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1화. 죽기 아니면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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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냐?”
한립은 태을 서금선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물었다.
“괜찮아요! 아저씨, 저 녀석 꼭 죽여요!”
금동은 오색 수정창을 뽑아서 입에 쑤셔 놓고 결의에 찬 눈빛으로 몸을 바로 세웠다.
서금선은 등 뒤로 오색 화염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동공을 수축한 한립은 금동을 잡아채 멀리 던지고 청죽봉운검으로 앞쪽을 횡으로 갈랐다.
그 앞에서 마광도 몸집을 몇 배로 키워 새까만 창을 내지르는 중이었다.
까강!
그때 서금선의 방대한 육체가 나타나 마광을 피해 곧바로 한립을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청죽봉운검을 제대로 들어 올리기도 전에 한립 앞으로 강철 창과 같은 두 앞발이 날아들었다.
“천번지복(天飜地覆)…….”
폭죽 터지는 것처럼 큰 소리가 울리고 심연이 삽시간에 뒤집혔다.
서금선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 심연에 도래해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기분을 느꼈다.
자신은 분명 허공에 떠 있었는데 끝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 같았다.
‘설마 환영이란 말인가?’
의혹이 들었지만 앞으로 튀어 나가던 앞발들은 찰나의 순간 멈칫했다.
“한지승뢰(旱地升雷)!”
다시 같은 목소리가 들려와 심연 바닥을 가르고 금색 뇌전 기둥이 솟아올랐다. 주변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와 강렬한 기운은 결코 환각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
눈을 번득인 태을 서금선이 심연 바닥을 향해 입에서 오색 수정빛을 쏘았다.
쿵!
바닥이 갈라지고 흙과 바위 그리고 흉살기가 튀었다.
금색 인영은 뇌전 무늬가 잔뜩 새겨진 검은 칼을 들고 흉살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늘과 땅이 뒤집힌 것은 가짜여도 심연 바닥이 갈라지면서 나타난 뇌전 기둥은 해 도인이 군도 ‘참정’을 휘둘러 방출한 진짜 뇌전 공격이었다.
서금선이 사태를 파악하고 다시 한립을 보았을 때, 한립은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멈춰라.”
검은 사슬 우리에 갇힌 것처럼 삽시간에 수정 사슬들이 허공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태을 서금선은 부들부들 몸을 떨며 허공에서 뻣뻣하게 굳었다.
금빛으로 가득한 의식세계에 금색 딱정벌레 모양을 한 혼백이 수정 사슬 우리에 갇혀 있었다.
딱정벌레 혼백은 격노해 사슬 우리를 미친 듯이 공격했지만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심연 속, 한립은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의 의식이 강해서 이 방법으로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금동, 어서…….”
한립의 외침에 금동은 딱정벌레로 돌아가 태을 서금선의 가슴에 난 상처로 폭!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서부터 태을 서금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온몸의 털이 곤두설만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고요한 심연을 채웠다.
금동은 상대의 피와 살을 뜯어 먹을 때마다 어깨에 뚫린 상처가 조금씩 회복되었고, 태을 서금선은 극심한 고통에 몸을 떨며 의식세계 안에서 혼백의 반항도 심해졌다.
그 순간 한립은 의식이 띵! 하고 울려 창백해진 얼굴로 선혈을 토해냈다. 하지만 이대로 놓아 줄 수 없었기에 빠르게 수결을 맺고 연신술을 운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힌 그의 의복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고 꽉 깨문 이에서는 으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죽봉운검을 꺼내둘 힘도 없어서 그것들을 호리병박 안에 돌려놓고 정말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이에 태을 서금선 체내의 금동이 더욱 속도를 높였다. 금동의 기운은 점점 불어났지만 아직은 태을 서금선과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 났다.
일각 후, 한립은 연못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어서 핏기없는 얼굴로 눈도 겨우 뜨고 있었다. 선령력이 고갈되고 의식의 힘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태을 서금선의 의식세계에 들어간 사슬 우리도 녹이 슨 것처럼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촤릉!
금색 딱정벌레의 마지막 충돌이 가해지면서 사슬이 빛 알갱이로 흩어져 사라졌다.
크아아아악!
혼백의 자유를 찾은 서금선이 맘껏 내지른 비명에 심연이 뒤흔들렸다.
“이제 네 차례다!”
차갑게 눈을 번득인 서금선의 몸이 우드득 소리를 내면서 줄어들어 금동을 통째로 눌러 죽이려 했고, 체내의 방대한 선령력이 금동을 향해 밀려들었다.
태을 서금선의 오장육부를 열심히 갉아먹고 있던 금동은 이빨까지 피로 물들어 아주 흉흉해 보였다.
금동이 막 횡경막을 물어뜯으려는데 태을 서금선의 살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그녀를 구속했다.
상당한 양의 살점을 먹어치워 이미 태을 중기에 이른 금동은 전신에서 금빛을 크게 방출해 살점들을 막으면서 야무지게 횡경막을 뜯어내 서금선의 뱃속으로 떨어졌다.
태을 서금선은 미칠 것 같았지만 금동이 몸속에 있어 강력한 공격을 펼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스스로 뱃속으로 들어간 것이 그에게 나쁜 일만도 아니었다.
그저 한립의 의식 수롱 금제를 벗어나느라 의식의 힘을 많이 소모했고 금동이 그사이 자신을 뜯어먹고 수행이 또 늘어났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이렇게 되면 금동의 혼백을 바로 집어삼키는 것이 위험할 수 있었다. 태을 서금선은 매서운 눈길로 한립을 노려보았다.
저 극악무도한 인족 놈만 없었으면 진작 서금충 꼬마를 잡아먹었을 테고, 이십 년이나 환영속에서 헤매지 않고 진작 수족들을 쓸어 버렸을 것이다.
‘모든 게 다 저놈 때문이다!’
한립은 태을 서금선의 의식 수롱에서 벗어난 후 선령력을 회복하면서 의식을 안정시키는 중이었다.
그는 태을 서금선이 온몸을 수축하면서 하얀 수증기를 풀풀 날리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치지직.
하얀 증기가 허공을 일그러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감적으로 위험하다고 느낀 순간 그는 자리를 피했고 곧바로 태을 서금선이 그가 있던 자리에 나타나 앞발을 휘둘렀다.
그는 날아드는 수정빛을 보고 진언보륜을 역전해 피했다.
‘언제 진언보륜이 회복된 거지?’
그는 공처럼 둥근 시간 영역을 내뿜어 심연 바닥 쪽을 둘러쌌다.
이에 태을 서금선은 무형의 힘에 갇힌 듯 움직임이 느려졌는데 시간 영역을 넓히는 대신 감속효과가 줄어들어 한립이 집중해서 피하지 않으면 언제든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한립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진언보륜이 언제 다시 발동이 중지될지 몰랐기에 의식연계를 통해 금동에게 빨리 태을 서금선을 갉아 먹으라 재촉해야 했다.
심연 바닥에서 금빛과 푸른빛이 쫓고 쫓기는 것을 지켜보는 마광의 눈에도 흐릿하게 움직이는 잔상밖에 보이지 않았다.
쿵!
심연에 먼지가 일고 서금선의 방대한 몸이 벽에 부딪혔다.
이에 바위와 흙이 무너져 내려 피어오른 먼지를 뚫고 한립이 다른 쪽 허공으로 튀어나왔다.
태을 서금선은 자신의 공격을 또 피한 한립을 보고 분노에 차 포효했다. 이제 아무렇게나 그를 쫓지 않고 이번엔 뜨거운 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안 좋은 예감이 든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
서금선 체내에서 장기를 뜯어먹고 있던 금동은 주변 온도가 급증해 마치 화로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아저씨, 어서 달아나요! 이 녀석이 자폭하려는 것 같아요!”
“금동, 그럼 어서 나오거라!”
“아니요, 난 끝까지 해봐야겠어요!”
금동의 굳은 결심에 한립이 이를 악물고 진언보륜을 역전해서 흉살기를 뚫고 폭발적으로 솟아올랐다.
경고를 들은 마광도 그의 뒤를 쫓았다.
그들이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연 안쪽에서 눈부신 하얀빛이 터져 나왔다.
콰르르.
하늘과 땅을 부서트릴 것 같은 무시무시한 힘이 심연의 벽을 때리면서 어둠의 공간에 하얀 태양이 떠올랐다.
무너져 내린 심연의 파편들이 그 하얀빛 속으로 떨어져 녹아내렸고 그 사이에서 하얀 빛기둥이 튀어나와 심연 위 허공을 때렸다.
하얀 빛기둥 속에 새까만 인물이 두 팔과 다리를 뻗은 채 하얀 증기를 풀풀 날리고 서 있었고, 그 등 뒤로는 푸른빛에 휩싸인 인영이 서 있었다.
하얀빛의 범위를 벗어난 그들은 심연 속에서 살아나온 한립과 마광이었다.
한립은 피부가 녹아내려 처참한 몰골이 된 마광을 보았다.
“괜찮습니까?”
“하하, 목숨을 건 도박에서 한 수사께서 또 이기셨습니다.”
마광이 씩 웃는데 뺨이 녹아내려 치아가 다 보였다.
그들의 속도로는 도저히 하얀빛의 폭발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회선 시체를 방패 삼아 한립의 시간 영역으로 하얀빛의 충돌을 늦추면서 솟구쳐 올라와야 했다.
수백 리를 올라오다가 한립의 시간 영역이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허물어지고 회선 시체가 열기를 받아내 겨우 빠져나온 길이었다.
한립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마광이 웃음을 짓는 것을 보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았다.
회선 시체의 강한 정도가 그의 상상 이상인 듯했다.
콰릉!
심연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거대한 구덩이를 형성하고 멀리 나무 요수의 서식지인 산골짜기까지 먼지와 흉살기가 내려앉았다.
마광은 흉살기가 넘쳐 흐르는 것을 보고 몸을 날려 그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기운들이 몸에 달라붙어 녹아내린 피부와 살을 재생해 상처 회복이 부쩍 빨라졌다.
슁!
이때 먼지와 흉살기 속에서 태을경 서금선이 튀어나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째서…… 죽지 않은…… 것이냐…….”
“포기를 모르는구나.”
한립이 기겁해 피하는데 금동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저씨, 조금만 버텨요. 이놈의 심장을 갉아 먹기만 하면…….”
어쩐 일인지 아이의 목소리가 중간에 뚝 끊겼다.
“금동, 괜찮은 것이냐!”
한립이 급히 의식연계로 말을 걸어 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급히 눈에서 남색빛을 일렁이며 서금선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지만 다시 흙먼지와 짙은 흉살기 속으로 몸을 숨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멀리 피해있던 해 도인이 금빛 둔광으로 날아들었다.
“해 도인, 금동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으니 가봐야겠습니다. 이곳에서 마광 수사와 호법을 서주시지요.”
“알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해 도인이 흉살기 속의 마광을 흘깃 보고 답했다. 푸른빛을 반짝인 한립이 다시 무너져 내린 심연 쪽으로 날아갔다.
그는 금방 바위와 흙이 쌓인 곳에 거대한 금색 딱정벌레가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태을 서금선은 꼼짝하지 않았고 겉면이 수정처럼 반짝이는 것을 제외하면 금동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미약하게 금동과의 의식연계가 남아 있었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거대 딱정벌레를 살펴보았는데 아직도 기운이 왕성하고 특히 의식 파동이 강렬했다.
금동이 자신의 심맥을 끊으려 하자 태을 서금선이 금동의 의식세계로 들어가 그녀의 혼백을 집어삼키려 하는 것이 분명했다.
한립의 예상대로 금동의 의식 속에서 크고 작은 금색 딱정벌레 두 마리가 격렬하게 서로를 뜯어먹는 중이었다.
크기가 좀 큰 서금충은 중상을 입어 빛이 어두웠고, 작은 쪽은 금빛이 밝고 더 사나웠다. 그들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어느 순간 새하얀 수정빛이 느닷없이 나타나 번개처럼 태을 서금선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 충격에 태을 서금선의 혼백은 비틀거렸고 가까이 붙어 있던 금동도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의식세계였기에 태을 서금선보다는 외부 충격에 유리했다. 금동은 고통을 참으며 태을 서금선 혼백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그때 한립은 태을 서금선 옆에서 창백한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금동이 위급해지자 연신술을 이용해 의식 정사로 금동의 의식세계로 침범해 그녀를 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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