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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80화 (1,537/2,000)

1780화. 추격

*

“충령이 호사족 영토를 습격한 것에 다들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장내가 정리되고 낙청린이 모두를 돌아보며 물었다.

“수십 년을 공들여 모은 수백 종의 정예병들을 암성협곡 앞에 두고 충령이 홀로 홍라하곡을 치러가다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답답한지 오로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간 보여온 충령의 성정과도 맞지 않는 행보이고요.”

만림의 말에 다들 의아해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족장들과 대전 한쪽에 물러서 있던 낙의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려 선배님이 암성협곡에 있을 때는, 충령이 느닷없이 충족 대군을 이끌고 유진족을 공격했어. 그런데 려 선배님이 떠나고는 충령이 호사족을 치러갔다고? 둘 사이에 연관이 있는 거라면…….”

그녀는 한립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이상한 금색 곤충을 데리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금색 곤충이 화섬족을 죽일 때만 해도 수행이 상당히 높다고만 여겼는데 지금 생각하니 여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충족 중 몇몇 종족은 동족을 잡아먹는 습성이 있었다. 충령이 암성협곡과 홍라하곡을 노린 것이 그 금색 곤충 때문이라면?

그 말은 자신이 모든 화의 원흉이라는 뜻과 같았다. 창백하게 얼굴이 굳은 낙의범은 자신의 표정이 들킬까 두려워 고개를 더욱 숙였다.

아비에게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은 것은 두렵지 않았으나 이 일이 알려지면 수족 전체가 유진족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 * *

몇 개월 뒤.

태을 서금선은 호사족 진령 구령에게 중상을 입히느라 꽤 고생해서 추적이 느슨해졌다.

그래서 약간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지만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만황구역 깊은 곳으로 갈수록 환경이 복잡해지고 사수나 문어 요수 급의 강력한 짐승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다행히 이전의 위기에서 교훈을 얻은 한립은 만황의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해 방대한 의식을 함부로 퍼트리지 않고 아주 멀리서라도 강력한 기운이 감지되면 절대 그쪽으로는 다가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먼저 쫓아오는 흉악한 짐승들은 기운의 고하와 상관없이 달아나 충돌을 피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전보다 이동 속도가 느려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 *

어느 날, 밤.

해 도인이 조종하는 벽옥비차가 끝없이 펼쳐진 평원지대로 진입했다.

“…….”

한립은 객실 뒤편에 앉아 검은 옥간을 들고 생각에 빠져있었다. 망설이던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결국 그것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옥간에 기록된 내용은 <연신술> 4성 구결이었다.

공법을 얻은 즉시 익혀서 발작을 일으킬 위험을 없애야 했는데 줄곧 시간이 나지 않아 만황구역을 벗어나 조용한 곳을 찾아 수련하려 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어 미리 수련을 시작해야 할 듯싶었다.

그 이유는 태을 서금선을 상대하면서 목숨을 부지하려면 무언가 특별한 수단이 필요했는데,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경지를 높일 수는 없고 그가 능한 의식 공법 쪽으로 돌파구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태을 서금선도 비휴 뱃속에 숨은 동안 방향을 바꾸는 수법에 익숙해져서 동족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그냥 멈춰서 기다렸다.

그래서 한립도 여유가 있을 때 금동을 바깥에서 쉬게 하고 급할 때 그 방법을 다시 쓸 생각이었다.

금동도 그동안 느낀 바가 많은지 얼굴에 웃음기가 많이 가시고 침묵을 지킬 때도 많아졌다. 강적에게 쫓기면서 하루도 쉴 틈 없이 도망 다니는 경험이 유쾌할 리 없었다.

평원을 구불구불 가로지르는 물길을 보면서 금동은 반짝거리는 수정돌을 들고 야금야금 깨물어 먹고 있었다.

하늘 높이 뜬 달은 아주 밝게 빛났고, 달빛에 감싸인 한립은 부드러운 하얀빛을 발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몸을 부들부들 떨던 그의 이마에서 큰 눈이 나타나 수정실들을 뿜어내는 모습은 기이하기까지 했다.

비차 앞에서 그를 등지고 서 있던 해 도인도 기괴한 파동에 고개를 돌려보고 걱정스러워했다.

지금 한립이 내뿜는 기운은 아주 불안정해서 마치 언제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아저씨, 괜찮아요?”

한립이 번쩍 눈을 뜨기를 기다리다 금동이 다가왔다.

피로한 눈빛으로 검은 옥간을 거둔 한립은 단약을 복용하면서 이마의 땀을 닦아 냈다.

“난 괜찮다. 그저 마음이 급했는지 수련을 하다 실수를 할 뻔했지.”

연신술 4성 공법의 내용은 이전보다 난해해서 까딱 잘못하다가는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럼 다행이고요. 아까 기분이 이상해서 깜짝 놀랐다고요.”

“서금선 쪽은 이상이 없더냐?”

“똑같아요. 거머리처럼 따라붙고 있죠. 지금쯤 아마…….”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서금선의 위치를 감응해 보던 금동이 난색을 표했다.

“왜 그러느냐?”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 없었는데, 이 자식이 갑자기 속도를 높였어요!”

“며칠이면 따라붙겠느냐?”

“며칠도 아니에요. 이 속도면 몇 시진 내로 우릴 따라잡을지 몰라요.”

“해 수사, 비차는 제게 맡기고 잠시 휴식을 취하시지요.”

그 말에 한립은 몸을 돌려 해 도인을 거두고 법결을 날려 속도를 높였다.

“걱정하지 말고 넌 흰둥이 뱃속으로 들어가서 기운을 숨기고 있거라. 내 방향을 몇 차례 바꾸어 따돌릴 수 있는지 보겠다.”

“엇…….”

고개를 끄덕이고 혼갑부를 꺼내 붙이려던 금동의 손이 움찔했다.

“미, 미쳤나 봐요! 본원의 힘을 태워서 속도를 더 높이고 있어요. 세 시진이면 잡히겠어요.”

“보아하니 상대도 인내심에 한계가 온 모양이구나.”

미간을 좁힌 한립이 벽옥비차의 속도를 늦추더니 허공에 세웠다.

“왜 멈추는 거예요?”

“이렇게 달아나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립은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답했다.

“아저씨 시간도문도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 지금 싸우면 승산이 없잖아요…….”

“누가 맞서 싸운다고 했느냐? 그냥 달아나는 방법을 바꿔보겠다는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얌전히 흰둥이 뱃속에 들어가 있거라.”

금동이 부적을 붙이고 비휴 뱃속으로 들어간 후 미소를 유지하던 한립의 얼굴이 굳었다.

“이렇게 빠를 수가…….”

금동이 감응할 필요도 없이 상대는 그의 의식 감응 범위 내에서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콰릉!

벽옥비차를 거둔 한립의 두 눈에서 은빛 뇌전실이 빠져나왔다.

한립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 끝에서 파공음과 함께 금빛이 나타났다.

태양처럼 똑바로 바라보기 힘든 강렬한 금빛이었다.

본원의 역량을 불사르고 있어서인지 홍라하곡에 나타났을 때보다 몸집이 커진 서금선은 냉랭한 눈으로 엄청난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얼마 전 수족왕 유호가 8대 종족의 진령들을 이끌고 수족 대군과 함께 충족 대군을 쳐서 무수히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충족 잔병들은 완전히 자신들의 영토로 물러났고 수족들이 그들의 영토마저 침략해 다 이긴 전쟁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충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충족이 전멸한다고 해도 강력한 동족 한 마리를 잡는 것이 그에게는 더욱 중요했다.

* * *

만황구역의 울퉁불퉁한 산맥 위로 뇌전실들이 결집해 거대한 은색 뇌진을 형성했다.

콰릉!

그 안에서 숨을 헐떡이는 한립이 나타나 급히 요수 가죽으로 된 지도를 꺼내 위치를 확인했다.

그는 다른 지도를 꺼내 대조하는 일을 반복하고 나서야 방향을 찾아 벽옥비차를 불러냈다.

다시 빈 시진 동안 쉼 없이 달아나던 그는 비차를 멈추고 백옥 비휴를 불러내 금동이 나올 수 있게 했다.

“여기 어디예요?”

금동은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봉우리를 둘러보고는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수족이 내준 지도에 따르면 이미 수족과 충족의 영역은 멀리 벗어났다. 정말 만황 깊은 곳까지 들어온 것이지.”

“그렇게 멀리 달아났다고요…….”

“내 의식으로는 서금선을 감응할 수 없는데, 너는 어떠하냐?”

“아직 연계되어 있기는 한데 미약해요!”

눈을 감고 집중하던 금동이 기쁜 얼굴로 소리쳤다.

“방심해서는 안 된다. 상대는 우릴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니까. 흰둥아, 이곳이 어딘지 알아보겠느냐?”

고개를 저은 한립은 이곳저곳 살피고 있는 비휴를 돌아보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꼭 아주 아주 오래전에 한 번 와본 곳 같아요. 만황이 아주 넓고 비슷한 지형도 많을 테니 착각인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깊은 곳까지 인족 수사들이 들어오기는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만황에 깊이 들어온 만큼 위험한 일은 더 많을 거고 이제 돌아갈 수는 없다. 대략적인 방향은 맞을 테니 이대로 쭉 가면 흑산선역이 나올 것이야. 금동, 한동안 흰둥이 뱃속에 들어가 있지 않아도 되니 서금선의 동향을 주시하거라. 다시 본원의 역량을 불살라 쫓아오면 바로 알려줘야 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

한립은 금동이 장담하는 것을 보고 곧바로 해 도인을 불러내 당부했다.

“앞으로도 계속 비행 선기를 조종해 주셔야겠습니다.”

해 도인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한립은 단약을 복용한 후 객실로 들어가 연신술을 수련하기 위해 휴식을 취했다.

* * *

이십여 일 뒤.

한립이 벽옥비차를 조종해 높게 자란 고목들이 가득한 밀림을 스쳐 지나갔다.

순간 그의 눈가에 초록색 잎사귀 사이로 석재로 만든 건물이 숨겨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에 자세히 살피자 놀랍게도 거대한 고성(古城)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선역이나 수족 각부의 양식과 달리 거대 암석을 켜켜이 쌓아 각각에 기이한 짐승 무늬를 새겨놓았다.

새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고 4개의 팔을 가진 석상, 머리 2개가 한 몸에 붙은 뱀 인간 조각상, 눈이 기이하게 크고 돌출된 거대 머리 조각상 등 아주 각양각색이었다.

이끼가 낀 고성 안에는 별다른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한립이 발길을 돌리려는데 허리춤에서 백옥 장신구가 비휴로 변해 입을 열었다.

“주인님, 아래쪽에서 보물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보물? 무슨 보물? 어디?”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금동이 귀를 쫑긋 세우고 기어왔다.

“누님, 보물이 지하 깊숙이 특수한 금제에 가려져 있어 뭔지는 모르겠고 정확한 위치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특수한 파동을 발산하는 것으로 보아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금제가 있다고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몰라? 왜 이렇게 능력이 없니? 너는! 다시 확인해봐. 예전에 맛봤던 화로만큼 대단한 건지 알아보라고.”

“무슨 보물이든 간에 건드릴 시간은 없을 것이다. 일단 금제를 건드리면 그 안에 갇히거나 시간을 허비하게 될 테니까.”

진지한 얼굴로 한립이 고개를 젓자 흰둥이와 금동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흰둥이는 약간 원망스러운 기색까지 비추었다.

“아직 특별한 위기는 없었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나중에 시간이 될 때 다시 찾아오더라도 지금은 떠나자꾸나.”

그 모습에 한립이 웃음을 지었다.

“만황에 들어와서 오래간만에 실력 발휘를 했는데 그냥 가기에는 아쉽습니다……. 주인님, 제게 한 시진. 아니, 반 시진만 주시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보물로 향하는 지름길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비휴가 비차 가장자리에서 고성 유적을 내려다보면서 사정했다. 그걸 본 한립도 눈썹을 꿈틀했다.

세상에 보물을 마다할 수도자는 어디에도 없었고 백옥 비휴가 사정하며 찾고 싶어 할 만 한 보물이라니 그도 마음이 동했다.

이때 금동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큰일이에요!”

“왜 그래요, 누님?”

“무슨 일인지 말하거라.”

비휴가 움찔하고 한립도 안 좋은 예감이 들어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 자식이 쫓아왔어요. 본원 역량을 태워서 쫓는데 이전보다 훨씬 빨라요!”

“일단 피하고 보자꾸나.”

금동의 다급한 어투에 한립이 머뭇거리지 않고 결단을 내렸다.

금동은 혼갑부를 붙이고 딱정벌레로 변해 흰둥이 뱃속으로 들어갔고 한립은 백옥 비휴와 벽옥비차를 회수해 뇌진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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