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8화. 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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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금빛이 콰르릉하는 굉음을 내면서 불가사의한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빛 속에는 황금빛 딱정벌레가 날개를 미친 듯이 펄럭이는 중이었다. 한립과 서금선이 두려워하던 태을경 서금선의 서늘한 눈에 이채가 어렸다.
전방에서 날아가는 것은 분명 금선 경지의 동족이었는데 평범한 태을경 진령보다 약간 더 빠른 속도로 달아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태을경 서금선은 금빛을 물리고 멈추었다.
동족의 기운이 돌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대략 반 시진을 기다리자 다른 방향에서 동족의 기운이 느껴졌다.
태을경 서금선은 코웃음을 치며 걱정 없이 방향을 틀었다.
* * *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비차 위에 금동이 막 비휴의 몸속에서 빠져나와 창백한 얼굴로 비휴에게 기대 있었다.
금동의 호흡이 고르지 않자 한립은 손을 저어 영보 한 무더기를 쏟아놓았다. 금동은 아무 말 없이 비차에 주저앉아 그것들을 입으로 쓸어 담았다.
옆에서 비휴가 반짝반짝 빛나는 영보들을 보면서 침을 흘렸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팟.
그때 자금색 저물 반지가 비휴의 눈앞에 나타났다.
“흰둥이 너도 시간이 있을 때 몸을 보하거라.”
“감사합니다, 주인님!”
한립의 전음에 흰둥이가 저물 반지를 바로 입안으로 삼켰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전력으로 비차를 조종했다.
금동의 위치가 노출되었으니 방향을 바꿀 것 없이 직선 방향으로 질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느 정도 기운을 회복한 금동은 바로 금빛으로 변해 비휴의 몸속으로 들어갔고, 한립은 방향을 틀었다.
뒤쫓아 오던 서금선은 또다시 동족의 기운을 놓치자 속에서 열불이 치솟고 있었다. 어렵게 거리를 좁혔는데 상대의 위치를 포착하지 못하면 또 거리가 벌어질 게 분명했다.
한 시진 반 뒤에 금동의 기운이 다시 나타났는데 과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태을경 서금선은 점점 냉정을 되찾았다.
상대가 무슨 수단으로 속도를 높이고 있는지 모르나 후환이 따르게 마련이었다. 그러니 끈질기게 따라붙으면 분명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몇 개월 동안 태을경 서금선의 예상과 달리 상대방은 빠른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태을경 서금선은 놀랍고 어이가 없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 * *
울창한 수풀 위를 벽옥비차가 번개처럼 지나쳤다.
비차 위 한립은 한결 편해진 얼굴로 수결을 맺고 있었다.
이런 상태를 유지한다면 2, 30년은 버틸 수 있을 것이고, 상대도 영원히 그들 뒤만 쫓을 수는 없을 테니 그 전에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저 이미 만황 깊은 곳에 이른 그는 앞으로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랐고, 이전에는 강력한 짐승들의 공격을 피했다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금동이 영보 하나를 잡아서 오독오독 씹는 사이 비휴는 옆에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까악! 까악!
바로 그때 아래쪽 수풀 속에서 새소리가 들려왔고 혼백을 찌르는 듯한 격통을 느낀 한립은 벌떡 일어났다.
비차와 맞먹는 속도로 회색의 거대 물체가 접근하고 있었다.
한립은 영목 신통을 일으켜 머리에 먹색 볏이 나고 깃털 없이 짧은 회색 털이 피부를 뒤덮은 추하게 생긴 거대 회색 새를 발견했다.
금선 최고봉의 기운을 발산하는 회색 새는 금동보다도 수행이 높았다.
여기서 금선 짐승과 싸우고 있을 수 없기에 한립은 하얀 깃발을 날려 산만해진 보물에서 구름이 가득한 도안을 불러일으켰다.
공수구가 갖고 있던 선기였다.
회색 거대 새는 무수히 많은 하얀 구름이 둘러싸자 볏에서 빛이 반짝이고 두 날개에서 돌풍이 일어 잿빛 바람기둥을 만들었다.
한립이 불러낸 하얀 구름은 법칙의 힘을 품은 잿빛 바람기둥에 갈기갈기 찢겨 사라졌다.
돌풍은 잠시 멈칫했다가 방향을 비차 쪽으로 틀었다.
그 속에는 거대한 바람의 칼날들이 가득해서 딱 봐도 공격력이 엄청나 보였다. 위급한 순간 서둘러 비차를 멈춘 한립은 황토색 영패 선기 3개를 날려 보냈다.
비차의 왼쪽과 오른쪽 앞에 번득 나타난 영패들은 강력한 빛을 발해 두꺼운 황토색 보호막을 이루었다.
채채채채챙!
보호막들은 바람의 칼날들을 막는 것은 물론 거대 새 쪽으로 튕겨 보내기까지 했다.
그 틈에 한립은 푸른 빛이 쏟아내 하얀 깃발로 스며들게 했다.
우웅!
깃발이 적잖은 선령력을 머금고 하얀 구름을 용처럼 불러내 거대 새를 둘러쌌다. 어차피 상대를 격살할 마음이 없던 한립은 비차에 법결을 날려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뒤쪽에서 금방 펑! 하는 소리가 들리고 거대 새가 쫓으려 했으나 이미 한참 멀어진 후였다.
* * *
두 달 후.
무성한 수풀 위를 벽옥비차가 날아가다 멈추었다. 한립은 비차의 진법에다 선원석을 보충하고 있었다.
금동은 객실에 울적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고 비휴는 그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아저씨, 저 녀석에게 따라잡히면 나만 두고 달아날 거예요?”
“그런 허튼 생각할 시간이 있으면 어서 기운이나 추슬러서 흰둥이 뱃속으로 들어가거라.”
“그 자식이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대부분 시간을 흰둥이 뱃속에 숨어 지내야 하잖아요. 아니, 그 자식한테 맞아 죽기 전에 심심하고 답답해서 흰둥이 뱃속에서 죽겠어요.”
인상을 찡그린 금동이 탄식하며 말했다.
“누님, 아니 내 뱃속이 무슨 객잔인 줄 아세요? 누님이 수시로 드나들어서 제가 소화불량에 걸릴 처지라고요. 저도 가만히 있는데 왜 누님이 죽상을 하고 그래요? 다음번에 서금선이 쫓아오면 참지 못하고 누님을 토해낼지도 모른다고요…….”
고개를 비튼 백옥 비휴가 그녀를 보면서 원망스레 말했다.
“흰둥아, 내가 네 속에 있는 게 그렇게 불편하면 네가 내 뱃속으로 들어올래? 그렇게 많은 천지영물이랑 보물을 먹었으니 너도 예전에 먹은 연단로 못지않게 기운이 풍부하지 않겠어? 내가 수행만 팍 늘면 누가 쫓아와도 상대할 수 있을 테고 말이야!”
금동이 쥐를 노리는 고양이의 눈으로 백옥 비휴를 훑었다. 그 말에 비휴가 쩔쩔매면서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아저씨! 어서 출발해요! 그 자식이 쫓아왔어요!”
비휴를 놀리면서 잠시 희색이 돌던 금동이 다급히 외쳤다.
“넌 흰둥이 뱃속에 들어가 있거라.”
한립이 긴장한 얼굴로 빠르게 법결을 날려 벽옥비차를 출발시켰다. 금동은 혼갑부를 붙이고 작은 딱정벌레로 변해 백옥 비휴의 뱃속으로 돌아갔다.
비휴도 두려웠는지 아예 백옥 장신구로 변해 한립의 저물대 속으로 숨어버렸다.
“아저씨, 아무래도 그놈의 속도가 예전보다 더 빨라진 것 같아요. 우리도 속도를 더 낼 수는 없어요?”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얼마 정도면 우리를 따라잡을 것 같더냐?”
“이 속도로 가면 한 달 반 정도면 따라잡힐 거예요.”
금동의 대답에 한립이 미간을 좁히고 한참 말이 없었다.
팟.
그는 수족에서 받아온 지도를 펼쳐 살피다 갑자기 비차를 멈추었다.
“너희들이 먼저 불의를 저질렀으니 내게도 자비를 바라지 말거라.”
한립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 비차의 방향을 틀어 어딘가로 질주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한립이 탄 백옥비차는 그사이 헤아릴 수 없는 거리를 이동해서 지도에 표시된 어느 하천이 흐르는 골짜기에 도착했다.
붉은 골짜기 입구 양쪽 산에 사람의 몸에 사자의 얼굴을 한 거대한 조각상이 각각 하나씩 서 있었다.
왼쪽은 두 손을 교차해 가슴에 얹고 기도를 드리는 조각상이었고, 오른쪽은 커다란 도끼를 들고 분노해 포효하는 조각상이었다.
두 산을 잇는 거대한 돌다리에 뼈 갑옷을 입은 이종족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인족보다 체구가 크고 얼굴 주변에 사자의 갈기가 자라난 이종족들은 홍라하곡(紅螺河谷)에 사는 수족의 8대 성족 중 하나인 호사족(扈獅族)이었다.
돌다리 아래로 3개의 구멍이 뚫려 물줄기가 흘러나오면서 그 물안개 덕분에 무지개가 형성되어 있었다.
한 달 반 전 호사족 영토가 그가 있는 곳과 멀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한립은 방향을 틀어 일부러 이곳을 찾아왔다.
그동안 금동은 최대한 흰둥이 뱃속에 숨어 있었지만 그래도 태을경 서금충은 그들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 왔다.
며칠 사이에는 금동의 감지 능력 없이 한립의 의식으로도 상대의 종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립은 기운을 최대한 감추고 아래로 떨어졌다.
퐁당!
물줄기가 콸콸 떨어지는 소리에 작은 물소리는 감춰졌고, 그는 바닥까지 가라앉아 선령력을 사용하지 않고 육신의 힘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물길을 역류해 걸어 나갔다.
물속 지형도 복잡하고 수많은 소용돌이와 암류가 보물 못지않은 위력을 내며 방해를 했지만 강인한 몸을 지닌 한립은 순조롭게 골짜기 입구의 돌다리 아래까지 도착했다.
그때 앞쪽에 불규칙한 파동이 일면서 수백 마리의 검은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 강철로 만든 것 같은 물고기들은 날카로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물어뜯으려고 준비 중인 사나운 물고기들을 보고 한립은 속으로 한숨을 흘리며 진언보륜을 역전했다.
흐릿하게 사라진 그가 쾌속으로 검은 물고기 사이사이를 지나치며 이동했다.
몇 개월 동안 시간도문을 몇 개 회복해서 그럭저럭 진언보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역시 아주 조심스럽게 선령력을 운용했음에도 돌다리 위에서 순찰하던 호사족 병사들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물을 들여다보았다.
“어서 호각을 불어라. 충족이 침입한 걸 수도 있다.”
“이 정도 파동으로요? 아마 어느 요수가 길을 잘못 들었다가 벌써 오린어(烏鱗魚)들에게 당했을 겁니다.”
“족장께서 안 계시는데 만사에 주의를 기울여야지. 별 것 아닌 일이라도 호각을 불어 알려야 한다.”
“예!”
순찰 대장의 명에 병사가 대답하고 골짜기 오른쪽으로 달려갔다.
부우우!
곧 우렁찬 호각소리가 붉은 골짜기 안에 울려 퍼졌고 물속의 한립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곧이어 신호에 응답하는 호각소리가 골짜기 안에서 연달아 들려왔다.
강이 흐르는 골짜기 양쪽의 동굴 속에서 뼈 갑옷을 걸친 건장한 호사족 족인들이 우두머리들의 통제를 받으면서 몰려나와 물속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거대한 나무 목궁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독을 바른 활을 물속으로 조준했다.
“이제 나와도 좋다. 서금선을 유인해라.”
걸음을 멈춘 한립이 전음을 보냈다.
“네!”
금동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곧바로 금빛으로 변해 튀어나와 붉은 옷을 걸친 여자아이로 변했다.
눈을 감은 금동은 강렬한 기운을 발산해 골짜기 왼쪽 제단에 있던 홍포를 걸친 호사족 대제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은통 장로, 큰일 났습니다! 파동이 아무래도……. 아무래도 충령인 것 같습니다!”
그는 거의 절망에 빠진 얼굴로 곁의 금선 초기 장로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럴 리가 있는가. 암성협곡에서 총족 대군이 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거늘. 충령이 홍라하곡까지 왔단 말인가!”
“잠깐, 뭔가 기운이 다르기는 합니다…….”
“뭐라?”
“헉! 또, 또 하나가…….”
“뭐가 또 하나란 말인가!”
은통이 양쪽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덜덜 떠는 대제사를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충령이 한 마리 더 나타났습니다……. 이번 것은 확실히 태을급의…….”
대제사의 말을 들은 은통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어서! 은량은 족장께 소식을 정하고 은봉은 노약자들을 철수시키게! 나머지는 나를 따라 적과 맞서 싸운다.”
“예!”
진선 후기에서 금선 초기에 이르는 제단 위의 8명의 호사족 장로들이 결연한 얼굴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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