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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56화 (1,513/2,000)

1756화. 실종

*

“어찌 된 것이냐?”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이 입을 열었다.

“안심이 되지 않아 오라버니와 염우를 함께 보냈습니다. 이제 대승기에 이른 영수니까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려고요. 그런데 오라버니 쪽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몽천천이 난색을 표했다.

눈을 번득인 한립이 의식으로 푸른 새와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

“운귀 등은 맹지국 황궁의 어느 금지에 갇혀 있다는 구나.”

“려 대인, 제가 가서 오라버니를 구해올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어째서 내게 구해달라 청하지 않는 것이지?”

“제가 우둔해도 대인께서 급히 북한선역을 떠나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도중에 저희를 살피러 와주신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어찌 대인의 앞길을 막을 수 있겠는지요.”

“대승기에 이른 염우에게 중상을 입혔다는 것은 상대가 훨씬 강하다는 뜻이다. 거기다 맹지국과 이곳의 거리가 상당한데 네 오라비가 네가 도우러 갈 때까지 버틸 수 있겠느냐?”

“그건…….”

“같이 가보자꾸나. 시일이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닌 것을.”

말문이 막혀 머뭇거리는 몽천천을 향해 한립이 담담히 말했다.

“아저씨, 그럼 이 다친 새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까요?”

몽천천이 대답하기 전에 금동이 옆에 와서 히죽 웃고 있었다. 푸른 새 염우가 금동을 보더니 기겁해 날아오르려다 부상이 심한지 고꾸라졌다.

“치료할 수 있겠느냐?”

“당연하지요. 요 며칠 팔찌 속의 경전들을 얼마나 공부했다고요.”

“네가 경전도 읽는 줄은 몰랐구나. 먹는 것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절 너무 얕보는 거 아니에요, 아저씨? 읽어보니까 다 어렴풋이 알겠던데 이게 천부적인 자질이 아니고 뭐겠어요.”

금동이 조그만 얼굴을 부풀렸다.

“그래서 염우를 어찌 돌봐줄 것이냐?”

“간단하죠.”

한립의 질문에 금동은 단약 하나를 꺼내 새의 입에 넣어 주었다.

염우는 순식간에 입안에 들어온 단약을 삼키고서도 그녀를 향해 경계심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쓸데없이 예민하기는, 우리 흰둥이가 낫지. 흰둥이 너는 근데 왜 또 거기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어!”

입을 비죽인 금동이 한립 허리에 걸린 백옥 비휴 장식으로 향했다.

“또 나야…….”

백옥 장식이 부르르 떨면서 달갑지 않은 목소리를 냈다.

“선심 써서 같이 맛있는 거 먹자고 불렀더니 나오지도 않고 말이야!”

“범인들이 먹는 음식에 관심 없다고요.”

“너 그 말 후회하지마!”

금동이 씩씩거리며 말했지만 백옥 비휴는 아무 말 없이 웅웅 거리기만 했다. 갑자기 끼어든 금동 덕에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한립은 단약 몇 개를 따로 꺼내 몽천천에게 주고 염우에게 먹이라 했다.

“위치는 알겠으니 넌 가서 요양하면 된다.”

한립은 곧장 벽옥비차를 꺼내 몽천천과 금동을 태우고 출발했다.

* * *

고운대륙 남부, 맹지국의 수도 호운성.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 호운성은 백성들도 집 밖으로 함부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한밤중의 거리는 고요했고 등불도 켜지 않은 집이 허다한 가운데 간혹 완전무장한 병사들만 순찰을 돌았다.

적막한 성의 다른 곳과 달리 호운성 남부의 황실은 등불이 밝게 밝혀져 있었고 수많은 금의군들이 양심전(養心殿) 뒤쪽의 어화원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수백 명의 병사들은 영기의 파동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전부 수사들이었다.

병사들의 수장은 보라색 비단 장포를 걸친 하얀 수염 노인으로 호리호리한 몸에 신선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연허기 중기 수사였다.

노인은 암암리에 맹지국을 관리하는 수도세가 서 가의 노조 서수였는데, 그는 하얀 눈썹을 찌푸리고 표정이 좋지 못했다.

보름 전인가 원래 맹지국을 다스리던 손 씨 황족의 후인이 운 가 사람과 나타나 전대 황조의 신하들과 협력해 손쓸 틈도 주지 않고 황실까지 쳐들어왔다.

서 가 노조인 서수가 서둘러 출관했을 때는 서 가 수사들의 절반 이상이 죽거나 다친 상태였고 꼭두각시처럼 부리던 황제는 연일 충격을 받아 마음의 병을 얻더니 돌연 죽어버렸다.

서수는 비록 수행이 더 높았지만 무슨 기연을 얻었는지 수행이 급격히 늘고 귀한 법보들을 줄줄이 불러내 사용하는 손 가와 운 가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대승기 영수인 푸른 새까지 나타나 그것과 싸우다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배후의 고인이 제때 나타나 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노조, 역도들이 마른 우물 속에 숨은 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은인께서 주고 가신 진법이 두 시진 내로 내부의 금제를 제거할 수 있을 겁니다.”

얼굴에 사마귀가 난 중년인이 노인에게 예를 올리며 보고했다.

“운 가가 맹지국에 머문 세월이 있는데 이 금제에 얼마나 많은 자원을 쏟아부었을지 모를 일이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다 제거해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야.”

“은인께서 요수를 쫓아가시지만 않았어도 벌써 금제를 깨트렸을 텐데요…….”

중년인이 별생각 없이 중얼거린 말을 듣고 서수가 배은망덕하다고 혼내려다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자 노란 빛줄기가 밤하늘에서 내려와 우물 옆으로 떨어졌다.

“은인을 뵙습니다…….”

서수가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고 다른 수사들은 바닥에 꿇어앉아 감히 고개도 들지 못했다.

“…….”

노란 장포를 걸친 평범하게 생긴 청년이 힐끗 서수 옆에 엎드린 중년인을 보고 손을 까딱였다.

서걱!

중년인의 머리가 떨어지면서 피가 서수를 적혔지만, 서수는 긴장한 낯으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청년은 무표정한 얼굴로 중년인의 원영을 끌어와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어찌 되었지?”

“두 시진이면 금제를 깨트릴 수 있다고 합니다!”

“기다릴 수 없다. 이걸 처리하고 난 다시 종문으로 돌아가야 한단 말이다. 오늘부터 너희 서 씨 가문이 석기전에 바치는 공물의 양을 두 배로 늘린다.”

그 말에 서수의 마음이 더없이 무거워졌다.

안 그래도 서 씨 가문이 맹지국에서 개발한 화양사(華陽砂) 광맥의 산출물 절반을 공물로 바치는데 배로 늘리면 힘만 들이고 이익은 남기지 못할 것이다.

“왜, 문제 있나?”

대답이 없자 청년 사내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아, 아닙니다. 은인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몸을 떤 서수가 서둘러 답하고 청년이 다섯 손가락에서 각각 노란 부적을 한 장씩 날렸다.

우물 입구에 떨어진 부적들이 밝게 빛나며 내부로 쏘아져 들어갔다.

쿠쿵!

흐릿한 금빛에 장막이 맹렬히 흔들리다 그대로 부서졌고 일고여덟 개의 빛줄기가 급히 그 사이를 빠져나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흩어지기 전 거대한 오색 우산이 고공에서 활짝 펼쳐져 빙글빙글 돌면서 수사들을 가두었다.

진작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서 가 수사들도 병장기를 들고 험악한 얼굴로 몰려들고 있었다.

우물 옆에 선 우직하게 생긴 청년이 우람한 체구의 철탑 같은 사내를 부축했다. 바로 몽운귀와 손부정이었다.

그들 주위에 내려선 몽웅 등도 전부 중상을 입고 있었다.

“운귀, 이번에 내가 자네에게 큰 빚을 지었네. 이번 생에는 갚을 수 없을 듯 하니 다음 생에도 벗으로 만나세!”

중상을 입은 손부정은 불안정한 호흡으로 말했다.

“하아, 천천이를 혼자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걱정일세.”

몽운귀가 탄식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손부정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짙어졌다.

“너희가 죽고 말고는 내가 정할 문제 같은데?”

우산을 거둔 청년이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잔말 말고 죽일 테면 죽이시오!”

손부정이 그걸 보고 대노해 소리쳤다.

“사문이 어디인지, 그 많은 법보는 어디서 났는지 말해 보거라. 푸른 새는 정체가 무엇이지? 솔직히 답하면 자비를 베풀어……. 너희 중에 1명은 살려 보내주마.”

유유히 말하는 청년의 목소리에 손부정이 움찔했다. 자신 때문에 이 일에 말려든 몽운귀라도 살려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죽이기 전에 내력을 확인해 깔끔하게 정리하고 종적을 감추려는 것은 아니고요?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니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시지요.”

몽운귀가 나서서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하하, 난 분명 기회를 주었으니 원망하지 말거라!”

사내는 음산하게 웃으며 오색 부채를 던져 올렸다. 우산이 빙글빙글 돌며 수많은 주술문자를 뿌려대자 오색 기운이 몽운귀 등을 향해 몰아쳤다.

‘천천아…….’

평온하게 마음을 정리한 몽운귀의 머릿속에 앳된 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모든 이들이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허공에서 불쑥 하얀 손이 나타나 거대한 우산을 거두어간 것이다!

컥!

청년은 법보와 연계가 끊어지자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밤하늘에 벽옥비차가 떠 있고 그 위로 세 사람이 보였다.

“려 대인, 천천아!”

몽운귀가 그들을 알아보고 반갑게 외쳤다.

손부정 등 다른 이들도 절망스럽던 표정이 확 밝아졌고, 몽웅은 아예 눈시울이 붉어져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려 대인을 뵙습니다…….”

그들은 바닥에 절을 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운귀, 잘했다.”

한립은 고개를 끄덕였고 몽운귀가 무엇을 말하는지 몰라 아연한 가운데 손부정은 후회스러운 얼굴을 했다.

려 대인이 그가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신분과 사문을 밝히지 않은 것을 칭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순간의 실수로 신분을 밝혔다면 려 대인이 노해 그들이 죽든 말든 관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오라버니!”

몽천천이 곧장 마차에서 뛰어내려 몽운귀 등 옆으로 다가가 백옥 자기 병에서 노란 단약들을 꺼내 나눠주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여태까지 오만한 얼굴을 하고 있던 청년이 겁먹은 눈빛으로 서 있었고 서수 등 서 씨 수사들은 덜덜 떨면서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넌 석기전 사람이냐?”

한립이 청년의 복색을 보고 물었다.

“서, 선배님께 아룁니다. ……후, 후배는 나화라 하옵고, 석기전의 외문 제자입니다.”

청년이 겨우 정신을 집중해 답했다.

비록 대승기 최고봉의 수행을 지녔지만 석기전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어 한눈에 상대가 자신과 급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오, 그럼 고승을 아느냐?”

“선궁에서 당직을 서시던 고승 장로님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뜻밖의 질문에 나화가 의아해하며 반문했다.

“그래, 비승대에서 당직을 했었지.”

“고승 장로님께선 수백 년 전에 실종이 되셨습니다. 종문에서도 오랫동안 찾아다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하고요.”

“실종이라……. 어쩌다 실종이 된 것이냐?”

미간을 좁힌 한립이 생각에 잠겨 물었다.

“후배는 고작 외문 제자에 불과해서 고승 장로님의 실종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선배님의 양해를 구합니다.”

나화는 자신이 만족스러운 답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덜덜 떨었다. 그때 한립이 돌연 손을 뻗어 허공을 쥐었다.

턱!

나화의 몸이 종이 인형처럼 떠올라 어느새 그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서, 선배님 살려주십쇼!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면…….”

한립은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나화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다 그의 미간에 손을 짚고는 추혼술을 행했다.

파삭!

잠시 후 안색이 어두워진 한립은 눈이 뒤집혀 죽은 나화를 바닥으로 내리쳐 산산조각 냈다. 연신술로 철저히 영성을 잃은 원영도 그 순간 가루가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수 등은 기함해 뒤로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들의 눈에 하늘과 같던 나화가 까무잡잡한 젊은 사내에게 반항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다.

진작 바닥에 넙죽 엎드려 있던 서 가 수사들은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추혼술을 행해 의식에 펼쳐진 금제까지 제거한 한립이 버럭 화를 낸 것은 나화가 한 말이 전부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외문제자가 아니라 석기전 정보수집 기관인 망라전(網羅殿) 제자로 고승의 행적을 쫓다 맹지국까지 온 길이었다.

후에 이곳에 화양사 광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사익을 챙기려 서 씨 가문이 운 가를 대체하게 한 뒤 손 씨 황족을 멸해 맹지국을 손에 넣었다.

석기전 대장로의 직전 제자인 고승이 실종된 일로 당시 종문 전체가 떠들썩했다. 어느 신비한 인물과 관련이 있을 거란 사실만 알려져 그자의 초상화가 떠돌았는데, 그 신비한 인물이 바로 한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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