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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73화 (1,530/2,000)

1773화. 빈대

*

아래쪽에서 혼전을 펼치고 있던 유진족들은 숙육의 방대한 기운이 머리 위에 드리우자 기뻐하며 더욱 열정적으로 충족을 공격했다.

그때 낙의범은 사수에게 바짝 쫓기면서 어쩔 수 없이 어느 절벽 낭떠러지로 향해 한립과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

인상을 찡그린 한립이 주저 없이 그쪽으로 향할 때 이변이 발생했다.

콰르르!

절벽이 무너져 내리자 땅속으로 숨어든 사수가 갑자기 튀어나와 거대한 입을 벌리고 낙의범을 삼키려 들었다.

그녀는 대경실색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떨어져 내리는 바위를 박차고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아래쪽 사수의 거대 입에서 암홍색 소용돌이가 떠올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전광석화처럼 벌어진 일에 유진족 소주와 바윗덩어리들이 몽땅 대형 사수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가려는데, 한립이 재빨리 한 손으로 검결을 맺어 손끝으로 허공을 갈랐다.

챙!

푸른 검빛이 허공을 가르고 청죽봉운검 한 자루가 낙의범 발밑에 나타나 그녀가 더이상 추락하지 않게 밀어 올렸다.

왕성한 빛을 뿜어내는 장검 때문에 사수의 입속에서 흘러나온 끌어당기는 힘이 차단되고 낙의범은 고공으로 튀어 오를 수 있었다.

콰직!

입을 콱 다문 사수는 허탕을 친 것에 분노하며 몸집을 더욱 줄여 포탄처럼 낙의범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제 막 죽다 살아난 낙의범은 다시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무서워 말거라, 의범아. 저 녀석은 내가 알아서 해결해 주마…….”

그때 고공에서 푸른 빛이 번득이고 여섯 개의 꼬리가 달린 청호의 방대한 신형이 강림해 낙의범 뒤를 쫓는 대형 사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쾅!

거대한 신형이 고공에서 충돌해 함께 추락했다.

청죽봉운검은 급히 방향을 틀어 혼이 나갈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낙의범을 한립 쪽으로 데려다주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려 선배님.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낙의범은 표정을 바로 하고 감사 인사를 올렸다. 한립은 손목을 저어 청죽봉운검을 회수한 다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괴성이 들려왔다.

그들이 서둘러 사수 쪽을 바라보니 그 위에 화려한 갑옷을 걸친 거대 청호가 앉아서 발버둥 치는 거대 영충을 여섯 개의 꼬리로 감아 짓누르고 있었다.

푸른 구렁이 여섯 마리가 몸을 조이는 것처럼 꼬리에 감긴 사수의 몸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스산하게 들려왔다.

동시에 사수의 몸을 보호하던 영역이 버티지 못하고 몸속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저건…….”

“저분은 숙육대인이십니다. 저희 유진족이 모시는 진령이시지요. 수행은, 인족 수사들이 말하는 태을경 초기 수사와 비슷하실 것입니다.”

한립이 놀라 중얼거리는 소리에 낙의범이 공경스러운 태도로 대답했다.

“그렇구만.”

인계과 영계에서 적잖은 여우 요수류를 만나보았지만 대부분 환술이나 매혹술 같은 것에 능했지 눈앞의 청호처럼 패도적인 기세를 보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거대 청호는 두 손으로 허공을 쥐어 하늘과 땅을 지탱할 것 같은 커다란 검은 몽둥이를 불러냈다.

검은 방망이는 그 끝에서 반짝거리는 소용돌이를 이루며 사수의 머리로 떨어졌다.

발버둥 치던 사수가 돌연 고개를 돌려 입안에서 검은 실이 섞인 암홍색 빛을 뿜으며 검은 방망이를 물려고 했다.

쿠쿠쿵…….

사수의 입에서 강렬한 파동이 나와 거대 여우와 거대 영충이 대치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낙의범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했지만 그녀의 수행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걱정 말거라. 너희 진령대인의 경지가 높아 별일 없을 것이다.”

눈을 반짝인 한립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수의 몸에서 금빛 고리 문양들이 떠오르고 영충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펑, 펑, 펑…….

청호의 꼬리가 하나씩 풀리고 있었다.

“도망가는 건 쉬운 줄 알았더냐?”

비웃음을 흘린 청호의 미간에서 화려한 빛이 번득이고 새까맣게 물든 두 눈에 별이 가득한 천체도가 떠올랐다.

청호를 보던 한립은 문득 눈이 풀려 순간적으로 수만 개의 별이 가득한 하늘에서 별빛의 세례를 받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다음 순간, 청호가 든 방망이의 별 문양이 빛을 발하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기이한 파동이 사수의 입속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쿠쿠쿵!

청호와 사수 중앙에서 강렬한 힘이 충돌해 경천동지할 굉음을 터트렸다.

사수의 방대한 몸은 퍽! 하고 흩어져 수많은 모래 알갱이로 변해 주변 나무와 언덕을 뒤덮었다.

한립은 차분하게 소매 속에서 푸른 기운을 날려 보호막으로 그와 낙의범의 앞을 가렸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모래알들이 화살처럼 푸른 보호막을 때렸으나 두 사람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았다.

충족과 수족 대군이 싸우는 구역은 사수와 청호가 대립하던 곳과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돌풍을 타고 모래바람이 날아들어 전장이 어둑해졌다.

수행이 낮은 이들은 바람에 휩쓸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고 충족들의 사기는 조금 떨어졌다.

한립이 푸른 보호막을 치워주자 낙의범이 서둘러 날아가 꼬리 여섯 달린 청호 옆으로 다가갔다.

“숙육대인, 괜찮으십니까?”

“괜찮고말고…….”

대답과는 달리 청호는 참지 못하고 울컥 피를 토했다.

깜짝 놀란 낙의범에 눈에 청호의 가슴 부분의 갑옷에 구멍이 뚫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들어왔다.

서서히 상처가 치유되는 중이었다.

한립은 눈치껏 멀찍이 떨어져 다가가지 않았다.

비휴의 배 안에 있던 금동이 다시 밖으로 나와 의식으로 청호가 손에 든 모래 수정 덩어리를 빼앗아 오면 안 되는지 재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도 말거라. 우리는 수족의 힘을 빌려 또 다른 서금선을 상대할 생각이다. 지금 이상한 짓을 하면 수족에게 쫓겨나 우리 힘만으로 충족 대군을 물리쳐야 한단 말이다.”

한립은 전음으로 말했다.

“에휴, 그러고 보니 그 자식 기운이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안 되겠어요, 다시 숨어야지. 흰둥아 입 벌려라!”

깜짝 놀란 금동이 비휴를 재촉했다.

“누님, 제 뱃속에 들어가 앉아 있는 건 좋은데 보물 좀 그만 드세요……. 그간 힘들게 모아 놓은 선기를 벌써 3할이나 축내시면 어떻게 합니까?”

“쪼잔하기는! 여기 아저씨가 있는데 내가 선기 좀 먹었다고 걱정이냐?”

“주인님, 제가 쪼잔한 게 아니라…….”

비휴가 울상을 짓고 한립을 쳐다보았다.

“이번 문제만 해결되면 당연히 네게도 상을 내릴 것이다. 허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없겠지.”

눈동자에서 남색빛을 일렁인 한립이 먼 곳을 응시했다.

* * *

“머리부터 꼬리까지 멀쩡하구나. 다친 데가 없으면 되었다.”

청호가 낙의범을 훑고 고개를 끄덕였다.

“려 선배님과 숙육대인께서 구해주신 덕분입니다.”

“저 인족 녀석 말이냐?”

낙의범의 말에 청호는 검은 방망이를 거두지 않고 한립을 돌아봤다.

“예, 지난번 일까지 더하면 벌써 두 번이나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두 번이나? 그래서 인족의 풍습에 따라 은혜를 갚기 위해 시집이라도 갈 것이냐?”

입꼬리를 끌어올린 육미 청호가 놀리듯 물었다.

“숙육대인…….”

그녀도 상대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정색을 했다.

“인족은 아주 교활한 족속이다. 어떤 때는 우리 호족보다도 더! 가능하면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청호가 갑자기 표정이 달라져서는 낙의범을 한립 쪽으로 냅다 밀어내고 인족의 언어로 소리쳤다.

“어서 아이를 데리고 떠나라!”

진작 이상을 감지하고 있던 한립은 번득 이동해 낙의범의 허리를 감싸고 다시 사라졌다.

육미청호는 낙의범을 보내고는 들고 있던 검은 몽둥이로 허공 어딘가를 내리쳤다. 바로 한립이 쳐다보고 있던 방향이었다.

방망이 끝에서 은빛이 반짝이고 수백 장 너비의 찬란한 별빛 하늘이 펼쳐졌다. 그 별빛 하늘에 느닷없이 금색 태양이 떠올라 검은 방망이와 충돌했다.

쿠콰쾅!

위력이 무궁무진해 보이던 검은 방망이가 금빛에 맞아 쩍! 금이 갔다.

만발하는 금빛 속에서 방망이도 부서져 나가고 인근의 모래 산이 된 숲이 가루가 되었다.

육미청호는 끙! 앓으면서 힘없이 날아가 절벽에 호되게 부딪혔다.

콰르르.

절벽이 무너지면서 육미청호의 하반신이 바위에 묻혔다.

“충령…….”

청호는 입에서 검은 피를 흘리며 금빛 덩어리를 노려보았다.

눈부신 금빛 속에서 거대한 금색 딱정벌레가 모습을 드러내고 무시무시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협곡 방향으로 달아나고 있던 한립은 고개를 돌렸다가 그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곳에 나타난 것은 바로 금동이 감응한 또 다른 서금선이었다.

모습은 금동과 비슷하면서 기운은 태을경 후기에 이르러 있었다. 속으로 쓴웃음을 지은 한립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충령대인!”

거대 청호의 등장으로 주눅 들어 있던 충족 대군이 금빛 딱정벌레를 보고는 용맹하게 수족 대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금선의 출현에 화들짝 놀란 낙청린은 서둘러 육미청호 곁에 딸아이가 있는지 확인했다.

낙의범의 기운을 추적한 그는 딸아이가 한립과 함께 골짜기 입구의 성곽으로 이동한 것을 알아냈다.

“내놓아라…….”

날개를 파닥인 금색 딱정벌레가 웅웅 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콜록……. 아버지 말씀대로 네 놈은 아무리 때려죽여도 죽지 않는 빈대가 따로 없구나! 매번 밟아 죽이지 못하면 다음번에는 더 강해져서 나타나고 말이야. 지난번 전투 이후에 이렇게 강해졌을 줄이야…….

피를 뱉어낸 육미청호가 조소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지 마라…….”

금색 딱정벌레는 차갑게 말하고 앞발을 교차했다. 잠자리 날개처럼 가느다란 수정빛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갔다.

겁에 질린 육미청호는 여섯 개의 꼬리로 바닥을 박차고 간발의 차이로 두 수정빛을 피했다.

멀리서 영목신통을 이용해 전투를 살펴보던 한립은 심장이 철렁했다.

두 개의 광선에 허공의 먼지조차 둘로 잘려나갔고 청호가 있던 산 절벽은 횡으로 갈라졌다.

고공으로 피한 육미청호는 이미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 저 몹쓸 벌레가 저를 괴롭힙니다!”

육미청호의 말에 허공에서 찬란한 별빛이 반짝이고 또 다른 거대한 신형이 등장했다.

거대한 신형은 육미청호 보다 배는 큰 푸른 여우였다.

빼곡하게 은색 주술문자가 새겨진 화려한 금색 갑옷을 걸친 방대한 체구의 여우는 아홉 개의 꼬리를 지니고 있었다.

미간에서 별 무늬들이 반짝이는 구미청호는 금색 딱정벌레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더 강한 기운을 내뿜었다.

“왕!”

낙청린 등 수족 금선들이 흥분해 소리쳤다. 아래쪽 전장에서도 수족 대군 전사들이 몸을 떨며 미친 듯이 공격을 이어나갔다.

“아버지!”

육미청호는 흐릿하게 사라져 구미청호 옆에 들러붙었다.

그런데 금색 딱정벌레는 숙육과 구미청호는 개의치 않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한립은 금색 딱정벌레의 시선이 자신 쪽으로 향하자 뜨끔했다.

비휴가 금동을 삼킨 것이 통할지 알 수 없어서였다. 다행히 금색 딱정벌레의 시선은 곧 멀어졌다.

구미청호는 질책하는 눈빛으로 숙육을 흘기고 앞발로 물빛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푸른빛에 휩싸여 상처가 회복된 숙육이 밝게 웃음 지었다.

“너는 물러가 있거라.”

구미청호의 말에 숙육이 고개를 끄덕이고 뒤쪽으로 피했다.

“충령, 당장 떠나지 않으면 본존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고개를 들어 금색 딱정벌레를 본 구미청호가 쩌렁쩌렁 소리쳤다. 그 소리에 금색 딱정벌레도 눈을 번득이며 구미청호를 바라보았다.

곧 금빛 환영으로 변한 딱정벌레는 구미청호 앞에 나타나 엄청난 속도로 입에서 수정빛을 뿜었다.

그러나 그 순간 구미청호의 몸이 허상처럼 흩어졌다.

팟.

금색 딱정벌레가 멈칫한 사이, 그 뒤에서 구미청호가 나타나 아홉 개의 꼬리로 상대를 휘감으려 했다.

푸른 영역이 구미청호의 몸에서 흘러나와 금색 딱정벌레를 가두고 검은 별빛을 반짝인 아홉 개의 꼬리가 금색 딱정벌레의 몸을 옥죄었다.

화르륵!

구미청호는 몸이 굳어버린 금색 딱정벌레를 향해 입에서 검은 불기둥을 뿜었다.

감당할 수 없는 열기에 허공이 이글이글 왜곡되고 숙육도 두려운 눈빛으로 뒤쪽으로 물러났다.

구미청호는 멈추지 않고 미간의 별무늬에서 별빛 광선을 분출해 거대한 법칙 파동을 검은 불바다 속으로 스며들게 했다.

불길이 더욱 맹렬히 타올라 금색 딱정벌레와 허공을 모두 불사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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