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5화. 무저동(無低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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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킁,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는데요? 배부터 채우고 말하면 안 돼요?”
금동이 코를 찡그리고 주점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한립은 그녀 혼자 여기 두고 갈 수 없었다.
그녀의 식성으로 천운성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아서였다.
“……그래, 나도 속세의 음식을 맛본 지 오래되었구나.”
“어느 집이 맛있을까요?”
금동은 벌써 침을 삼키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인근에 규모가 있는 요릿집이 있더냐?”
“당연히 있죠. 인근에서는 광열루(廣悅樓)와 회춘재(回春齋)가 유명합니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한립의 질문에 몽천천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수없이 오간 길이라 음식이 맛있는 집은 물론 상점들도 꿰고 있었다.
그런데 광열루에 도착하기도 전에 금동이 어느 만두집의 만두에 사로잡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곳의 양고기 만두도 유명해요. 드셔 보세요.”
그걸 본 몽천천이 추천을 했고, 한립의 허락에 세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허리가 굽은 점소이가 날래게 다가와 웃는 낯으로 물었다.
“무엇으로 드릴깝쇼? 저희 가게는 양고기 만두가 최곱니다.”
“찜통에 든 만두 3통이랑 탕도 세 그릇 내주게.”
“알겠습니다!”
몽천천이 은자를 지불하고 점소이가 금방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찜통 3개를 들고 왔다.
진작부터 배고파하던 금동이 양손으로 자기 손보다 큰 양고기 만두 두 개를 덥썩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부드러운 만두피를 뚫고 황금빛 육즙이 흘러나와 고기 향이 물씬 느껴졌다.
‘저 뜨거운 걸!’
행복한 얼굴을 한 금동이 열심히 우물거리는데, 옆에 있던 점소이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린아이가 뜨거운 육즙에 데서 자신이 욕을 먹을까 두려워하는 중이었다.
뜨겁다고 말리려는데 어린아이가 입에 든 것을 꿀떡 삼키고 입가의 기름기를 쓱 닦아내고는 다른 만두를 집어 들었다.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거의 씹지도 않고 삼키는 것 같았다. 그걸 지켜보는 점소이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아저씨, 양고기 만두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인 줄 처음 알았어요! 백 개, 아니 천 개 더 주문해 먹어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금동이 신나 외쳤고, 곁의 점소이는 물론 다른 손님들도 그녀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맛있단 말이냐?”
한립도 기분이 좋아져 물었다.
“네!”
“양고기 만두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나 전부 내오게.”
한립의 말에 등이 굽은 점소이가 움찔해 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돈이 없을까 봐 그러는 줄 알고 미리 은자를 내려던 한립은 문득 자신이 법보와 재료, 선원석을 제외하고 속세에서 쓰는 은자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습게도 성의 누구와 비교해도 지지 않을 만큼 돈이 넘쳐나는 한립이 만두값을 낼 은자는 없었다.
탁.
몽천천이 영민하게 손바닥을 뒤집어 중품 영석을 꺼내 탁자 위에 두었다.
인계나 영계의 범인들보다 수명이 길고 혼백이 튼튼한 북한선역 평민 백성들은 여러 경로로 흘러드는 영석과 같은 신선의 거래 방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천지영기를 함유한 영석을 지니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아 몸이 건강해지고 오래 살 수 있어서였다.
영석 자체가 속세에서 고급 화폐로 통용되어 부유한 상인이나 황실의 관원들이 사용하곤 했는데 몽천천이 내놓은 중품 영석은 이런 작은 시장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진귀한 물건이었다.
주인장으로 보이는 중년 여인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을 듣고 탁자 위에 놓인 중품 영석을 발견했다.
“귀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이렇게 귀한 물건을 저 같은 사람이 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웃으며 다가온 여인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중품 영석을 품에 잘 집어넣었다.
그녀는 신속히 주변의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일 다시 와달라고 말했는데, 손님들도 낯선 이들이 평범한 신분이 아님을 눈치채고 서둘러 일어났다.
“음~ 법보의 맛과는 다른 뭔가가 있어.”
“사저……. 평소에 법보를 먹으며 지낸 거예요?”
금동의 말에 몽천천이 멍하니 물었다.
“당연하지! 성안에 다른 맛있는 것도 있어?”
“골목에 맛이 괜찮은 집이 한둘이 아니에요. 저기로 가면 전병을 팔고, 또 떡이 맛있는 집은 저쪽, 닭고기구이는…….”
몽천천이 서둘러 몇 가지를 추천해 주었다.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금동의 눈이 번득번득 빛나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느낌이 들어! 좋아, 이것들을 다 먹고 다음 집으로 가보자!”
눈이 초승달처럼 접힌 아이가 침을 닦아냈다.
대화 중에도 점소이가 만두 찜통 10개를 가져다 놓았고 그것들은 다 금동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한립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자신 앞에 놓인 양고기 탕을 마시고 있었다. 국물이 진해서 속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맛보지 못한 속세의 맛이었다.
오랜만에 범인들이 지나는 길거리에서 떠들썩하게 식사를 하고 있자니 자연스레 인계의 작은 산골 마을의 정경이 떠올랐다.
‘수행하며 천상의 풍경도 다 보았지만 가장 평범한 풍경 속에 그 나름의 운치가 있구나.’
뜨거운 김이 나는 양고기 만두들이 줄줄이 한립의 상에 올랐다. 금동은 양손으로 만두를 집어 마구 입속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점점 그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느낀 한립은 금동을 끌고 나와 다음 전병 집으로 이동했다.
전병집은 노인이 손자를 데리고 운영하는 작은 집이라 금방 전병이 동이 났다.
노인은 60년 넘게 전병 장사만 해왔기에 독특한 맛과 향이 있어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몽천천은 좋은 음식을 내준 것에 고마워하며 노인에게 은자를 더 내주었다. 금동은 그새 사저 노릇을 하는데 취미가 들린 듯했다. 몽천천은 서둘러 계산을 하고 다음 집으로 넘어갔다.
단팥 찐빵과 참깨 찐빵이 가득한 커다란 냄비가 순식간에 동이 나고 그 다음은 콩가루를 무친 찹쌀 경단이었다.
금동의 얼굴에서 웃음이 그칠 줄 몰랐다.
그녀는 돌풍처럼 골목을 휩쓸고 다니면서 보이는 족족 새로운 음식들을 먹어치웠고 한립과 몽천천은 그 뒤를 따르며 대신 계산을 했다.
해가 지고 나뭇가지 끝에 달이 떴을 때는 거리 절반이 팔 음식이 없어 문을 닫았고 나머지 절반의 주인들은 등불을 켜놓고 아이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식욕 좋은 아이가 씀씀이도 커서 기분이 좋으면 ‘상!’이라고 외쳤고 은자도 아닌 영석을, 그것도 저계 영석도 아닌 중품 영석을 준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뒤였다.
몽천천의 얼마 안 되는 영석들이 오늘 금동에 의해 바닥이 나게 생겼는데 그녀가 입을 떼기도 전에 한립이 보따리 하나를 던져 주어 그녀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다.
보따리 안에는 금품영석이 무려 만 개나 담겨 있었다.
얼마 전 한립이 어느 명한선부에서 어느 금선의 수중에서 빼앗은 것이었다. 자신과 금동 모두 간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속세의 미식을 즐기는데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 후로도 한참이 지나서야 그들은 간신히 광열루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광월루 주인인 살집이 있는 사내가 문 앞에 서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귀한 손님께서 와주셨습니다.”
한립이 보니 축기 후기의 수사였다.
“위층에 자리가 있는가?”
“물론 있습니다! 제가 모시지요.”
장궤가 직접 계단을 오르면서 그들을 안내했고 등불이 훤하게 켜진 위층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인지 아니면 일부러 비워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층 전체를 쓰겠네. 내올 수 있는 음식들을 전부 내와 상에 올리게.”
창가 옆에 자리를 잡은 뒤 몽천천이 2층을 훑고 주문을 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말에 장궤가 기다렸다는 듯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때 금동은 손에 커다란 연꽃 절편을 쥐고 좋아하고 있었다.
“어찌 너 혼자만 있는 것이냐. 네 오라비는 어디에 있고?”
갑작스러운 물음에 몽천천의 얼굴이 처음으로 어두워졌다.
“려 대인께서 돌아오신 것에 너무 기뻐 보고를 드린다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제 오라비와 손 오라버니는 몽웅 등 다른 이들을 데리고 맹지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한립은 익숙한 이름을 들으면서 잠시 기억을 떠올렸다. 몽천천은 그의 미간이 좁아지자 좌불안석이었다.
“맹지국이라……. 원래 너희들의 고향이었던 곳이 아니더냐?”
“맞습니다, 이제는 적국이 되었지만요. 손 오라버니가 화신기에 이르더니 손 씨 황실의 한을 풀겠다며 나섰습니다. 제 오라버니는 말리다가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따라나섰고요.”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광열루의 산해진미들이 차례로 올라왔다. 이에 일고여덟 개의 식탁이 음식으로 가득 찼다.
역시 한립과 몽천천은 젓가락을 들지 않았고 금동 혼자 고개를 파묻고 맛을 보았다. 몽천천은 말이 없는 한립을 보고 불안해져서 두 사람을 대신해 해명했다.
“려 대인의 명을 어기려 한 것은 아닐 겁니다. 다만, 어찌 연락을 취해야 할지 몰라 일단 움직인 것이니 너무 나무라지 말아주세요. 손 오라버니가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도 맹지국의 일을 잊지 않고 있었기에 더욱 수련에 매진할 수 있었을 거예요.”
“괜찮다. 나도 그들에게 복수하지 말라 이른 적 없고 스스로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다면 원하는 것을 해도 무방하겠지. 내 천운성을 찾은 것은 다른 일로 이를 말이 있어서이다.”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고, 난 곧 북한선역을 떠나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떠나려 하십니까? 저희를 데려가 주시면 큰 도움은 되지 못해도 대인을 위해 잡다한 심부름은 할 수 있습니다.”
“위험한 여정이 될 거라 너희들을 데려갈 수는 없다. 이미 너희를 위한 단약과 법보 그리고 수련 공법을 마련해 두었으니 챙겨두거라.”
한립이 저물탁을 주며 하는 말에 몽천천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잃었다.
“또한 이 안에는 기운을 숨기기 좋은 30장의 짐승 가면이 있으니 앞으로는 걱정말고 선역을 돌아다녀도 될 게다.”
“저희를 위해 이런 안배를 해주시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인.”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선역에 풍파가 일 것이다. 운귀 등 다른 녀석들이 돌아오면 바로 흑풍해역의 오몽도로 가거라. 그곳에 이르면 너희를 맞이하는 이가 있을 것이야.”
“존명!”
풍파가 일어날 거란 말에 눈빛이 흔들린 몽천천이 진중하게 답했다. 잠시 몇 마디 오가는 사이 식탁 위의 요리가 싹 사라지고 없었다.
한립은 미소를 지으며 소매를 털어 호언 도인에게 얻어온 술동이 하나를 꺼내 몽천천과 자신의 잔에 채웠다.
몽천천은 과분한 대접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두 손으로 술잔을 받아 들었다.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창밖을 바라보는 한립에게 닿아 있었다.
밤하늘에는 옅은 달빛이 빛났고 밤바람이 조금 서늘했다.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하던 한립은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고 성의 서쪽 고공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어서 몽천천도 무언가를 느끼고 안색이 달라졌다.
“가자.”
족발을 들고 있는 금동을 낚아채고 다른 손으로 몽천천의 어깨를 두른 채 그는 번득 누각 2층에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 사람은 성 서쪽의 관월원에 도착해 있었다.
갑자기 구역의 저택으로 들어간 한립은 고공에서 상처 가득한 몸으로 추락하는 푸른 새를 발견했다.
새도 한립 일행을 발견하고 탁한 소리로 무어라 지저귀고 있었다.
“염우!”
얼굴이 하얗게 질린 몽천천이 거대 새에게 날아갔고 한립도 금동을 놓고 그 뒤를 쫓았다.
갑자기 끌려온 금동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들고 있던 족발을 먹어치우고 기름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푸른 거대 새는 그녀의 눈길을 받고 목을 움츠리면서 몽천천의 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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