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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74화 (1,531/2,000)
  • 1774화. 출격

    *

    검은 불바다 속에 금색 딱정벌레가 완전히 잠식되고 숙육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이를 지켜보던 수족들은 정신이 번쩍 들고 충족들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런데 잠시 후, 검은 불바다 속에서 소용돌이가 치며 금빛이 흘러나왔다.

    놀란 구미청호가 다시 공격하기 전에 금빛 소용돌이는 급격하게 커져 검은 불바다를 집어 삼켜버렸다.

    금색 딱정벌레는 여전히 아홉 개의 꼬리에 속박되어 있으면서도 검은 화염을 삼켜버린 것이다. 수족의 환호성이 뚝 끊기고 전장의 전투가 멈추어 세상이 고요해졌다.

    숙육은 할 말을 잃은 듯 입만 벌리고 있었다.

    “충령이 가면 갈수록 강해집니다. 유호대인조차…….”

    낙의범이 크게 당황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말한 유호대인이 수족의 왕인 것인가?”

    눈을 반짝인 한립이 물었다.

    “예, 유호대인께서는 수족 각 부락의 진령들이 신봉하는 왕이자 본족 진령이신 숙육 대인의 부친이십니다.”

    “왕과 충령이 전투를 벌인 것이 처음은 아닌 듯한데, 충령에게 약점은 없는 것인가?”

    “충령은 신체가 단단하기 그지없고 거의 모든 공격을 삼킬 수 있어 약점이라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유호대인께서는 모종의 의식 공격을 이용해 상대를 격퇴했던 것 같습니다.”

    한립은 그녀의 대답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금충의 육체가 얼마나 강한지는 그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렇다면 비교적 약한 의식을 공격하는 것이 잘 통할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금색 딱정벌레가 자신을 속박하는 아홉 개의 꼬리를 향해 앞발을 날렸다.

    얇은 금색 수정빛이 튀어 나가 꼬리를 갈랐다.

    안색이 달라진 구미청호가 급히 꼬리들을 거두고 물러났으나 결국 두 개의 꼬리가 잘리고 말았다.

    푸확!

    잘린 꼬리에서 핏물이 쏟아지고 십여 리 바깥에서 나타난 구미청호가 대노해 앞발을 휘둘렀다.

    콰릉! 콰릉!

    금색 딱정벌레 상공에 푸른색과 검은색의 짐승 발이 나타났다.

    푸른 발톱에는 주술문자들이 요동쳤고, 검은 발톱에는 별빛들이 떠올라 신비로운 분위기를 형성했다.

    두 발톱이 자신을 할퀴려는 데도 금색 딱정벌레는 조소하며 몸에서 두 줄기의 금빛을 쏘아 올려 가볍게 공격을 막았다.

    두 줄기의 금빛이 푸른 발톱과 검은 발톱을 휘감고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자 검은빛과 푸른빛이 튀면서 구미청호의 공격이 무산되었다.

    구미청호가 앞발로 허공에 동그란 원 두 개를 그려 검은빛과 푸른 빛을 융합해 무수히 많은 검푸른 광선을 날려 보냈다.

    이에 금색 딱정벌레도 피식 웃음을 흘리며 금빛 수정실을 날려 파치칙 거리는 소리가 하늘을 가득 채웠다.

    검푸른 광선은 예상외로 단단해서 금색 딱정벌레의 수정실을 맞고도 절반이 무사히 통과해 상대를 휘감았다.

    금색 딱정벌레의 눈에 놀란 기색이 스쳤을 때 등 뒤로 구미청호가 나타나 앞발의 발톱들을 낫처럼 사용해 딱정벌레의 등딱지를 갈랐다.

    채채채챙!

    금속성의 충돌음과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구미청호의 회심의 일격에도 금색 딱정벌레 등에는 하얀 흔적만 남고 피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에 구미청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금색 딱정벌레는 금빛을 왕성하게 일으켜 금빛으로 검은 실들을 흡수해 삼켜버리고 태양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빛이 거의 실체화된 금색 영역을 이루고 그 안에서 크고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구미청호가 급히 금색 구역을 벗어나려 했지만 늪에 빠진 듯 속도가 확 줄었고 그것을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금색 딱정벌레는 입에서 열댓 개의 금색 법칙 정사를 뿜었다.

    후웅!

    굵은 법칙 정사들이 서로 엉켜 커다란 교룡으로 변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걸 본 구미청호가 날카롭게 여우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푸른 영역이 몰려들어 여섯 겹의 두꺼운 보호막을 이루고 강렬한 법칙 파동을 발산했다.

    보호막이 막 형성되자마자 금색 교룡이 달려들어 쿵! 쿵! 쿵! 세 개의 보호막을 연달아 뚫었다.

    금색 교룡도 힘을 많이 소모해 크기가 줄었으나 눈부신 빛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이에 눈을 부릅뜬 구미청호가 입을 벌려 검푸른 빛을 쏘아 금색 교룡을 막으려 했다.

    쿠르릉!

    금빛이 번져 주변 수십 리를 뒤덮고 구미청호가 흔적도 없이 그 안에 매몰되었다. 그 속에서 검푸른 빛을 반짝이기는 했으나 누가 보아도 약세였다.

    이 무지막지한 충돌의 여파는 돌풍이 되어 휘몰아쳤고 참혹한 비명과 함께 수족과 충족 전사들이 휘말렸다.

    그 순간 구미청호가 금빛 속에서 빠져나왔다.

    위풍당당하던 푸른 여우의 몸은 곳곳에 길게 베인 상처로 가득했고 배에는 크게 구멍이 뚫려 중상을 입은 듯했다.

    “아버지!”

    숙육이 크게 놀라 구미청호의 옆으로 이동하고 아래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수족 전사들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쉭!

    날카로운 파공음을 남기면서 금색 딱정벌레가 날아들고 있었다.

    구미청호는 중상을 입은 몸을 꼿꼿이 세웠고 숙육도 푸른 빛을 만발하며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파앗.

    그 순간, 하얀 패루(牌樓)가 고공에 나타나 금색 딱정벌레 위로 떨어졌다.

    패루에 새겨진 원형의 도안들이 강렬한 영기를 발하면서 선기의 위세를 드러냈다.

    웅!

    강력한 구속의 힘을 지닌 하얀 빛이 만발해 금색 딱정벌레를 붙들면서 커다란 충돌음이 들려왔다.

    이를 지켜보던 크고 작은 푸른 여우도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유호, 만황 진령이라는 자가 비열한 인족 수사의 도움을 구하는 처지가 되었을 줄은 몰랐구나!”

    금색 딱정벌레가 냉소를 흘리고 앞발을 휘두르자 음산한 수정빛들이 하나로 뭉쳐 하얀 패루를 갈랐다.

    펑!

    하얀 패루에 깊은 흔적이 남기는 했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금색 딱정벌레는 미친 듯이 반짝이면서 크기만 줄어든 하얀 패루를 보고 흠칫 놀란 얼굴이었다.

    팟!

    이때 백옥 패루 위로 삼두육비의 자금색 거인이 등장했다. 범성진마공 삼열변신을 마친 한립이었다.

    그가 진지한 얼굴로 팔을 휘두르자 금색, 검은색, 하얀색의 빛이 날아올라 금색 그물, 검은 나무 자 그리고 하얀 문진으로 변했다.

    금빛 그물은 거대하게 불어나 금색 딱정벌레를 덮쳤다.

    새까만 목자는 빙글빙글 돌며 검은 진법으로 흩어져 금색 딱정벌레 가두었다. 그리고 하얀 문진마저 산처럼 크기를 키워 빛으로 금색 딱정벌레를 덮었다.

    총 네 개의 선기가 함께 힘을 발휘해 하얀 패루가 발산하던 구속의 힘이 안정되었다.

    한립은 금색 딱정벌레가 제압된 것에 안심하지 않고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그가 지금 나선 것은 어쩔 수 없어서였다.

    금동이 비휴 몸속에 숨어 있을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일단 태을경 서금선이 구미청호를 죽이고 수족이 대패하면 금동이 비휴의 뱃속에서 빠져나오는 즉시 그 홀로 태을경 서금선과 맞서야 했다.

    한립은 네 개의 손으로 수결을 맺고 열심히 움직여 자금색 법결을 선기들 속으로 던져 넣고 나머지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촤르릉!

    수십 가닥의 검은 사슬이 튀어 나갔다. 바로 36가닥이나 되는 봉천도의 격원법련이었다.

    명한선부에서 봉천도가 죽고 격원법련은 그의 손에 떨어졌다.

    아직 완전히 연화를 시키지는 못했어도 직접 당해본 바로 엄청난 의식 구속의 능력을 지닌 보물이었다.

    36가닥의 사슬들은 쌀알 크기의 검은 주술문자들을 내뿜으면서 놀라운 법칙 파동을 일으켰다.

    금색 딱정벌레도 그 기운을 느끼고 가슴이 서늘해져서 괴성을 터트렸다.

    방출했던 금빛을 급속도로 회수해 껍질 표면에 동글동글한 금빛 반점을 만든 딱정벌레는 마치 온몸에 금색 눈들이 생긴 것 같았다.

    쉬쉬쉬쉭…….

    금색 눈에서 수정빛이 쏘아져 나가 네 개의 선기들로 쏟아지고 있었다.

    수정빛의 공격에 금색 그물이 부들부들 떨리다 찢겨나가고, 검은 자가 형성한 진법도 몇 호흡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하얀 패루와 하얀 문진은 웅웅 떨면서도 부서지지 않고 계속해서 금빛 딱정벌레를 붙들어 두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한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패루와 문진이 백옥을 주재료로 한 선기라 예상대로 서금충의 공격을 어느 정도 상쇄하고 있었다.

    한립이 빠르게 수결을 바꾸자 여섯 개의 눈이 번득였다. 중간 머리의 미간에서 수정검빛이 튀어나와 금색 딱정벌레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에 금색 딱정벌레가 깜짝 놀라 두 앞발로 반투명한 검빛을 막으려 했으나 쉭! 하고 앞발들 틈 사이를 지난 검빛은 그의 뇌리속으로 파고들었다.

    딱정벌레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몸을 바르르 떨더니 미친 듯이 금빛을 번쩍이며 괴성을 질러댔다.

    한립은 희색을 드러내며 입에서 자금색 피를 뿜어 36가닥의 격원법련에 스며들게 했다.

    피를 흡수한 사슬들이 더욱 강렬한 법칙의 힘을 발휘하며 흐릿하게 금색 딱정벌레의 몸을 파고 들어갔다.

    문제는 금색 딱정벌레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눈빛만은 아직 맑다는 것이었다.

    힘겹게 입을 벌린 딱정벌레는 금빛 수정실을 품은 광채를 내뿜어 소용돌이를 이루고 36가닥의 사슬들을 끌어당겼다.

    격원법련들이 금색 소용돌이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다급해진 한립은 여섯 개의 팔로 수결을 맺은 뒤 다시 한번 중앙 머리의 미간에서 반투명한 검빛을 날렸다.

    금색 딱정벌레는 참혹한 비명을 질렀지만 금색 소용돌이는 흩어지지 않고 사슬들을 조금씩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에 한립이 다른 수를 쓰려할 때, 갑자기 푸른 영역이 사방팔방에서 흘러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구미청호 유호가 다가오고 있었다.

    푸른 영역을 타고 법칙의 실이 나타나 금색 소용돌이 속의 수정실들을 휘감고 힘을 상쇄했고, 구미청호의 입에서 빠져나온 검푸른 거대 화살 허상이 쇅! 하고 금빛 소용돌이 속으로 박혀 들어갔다.

    쿠쿵!

    그 순간 금색 소용돌이가 맹렬히 수축하며 36가닥의 사슬들이 자유를 되찾고 금색 딱정벌레 몸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자 흠칫 놀란 금색 딱정벌레의 기운이 급속도로 사라졌다.

    기운을 잃은 금색 딱정벌레는 묵직한 돌처럼 아래쪽으로 추락했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백옥 패루와 백옥 문진은 두 태을옥선의 충돌에 휘말려 진작 튕겨 나간 지 오래였다.

    금색 딱정벌레는 원영이 괴이한 법칙의 힘에 속박되어 선령력을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닫고 당황했다.

    구미청호도 상대의 이상을 감응하고 한립에게 의아한 눈빛을 보내고는 검은빛과 푸른빛을 동시에 일으켜 앞발을 휘둘렀다.

    쉬쉬쉭…….

    검푸른 화살 허상들이 금색 딱정벌레를 향해 날아갔다.

    안 그래도 추락 중이던 딱정벌레는 화살들을 연달아 맞고 더 호되게 지면에 떨어졌다.

    땅이 진동하고 거대한 구덩이가 파이면서 흙먼지가 뿌옇게 올라왔다.

    급히 쫓으려던 구미청호는 돌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기운이 요동쳐 푸른 영역도 사라지고 말았다.

    “아버지!”

    숙육이 급히 구미청호를 부축하고 손바닥에서 푸른 기운을 내뿜어 주입해주었다.

    구미청호의 안색이 조금 회복됐을 때 먼지를 뚫고 금색 딱정벌레가 솟구쳐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선령력이 봉인되었어도 육신의 힘은 아직 남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숙육이 분개하며 쫓으려는데 구미청호가 말렸다.

    “되었다. 충령이 선령력을 봉인 당했다고 네게 당해주겠느냐? 쫓아갔다가 위험해지는 것은 너일 뿐이다.”

    구미청호의 말에 숙육이 씩씩거리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간 한립 역시 쫓을 생각은 하지 않고 창백한 얼굴로 입가에 흘러내린 피를 닦으며 그대로 서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태을후기 서금선을 상대하느라 선령력이 고갈되어 1할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서금선이 즉시 달아나지 않았으면 단약과 선원석으로 보충을 한다고 해도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지 알 수 없었다.

    “조금 전에는 고마웠네.”

    “아닙니다. 충령이 승리했다면 저도 무사하지 못했을 텐데요.”

    구미청호가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자 한립이 겸손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한립을 지긋이 쳐다보던 구미청호가 몸을 돌려 암성협곡 쪽으로 날아갔다.

    숙육이 따라가려는데 멀리서 아비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너는 남거라.”

    그 말에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면서도 걸음을 멈춘 숙육이 한립을 향해 말했다.

    “제법 실력이 있는 녀석인 것 같은데, 내 부상이 나으면 나중에 한 번 겨뤄보자!”

    숙육은 그 말을 남긴 채 아래쪽 전장으로 향했다.

    쓴웃음을 지은 한립은 단약을 꺼내 복용하고 그 혼란스러운 틈에는 끼지 않았다.

    금색 딱정벌레가 패하고 달아나자 충족 대군은 그야말로 절망했고 숙육까지 뛰어들어 충족을 죽여 대니 양 무리 속에 호랑이가 날뛰는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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