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화.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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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운산에서의 2백 년은 느긋하게 지나갔다.
경전이 시작되기 전날 저녁, 경매 물품들이 취곤성 옥곤루로 운송이 되어 창고로 들어갔고 유유자적한 생활에 익숙해진 경양상인은 바쁜 일을 끝내자마자 빠져나와 어딘가로 향했다.
경양상인이 마련해준 별채에 머물고 있던 한립은 바깥의 기척을 감지하자마자 문을 열었다.
“열심히 일하는 소감이 어떠십니까? 하하하…….”
한립은 경양상인에게 자리를 내주고 차를 따랐다.
“어휴, 이런 복잡한 일에 손을 놓은 지 오래라 아직도 어색합니다. 저 좀 그만 놀리세요.”
경양상인이 손을 내저으며 곤란한 듯 웃었다가 맑은 차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화연주는 없습니까?”
“빚는 법을 벌써 알려드리지 않았습니까?”
“에이, 인색하게 굴지 마십시오. 제가 빚은 건 제대로 익으려면 멀었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공술을 마시러 온 게 아니라 전해줄 소식도 있고요.”
경양상인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그 말에 한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는 회색 술동이 하나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아껴둔 마지막 한 동이입니다. 귀한 술에 걸맞은 소식을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술향기가 그득하게 퍼지자 경양상인이 허겁지겁 잔을 가득 채워 들이켰다. 쉬지 않고 술을 마신 그는 금방 취기가 오른 듯했지만 한립은 어서 말을 하라고 재촉하지는 않았다.
“하아……. 좋습니다, 정말 좋은 술이에요.”
그가 다시 잔을 가득 채우려는데 한립이 탁! 하고 술동이를 잡았다.
“무슨 소식입니까?”
“그걸 못 기다려서야…….”
“어서요.”
“쩝, 알겠습니다. 수사가 오매불망하던 현지정석이 오늘 오후에 마지막 물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한립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미리 좋아하실 것 없습니다. 가격이 높아서 시작가가 무려 선원석 1천 개입니다. 나중에 가격이 오르면 얼마까지 오를지 알 수 없고요. 어디 선원석 보따리는 두둑하게 챙겨 오셨습니까?”
“제가 연단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지요. 연단하면 돈도 물 쓰듯 쓰지만 벌려고 하면 그것도 어렵지 않다는 것을요. 오랜 시간 동안 이날만을 위해 충분히 준비해두었습니다.”
“혹시 그때 가서 선원석이 부족하면 단약을 가져다 우리 백조산에 저당 잡히세요. 제가 만족스러운 가격으로 바꿔드리고 나중에 선원석을 가져오시면 원가로 돌려드리지요.”
경양상인은 상대가 자신만만해하다 경매에서 가격을 보고 망신을 당할까 걱정스러웠으나, 한립의 원대한 꿈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 이렇게만 말했다.
그러나 한립은 붙들고 있던 화연주 동이를 다시 경양상인에게 내주고는 빙긋 웃었다.
* * *
댕……. 댕…….
이튿날 이른 아침, 맑은 종소리가 취곤성에 울려 퍼졌다.
동서남북의 성문이 개방되고 검문을 하던 수사들이 철수한 대신 성안의 순찰 병력이 강화되었다.
진작 기다리고 있던 성 밖의 수사들이 앞다투어 몰려들어 이른 시간인데도 거리마다 사람들이 넘쳐나고 상점과 곳곳의 경매장이 북적거렸다.
이날은 내성도 외성 못지않게 시끌시끌했다. 거리 곳곳에 밤까지 등불이 켜져 있고 흥겨운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이렇게 엿새가 지나고 모두가 주목하는 옥곤루 경매일이 되었다.
한립과 경양상인은 주최 측이라 한발 앞서 옥곤루 경매장에 들어섰다.
겉에서 보는 것보다 내부는 훨씬 넓었고 중앙에 원형 경매대를 두고 사방에 빼곡하게 연결된 소형 귀빈실이 1층부터 3층까지 빙 둘러 있었다.
어림잡아도 수백 개는 돼 보였다.
한립과 경양상인은 방석과 향로 그리고 과일과 술이 준비된 2층의 귀빈실로 들어갔다.
안에서 젊은 여인이 대기하고 있다가 두 사람 자리에 방석도 놓아주고 술도 따라 주었는데 사람이 아니라 결단기 수행을 지닌 괴뢰였다.
“경양 수사, 정말 내려가 보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괴뢰 여인을 살피던 한립은 시선을 노인에게 돌렸다.
“오늘 같은 날에도 제가 일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일은 할 만큼 했으니 조용히 경매를 즐기면서 마음에 차는 물건이나 낙찰받을 생각입니다.”
경양상인이 술맛을 보며 유유히 답했다.
“어차피 백조산에서 담당하고 있다면 그냥 경매가 시작되기 전에 원하는 물건을 차지하거나 아니면 종문에서 구매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건 수사가 몰라서 하는 소립니다. 여기 물건들 중에는 흑산선궁에서 죄를 지은 이들에게 몰수한 것도 있고, 어느 대종문의 늙은이가 높은 가격에 팔려는 것도 있어요. 출처가 다양해서 저도 함부로 못 건드립니다.”
“수사 덕에 선원석을 좀 아낄 수 있으려나 했더니 그건 아닌가 봅니다.”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고 술잔을 들었다.
“경매에는 규칙이 있고 선궁도 감시해서 낙찰을 받고 못 받고는 순전히 운과 지닌 선원석에 달려 있지요. 좋은 물건이나 좋은 술이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귀한 것일수록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눈독을 들이는 이는 많지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3개 층의 귀빈실이 차례차례 채워졌다. 한 시진이 조금 지나서는 수백 개의 귀빈실이 가득 차 있었다.
한립이 살피니 대부분 금선 초기 이상으로 은밀하게 기운을 숨긴 이들도 많았다. 금옥백의 가격을 생각하면 진선이나 그 이하 수사들이 얼마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때 백조산에서 이번 경매를 맡기 위해 나온 관을 쓴 노인과 흑산선궁 복색의 백의 사내가 원형의 경매대로 올라갔다.
“아직 소개를 안 해드렸지요? 저기 저 사람이 흑산선궁에서 선역 북부를 담당하는 ‘부옥해’입니다. 금선 후기 수사로 실질적인 권력은 이곳에 머무는 천정 감찰사가 갖고 있는데 통 얼굴을 보이지 않아 대신 나선 것입니다.”
경양상인이 백의 사내를 눈짓하며 말했다.
“천정에서 이곳에 신경을 많이 쓰는군요. 감찰사는 어떻습니까?”
“글쎄요. 저도 직접 본 적이 없어서요.”
그들이 술잔을 비울 때마다 옆에서 괴뢰 여인이 술을 채워주었다.
“경매를 진행하실 때는 아무렇게나 가격을 올려 나중에 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주의해 주십시오. 그런 일이 생기면 옥곤루에서 끝까지 책임을 묻겠습니다.”
“이제, 옥곤루 경매를 정식으로 개최합니다!”
소개를 마친 관을 쓴 노인과 백의 사내가 경매 시작을 알렸다. 그들이 물러나자 앞으로 오색 깃털 옷을 입은 사내가 표표히 내려왔다.
두 뺨은 넓고 입술은 큰데 목은 아주 가느다란 이종족 사내가 경매 진행을 담당하는 듯했다.
“옥곤루 경매를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상한 외모와 달리 목소리는 자성을 지닌 것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바로 첫 번째 경매품을 소개하지요. 봉명금(鳳鳴琴)입니다!”
여린 체구의 여인이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색의 칠현금을 들고 경매대로 올랐다.
한립은 계혈목(鷄血木)이라는 좋은 목재로 만들어 봉황 머리 모양으로 칠현금 윗부분을 조각하고 아래쪽에는 꼬리처럼 깃털을 꽂아 놓은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여인이 연주할 때마다 아주 좋은 소리가 났지만 영력 파동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옥곤루 경매에서 범인의 물건을 판다고?’
“다들 천지환음(千指幻音)이라 불리는 배경령의 명성은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그분이 수행하기 전 가장 아꼈던 악기가 이 봉명금입니다. 정식으로 수도에 길에 들어서면서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요. 시작가 선원석 50개! 5개씩 가격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경매관은 능숙하게 설명을 하고 시작가를 밝혔다.
“50개!”
곧바로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가 3층 귀빈실에서 들렸다.
“난 선원석 60개를 내겠소.”
“70개…….”
“75!”
여러 명이 가격을 경쟁하는 것을 보고 한립은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배경령이 누굽니까? 그 여인이 사용한 물건이라 하여 평범한 칠현금을 이렇게 높은 가격으로 사려 하다니요.”
“천지환음 배경령을 못 들어보셨단 말입니까? 금원선역 음률 세가 출신의 천재로 음률에 빠져 있어 수행하지 않다가 16살 생일 때 예황파진곡(霓凰破陣曲)을 연주하고 돌연 수도자가 되겠다고 선언한 다음 무서운 속도로 수행을 쌓은 인물입니다. 결국에는 음률의 길로 대라경까지 오른 분이고요.”
“그렇군요…….”
“별 것 아닌 물건 같지만 저걸 낙찰받아다가 그분을 찾아가면 인연을 맺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일 어느 날 배경령이 오음 도조까지 이르면 칠현금을 가지고만 있어도 가격이 백 배 이상 오를 테고요.”
경양상인은 한립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덧붙였다.
“확실히 그렇겠습니다.”
“허허, 게다가 배경령은 천하에 다시없을 미녀라더군요. 칠현금을 노리는 사내들 중에는 딴마음을 품은 자도 있을 텐데, 다 헛꿈 꾸는 거지 뭐겠습니까.”
결국 칠현금은 머리에 두건을 두른 학자 풍의 중년인이 선원석 120개를 주고 낙찰받았다.
“낙찰을 축하드립니다. 다음으로 소개해 드릴 보물은 자양단(紫陽丹) 입니다.”
경매관의 소개에 새로운 여인이 보라색 쟁반에 담긴 하얀 옥함을 들고 올라왔다.
“금선에서 태을경에 이를 때 도움이 되는 단약으로 총 13개가 들어있습니다. 품질도 좋고 약성이 뛰어나니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작가 선원석 100개!”
경매관이 하얀 옥함을 열어 13개의 보랏빛 단약을 선보였다. 그러자 보라색 안개 같은 것이 일어 약 향기가 옥곤루 전체로 퍼져나갔다.
“선원석 110개!”
누군가 득달같이 가격을 외쳤다.
“120개!”
“130개…….”
단약은 선원석 160개까지 올랐고 흑포 수사에게 낙찰되었다.
세 번째 경매품은 후천선기였다.
금선 수사가 쓰기에 적합한 위력적인 뇌전과 화염을 품은 영패 보물은 선원석 130개로 시작해서 200개가 넘는 가격에 거래가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내의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한립은 현지정석을 마음에 두고 있어 어떤 보물이 나와도 나서지 않았다.
“이번 물품은 단시호(斷時壺)입니다. 시간법칙의 힘을 품은 보물이라 이 안에 물건을 넣으면 속세의 것이든 선인의 것이든 시간의 흐름이 단절되지요. 이런 식으로 백만 년이 지나도 그 원형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시작가는 선원석 500개입니다.”
“선원석 510개!
빠르게 경쟁이 시작되었다.
“선원석 520개.”
“550!”
가격은 금방 올라 선원석 670개가 되었다. 그때 아까 낙찰받은 흑포인이 입을 열었다.
“선원석 700개.”
갑자기 가격을 많이 올린 탓에 잠시 옥곤루에 정적이 흘렀다.
“710개.”
불현듯 한립이 가격을 불렀다.
“선원석 720개.”
2층의 귀빈실에 앉은 흑포인은 그를 슬쩍 보고 가격을 올렸다.
“750개.”
한립은 망설임 없이 가격을 올렸다.
경매에서 갑자기 가격을 대폭 올리는 것은 필승의 의지를 보여 상대가 포기하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선원석 760개.”
하지만 상대는 전혀 기죽지 않은 눈치였다.
“800개.”
한립의 말이 떨어지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고 많은 이들이 그가 앉은 귀빈실을 주목했다.
흑포인도 선원석 800개 이상의 가치는 없다고 여겼는지 더는 가격을 제시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물건이 맞습니까? 선원석 800개면 적지 않은 액수입니다.”
옆에서 경양상인이 인상을 찡그리고 물었다.
“연단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특수한 영액이 있는데, 가격은 극히 높고 보존 기간은 짧습니다. 저 보물이 있다면 앞으로 아낄 선원석은 800개 이상일 겁니다.”
한립은 웃으며 설명했다.
이렇게 말했지만 그가 단시호라는 항아리 속에 보관하고 싶은 것은 녹색 액체 혹은 시간 알갱이였다. 그대로 유지만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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