.”

경양상인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권했다.

“오래전부터 종문 세력에 가담하는 것을 원치 않아 부운산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경양 수사 같은 분과 한적하게 술잔이나 기울이는 것으로 족합니다.”

한립은 완곡하게 거절하고 경매는 계속 진행되었다.

그 후로도 이종족 경매관의 진행으로 보물들이 올라와 높은 가격으로 팔려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가장 귀한 세 가지 보물뿐입니다. 그 첫 번째가 이 <벽해천파공(碧海天波功)>이지요.”

무대 위 남색 네모난 상자 안에는 고풍스러운 남색 옥간이 들어있었다.

적잖은 이들은 의아한 기색을 보였으나 이름을 알고 있는 이들은 안색이 달라져 웅성거렸다.

“잠시 좀 묻지요! 흑산선역의 벽해진군이 수련했던 그 <벽해천파공>이 맞습니까?”

남색 장포를 입은 거한이 격동한 얼굴로 질문을 했다.

“바로 그것입니다. 수백만 년 전, 흑산선역을 종횡무진했던 백해진군이 <벽해천파공>을 주 수련 공법으로 태을경 최고봉에 올랐지요. 흑산선역의 물 속성 공법 중에 5위 안에 드는 공법입니다.

이 공법을 수련하면 물의 법칙을 깨우칠 수 있는 것은 물론 일정 확률로 조석법칙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벽해진군이 조석천파(潮汐天波)라는 신통을 사용해서 월량해(月亮海) 전투에서 수만의 만황 흉수들을 죽인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물론 <벽해천파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물 속성 영체(靈體)를 지녀야 하고 물 속성 선체(仙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거기다 진선경에 이르기 전에는 반드시 순수한 물 속성 공법만 익혀 진선의 육체를 이룰 때 정순한 기운을 지녀야 합니다.

설명은 여기까지 드리고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시작가 선원석 3,000개, 2백 개씩 가격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벽해진군이 꽤 유명한지 많은 이들이 가격을 부르는데 한립은 평온히 경양상인과 한담을 나누었다.

끌리긴 해도 그가 익힐 수 없는 공법이니 구경이나 하면 그만이었다.

“1만 선원석!”

누군가 단번에 선원석을 3천 개나 올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제 한립도 공법이 대단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가격을 압도적으로 올린 이는 처음 질문했던 남포 거한이었다. 금선 중기의 수행에 선원석 1만 개를 지불할 여력이 되다니 대단한 인물인 듯했다.

다들 눈치를 보며 한동안 가격을 부르는 이가 없자 남포 거한의 얼굴이 밝아졌다.

“11,000!”

바로 그때, 불진을 들고 깃털 관을 쓴 도사가 나섰다. 웅장한 기운의 태을경 수사였다.

“12,000!”

꼭 필요한지 남포 거한은 물러서지 않았다.

“13,000!”

“14,000!”

“15,000!”

두 사람 다 <벽해천파공>을 얻으려는 의지가 대단했다.

“선원석 22,000개.”

심지어 깃털 관 도사는 가격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얼굴이 핏빛으로 물든 남포 사내는 호흡이 거칠어졌다.

“수경종(水鏡宗) 주 장로께서 선원석 22,000개를 부르셨습니다. 다른 분은 없으십니까?”

경매관이 모두를 향해 물었다. 한 번 더 묻고 아무도 말이 없자 막 결정을 하려는데 남포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잠깐! 선원석이 부족해 물건을 저당 잡히고 싶습니다.”

그는 기다란 옥색 짐승 뼈를 들고 있었다.

경매관은 움찔했으나 그런 식으로 낙찰받아간 선례가 있어서 잠시 낙찰 선포를 미루고 시녀를 보내 감정사를 불렀다.

자리에 앉아 있던 한립은 눈을 반짝였다. 그것은 거대 쥐의 유골에서 얻은 것과 아주 흡사했다.

그저 거한이 들고 나선 것은 공간 파동이 느껴지지 않아 평범한 짐승 뼈처럼 보였다.

‘모양만 비슷한 다른 뼈일까?’

그간 그도 여러 차례 뼈를 꺼내 살펴보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공간 보물 같았다.

그저 누군가 강력한 비술을 걸어놓아 열 수가 없을 뿐!

탁!

느닷없이 한립 옆에서 경양상인이 일어나 뜨거운 눈빛으로 녹색 뼈를 응시하다 표정을 감추었다.

“경양 수사께서는 어떤 물건인지 아십니까?”

한립의 질문에 자신이 무의식중에 일어선 것을 안 노인이 서둘러 앉더니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고심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녹색 뼈가 무대에 오르고 검은 의복을 입은 수사들이 모여 그것을 감정했다.

중년 문인, 백발노인 그리고 복면 부인은 흑산선궁의 감정사였다.

옥곤루 경매회는 이익이 엄청나서 흑산선궁에서도 어떻게든 한몫을 잡으려 했다. 그래서 이번 경매에도 절반 이상의 인원이 흑산선궁 쪽 사람이었다.

전부 경양상인이 그와 한담을 나누며 충고하듯 들려준 이야기였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