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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53화 (1,510/2,000)

1753화. 미행

*

그 모습을 보고 수사들도 남가몽 주위로 몰려들었다.

낙청해는 신중한 얼굴로 남가몽을 부축한 후 수결을 맺어 남색 빛이 다섯 줄기로 갈라져 그녀의 몸 곳곳으로 스며들게 했다.

이에 남가몽이 천천히 경련을 멈추었다.

“대궁주님, 남 사질이 왜 이러는 것입니까?”

백면서생이 물었다.

“이곳에서 이야기할 내용이 아니니 장소를 옮기세.”

낙청해는 굳은 얼굴로 남가몽을 데리고 관란성 내의 조용한 객잔을 찾아 들어갔다.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데다 한정비(寒晶碑)를 무리해서 발동한 게 탈이 난 것이지. 한정비의 한기가 경맥을 침식해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근간을 다칠 것이네. 난 바로 비술을 이용해 치료를 도와야 하니 자네들은 이곳에서 잠시 쉬고 있게.”

낙청해는 객잔 뒤편에 있는 독채에서 백면서생 등에게 간략하게 사정을 설명한 뒤 남가몽을 데리고 들어갔다.

잠시 후 남색 보호막이 독채 전체를 감쌌다.

“대궁주님께서 친히 나섰으니 남 사질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들 휴식을 취하시지요.”

백면서생의 말에 창류궁의 진선 수사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갔고, 그도 다른 별채로 향했다.

검은 수염 노인이 제자리에 서서 낙청해가 들어간 독채를 바라보다 백면서생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철 궁주, 쉬지 않으시고요?”

백면서생이 남색 깃털 부채를 부치다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우리 수행에 며칠 바삐 움직였다고 쉽게 피곤해지겠습니까? 추 궁주와 상의할 일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오, 무슨 일이십니까?”

“명한선부에서 수확은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까?”

검은 수염 노인이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했다.

“그럭저럭 입니다. 그건 어째서 물으시는지요?”

“이번 명한선부 원행은 목표가 태을전이라 곳곳에 있는 많은 보물도 포기하고, 오히려 전투 중에 잃은 보물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대로 종문으로 돌아가도 마음이 편하시겠습니까? 오극궁주 중에 우리 둘만 대궁주를 따라 나와 나머지 셋이 말은 안 해도 속이 편치 않았을 텐데, 대궁주의 성품에 다음에 이런 좋은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그들부터 챙길 테지요.”

“철 궁주, 하실 말씀이 있으면 그냥 편히 이야기해 보시지요.”

검은 수염 노인이 탁자를 탕! 치며 하는 말에 백면서생은 전혀 흔들림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흐흐, 우리가 아무 소득 없이 돌아왔다고 다른 사람도 그러리란 법은 없지요.”

검은 수염 노인이 웃음을 흘리며 바깥을 가리켰다.

“아까 말했던 그…….”

부채질을 멈춘 백면서생도 마음이 끌리는 듯했다.

“그렇습니다. 명한선부에서 나왔으니 적잖은 보물을 지니고 있을 테고, 운이 좋지 않아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고 해도 금선이 평생 모은 가산만으로도 우리 둘이 전투 중에 잃은 것들을 보충하기에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안 됩니다. 상대의 정체도 모르고 함부로 건드리는 것은 반대입니다. 대궁주께서 이미 괜한 사고를 치지 말라고 명하셨고요.”

“대궁주께서야 이미 태을단을 손에 넣으셨으니 무탈하게 돌아가기만을 바라고 계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철 궁주, 대궁주를 욕보이지 마십시오. 대궁주의 모든 행보는 우리 창류궁의 미래를 위해섭니다.”

검은 수염 노인이 대궁주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자 백면서생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흥, 저도 대궁주를 욕보이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허나 이곳으로 전송된 후 급히 떠나는 것으로 보아 분명 우리 사람이 아닌데 왜 건들면 안 된단 말입니까?”

“……그 말씀은 맞지만, 상대의 내력이 분명치 않아 우리 둘이 힘을 합친다고 그자를 처리할 수 있을 거라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추 궁주께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백면서생이 고민하는 것을 보자 검은 수염 노인이 희색을 드러내며 손을 저었다.

노란 빛줄기 두 개가 그의 소매를 빠져나와 황토색 괴뢰들로 변했다. 두 괴뢰는 법칙 파동을 내뿜고 있었는데 손상이 심한지 기운의 기복이 심했다.

“금선 괴뢰!”

깜짝 놀란 백면서생의 얼굴에도 탐심이 어렸다.

“허허, 이제 안심하고 같이 가시겠습니까?”

“이런 보물을 지니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금선 괴뢰 두 마리에 우리 둘이 손을 잡으면 실패할 걱정은 없겠어요.”

백면서생과 검은 수염 노인은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 조용히 객잔을 빠져나왔다.

* * *

한립은 재료상점을 빠져나오며 손에 들린 옥함을 보고 웃음 지었다. 옥함 안에는 황란대륙 특산의 영초, 야광초(夜光草)의 종자가 담겨 있었다.

야광초는 <화남단경>에 기록된 금선급 단약 청명단(靑冥丹)의 재료 중 하나였다.

황란대륙에서도 보기 드문 영초를 혹시 몰라 들른 관란성의 작은 가게에서 찾아내다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는 더 이상 성안에 머물지 않고 바깥으로 빠져나갔고 푸른 빛줄기가 먼 하늘을 향해 날아올라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개의 그림자가 역시 성에서 날아올라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때 한립은 관란성 안의 수사들이 알아볼까 공수구의 벽옥비차를 불러내지 않고 평범한 둔광에 휩싸여 하얀 옥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교삼이 준 지도로 북한선역을 떠나는 경로가 담겨 있었다.

그는 의식을 불어넣고는 미간을 꿈틀했다. 지도에 표시된 노선은 북한선역 서남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의식을 회수한 그는 옥간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북한선역을 떠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인 성궁의 건곤문을 이용하는 것은 안 될 듯했다.

아직까지 윤회전 가면이 뚫린 적은 없으나 천궁의 명성이 대단한 만큼 그 수단도 다양할 것이 분명했다.

이제 남은 길은 만황구역을 가로지르는 것뿐이었다.

허나 교삼의 말만 전적으로 믿고 행동할 수는 없으며, 사실인지는 조사해봐야 했다. 그러나 그 전에 고운대륙에 한번 들를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본 한립은 관란성에서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이유로 제 뒤를 쫓으시는 겁니까?”

그 말이 떨어지자 전방 허공에 복면을 한 노인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아는 사이는 아닌 듯한데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지요?”

한립은 복면 노인을 위아래로 훑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전신의 기운을 가렸지만 윤곽이 어딘가 낯익은 자였다.

쉬쉬쉬쉭…….

그러나 복면 노인은 대꾸도 없이 수결을 맺어 9자루의 백금 비검을 날렸다. 백금 비검은 주술문자와 화염을 휘감고는 바람을 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얀 용처럼 변해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들이 도달하기 전에 날카로운 법칙의 힘이 흘러나와 허공을 진동시켰다. 한립은 픽 웃음을 짓고는 양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우드득!

그는 전신에 금빛이 흐르고 단숨에 산만한 금털 거원으로 변해 암녹색 거검을 들었다. 바로 이번에 얻은 세 가지 선기 중 하나였다.

암녹색 거검이 나타나자마자 표면의 무늬가 반짝이면서 방대한 법칙의 힘이 담긴 은색 주술문자들이 생겨났다.

크앙!

금털 거원이 괴성을 지르며 굵직한 팔로 거검을 휘둘러 하얀 검룡을 내리쳤다.

쿠아앙!

거대한 파도가 하늘에서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검룡이 일격에 흩어져 아홉 자루 백금 비금들이 정신없이 돌며 뒤로 튕겨 나갔다. 한 자루 한 자루의 빛이 어두워진 것이 손상이 매우 심한 것 같았다.

그걸 본 복면 노인은 깜짝 놀랐지만 인근 허공에서 금빛이 반짝이며 검은 안개가 퍼지는 것을 보고 그 안으로 숨어들었다.

검은 안개에 둘러싸여 새까만 바다 요수들이 그를 향해 밀려들고 있었지만 한립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 변화도 없었다.

요수들은 크기가 큰 것은 산봉우리만 했고 기세도 대단해서 금선경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겨우 환술로 나를 상대하려 하다니.”

한립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코웃음을 치고는 암녹색 거검에 힘을 실어 횡으로 휘둘렀다.

쉬이익!

검기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며 무시무시한 기운을 담고 퍼져나갔다.

녹색 기파에 환상들이 거품처럼 사라지고 풍경이 확 달라져 끝없이 펼쳐진 숲으로 바뀌었다.

파팟.

그때 금털 거원 양옆으로 불쑥 황토색 괴뢰 두 마리가 나타나 법칙 파동을 발산했다.

괴뢰들의 손짓에 각각 황토색 빛덩어리가 빠져나가 두 마리의 황토색 용으로 변해 순식간에 금털 거원을 휘감아 버렸다.

두 마리 용들은 꼬리와 머리가 서로 연결되어 굵직한 사슬처럼 거원을 구속했다. 동시에 거원의 뒤쪽에서 복면 노인과 가면을 쓴 백의 사내가 등장했다.

복면 노인은 9개의 백금 비검을 하나로 뭉쳐 화염이 이글거리는 거검으로 만들어 허공을 마구 갈랐다.

검기들이 거대한 수레바퀴 모양을 만들어 거원의 등을 노렸다.

동시에 검은 복면 노인의 몸에서 빠져나온 괴상하게 생긴 검푸른 망치도 화염을 일렁이면서 검기 바퀴를 따라갔다.

백의 중년인 역시 새까만 나무 자를 불러내 거대하게 부풀린 다음 거원을 내리쳤다. 검은 기운이 둘러싼 나무 자의 무게가 상당해서 허공이 왜곡되며 웅웅 울렸다.

중년인의 입에서는 보라색 구슬 열댓 개가 뇌전의 기운을 품고 연달아 날아갔다.

금털 거원은 그걸 보고도 놀라는 기색 없이 자금색 빛을 일으켜 피부를 비늘로 덮고 흉악하게 생긴 두 머리와 네 팔을 자라게 해 삼두육비의 자금마신(紫金魔神)으로 변신했다.

퍼펑!

자금마신은 두 팔로 자신을 휘감고 있는 황토색 용 두 마리를 뜯어내 터트려 버렸다.

성난 파도 같은 선령력을 암녹색 거검에 불어넣은 자금마신은 몸을 휘릭 돌리며 거검을 횡으로 갈랐다.

암녹색 검빛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와 강렬한 법칙 파동을 품고 사방팔방으로 충돌했다.

쿠쿠쿠…….

복면 노인의 두 괴뢰와 하얀 검기의 바퀴, 검푸른 망치는 물론 백의 중년인의 검은 자도 암녹색 검빛에 휩쓸려 암초를 만난 파도처럼 흩어졌다.

보라색 뇌주들이 그 속에서 폭발해 강렬한 뇌전 법칙 파동을 내뿜었으나 곧 암녹색 검빛에 매몰되어 사라졌다.

복면 노인과 백의 중년인은 몸을 휘청이며 수백 장을 밀려나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그들은 입가에 피를 흘리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복면 노인을 사납게 노려본 백의 중년인이 검은 자를 거둘 새도 없이 다급히 몸을 돌려 튀어 나갔고 그걸 본 복면 노인도 따라 달아나려 했다.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어딜 서둘러 가려 하십니까?”

냉소를 흘린 한립이 금색 고리를 등 뒤로 불러냈다. 금색 파문이 주변에 퍼져 백의 중년인과 복면 노인을 뒤덮었다.

“다, 당신은 려…….”

안색이 급변한 백의 중년인이 놀라고 후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금색 파문에 둘러싸여 모든 것이 멈추었다.

복면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자금마신은 수중의 암녹색 거검을 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대한 법칙의 힘을 머금은 거검은 무게도 묵직해서 열반성체 변신을 한 후 사용하기에 적합했다. 수결을 맺어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의 손에서 암녹색 거검도 원래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한립은 훌쩍 백의 중년인 옆으로 이동해 가면을 떼어내고 창류궁 백면서생의 얼굴을 확인했다.

또한 복면노인에게 가서 얼굴을 가린 천을 끌어 내리니 검은 수염이 가득한 창류궁 노인이었다.

미간을 좁힌 한립은 노인의 머리에 손을 대고 칠흑 같은 검은빛을 뿜었다.

금선 수사의 원영은 아주 견고해서 의식의 빗장을 풀고 원하는 기억을 찾기가 어려웠으나 진언보륜으로 모든 것이 천배나 느려진 상황에서는 추혼술도 쉬웠다.

손을 뗀 한립이 눈이 밝아졌다.

“운 좋은 줄 알거라.”

원래 두 사람의 의식을 지우려던 한립은 수결을 맺은 손을 움직였다.

화르륵.

붉은 구슬 두 개가 노인과 중년인에게 떨어져 육체를 재로 만들고 저물법기와 두 원영만 덩그러니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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