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789화 (1,546/2,000)
  • 1789화. 용솟음

    *

    한립은 당부를 마치고 아래로 뛰어내려 바닥에 이르렀다. 그때 수련을 중단한 ‘마광’이 그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공수를 했다.

    한립은 서금선이 쫓아오는 상황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마광 수사의 도움이 필요하겠습니다.”

    “물론 도와야지요. 지금부터 준비해서 전투가 시작되면 잠시나마 태을경의 전력을 낼 수 있게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거침없는 마광의 대답에 한립은 미소를 지었다.

    마광이 주저앉아 운공하는 것을 보고 한립은 물빛 진법 깃발과 원반들을 대량으로 불러냈다.

    그 옆에 금빛이 번득이고 해 도인이 나타났다.

    “해 도인, 저를 도와 진법을 설치해 주셔야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해 도인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십여 일이 지나서야 일을 마무리 지었다.

    한립은 허공에 떠서 웅얼웅얼 주술을 외다가 법결을 던져 넣었다. 심연 곳곳에서 호응하듯 빛 알갱이들이 떠올랐다.

    우우웅.

    강력한 힘은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단단했고 흉살기들이 요동치게 했다. 빛 알갱이들이 사라지고 강력한 힘이 흉살기들 속으로 흔적도 없이 숨어들자 한립은 흡족한 얼굴을 했다.

    심연 바닥에 앉은 그는 선기들을 하나씩 꺼내 최후의 준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점검한 것은 현천의 보물 비취색 호리병박이었다.

    일찍 수확하는 바람에 색깔이 약간 다르던 호리병박 입구 부분이 지금은 다른 곳과 비슷하게 진해져 있었다.

    서금선에게 쫓기면서도 녹색 액체를 꾸준히 뿌려준 보람이 있었다.

    입에서 푸른 빛을 내뿜어 호리병박에 스며들게 하니 녹색 보광과 함께 깨알 같은 주술문자들이 떠올라 줄줄 흘렀다.

    법칙 파동이 퍼져나가면서 진한 흉살기들을 몇 장 밖으로 밀어냈다.

    한립은 의식을 호리병박 안으로 불어넣어 비취색 공간에 도착했다.

    공간 내부에는 여전히 광채가 자욱하게 퍼져 녹색 소용돌이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용돌이 중앙에 청죽봉운검들과 명한선부에서 얻은 소형 누각 선기가 떠 있었다.

    그 안에서 청죽보운검들의 영기는 왕성해졌으나 광택이 많이 사라져서 범인들이 쓰는 작은 검처럼 보였다.

    그는 의식을 회수하고는 호리병 속에서 비검 하나를 불러내 손에 쥐었다.

    쿠쿠쿵.

    비검을 살짝 휘저었는데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가느다란 뇌전들이 만개했다. 화려한 뇌전실에 흉살기들이 주위로 흩어졌다.

    현천 호리병 안에서 청죽봉운검의 위력이 더 강해지자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곧바로 8자루의 청죽봉운검을 더 불러내 마음 가는 대로 움직여 보았다. 9자루의 비검들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파문이 일었다.

    금선 후기에 이른 그는 이제 청죽봉운검도 9자루까지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한립은 호리병박을 들고 무척 즐거워했다.

    나머지 누각 선기 역시 재질과 품질의 한계 때문에 청죽봉운검보다는 위력이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선기를 정련하는 효과가 대단한 보물이었다.

    휙!

    그는 호리병박을 허공에 던지고 수결을 맺어 법결들을 연달아 던져 넣었다. 가득 흘러나온 녹색 빛 속에서 주술문자들이 회전했다.

    “가라!”

    한립의 미간에서 굵은 수정빛이 나와 호리병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는 수행도 늘고 연신술도 4성까지 익혔으니 이제 호리병박을 제대로 연화해 볼 생각이었다.

    만일 현천의 보물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다면 그저 영보와 선기를 정련하는 것 이상의 신통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열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현란하게 법결을 날리던 한립은 갑자기 눈썹을 꿈틀했다.

    연화가 진행되지 않고 장애물을 만난 듯 기운이 멈췄기 때문이다. 의식을 소용돌이 속으로 들여보내려 했을 때 방해하던 힘과 비슷했다.

    그는 곧장 연신술을 발동해서 방대한 의식의 힘이 호리병박 깊은 곳까지 퍼져 들어가게 했다.

    무척 느릿느릿했지만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었다.

    웅!

    별안간 호리병박이 깜빡거리더니 강력한 법칙의 힘을 발산해 주변의 흉살기들을 요동치게 했다.

    그러나 한립은 개의치 않고 의식이 소용돌이 속으로 진입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 * *

    한 시진 후.

    챙!

    한립의 의식이 거의 소모되었을 때 호리병박 속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의식이 느끼던 압박감이 줄어들고 한립은 또 다른 녹색 공간에 들어갔다. 또 그의 선령력에 대한 저항도 사라져서 호리병 깊은 곳까지 선령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한립은 조심스럽게 선령력을 더 깊은 곳으로 주입하면서 대부분의 주의력을 의식 쪽에 두었다.

    의식이 새롭게 들어간 공간은 이전 공간보다 훨씬 규모가 컸고 녹색 광채가 없는 대신 빛덩이가 떠 있었다.

    그는 강렬한 호기심을 느끼고 의식으로 곳곳을 수색했지만 별다른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한립은 시선을 녹색 빛구슬로 돌리고는 의식을 퍼트렸다.

    화륵!

    막 의식이 접촉한 순간, 녹색 화염처럼 빛이 일렁이더니 무형의 기운이 터져 나와 그의 의식을 밀쳤다.

    머리가 어질해진 한립은 깜짝 놀라 급히 연신술을 발동해 정신을 차렸다.

    그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의식 사슬, 의식의 검, 의식 수롱 등의 신통을 사용해 녹색 빛구슬에 접근해 보려 했으나 예외 없이 모두 튕겨 나왔다.

    그는 다른 방법이 없어 의식을 거두고 말았다.

    선령력도 호리병박을 어느 정도 장악하다 다시 무형의 힘에 막혔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보물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다.

    그는 의식을 첫 번째 비취색 공간으로 불어넣고는 의식을 움직였다.

    웅.

    녹색 소용돌이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녹색 광채로 심연의 벽을 훑었다.

    콰르르.

    빛이 닿자 산 벽의 돌덩이들이 사라져 호리병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 소용돌이를 움직여 심연 바닥을 쓸어버린 한립은 창백한 얼굴로 호리병박 조종을 멈추었다.

    현천의 보물을 발동하기 위해 들어가는 선령력 소모가 엄청나 벌써 선령력이 많이 줄어 있었다.

    단약을 삼키고 운기조식을 한 그는 선령력이 회복되자 다시 호리병박의 첫 번째 공간에 의식을 불어넣었다.

    이번에는 녹색 소용돌이가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녹색 소용돌이가 역전함에 따라 녹색 빛이 연해지고 강력한 흡인력이 분출해 검은 돌 구슬을 휘감았다.

    쉭!

    검은 돌 구슬이 사라져 호리병박 입구에서 튀어 나가 심연 벽을 때렸다.

    콰르릉!

    벽이 무너질 듯 흔들리다 원래대로 돌아갔다.

    한립은 고개를 들어 벽을 바라보다 매끈한 맷돌 크기의 구멍이 깊이 파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구멍은 놀랍게도 수백 리 밖까지 뚫려 있었다.

    한립은 비취색 호리병박과 구멍을 번갈아 보면서 웃음 지었다.

    흡입력을 분사력으로 바꾸니 평범한 돌도 이렇게 막강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만일 돌멩이가 아니라 영보나 선기급의 다른 비검이었다면?

    한립은 선령력을 회복한 다음 의식을 다시 호리병박 안으로 불어 넣었다. 돌멩이가 분출되면서 그의 의식의 힘도 같이 호리병박을 빠져나와 있었다.

    소용돌이 중앙에는 청죽봉운검들과 소형 누각이 고요히 떠 있었다.

    ‘그러면…….’

    한립은 다른 비검들과 소형 누각을 옆으로 치우고 청죽봉운검 한 자루를 소용돌이 중앙에 놓고 수결을 맺었다.

    소용돌이가 역전하면서 옅은 녹색 빛을 발산했다.

    흡입력이 분사력으로 바뀌어 청죽봉운검을 감싸고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것 같았다.

    한립은 분사력을 최대한 억눌러 몸이 덜덜 떨리고 얼굴이 하얗게 질릴 때까지 선령력을 끌어 모았다.

    소용돌이의 역전 속도가 점점 더 빨라져 녹색 공간이 웅웅 떨리고 있었다.

    “가라!”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그는 드디어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그러자 녹색 호리병박이 바르르 몸을 떨고 영목신통을 발동한 한립의 눈에 흐릿한 녹색 검 허상이 포착되었다.

    검 허상은 허공을 가르고 전방의 벽을 뚫고 들어가 사라졌다.

    잠시 후 수천 리 밖 지면을 퍽! 뚫고 흐릿한 녹색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녹색 검 그림자는 무려 수천 리 땅속을 관통하고 나서도 속도가 줄지 않아 고공으로 번뜩 사라졌다.

    검 그림자가 지나는 허공마다 가느다랗게 공간균열이 남았다. 이에 한립은 아연한 얼굴을 하다 활짝 웃음 지었다.

    * * *

    십여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심연 인근에 금빛이 번개처럼 날아들어 거대한 금색 딱정벌레로 변했다. 바로 태을 서금선이었다.

    태을 서금선이 기운을 폭발적으로 드러내자 수만 리 내의 요수들이 벌벌 떨며 달아나거나 자신의 소굴로 숨어들었다.

    심연 인근 태을경 나무 요수도 소스라치게 놀라 경계심 어린 눈길로 하늘의 금색 딱정벌레를 쳐다보았다.

    “죽기 싫으면 멀리 꺼지는 게 좋을 겁니다!”

    서금선은 나무 요수를 향해 경고하고는 심연으로 시선을 돌렸다.

    태을경 나무 요수는 화가 났지만 몸을 꿈틀꿈틀 움직여 흙 속에 깊이 박힌 뿌리들을 빼내 멀리 물러났다.

    서금선은 의식으로 심연을 살피다 눈을 번득이고는 금빛으로 변해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막 심연으로 진입했을 때 굵직한 검은 빛기둥이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놀라운 영력 파동을 내뿜은 빛기둥은 건천복릉 진법이었다.

    검은 빛기둥 속에서 주술문자들이 연달아 폭발해 검은빛의 바다가 심연 입구를 가로막았다.

    심연에 들어서자마자 갇힌 것이다.

    바로 그때 황색 장포를 입은 해 도인이 나타나 검은빛의 바다 옆에 나타나 주술을 외며 법결을 날렸다.

    검은 바다는 거대한 촉수를 늘어트려 서금선을 향해 날려 보냈다. 강렬한 구금의 힘이 담긴 촉수들이 주술문자들을 품고 있었다.

    “이까짓 걸로 날 가두겠다는 것이냐!”

    서금선은 코웃음을 치며 두 앞발을 휘둘러 사방팔방으로 날카로운 수정빛을 날렸다.

    그의 몸에 들러붙은 검은 촉수 대부분이 수정빛에 잘려나가고 나머지는 그가 몸을 비틀자 뜯겨나갔다.

    콰콰쾅!

    앞발이 좌우를 갈라 거대한 금빛 칼날이 검은 바다를 공격했다. 이에 바다가 붕괴하려 할 때 그 안에서 파공음과 함께 금빛 두 덩이가 폭발했다.

    방금 그가 날린 공격이 무언가에 막힌 것을 보고 서금선의 표정이 달라졌다.

    쉬쉬쉭

    열댓 마리의 거대한 검은 구렁이가 바닷속에서 튀어나와 서금선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쿠르릉!

    그 모습에 서금선은 냉랭한 시선으로 앞발을 뻗었다. 그러자 금빛이 번지며 수천 마리의 금색 딱정벌레 허상이 검은 구렁이들과 충돌했다.

    열댓 마리 구렁이들은 금색 딱정벌레들에 의해 갈가리 찢겨 나가고, 서금선은 다시 앞발을 휘저어 검빛으로 변해 검은 바다를 갈랐다.

    위력적인 검빛들이 쏟아져 검은 바다가 요동쳤다.

    이때 바닥에서 검은 주술문자들이 법칙 파동을 내뿜어 검은 구렁이 파편들을 고리들로 변화시켰다.

    검은 고리들이 금색 검빛을 감싸고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후웅.

    이에 노호성을 터트린 서금선은 두 앞발을 높이 들어 올려 실체화된 금색 빛구슬을 뭉쳤다.

    엄청나게 밝은 금빛이 터져 나오자 검은 파도가 뒤로 물러났다.

    콰르릉!

    서금선의 앞발을 떠난 빛구슬이 경천동지할 폭음을 내면서 검은 바다를 말라붙게 했다.

    그 모습을 감상하던 서금선이 심연 입구 쪽을 살피는데 해 도인이 휘청거리면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찢어진 의복 사이로 가슴이 길게 두 줄기로 벌어져 있었는데 중상을 입은 듯 보였다.

    해 도인은 천여 장 정도 급히 물러나다 금빛을 일으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 달아났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