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763화 (1,520/2,000)
  • 1763화. 만황으로

    *

    파삭! 파사삭!

    허공에서 인면갈 떼의 껍질과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선박의 승객들이 몸을 가누고 안심을 하는데 한립이 급히 아래 사막을 내려다보았다.

    “큰일이구나, 아래쪽에도 사막 요수가 있다. 선체를 갉아 먹고 있어…….”

    바로 상황을 파악한 한립이 소리치자 다들 기겁해 난간에 붙어 아래를 바라보았다.

    금색 칠이 된 선체에 모래 요수들이 꿈틀거리며 붙어 구멍을 뚫고 있었는데 더욱 심각한 일은 다른 요수들보다 크기가 큰 것들이 이미 용골까지 미친 듯이 파먹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모래 요수는 눈코귀가 없어 머리 쪽에 날카로운 이가 붙은 동그란 입이 없었다면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꼬리인지 구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호송사도 안색이 달라졌다. 용골이 부러지면 선박이 약해져 만황대륙에 이르기 전에 부서질 게 뻔했다.

    표정이 심각해진 그는 선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번개처럼 아래로 내려갔다. 사수(沙獸)들과 인면갈은 인간 수사가 날아드는 것을 알아차리고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호송사는 눈에 보일 정도로 분명한 검은 파문을 전신에서 뿜어 영역을 펼쳤다.

    다른 요수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겨우 배 주위로 펼친 영역이었으나 검은 안개에 휩싸인 사막 요수들은 하얀 거품처럼 부식되어 버렸다.

    체형이 큰 사수들조차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피와 살이 녹아 분홍색 거품으로 변했다.

    “역시 금선 수사의 실력이란…….”

    “저게 영역이란 것이겠지요? 대단합니다!”

    “호송사 대인답습니다!”

    지켜보던 승객들은 찬사해 마지않았으나 한립은 돌연 표정이 달라져 금동을 데리고 선미 쪽으로 질주했다.

    크하악!

    곧바로 뱃머리 방향의 사막이 활화산처럼 터지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인면갈과 작은 사수들이 기어 나왔고, 곧이어 선박보다 두 배나 큰 거대 사수가 튀어나와 몸을 꿈틀거리면서 시뻘건 입을 벌렸다.

    뱃머리를 지키던 호송사가 무척 당황한 기색으로 둔광을 일으켜 달아나려 했으나 거대 사수의 입에서 암홍색 소용돌이가 생겨나 영역을 무시하고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했다.

    콱!

    거대 사수의 입안으로 호송사와 선박 절반이 씹혀 들어갔다.

    동력을 잃은 선박은 자연히 추락했고 선실에 들어가 있던 수사들은 달아나지 못하고 인면갈과 작은 사수들에게 둘러싸였다.

    삽시간에 모래사막에 끔찍한 비명과 절규가 울려 퍼졌다.

    운이 좋거나 발이 빠른 백여 명의 진선경 수사들이 요행이 살아남은 것을 제외하면 그 외의 수사들은 전부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 빨리 달아나라고 소리치고 남은 수사들도 사방팔방으로 튀어 나가 살길을 찾으려 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한립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석천공은 어디 있지?’

    겨우 거대 사수에게 목숨을 잃을 자가 아니었다.

    그가 금동을 데리고 만황대륙 방향으로 날아가려는데 거대 사수가 바로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금선 중기의 실력을 지닌 사수라지만 그가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눈살을 찌푸린 한립이 손을 쓰려는데 금동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아저씨는 나설 것 없어요. 내가 처리할게요.”

    흥분한 금동이 한립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날아올라 금색 딱정벌레의 모습으로 변해 거대 사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잠시 멈칫한 한립은 말리지 않고 뒷짐을 지고 허공에 떠서 눈으로 금동과 거대 사수를 쫓았다.

    금동이 날아가며 휘두른 앞발에서 백여 개의 섬뜩한 금색 수정빛이 날아가 사수의 왼쪽과 오른쪽을 갈랐다.

    거대 사수도 금동의 수행을 감지하고 멈췄고, 주변 모래에서 굵직한 모래 기둥이 치솟아 금색 수정빛을 막았다.

    은은하게 법칙 파동을 발산하는 모래 기둥은 아주 단단해 보였다. 눈을 번득인 금동이 금색 수정빛에 더욱 힘을 불어넣어 수정빛들을 융합했다.

    두 줄기의 눈부신 금색 무지개가 모래 기둥으로 떨어졌다.

    푸푹!

    금색 무지개가 모래 기둥 중간을 뚫고 그대로 거대 사수에게 날아갔다.

    사수는 피할 생각도 없이 입에서 암홍색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는데 이전에 금선 수사를 죽일 때보다 배는 거대했다.

    금색 무지개가 갑자기 방향을 틀면서 암홍색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

    한립의 눈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으나 나서지는 않았다.

    금빛을 크게 일으킨 금동이 스스로 금빛 덩어리가 되어 사수에게 달려들었다. 시뻘건 입을 힘껏 벌린 사수도 암홍색 소용돌이에서 밝은 빛을 발했다.

    강대한 흡입력이 금빛 덩어리를 감싸고 인근 허공이 무너지듯 자글자글해졌다. 금빛 덩어리는 휘릭 돌면서 사수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팟.

    한립 허리에 달려 있던 백옥 장신구가 번득이며 비휴가 떠올랐다.

    “주인님, 누님이 삼켜졌는데 구하러 가지 않아도 됩니까?”

    “괜찮다.”

    비휴의 말에 한립이 가볍게 웃음 지었다.

    “그래도…….”

    비휴가 놀라 무어라 말하려는데 거대 사수가 발작하듯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말이 끊어졌다.

    크학! 크하학!

    거대한 몸으로 사막을 구르는 것이 보통 아픈 게 아닌 듯했다.

    푸확!

    눈부신 금빛이 커다란 구멍을 남기고 사수의 몸을 뚫고 나왔고, 상처에서 연한 노란색 진액이 흘러나왔다.

    연달아 이런 소리가 반복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거대 사수의 몸에 구멍이 늘어나고 있었다.

    “괜히 걱정했습니다!”

    비휴가 그걸 보고 고개를 젓더니 다시 한립의 허리춤으로 돌아갔다.

    거대 사수가 고개를 쳐들고 처절한 비명을 지른 후 몸이 펑! 하고 터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그 안에서 날아오른 금색 딱정벌레는 금동이었다.

    반짝반짝 광택이 돌던 금색 껍질이 살짝 탁해진 것 말고는 크게 다친 것 같지 않았고 발에 커다란 노란 수정을 들고 있었다.

    희미하게 안에서 암홍색 소용돌이가 회전하며 법칙 파동을 내뿜었다. 그 모습에 한립은 오히려 눈썹을 끌어올렸다.

    거대 사수가 죽기 전에 지른 비명이 심상치 않다 여겨서였다.

    그가 곰곰이 생각하는 사이 금색 딱정벌레가 날아들어 그를 한 바퀴 빙 돌며 웅웅 거렸다.

    “아저씨, 처리했어요! 상은 안 줘요?”

    “먹을 것을 마음껏 내주마. 그보다 수정을 살펴봐야겠다.”

    미소를 지은 한립이 손을 뻗어 금동이 든 수정을 가져가려 했다.

    “이건 내 거예요.”

    금동은 딱 그의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물러나 어린아이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번득하고 노란 수정을 숨겼다.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니 어서 떠나자꾸나.”

    고개를 저은 한립이 벽옥비차를 불러내려는데 이변이 생겼다. 아무 징조도 없이 사막이 흔들리고 거대한 모래 파도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사막 아래에서 방대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지!’

    한립이 서둘러 금동을 붙들고 등 뒤로 금색 날개를 펼쳤다. 바로 풍뢰시였다. 요란한 번갯불이 번득이고 그가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떠난 직후 아래쪽 사막이 갈라지면서 거대한 머리가 튀어나와 음산한 이를 드러냈다.

    백여 리 밖 허공에 뇌전을 번득이고 나타난 한립은 금동이 죽인 거대 사수보다 10배 이상 큰 대형 요수가 사막을 뚫고 나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대형 요수는 거의 태을경에 가까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 표정이 신중해진 한립은 바로 달아나지 않았다.

    낯선 사막에서 생각 없이 마구 돌아다니다가 다른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 산봉우리만 한 사수는 눈이 없었지만 분노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전해졌다.

    거대한 입에서 수시로 노호성을 터트려서 주변 허공이 다 덜덜 떨렸기 때문이었다.

    사수는 그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모래 속에서 튀어 올랐다. 방대한 몸에 속도는 빨라서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혀 왔다.

    주변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면서 감당할 수 없는 흡입력이 한립을 대형 사수의 입속으로 끌어당겼다.

    금동이 흉흉한 눈빛으로 막 튀어 나가려는데 그가 손을 뻗어 잡아 놓고 말없이 법결을 던져 금색 반지로 만들어 버렸다.

    대형 사수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한립은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가 수결을 맺었다.

    고리 형태의 금색 파랑이 순식간에 퍼져 금색 영역을 이루고 대형 사수의 몸 절반을 감쌌다.

    금색 영역 안에서 사수의 행동이 느려진 만큼 흡입력도 약해져서 한립은 풍뢰시를 이용해 가볍게 움직일 수 있었다.

    콰릉!

    그는 번득 사라졌다가 대형 사수의 뒤통수에서 나타나 금털로 뒤덮인 거원으로 변해 암녹색 거검을 들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굵은 초승달 모양의 암녹색 검빛이 만들어져 주술문자를 품고 법칙 파동을 발산했다.

    대형 사수도 머리 뒤의 상황을 파악하고 서둘러 거대한 입을 다물면서 노란 빛으로 피부에 장막을 만드는 동시에 몸을 비틀어 피했다.

    그러나 한립의 금색 영역 때문에 속도가 감소한 데다 워낙 몸집이 커서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목덜미에 초승달 검빛을 맞고 말았다.

    푸슉!

    검빛에 길게 갈라진 상처에서 옅은 노란색 피가 샘솟았다. 한립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상처 자체는 작지 않았지만 대형 사수의 몸집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다.

    그때 대형 사수가 미친 듯이 날뛰면서 전신에서 노란빛을 뿜어 주변 백리를 영역으로 뒤덮었다. 노란 영역에 갇힌 한립은 중력이 백 배는 강해진 느낌이었다.

    쉭!

    그가 무언가 하려는데 파공음이 들리고 대형 사수가 시간 영역에 제약을 받지 않은 꼬리로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시간 영역에 진입해 속도가 줄었으나 여전히 빠른 움직임이었다. 이에 한립은 기합을 넣고 암녹색 거검을 휘둘러 이를 막았다.

    쾅!

    굉음이 울려 허공이 크게 울렸다!

    한립이 변한 거원은 짚단처럼 사수의 거대한 꼬리에 맞아 날아가 모래사막 깊숙이 처박혔다.

    몸 절반이 모래에 박힌 한립은 입가에 금빛 피를 흘리고 손아귀가 찢어져 있었지만 중상을 입지는 않았다.

    지면의 모래가 마치 물처럼 소용돌이치면서 금색 거원을 둘러싸고 아래로 끌어당겼다.

    인근에 숨어 있던 사수 여러 마리가 튀어나와 그를 덮친 것이었다. 금동이 죽인 사수의 비슷한 크기의 사수들은 금선급 기운을 내뿜었다.

    대형 사수도 바로 몸을 돌려 그를 향해 거대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한립은 서둘러 회전을 하고 암녹색 거검을 빙글 돌려 세 자루의 청죽봉운검을 불러내 주변을 가르게 했다.

    강렬한 검기들이 허공을 찢고 날아가 한립이 모래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풍뢰시에서 금빛 뇌전을 방출한 한립은 사수의 영역 안이라 3할 정도밖에 뇌전의 힘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일단 십 리 밖으로 벗어나 대형 사수의 입을 피했다.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한립이 다시금 풍뢰시를 번득이면서 한 줄기 금색 뇌전으로 변해 어느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대형 사수가 분노해 쫓았으나 전력으로 뇌둔술을 펼친 한립에 비해서는 늦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었고 드디어 사수의 영역을 벗어난 한립은 뇌진을 이용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쾅!

    한립이 감응 범위에서 사라져 버리자 대형 사수가 분통을 터트리며 거대한 꼬리로 모래를 내리쳤다.

    * * *

    나무가 무성한 산 위에 갑자기 파문이 일고 금색 뇌전빛이 퍼져 진법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립은 이미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고 암녹색 거검과 청죽봉운검 세 자루가 평범한 크기로 돌아가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의식을 퍼트려 사수가 쫓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한립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아저씨, 왜 달아나고 그래요! 내가 그 녀석 뱃속으로 들어가고 아저씨는 밖에서 공격하면 금방 없앨 수 있을 텐데요!”

    금동이 그의 손에서 날아올라 투덜거렸다.

    “어린 사수도 너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는데 큰 사수는 또 어떤 신통을 지니고 있을지 누가 알겠느냐? 이곳은 그들의 영역이니 어서 떠나야 한다.”

    “주인님 말씀이 맞습니다! 안전이 제일입죠, 괜히 위험을 무릅쓸 것 있겠습니까.”

    한립의 말에 비휴의 목소리가 백옥 장신구 안에서 들려왔다.

    “흰둥이! 아저씨 말은 맞고 내 말은 틀렸단 거야? 아주 며칠 안 맞아서 몸이 근질근질하지?”

    금동이 대노해 냉큼 달려들어 백옥 장신구를 깨물었다. 비휴가 크게 소리치며 열심히 용서를 구했다.

    “그만하거라. 이제 만황구역에 진입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한립이 금동의 땋은 머리를 잡아 그들을 떨어트려 놓았다.

    그러나 금동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 상태로 백옥 장신구를 향해 이를 드러냈고 비휴는 더이상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제야 한립은 원시림 형태의 생기가 가득한 만황구역을 볼 수 있었다. 천지영기는 북한선역의 질 좋은 영맥이 흐르는 산에 못지않았지만 영기의 흐름이 혼란스러웠다.

    커다란 용수나무의 가지 위에 내려선 그는 10명이 나란히 앉아도 넉넉할 만한 가지의 굵기에 감탄했다.

    북한선역에도 기후가 온화한 지역이 있었지만 이렇게 크고 잘 자란 용수나무는 처음 보았다.

    용수나무뿐만이 아니라 그가 익히 알고 있던 다른 나무들도 훨씬 크기가 커서 무언가 술법에 걸려 그의 몸집이 아주 작아진 기분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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