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4화. 보물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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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곳이네요.”
금동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만황구역의 풀과 나무들은 전부 이렇게 크기가 큰 것이냐?”
한립은 비휴를 향해 물었다.
“만황의 수목과 덩굴풀들은 원래 이렇습니다. 다른 지역의 나무들이 너무 작은 거지요.”
비휴가 답하는 소리를 듣고 한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 이곳 요수들의 성질이 포악해서 흉수(凶獸)라 부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겠다, 주의하마.”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끼끼끼! 거리는 사나운 울부짖음이 들리고 머리에 암홍색 뿔이 하나 달린 검은 원숭이들이 나무 뒤에서 연달아 튀어나와 한립을 덮쳤다.
그러나 한립은 손가락을 까딱해 푸른 빛으로 검은 원숭이들을 둘로 갈랐고 피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정말 성질이 포악하긴 하구나.”
그 모습에 한립은 내심 마음이 놓이는 면이 있었다. 만황구역에 이르렀다는 것은 어느 정도 북한선역에서 벗어난 셈이니 천정의 추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교삼이 준 지도와 원황성에서 따로 구한 만황구역 지도를 꺼내고 벽옥비차를 불러냈다.
“가자, 어디 한번 이곳을 잘 살펴보자꾸나.”
* * *
비차의 문양이 반짝이자 하얀 안개가 자욱하게 일었다. 하얀 구름 속에서 비차는 기운과 모습이 모두 가려졌다.
공수구가 지니고 있던 벽옥비차는 연구하면 할수록 쓸만한 신통이 많았다.
그는 의식을 퍼트려 반나절을 날아가다 희색을 드러내며 좌측으로 비차를 틀었다.
잠시 후 지면이 괴이한 검은 색이고, 그 안에서 자라는 물풀도 새까만 거대한 습지가 나타났다.
흑니소택(黑泥沼澤)이라 지도에 적힌 습지는 교삼이 내준 지도의 노선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제대로 방향을 잡았으니 노선으로 향하면 그만이었다.
“아저씨, 여기 좀 특별해 보이지 않아요? 뭐가 있나 찾아볼까요?”
“흑니소택이 여러 지도에 표시가 되어 있다는 것은 진작 엽황수사들이 들락거렸다는 뜻일 것이다. 시간을 허비할 만한 보물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야.”
“그렇기도 하네요! 그럼 어서 가요!”
고개를 끄덕인 금동은 어서 한탕을 하고 싶어 주먹을 문지르고 있었다.
“비휴, 네가 천지보물을 찾는데 능하다고 했었으니 이제 솜씨를 발휘해 보거라. 무엇이든 보물을 찾으면 3할은 네 것이다.”
“정말입니까!”
한립의 말에 비휴가 깜짝 놀라 몸을 바르르 떨었다.
“물론.”
“그 약속 지키셔야 합니다.”
씨익 웃음 지은 비휴가 두 눈을 번득였다.
“안 돼! 아저씨, 나도요!”
“네 몫도 있다. 다만 게으름 피우지 말고 보물을 얻는 데 힘을 보태야 할 것이야.”
그 말에 그제야 금동의 얼굴이 밝아졌다…….
* * *
닷새 후 연달아 펼쳐진 산맥 위에 한립 일행이 나타났다.
하얀 안개가 바다처럼 펼쳐진 산맥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무척 신비로웠다.
“찾았다.”
이곳이 교삼이 내준 노선에 표시된 한 지점이었다.
“주인님, 물 속성 영기가 농염해서 산맥 안에 꽤 많은 재료들이 느껴지는데 찾아올까요?”
코를 킁킁대던 비휴가 말했다.
“그래, 이곳에서부터 시작하자.”
한립의 손짓에 벽옥비차가 주변의 하얀 구름을 꿈틀거리면서 산맥으로 진입했다.
구름 금제에 둘러싸인 비차 덕에 며칠 동안 흉수의 습격을 받지 않고 만황 깊은 곳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엽황 수사들도 한두 명 지나쳤는데 어제오늘은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3천 리 밖에 10년 이상 되어 보이는 영초가 하나 있습니다.”
비휴가 아래쪽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쉼 없이 냄새를 맡았다. 한립은 비차에 법결을 던져 넣어 속도를 높이고는 산골짜기 사이의 저지대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사슴뿔 모양의 암홍색 영초가 자라고 있었다.
“녹용초(鹿茸草).”
부상 치료에 효과가 좋아 진선 이상의 수사들도 많이 찾는 영초였다.
쉭!
그때 기다렸다는 듯 산골짜기 안쪽에서 커다란 녹색 구렁이가 튀어나와 사나운 눈빛으로 그들을 공격했다.
한립은 푸른 검기로 단박에 구렁이를 베어내고 조심스럽게 녹용초를 뿌리째 캐냈다.
“좌측 2천 5백리 지하에 진귀한 재료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비휴가 알려준 곳으로 이동하니 지하에서 남색 광석이 나타났다. 안에서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물의 기운이 가득한 광석이었다.
한립 일행이 산맥에 진입한 지도 어느새 보름이 넘어갔다.
비휴는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보물들을 잘도 찾아내서 각종 재료와 영약을 거의 백 개 가까이 챙길 수 있었다.
“주인님, 전방 3천 리 앞에 영초의 기운이 있습니다……. 와, 2, 30그루는 되겠는데요?”
비차 위에서 몸을 일으킨 비휴가 의외라는 듯 말했고 한립이 속도를 높였다.
“자유초(紫幽草)!”
순식간에 어느 평지에 도착한 한립은 그윽한 향을 풍기는 보라색 영초들을 보고 탄성을 내뱉었다.
천화단 약방의 또 다른 주재료인 자유초를 이렇게 많이 찾아냈으니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쉬쉬쉬쉭…….
막 푸른빛으로 자유초들을 취하려는데 가느다란 남색 빛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허공이 진동하는 것으로 보아 진선 수사의 공격수단이었다.
의식으로 미리 주변을 살폈는데 누군가 숨어 있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가 놀라 무언가 신통을 펼치려는데 금동이 튀어 나갔다.
“아저씨, 내가 갈게요!”
통통한 아이의 열 손가락이 바삐 움직이고 금색 수정빛이 교차해 커다란 연꽃을 이루고 남색빛을 막았다.
파파파팍!
폭음이 들렸지만 금색 연꽃은 무척 단단해서 남색 빛을 모조리 막아냈다.
이에 한립은 그곳에서 시선을 거두고 푸른 거대 손을 만들어 보라색 영초들을 토양과 함께 파내 거두었다.
벽옥비차를 움직여 금동이 향한 방향으로 날아간 그가 눈을 크게 떴다.
그를 기습한 것은 보통 사람보다 몇 배는 크고 전신에 남색 털이 자란 괴인 다섯 명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진선급 기운을 품고 있었고 가장 수행이 높은 자는 금선경 수행을 지니고 있었다.
입에서 그륵그륵 거리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주문을 왼 괴인들은 몸을 남색 보호막으로 두르고 가느다란 남색빛을 날리는 중이었다.
남모(藍毛) 괴인들은 한립이 자유초를 챙기자 대노해서 더 많은 남색빛을 날리고 우두머리 괴인은 입에서 빛의 칼을 뿜어 금동과 한립을 베려 했다.
그러자 금동이 코웃음을 치며 수결을 변화시키자 빙글빙글 돌던 연꽃의 꽃술에서 수많은 금색 바늘이 날아가 남색빛을 터트렸다.
게다가 남색빛을 제압한 금색 수정빛들이 빼곡하게 뭉쳐 빛의 칼날까지 구멍을 내고 남색털의 괴인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퍼퍼퍼펑…….
위기를 느낀 괴인들은 쪽빛 물처럼 지하로 스며들어 종적을 감추었다.
그 모습에 한립은 자신이 의식으로 그들을 감응하지 못한 이유를 깨달았다. 아까도 이런 식으로 잠복해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굳이 괴인들을 쫓지 않자 금동이 왜 그러냐고 물으려 했다.
“그냥 가게 두거라.”
“왜요?”
“저들은 만황 흉수가 아니라 인근에 사는 만황 이종족들이다. 무턱대고 쫓았다가 큰일이 날 수 있어.”
“저런 남색 털 원숭이들은 백 명이 몰려와도 상대할 수 있다고요!”
“만황 이종족을 얕보아선 안 된다. 대부분 종족에는 사수와 비슷한 만황진령들이 버티고 있어 우리가 순조롭게 만황구역을 지나려면 함부로 척을 져서는 안 될 것이다.”
한립의 나지막한 충고에 금동도 대형 사수의 실력을 떠올리고 더는 따지지 않았다.
“주인님, 만황 사정을 그리 잘 아시는 줄 몰랐습니다.”
비휴가 나른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한동안 만황구역에서 돌아다녀야 한다면 알아둘 것은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겠지.”
한립은 원황성 안에서도 만황구역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자 무상맹에 큰 금액을 걸고 자료를 구했다.
“만황 이종족들은 엽황수사들을 원수처럼 대한다니, 반드시 누군가 복수하러 올 것이다.”
“에이, 재미없어. 쉬고 있을 테니까 재미있는 일 생기면 불러줘요!”
금동이 하품을 하며 그의 손으로 날아들어 반지로 변했다.
바로 날아오른 벽옥비차는 남색털이 있는 이종족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보물찾기를 미뤄두고 전력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하얀 안개 산맥을 벗어난 벽옥비차는 광활한 평원으로 들어섰고 멀리 먹색의 나무들이 가득한 숲이 보였다.
“이상하네. 천지영기는 짙은데 재료의 기운이 안 느껴져…….”
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둑한 숲으로 들어간 한립은 비휴의 혼잣말에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숲속에는 영초가 극히 드문 것은 물론 만황 흉수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헉! 주인님, 저쪽에서 강력한 영력 파동이 느껴집니다. 무언가 있는 듯합니다.”
반나절을 날아가다 벌떡 일어난 비휴가 눈을 번득였다.
한립은 서둘러 벽옥비차의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검은 진흙 늪 쪽으로 빠져나왔다.
크고 작은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오는 늪은 썩은 내와 보라색 독무가 가득했다.
“비휴, 이곳에 보물이 있단 말이냐?”
“틀림없이 늪지 깊은 곳에 무언가 있습니다. 찾으시면 제 공로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럼 가서 보자꾸나.”
반신반의하며 늪지대로 들어간 그는 곧 비차를 멈춰 세웠다.
흑자색 독무가 어찌나 짙어지는지 주위가 밤처럼 새까맣게 변했고 늪에는 각종 요수의 새하얀 뼈들이 흩어져 있었다.
“더 들어가야겠느냐?”
“주, 주인님……. 이곳이 맞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습니다. 그냥 돌아가시는 게…….”
비휴가 비차 바닥에 엎드려서 웅웅거렸다.
“네 직감대로 보물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원래 귀한 재료나 보물 곁에는 그것을 지키는 강력한 요수가 있기 마련이었고, 그의 수행에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마주치면 달아나면 되었다.
늪지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백골의 수량이 많아져서 곳곳에 작은 뼈의 산이 세워져 있었다.
“주인님, 저곳입니다!”
비휴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뼈의 산 틈에 형성된 맑은 연못에 금빛 찬란한 연꽃이 자라고 있었다.
금빛 무늬가 자리한 9개의 꽃잎을 따라 연꽃 위로 금색 무지개 9개가 걸려있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한립은 눈이 번득 뜨여 다가갔다.
금색 연꽃이 발산하는 농염한 향기만 맡아도 몸이 편안해지고 선규들이 기운을 받아들이려 커지고 있었다.
막 다가가서 자세히 살피려는데 돌연 멀리서 하늘을 찌르는 괴성이 들려왔다. 혼백이 진탕되어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한 소리였다.
“……!”
강대한 의식을 지닌 한립도 순간 휘청거리다 몸을 가누고 표정이 급변했다.
그 순간,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나 그림자를 드리웠다.
몸집이 얼마나 큰지 사막에서 마주친 대형 사수보다도 큰 교룡을 닮은 짐승은 새까만 비늘이 가득 달린 몸과 검은 뼈 가시가 솟은 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몸통 아래로 자라난 커다란 발만 네 개나 지니고 있었다.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금색 연꽃을 확인한 검은 교룡의 스산한 시선이 비차에 탄 한립에게로 이동했다.
“아이고, 주인님. 저는, 저는 좀 피곤하네요!”
비휴가 앓는 소리를 하며 냉큼 하얀 빛으로 변해 그의 허리춤의 장신구로 돌아갔다.
촤악!
뜨거운 바람과 함께 곧바로 거대한 교룡 꼬리가 날아들었다.
주변 공기가 달라진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거대한 꼬리가 코앞에 이르러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가를 듯한 기세를 뿜고 있었다.
급히 수결을 맺은 한립 앞으로 청죽봉운검 세 자루가 나타나 재빨리 크기를 키웠다.
콰콰쾅!
푸른 거검 세 자루 표면의 검빛이 대부분 흩어지며 튕겨 나간 대신 꼬리도 속도가 느려졌다. 그 틈에 한립은 쓴웃음을 지으며 벽옥비차를 뒤쪽으로 물리면서 청죽봉운검을 불러들였다.
검은 교룡은 대형 사수보다도 강력한 요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