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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65화 (1,522/2,000)

1765화. 분쟁

*

검은 교룡은 한립을 향해 발톱을 휘두른 채 곧장 다른 발톱으로 아래쪽의 금색 연꽃을 노렸다.

그걸 본 한립은 동공을 수축했다.

검은 교룡의 실력이 뛰어나도 무상의 영물로 보이는 금색 연꽃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벽옥비차를 거두고 금빛 둔광으로 변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렸고, 화들짝 놀란 한립은 급히 뒤로 물러났다.

쿠쿠쿵!

늪지 바닥이 갈라지면서 엄청나게 굵은 검은 물체가 치솟아 검은 교룡을 휘감았다.

하늘을 무너트릴 것 같은 강대한 기운이 돌풍이 되어 한립도 낙엽처럼 휩쓸려 뒤쪽으로 튕겨 날아갔다.

그보다 반응이 느리고 몸이 약한 수사였다면 충격으로 몸이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십리 밖에서 겨우 멈춘 한립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늪지에서 솟아오른 천장 산맥 같은 검은 촉수가 교룡을 휘감고 있었다.

커다란 매에게 붙들린 작은 새처럼 교룡은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때 늪지가 진동하고 두 번째 촉수가 솟아올라 교룡을 더 단단히 휘감았다.

“이게 무슨…….”

또 다른 존재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던 한립은 경악스러웠다.

쿠쿠쿠쿵…….

검은 교룡의 뒤쪽으로 거대한 머리통이 치솟았다.

도마뱀을 닮은 머리에 기다란 목을 지닌 짐승은 수탉의 닭벼슬을 지니고 있었다.

검은 교룡보다 수십 배는 큰 괴물은 거대한 촉수를 끌어당겨 교룡을 애벌레 집어삼키듯 입에 넣었다.

‘달아나야 해!’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린 한립은 두려움을 느끼며 진언보륜을 불러내 역행했다. 흐릿한 금빛 그림자로 변해 번개처럼 달아나는 그를 향해 피에 굶주린 괴수의 눈동자가 돌아갔다.

이미 백 리 밖으로 달아난 한립 앞에 불가사의하게도 검은 촉수가 따라붙어 감싸려 했다.

눈앞이 깜깜해진 한립은 어느덧 검은 촉수에 둘러싸여 있었고 사방에서 압박감이 느껴지며 전신의 뼈에서 우드득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낮은 소리로 신음하며 역전하던 진언보륜을 원래 방향대로 회전시켜 금색 파문을 방출했다.

천여 장의 금색 파문 구역이 검은 촉수를 둘러싸고 금색 얼음처럼 가두었다.

콰르릉!

검은 괴수가 으르렁거리면서 힘을 주어 금색 파문을 부수는 사이 뇌전빛이 번득였다.

검은 괴수는 한립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라 괴성을 질렀다.

같은 시각, 만 리 밖에 금색 뇌전이 모여들어 전송진을 이루고 팔이 부러졌는지 이상하게 꺾인 한립이 입가에 피를 흘리며 나타났다.

콰릉!

그는 부상을 돌볼 겨를도 없이 황급히 뇌진을 펼쳐 달아났다.

* * *

울창한 청록색 수풀 위에 뇌진이 만들어지고 한립이 중앙에서 나타났다.

주위를 살핀 그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허리춤과 손에서 하얀빛과 금빛이 반짝이고 금동과 비휴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 놀라 죽는 줄 알았어요. 아까 그건 대체 무슨 괴물이에요?”

이번에는 금동도 기가 눌렸는지 조그만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고 비휴도 놀란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만황 진령이 아니겠느냐.”

“만황 진령이 저렇게 무서운 존재였다고요? 난 또 사막에서 만난 커다란 사수랑 비슷한 줄 알았죠.”

금동이 아직도 혼이 빠진 얼굴로 빠르게 종알거렸다. 그러나 한립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답이 없었다.

“흰둥아, 넌 여기서 태어났다며? 그런데 아무 곳이나 우리를 데려가고 우릴 해치려는 것이냐!”

“누님, 몇 번을 말합니까. 전 만황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엽황수사들에게 잡혀 이곳을 떠났다고요. 맹약까지 맺은 마당에 주인님이 죽으면 저도 좋은 꼴을 못 볼 텐데 왜 일부러 그러겠어요.”

금동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비휴가 서둘러 해명했다.

“아저씨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이곳으로 간다.”

수결을 맺은 한립은 허공에 빛줄기들을 엮어 빛의 지도를 만들어냈다. 그들이 지나온 구역과 대부분 지도의 중복되는 구역을 교삼이 준 지도와 합친 것이었다.

“녹명(鹿明) 언덕…….”

“이곳에서 거리가 그리 멀지 않고, 만황 짐승들이 살기는 하지만 부족들이 서식하는 곳은 아니니 쉬면서 다음 계획을 세워보자꾸나.”

한립은 간단히 설명하고는 벽옥비차를 불러내 출발했다.

이번 일에서 교훈을 얻은 한립은 만황에 대한 호기심을 거두고 비차의 금제를 몇 겹으로 펼쳐 장장 10일간 이동한 끝에 녹명언덕 변두리에 도착했다.

고공에 뜬 한립은 한밤중에도 짐승들이 무리 지어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중 감각이 뛰어난 짐승들은 고공을 향해 포효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딘가를 보는 한립의 눈빛이 이상했다.

사람들이 한 데 섞여 싸움하는 듯한 영기의 파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침음하던 그는 벽옥비차를 거두고 용오(龍五)라 적힌 가면을 써서 순박한 얼굴의 중년인으로 변했다.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소리 없이 다가가자 점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넓은 공터에 나무토막들을 높이 쌓아 불을 피우고 이상하게 생긴 이종족 두 무리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인족을 닮은 이종족 무리는 보통 사람의 체격에 진한 녹색 피부를 지니고 있었고 입가에 기다란 송곳니가 자라나 휘어져 있었다.

그러나 상대편 이종족은 회갈색 피부에 두꺼운 갑옷 같은 비늘이 달린 비대한 두꺼비 인간들이었다.

목이 없고 아래턱과 가슴이 이어진 두꺼비 인간들은 입술이 아주 넓고 두꺼웠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싸움을 관전했다.

각각 수십 명밖에 되지 않는 이종족들은 인원이 많지는 않았으나 공격 수단이 특이했다.

목이 길고 녹색 피부를 지닌 종족은 짧은 피리나 북, 방울들을 들고 불거나 치면서 회갈색 두꺼비 인간들을 공격했다.

두꺼비 인간들은 뱃가죽을 빛내면서 뱃속에서 직접 개구리 소리를 내 각종 벌레들이 목이 긴 녹색 피부 종족을 덮치도록 했다.

요충들 속에는 소나 말처럼 큰 금색 사마귀나 벌도 있었고 검은빛을 반짝이는 딱정벌레들도 있어서 불을 뿜기도 하고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는 짐승들을 부단히 공격하며 밀어붙였다.

싸움이 불리하게 진행되자 푸른 피부 종족 중에서 목이 가장 긴 하얀 동물 뼈 목걸이를 한 사내가 무어라 소리를 질렀다.

쌍방이 부리던 곤충과 짐승의 떼가 싸움을 멈추고 사내가 중얼중얼 말을 하는데 선역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아니라서 한립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흰둥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겠느냐?”

그는 의식 연계로 비휴에게 말을 걸었다.

“만황 종족들이 쓰는 말입니다. ‘도리오’라는 사람에게 향경족(向頸族)은 이미 대대로 지내오던 터전을 포기하고 여기로 이주를 했는데도 쫓아와 죽이냐고 따지고 있어요.”

허리에 푸른 가죽 갑옷을 두른 두꺼비 인간이 앞으로 나서서 우렁차게 무어라 답했다.

“저자가 말하기를, 탄십, 우리 회섬족(灰蟾族)과 너희 향경족은 대대로 원수였다. 그러니 너희가 약해졌을 때 그 뿌리를 뽑아 제거하려 한다. 문제가 있느냐?”

한립이 재촉을 하기 전에 흰둥이가 먼저 통역을 해주었다.

“오만방자한 말이로다. 정말 수족(獸族)과 충족(蟲族)간의 전쟁이라도 일으킬 참이더냐? 수백만 년 전의 끔찍한 전쟁을 반복할 생각이냔 말이다! 다시 한번 수족과 충족 간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우리 수족이 너희들을 멸종시킬 것이다.”

탄십이라 불린 향경족 사내가 화가 나 소리쳤다.

“흐흐, 너희가 일부러 우리를 이곳으로 유인한 사이 네 아비가 부족인들을 데리고 공작강 쪽의 공령부족으로 달아난 것을 모를 거라 생각하느냐? 공령부족은 물론이고 탑상부락과 오돈부락도 충족 각 부에 점령당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도리오가 두툼한 손바닥으로 배를 두드리며 박장대소했다.

“뭐라고? 그럴 리가…….”

“너희가 모시는 진령은 우리 충령대인 앞에서는 낑낑대는 강아지만도 못한 존재다. 우리 수족이 그간 참아온 울분을 이번에야말로 풀고 말겠다!”

놀란 탄십의 표정에 도리오가 더욱 기고만장하게 소리쳤다.

“아무래도 우리와는 상관없는 만황 이종족들 간의 충돌 같구나.”

한립이 흰둥이의 해석을 듣고 있다가 자리를 뜨려 했다. 그때 반지 형태로 있던 금동이 여자아이로 변해 옆에 내려섰다.

“아저씨, 잠깐만 가지 말아 봐요.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금동은 붉게 달아오른 뺨으로 말했다.

“설마 저들이 쓰는 구충술이 너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냐? 가장 강한 자가 진선 수행을 지녔는데 그럴 수가 있는 건가?”

“아, 아직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요.”

의아한 한립을 보고 금동이 떠듬떠듬 답을 하는데, 옆에서 파공음이 들리고 금색 사마귀 두 마리가 낫 같은 앞발을 휘둘러 그들을 공격했다.

두말할 것 없이 두 팔을 뻗어 청죽봉운검을 불러낸 한립은 검기로 금색 사마귀들을 두 동강 내버렸다.

그러자 검은 갑충들이 몰려들어 그들을 포위했다. 회섬족들도 일부가 갈라져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도리오라는 자는 한립과 금동을 훑고 대번에 표정이 달라져 무어라 소리쳤다. 향경족을 향해 분노가 치민 기색이었다.

“뭐라는 것이냐?”

한립은 태연한 얼굴로 의식 연계를 통해 물었다.

“저 두꺼비 인간은 향경족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비열하게도 인족과 손을 잡았다고 욕하고 있습니다. 모시는 진령이 비호를 해주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서요. 목이 긴 자들도 분노해 반박하는 중입니다.”

“인족들이 만황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어…….”

“인족이 아니더라도 선역에서 건너오는 자라면 종족에 상관없이 배척을 받습니다. 누구든 만황구역에 오면 그들의 것을 빼앗고 훔쳐 간다고요.”

엽황수사라는 칭호가 그럴 듯해 보여도 현지에서 살아가는 이종족들에게는 도적에 불과했다.

“저들에게 우리는 그저 지나는 길이라고 그들의 분쟁에 끼지 않겠다고 전하거라.”

한립인 손을 저어 허리춤의 백옥 비휴를 떨구었다.

사람만 하게 커진 비휴가 한립을 돌아본 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만황의 말로 그의 뜻을 전했다.

백옥 비휴와 금동을 본 도리오가 마지막으로 한립을 보며 뜻밖에도 북한선역 공용어를 사용했다.

“천한 인족은 당연히 우리와 수족의 은원에 간섭할 자격이 없다. 그냥 보내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방금 영충 두 마리를 죽인 것은 어찌 보상할 것이냐?”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보거라.”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이 이렇게 말했다.

“옆에 꼬맹이는 남고 나머지는 속히 이곳을 떠나거라.”

도리오는 정확히 금동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말에 한립은 순조롭게 일을 마무리할 수 없음을 알고 탄식했다.

과연 그가 대답하기 전에 금동이 옷자락을 펄럭이면서 나섰다.

“나?”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기운이 치솟아서 주변의 검은 갑충들이 겁먹을 먹고 길을 터주었다.

무의식중에 물러난 도리오가 다른 회섬족 족인들과 무어라 말을 나누고는 향경족을 포위하느라 남겨 놓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영충 전부를 금동을 향해 날려 보냈다.

“너도 가서 돕거라.”

미간을 좁힌 한립의 명에 백옥 비휴가 울부짖으며 몸을 키워 뛰쳐나갔다.

검은 딱정벌레들이 몰려들어 백옥 비휴를 둘러쌌지만 그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벌레들이 물어뜯는 것을 막아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입을 쩍 벌린 비휴는 강력한 흡입력으로 주변의 딱정벌레들을 모조리 흡수했다. 이에 향경족 족인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쪽을 살피다 백옥 비휴를 향해 놀란 눈빛을 보냈다.

사사사삭!

한편 금동은 커다란 금색 딱정벌레로 변해 앞을 가로막는 영충들을 가루로 만들고 있었다.

그걸 본 도리오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대경실색했다.

인족 중년인은 나서지도 않고 영충과 영수만 움직이는데 그의 영충 대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탄십이 그걸 보고 기뻐하며 만황의 언어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소리에 사기가 충만해진 향경족 인사들이 분분히 휘하의 요수들을 부려 회섬족의 영충들을 뚫고 나가려 했다.

도리오는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깨닫고 소리를 지르면서 족인들에게 철수를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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