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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61화 (1,518/2,000)

1761화. 요족 사내

*

한립이 북적이는 어느 재료 가게로 들어갔는데 뒤를 보니 따라 들어오는 이가 없었다. 그의 뒤를 졸졸 따라오던 금동이 종적을 감춘 것이었다.

의식 연계를 통해 금동의 위치를 찾아보니 예상대로 먹거리를 파는 어느 노점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립은 굳이 금동을 불러들이지는 않았다.

수행으로 북한선역 전체에서도 최상급인 금동이 원황성에서 위험에 처할 일은 거의 없었다.

“손님,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말씀해 주시면 찾아드리겠습니다. 저희 가게에는 없는 물건이 없고 가격은 원황성에서 가장 저렴한 편입니다.”

푸른 옷을 입은 점원이 다가와 말을 붙였다.

“내가 알아서 보겠네.”

손을 저은 한립은 구경을 계속했고 점원은 알겠다고 답하고 묵묵히 뒤를 따랐다.

다채로운 물건들이 가득한 진열장을 보며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한선역의 다른 대륙들과는 떨어져 있었지만, 그의 안목을 넓혀줄 만한 독특한 재료들이 많았다.

특히 요수 재료들은 그가 모르는 것도 많았다.

다행히 장궤가 섬세한지 재료에 대한 설명과 용도가 상세하게 적혀 있어 공부도 되었다. 그러나 빠르게 가게 안을 돈 한립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특이하고 보기 드문 재료들이지만 진선경 이하의 수사들이나 필요로 할만한 품질의 물건들이었다.

“고계 재료들을 찾으십니까? 이곳에는 일반적인 재료들만 있어 진귀한 재료들을 보시려면 2층으로 가셔야 합니다.”

거리를 두고 따르던 시종이 그의 표정을 보고 다가와 계단을 가리켰다.

“알겠네. 올라가서 보지.”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고 시종을 따라 2층으로 향했다.

1층에 비해 물건이 훨씬 적어 일고여덟 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한립의 눈이 밝아졌다.

영력이 충만한 재료들 중에 금선급 재료도 두 가지나 섞여 있었다.

“이건…….”

그는 하나씩 물건을 살피다 중간의 주홍색 등나무 비슷한 영초를 발견했다.

“천홍등(天虹藤)입니다. 구하기 어려운 재료인데 며칠 전 어느 엽황 수사에게 구해두었지요.”

“직접 살펴야겠으니 꺼내 주게.”

한립의 말을 들은 시종은 영패를 꺼내 진열장의 금제를 풀고 조심스레 영초를 꺼내 주었다.

가까이에서 살핀 한립은 기분이 좋아졌다.

천홍등은 <화남단경>에 적힌 금선급 단약 천화단(天華丹)의 주재료였다.

“내가 사겠네. 가격은 얼마인가?”

이미 금선급 단약 청명단(靑冥丹) 재료들을 구해두었지만 다양한 단약의 재료를 모아둘수록 좋았다.

“천홍등은 진선 이상의 수사에게 유용한 재료로 십만 년 이상 된 것이라 선원석 350개는 주셔야 합니다.”

시종이 머뭇거리다 가격을 말해주었다. 선원석 350개면 진선 후기 수사에게도 큰 액수임에 틀림없었다.

“여기 있네.”

“예!”

한립은 대충 선원석을 내주었고 실적을 올린 시종은 표정이 밝아졌다. 선원석이 2백만 개도 넘게 있는 한립에게 그 정도는 별것도 아니었다.

한립은 그곳을 나와 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를 반나절 동안 돌며 적잖은 재료들을 찾아냈다.

만황구역에 인접한 성답게 북한선역의 번화한 거대한 성보다 규모는 작아도 진귀한 재료들이 많았다.

천화단 주재료는 찾았지만 아직 구하지 못한 재료들이 많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청명단은 기본적으로 소진한이 미리 약방의 재료들을 모아두어 쉽게 구비를 마칠 수 있었다.

재료상점들이 몰려있는 거리를 벗어나 잡화상들이 밀집한 거리로 들어선 한립은 어느 커다란 상점에 들어갔다가 하얀색 옥간을 들고 나왔다.

장궤의 말에 따르면 엽황 수사들이 알아낸 정보를 모아 만든 만황구역 지도가 담겨 있다고 했다.

물론 위험한 만황구역에 직접 들어가 정보가 진짜인지 확인할 수는 없으니 장궤도 지도의 진위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해 참고만 해야지 이걸 완전히 믿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한립은 이런 무책임한 소리는 처음 들어봐서 웃어야 할지 인상을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옥간에 의식을 불어 넣고 지도상의 하얀 구역과 회색 구역을 보았다.

하얀 구역에는 원황성 인근의 지형과 서식하는 요수와 자라는 영초 등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는데 회색 구역은 모든 게 모호하고 내용도 뜬구름을 잡는 식이었다.

지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하얀 구역은 장궤의 설명대로면 원황성 성주가 사람을 파견해 조사한 관방지도였다.

한립은 교삼이 준 노선도가 담긴 옥간을 불러냈다.

이 지도에는 원황성을 시작으로 흑산선역으로 가는 노선이 담겨 있었지만 나머지 구역은 비어 있었다.

두 지도의 내용을 서로 대조하다 보니 교삼의 지도와 원황성 성주가 공표한 관방 지도의 내용은 딱 맞았지만 회색 구역에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립은 다른 잡화점들을 돌며 수십 개의 각기 다른 지도를 모으기 시작했다.

정확한 정보든 아니든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아야 그 속에서 진짜를 찾아내 만황구역을 지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해가 저물어 가고 거리에 박힌 하얀 수정돌들이 은은한 빛을 발하자 한립은 의식 연계로 금동의 위치를 찾으려 했다.

분명 아직 원황성 내였는데 혼백 각인이 미미하게 진동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현상은 금동이 전투하며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나 벌어지던 것이었다.

그는 금동의 위치를 추적하다 거대한 원형 궁전 앞에 도착했다.

커다란 정문으로 많은 인파가 들락거리고 있었으나 격투장인 내부는 금제가 펼쳐져 있어 상황을 알 수 없었다.

한립은 서둘러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검은 대전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규모가 컸고 8개의 투명한 금제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 금제 밖에서 수많은 이들이 몰려들어 구경하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무대에는 흉악하게 생긴 요수들이 수사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전투는 무척 치열해서 한쪽이 승기를 잡으면 피와 살이 튀었고 그럴 때마다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대전 중앙에는 각각의 무대에서 싸우고 있는 요수들의 이름과 다음 순서를 안내하는 거대한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것을 훑은 한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전에도 이런 곳을 보았지만 그리 좋아하는 곳은 아니었다.

그는 근처에 있는 무대 옆에서 익숙한 기운을 찾고는 한숨을 쉬며 걸어갔다.

“어서 뛰어서 피해! 그래, 갈기라고 갈겨! 꼬리로 팍……. 아이 참, 왜 그렇게 느린 거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금동은 붕붕 날뛰면서 소리를 지르느라 한립이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두 마리의 요수가 격전을 펼치는 무대만을 향해 있었다.

흑자색 도마뱀을 닮은 요수는 꼬리에 은색 바늘들이 빼곡하게 자라 있었고 사자와 호랑이를 닮은 상대편 요수는 머리에 커다란 뿔이 나 있었다.

요수들은 만황규역에서 서식하는 포악한 성정의 요수들이었는데 요력을 봉인하고 무대에 가둬 서로 싸우게 한 듯했다.

한데 엉켜 있는 짐승들은 이미 피투성이였고 비늘과 털이 수북하게 빠져 굴러 다녔다.

금동은 도마뱀 요수를 응원하는 듯했는데 외뿔 요수에게 점점 밀리고 있었다.

크학!

결국 외뿔 짐승이 도마뱀 요수를 물어뜯어 버리자 벼락과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에잇, 바보 같은 도마뱀!”

금동은 씩씩거리면서 발을 굴렀다.

“하하, 금 낭자 이번에는 제가 이겼습니다!”

“한 판 이겼다고 잘난 척하지 마세요!”

금동 옆에 있던 보라색 장포를 입은 청년이 웃음을 터트리자 금동이 입을 삐죽였다.

그걸 본 한립은 내심 이상했다.

자신 외의 다른 수사들에게 반감을 지니고 있던 금동이 낯선 사람과 이렇게 쉽게 친해진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암암리에 자포 청년을 훑은 그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겉으로는 진선경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지만 강대한 그의 의식으로 상대가 자신과 같은 금선 중기 수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청년이 풍기는 특수한 기운으로 보아 그는 인족이 아닌 요족 수사였다.

“금동.”

“어, 아저씨! 어떻게 찾아왔어요?”

한립이 부르는 소리에 금동이 종종거리며 달려왔다. 자포 청년도 그녀의 반응에 몸을 돌려 한립을 살폈다.

청년은 구불구불한 긴 머리에 얼굴은 매우 준수했고 옅은 보랏빛의 눈동자가 맑고 투명해 보였다.

한립을 살피는 청년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순간적으로 보랏빛이 일렁였다.

“시간이 늦었는데 돌아오지 않아 데리러 온 것이 아니냐.”

“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요? 노느라고 몰랐어요. 아저씨도 같이 구경해요!”

혼내는 듯한 한립의 말투에 금동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씩 웃어 보였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시지?”

“이 녀석이요? 석천공이라고 아까 사귄 친구예요!”

“엽황 산수인 석천공이라 합니다.”

자포 청년이 웃으며 다가와 한립을 향해 공수했다. 손을 들어 올릴 때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뚝 피부에 자잘하게 보랏빛 비늘들이 보였다.

“저는 려비우라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금 낭자와 이야기가 잘 통해서 함께 내기하며 구경을 좀 하였습니다. 그 일로 큰 불편을 겪으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금동이 워낙 제멋대로인 성격이라 석 수사께서 돌봐주셨다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한립도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럼 다행입니다. 아, 금 낭자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두 분은 막 원황성에 와서 만황구역으로 가실 예정이라던데, 저도 보름 후에 선박을 타고 만황구역으로 가려 합니다. 괜찮으시면 동행을 해도 될까요?”

석천공은 시원시원한 성격인지 열정적으로 제안했다.

“호의는 고맙습니다만 저희는 따로 일정이 있어서요.”

“그렇습니까? 정말 아쉽게 되었습니다.”

한립의 완곡한 거절에 석천공이 유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석 수사, 저희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기왕 여기까지 오셨는데 조금 더 구경하다 가시지 않고요.”

석천공이 급히 만류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이 있던 무대에서 다시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음 무대가 시작되는 듯했다.

귀를 쫑긋 세운 금동도 계속 구경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저는 이런 데는 관심이 없어서요. 괜히 수사의 흥을 깰까 염려되어 먼저 가봐야겠습니다.”

한립은 미소를 유지하며 아쉬움이 그득한 금동을 데리고 입구로 향했다.

석천공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갔다.

* * *

“금동, 어쩌다 저자와 같이 있었던 것이냐?”

한립이 검은 대전을 나서며 입을 열었다.

“에이, 말도 마세요! 자꾸 내기에서 날 이기려고 하더라고요.”

팔짱을 낀 금동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네가 느끼기에 어떤 자인 듯싶으냐?”

“기운이 나랑 비슷해서 그런지 다른 수사들보다는 싫지 않았어요.”

“네가 그리 느끼기 쉽지 않은데 말이다.”

“이상한 점이라도 있어요?”

“내력이 분명치 않은 자이니 앞으로 마주치면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네! 다음번에 만나면 조심하고 절대 내기에서 지지도 않을 거예요!”

금동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한립은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곧장 연묘원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튿날 다시 거리로 나온 그는 만황구역에서 사용할 단약들을 구한 뒤 다시 거처로 돌아가 가끔 바깥에서 일어나는 소식만을 전해 들었다.

안전을 위해 금동도 성안에서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했다.

모래지대에는 흙 속성 재료도 나오고 모래 알갱이로 이루어진 특수한 요핵을 지닌 사막 짐승들도 살고 있어서 적잖은 원황성의 수사들이 변두리에서 작은 짐승들을 사냥하거나 재료들을 구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모래지대로 나갔다가 실종되는 수사들이 많아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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