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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51화 (1,508/2,000)

1751화. 성하검진(星河劍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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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립은 금동을 푸른 기운으로 감아 조심스럽게 영수대에 넣어주었다.

금동은 영수대에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 상태로 바깥에 두는 것보다는 이게 안전했다.

그걸 본 비휴가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너도 영수대에 들어가 쉬거라. 너도 이 법보와 재료들로 몸조리를 좀 하고.”

비휴가 입을 열기 전에 한립이 영수를 다른 영수대로 회수하며 불필요한 법보와 재료들을 같이 넣어주었다.

홀로 남은 한립은 해역을 내려다보았다.

흑풍도와 청우도 간의 대립으로 급박하게 돌아가던 인근 해역은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며칠 동안 해역을 지나면서도 흑풍도나 청우도 수사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청우도와 흑풍도 간의 쟁투는 북한선궁이 윤회전과 다른 세력이 선부 입구를 찾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꾸며낸 거짓 풍파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명한선부가 이미 강림했으니 흑풍도와 청우도는 계속 싸울 이유가 없었고 흑풍해역이 안정을 되찾았다는 것은 오몽도에는 좋은 소식이었다.

수결을 맺어 벽옥비차를 거둔 한립은 또 느긋하게 며칠을 더 날아가 오몽도 가까이에 이르렀다.

그때 눈썹을 꿈틀하고 멈춘 한립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른 섬 상공에 섰다.

오몽도보다 작고 버들잎처럼 기다란 모양을 한 암석으로 뒤덮인 섬이었다.

한구가 이끌던 한정족이 머물던 섬은 이제 오몽도에 귀속되어 물빛 금제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바로 월화궁에서 장천병의 시공간 초월 때 보았던 곳이기도 했다.

“설마…….”

한립은 즉시 해저로 내려가 의식을 퍼트렸다.

펑!

눈을 번득인 그가 전방 어딘가의 암석을 검기로 갈라 구멍을 뚫고 손을 쑥 집어넣어 진흙이 잔뜩 묻은 청록색 팔찌를 꺼내 들었다.

“아직 남아 있었어!”

의식으로 시공간 초월을 할 당시 금해의 원영이 품고 있던 저물탁이었다.

이제야 그가 아주 오래전 명한선궁이 멸망했을 때로 초월해 금해의 원영이 깃든 다음 모든 일을 겪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장천병을 꺼내 들어 매만지면서 한립은 침묵했다.

영초를 빠르게 숙성시키는 능력만으로도 기함했는데 실제로 시공간을 초월하다니 황당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처음 노도사 능운자의 몸에 들어갔던 일도 과거로 돌아간 것일 수 있었다.

예전에 장천병을 발동해 큰귀 승려와 그의 다섯 명의 제자들을 보았던 일도 곱씹어볼 가치가 있었다.

한립은 곰곰이 생각해보다 병을 넣어두고 손을 저어 해저에 빈 공간을 만들어냈다.

파앗!

청록색 저물탁에서 선원석과 법보, 단약, 경전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선원석이 5, 6만 개는 되었지만 이미 상당한 수량을 확보했기에 그의 눈에 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안에 든 보물들이 전부 비검 법보에 6, 70자루나 된다는 점이 특이했다.

몇 개를 제외하고는 연한 남색에 모양도 똑같아서 한 벌로 된 비검 법보인 듯했다.

마침 그것들도 청죽봉운검과 마찬가지로 72자루였고 은은하게 성광지력을 내뿜어 별빛 속성의 보기 드문 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보 중에서도 최정상급이라 선기와 종이 한 장의 격차밖에 나지 않았으나 청죽봉운검을 지닌 한립은 크게 반색하지는 않았다.

72자루의 별빛 비검들 외에 각각 흰색, 검은색, 녹색의 장검 세 자루도 있었다.

전부 선기급으로 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법칙 파동이 느껴졌다.

하얀 장검을 들어 올린 한립은 도신이 울퉁불퉁해 요수의 다리뼈로 제련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휘웅!

백골 장검을 휘두르자 하얀 바람을 일으키며 뼈에 스며드는 한기를 발산해 강인한 한립의 육체도 바르르 떨리고 주변에 살얼음도 꼈다.

백골 장검이 함유한 법칙은 오직 육체에 작용하는 듯했고 위력이 대단해서 강인한 육체를 지닌 수사들을 상대할 때 좋을 것 같았다.

백골 장검을 옆에 내려놓은 한립은 이번엔 검은 선검을 들어 올렸다. 미세한 암녹색 무늬가 새겨진 새까만 검은 평범한 검보다 짧고 검신이 가늘었다.

동공을 수축한 한립은 시험 삼아 손끝을 그어 보았다.

손끝에 작은 상처가 벌어지며 썩어들어가듯 검은색으로 변했다.

“극독이로군…….”

한립은 손끝에 금빛을 일으켜 퍼져나가려는 독을 제압하고 바깥으로 밀어냈다. 검은 독이 빠진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어 원래 피부로 돌아갔다.

마지막 암녹색 검은 사람만 한 크기로 도신의 물결 문양에서 음산한 한기가 번들거렸다.

세 선기가 함유한 법칙의 힘은 방대해서 공수구나 봉천도 등이 지닌 어떤 선기에도 뒤지지 않았다.

손을 뻗어 마지막 거검을 들어 올리려던 한립의 표정이 달라졌다.

중수진륜보다도 더 무거워 그보다 신체 능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수사라면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련하는 것도 어려울 게 분명했다.

그는 잠시 생각해보다 팔에 힘을 실어 암녹색 거검에서 흐릿하게 검 그림자를 뿜었다.

강대한 법칙 파동이 퍼져나가 훼멸의 기운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립의 손짓에 녹색 검 그림자는 수축해서 빛기둥으로 변해 심해를 갈랐다.

촤악!

해저가 얇은 천처럼 부드럽게 갈라져 엄청난 규모의 골짜기를 만들었고 그 진동으로 한정도가 휘청거리다 한참 만에 안정을 되찾았다.

한립의 눈에 희색이 어렸다.

약간의 힘만 실었는데도 이 정도 위력을 낸다면 제련하고 전력을 다했을 때 주변 천리의 해저를 부수는 것도 가능할 듯 했다.

그때 한정도에서 의식이 퍼져 나와 해역을 수색했다. 바로 한정도에 머무는 산수의 의식이었다.

한립은 딱히 대면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은은한 푸른 파문으로 자신과 방금 만들어 놓은 해저 골짜기를 가렸다.

아무리 수색해도 그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진선의 의식이 사라지고도 한립은 푸른 파문을 퍼트려 놓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암녹색 거검과 나머지 두 검을 치우고 눈에 들어온 것은 단약들이었다.

소진한, 봉천도의 저물대에서 찾은 단약들과 비슷한 급의 상처를 치유하고 해독을 하는 단약들이 가득했다.

그는 단약들을 종류별로 구분해놓고 두 권의 서적과 둘둘 말린 비단을 불러들였다.

색이 바랜 금색과 남색 서적 중 후자가 훨씬 두꺼웠다.

얇은 금색 경전을 훑은 한립은 <호월검결(皓月劍訣)>이라는 검수 공법을 찾아냈고 설명에 따르면 수련을 해서 태을경까지 이를 수 있다고 했고, 같은 검수로서 한립도 참고할 만한 대목이 있는 공법이었다.

다음 남색 서적을 펼친 한립은 책장을 넘기다 눈을 크게 떴다. 각종 현묘한 검술들이 천여 개 가까이 실려 있어 안목을 크게 넓힐 수 있었다.

그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검술뿐 아니라 심마를 참하고 의식을 수련하기 위한 용도의 것까지 다양했다.

어검술(御劍術), 상검술(相劍術), 잉검술(孕劍術)등 검술을 활용한 편법들도 수도 없이 많았다.

검술에 능하다고 자신하던 한립도 이걸 보고서야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곧장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빠르게 내용을 확인해 나갔다.

정교한 검진으로 적을 죽이거나 누군가를 가두고 공격을 방어하는 내용은 물론 검기로 사람의 혈도를 자극해 단련을 돕는 법 등 처음 접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서적의 막바지에 이른 한립이 탄성을 내뱉으며 집중했다.

“대성하검진(大星河劍陣)!”

이름 그대로 성광의 힘을 담은 검진으로 무생도인이 십만 년간 천하의 검진을 참고해 고안한 무생검종 최고의 검진이었다.

더 높은 수행의 수사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살상력이 강한 검진으로, 심지어 이전에 적힌 현란하고 화려한 검술들이 모두 이것을 집대성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하다고 적혀 있었다.

검진을 펼치려면 성광지력을 함유한 72자루의 비검 보물 한 벌이 필요했고 반드시 각 비검의 품질이 좋아야 하늘에서 떨어지는 성광지력을 견뎌 막대한 위력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검진을 펼치는 수사에 대한 조건도 높아서 태을경 이상의 의식의 힘을 지닌 자만이 펼칠 수 있었다.

만일 비검이 36자루뿐이면 금선 후기 수사도 선령력만 충만하면 그럭저럭 검진의 축소판인 <소성하검진>을 펼칠 수 있다고 덧붙여져 있었다.

한립은 <대성하검진>에 대해 알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금선경은 몰라도 옥선의 몸이 되는 태을경 경지의 수사를 죽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성하검진으로 정말 더 높은 수행의 수사를 죽일 수 있다면 얼마나 위력이 대단할지 기대가 되었다.

곁에 모아둔 72자루의 남색 비검을 본 그는 그중 한 자루를 들어 올려 손가락을 튕겼다.

웅!

비검이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면서 맑게 공명했다.

금해가 비검들을 제련한 것은 분명 대성하검진을 수련하기 위해서였을 텐데 당시 성공했었는지는 의문이었다.

일단 비검들부터 대성하검진을 펼치기에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

그의 경우 금선 중기였지만 선령력이 일반 수사들보다 풍부해 소성하검진은 펼칠 수 있을지 몰랐다.

청죽봉운검도 72자루였지만 성광지력을 함유하고 있지는 않았다.

경전에 적힌 잉검술 중에 성두취령진(星斗聚靈陣)을 이용하면 별빛을 끌어들여 비검의 불순물도 제거하고 차차 성광 속성을 지니게 할 수 있었으나 그게 청죽봉운검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불투명했다.

게다가 아직 겨우 세 자루밖에 다루지 못하는 비검을 최소한 36개는 발동할 수 있어야 소성하검진이라도 펼칠 게 아닌가!

쓴웃음을 지은 한립은 나중을 기약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한립은 둘둘 말린 천을 들어 올렸다.

금해의 기억에 따르면 여기에 보물이 숨겨진 곳이 표시되어 있었다. 중얼중얼 주문을 왼 그가 진실안을 발휘해 천에 금빛을 발사했다.

파앗.

일곱 빛깔 파문이 일렁인 천 중앙에서 검은 먹물이 번지듯 복잡한 지형도가 그려졌다.

지도를 본 한립의 미간이 좁아졌다.

온전한 지도가 아닌 일부에 불과해서 어디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천 귀퉁이에 동그랗게 무슨 도안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도 처음 보는 표식이었다.

한립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천을 말아 넣었다.

금해의 기억속 지도에 표시된 곳은 다른 선역이었고 그 오래 세월이 지나는 사이 누군가 이미 보물을 챙겨 갔을지도 몰랐는데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주변을 가린 푸른 파문을 없애고 빛줄기로 날아올라 오몽도로 향했다.

여전히 섬은 봉쇄된 상태로 낙 가 수사들은 폐관 수련에 들어가고 일반 백성들은 안온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어느 마을로 내려간 한립은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민가에 주황빛 석영이 지는 풍경을 꿈처럼 바라보았다.

산촌의 고즈넉한 삶은 바깥의 피로 얼룩진 쟁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였다.

촌민들이 키우는 닭과 오리, 소, 돼지가 우는 소리와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뛰어노는 소리가 예민한 한립의 귓가에 또렷이 울리면서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빠르게 감상에서 벗어났다.

‘이런 흔한 속세의 풍경에 심취하다니 수련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가?’

얼른 의식으로 몸을 점검했지만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한립은 찡그리던 인상을 풀었다.

순간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가벼워지기도 했다.

명한선부에서 살얼음판을 걸으며 긴장을 하고 있다가 오랜만에 속세의 생활을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난 듯했다.

‘보아하니 앞으로는 속세로도 가끔 걸음을 해야겠구나. 심경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겠어.’

힐끗 산촌을 살핀 한립은 훌쩍 날아올라 낙 씨 가문 앞에 소리 없이 떨어졌다.

대문 앞에 고명한 금제인 남색 안개가 드리워 있었지만 한립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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