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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48화 (1,505/2,000)

1748화.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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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동급의 천정 수사를 만날 것을 대비해 하루빨리 수행을 높여야 하는데 상황이 복잡해 북한선역에서는 안심하고 수련에 정진하기가 어려웠다.

“한 수사께서는 전도가 유망한 재목이지만 대도로 향하는 길에는 항상 위험이 가득합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결말에 이르지 않게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교삼이 그를 아래위로 훑더니 뜻밖의 말을 꺼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그냥 하시지요.”

“안 그래도 연신술을 익힌 수사를 천정은 눈엣가시로 여길 겁니다. 거기다 시간법칙까지 연관되어 있으니 이대로 가다간 미래가 없는 꽉 막힌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을 것이고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대도(大道) 근본에 관한 이야기라 여기서 한두 마디로 분명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한 수사께서 막다른 골목으로 걸음하고 싶지 않다면 제가 윤회전의 진정한 핵심 구성원으로 추천을 해드리지요. 윤회전의 비호를 받으면 천정도 쉽게 수사를 어쩌지 못할 겁니다.”

“윤회자가 핵심 구성원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윤회자도 핵심 구성원이 맞습니다. 다만 당시 급하게 일을 처리하느라 본전의 고위층에게 수사의 존재에 대해 알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를 윤회전에 들게 하고 싶으시다면 안 될 것도 없지요. 허나 윤회전이 천정과 힘겨루기를 할 만한 실력이 되는지 의문입니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러 선궁을 거느린 천정처럼 겉으로 보이는 조직과 권세는 없습니다. 하지만 무상맹과 십방루와 같은 지하세력들이 선역에서 암약하는 것을 보셨을 테니 수사께서도 그게 다는 아니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교삼의 말에 한립이 침음했다.

무상맹만 보아도 각종 거래와 정보교환에서 엄청난 경지에 이르러있었다.

그런 무상맹이 그저 윤회전 소속의 여러 지파 중 하나라면 윤회전이 선역에서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립은 여전히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세요. 어차피 언젠가는 우리와 함께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교삼은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답했다.

“어찌 되었든 북한선역에 더는 머물 수 없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군요. 어떻게 하면 이곳을 떠날 수 있을지 가르침을 구해도 되겠습니까?”

“다른 선역을 오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수가 건곤문(乾坤門)을 이용합니다. 명한선군이 북한선역을 관리했을 때만 해도 8곳의 건곤문이 있었는데 그 후로 여러 가지 변고를 겪으며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북한선궁이 관리하는 건곤문이 바로 극성궁(極星宮) 내에 있습니다.

한립의 질문에 교삼이 답을 주었다.

“겨우 하나란 말입니까? 그럼 다른 선역으로 넘어가려면 북한선궁을 거쳐야 한다는 소리 아닙니까?”

그 말에 한립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이 장악한 길을 사용할 수 없기에 우리 윤회전에서도 가장 가까운 흑산선역(黑山仙域)으로 가는 통로를 따로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저 건곤문에 비해 시간과 힘이 더 들 뿐이지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아실지 모르겠지만 각 선역들은 가까이 붙어 있는 극소수의 선역들을 제외하고 대다수가 만황구역으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그 규모가 크든 작든 하나같이 예상할 수 없는 위험이 가득해서 윤회전도 수백만 년의 탐색 끝에 겨우 비교적 안전한 노선을 개척했고요.”

“만황구역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요? 어째서 새로운 건곤문을 만들지 않은 겁니까? 그게 훨씬 안전할 텐데요.”

“건곤문은 평범한 장거리 전송진이 아니라 공간법칙에 정통한 금선 이상의 수사들이 진법대가들과 전력을 다해 상상을 초월하는 자원을 활용해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다른 세력이라면 자원이 부족할지 모르겠으나 윤회전은 아닐 텐데요?”

교삼의 설명에 한립이 웃음 지었다.

“맞습니다. 윤회전의 재력이야 선역마다 건곤문을 만들고도 남지요. 문제는 건곤문 운용에 필요한 공간법칙의 힘을 가릴 수 없어 쉽게 들키고 만다는 점입니다. 천정 영역에 건곤문을 만들어 놓고 얼마나 쓸 수 있겠습니까? 결국에는 그들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만황구역 노선은…….”

“수사도 명목상으로는 윤회자이니 노선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자신을 쳐다보는 한립을 보고 교삼이 하얀 옥간을 내주었다.

“노선에 대해 적혀 있으니 가져가세요.”

“이걸로 저를 윤회전으로 회유하지는 않으십니까?”

“오래지 않아 수사가 원해서 윤회전에 가담할 거라 믿으니까요. 아, 약속했던 연신술 5성 공법도 지금 드리죠.”

교삼이 검은 옥간 하나를 꺼내 높이 던지자 한립이 그걸 받아 내용을 살피고 저물탁 안에 넣어 두었다.

“약속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북한선역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여기서 헤어져야겠네요. 다음에 또 뵙지요.”

교삼은 그 말을 남기고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런데 떠나지 직전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한 수사, 당신의 신중한 성격이 제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과 정말 비슷하네요. 나중에 두 분이 만날 기회가 있다면 잘 통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이 말을 끝으로 붉은 빛줄기로 날아올랐다.

한립은 교삼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지도를 살피자 그가 있는 곳은 지도에 표시된 어느 섬과도 거리가 멀었다.

오래지 않아 그도 지도를 거두고 둔광을 일으켜 오몽도 방향으로 날아갔다. 바닷바람에 미약하게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수만 리를 날아간 그는 가면을 벗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는 속도를 늦춰 느긋하게 주위를 살피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어쩌다 호언 도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명한선부에 들어갔다가 수많은 일을 겪었다.

무사히 벗어나기는 했지만 위험천만한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수확도 적지 않아 수행이 금선 중기에 이르고 시간법칙의 실을 더 응결해 냈으며 영역도 익혔다.

심지어 청죽봉운검과 금동 그리고 서령불새도 기연을 얻어 위력이 강해졌다.

거기다 소진한, 봉천도 그리고 공수구 세 사람의 저물탁 까지 손에 넣었으니 그 안에 어떤 보물들이 가득 들었을지 벌써 기대가 되었다.

반 시진 후, 그의 시야에 세 가지 색의 작은 섬이 들어왔다.

의식을 퍼트려 살피자 날짐승과 들짐승 외에는 사람의 흔적이 없어 그는 곧장 아래로 내려갔다.

섬 동쪽은 울창한 숲이었고 중부는 황토색 산이, 서부에는 검푸른 암석지대가 있어 세 가지 색을 띠고 있었다.

끼끽기긱…….

그가 수풀로 내려가자 수많은 바다새들이 놀라 날아올라 소동이 일었다.

그는 섬 동쪽의 공터에 가부좌를 틀고 금빛을 퍼트려 원형의 보호막으로 섬을 감쌌다.

파파팟.

그 후 손바닥 위로 세 개의 저물탁을, 무릎 위로는 하얀 깃발과 노란 영패를 불러냈다.

운해도(雲海圖)가 그려진 하얀 깃발에는 금색과 은색으로 금전문과 은과문 주술문자들이 적혀 있었고, 깃발 대에는 운록(雲錄)이라는 이름이 각인되어 있었다.

다행히 금제가 걸려있지 않아 약간만 연화시키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듯했다. 한립이 선령력을 주입하자 깃발이 바람을 타고 펼쳐지며 크기가 커졌다.

깃발에서 하얀 안개가 용솟음쳐 만 리를 뒤덮은 구름으로 변하더니 작은 섬 전체를 가려주었다.

섬의 짐승들이 놀라 날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약간의 선령력만을 담았고 보물의 진정한 위력이 발휘되지 않아 섬의 생명체들이 해를 입지는 않았다.

공수구가 급한 마음에 임시로 방어용으로 사용한 이 법보는 사실 공격을 위한 보물이었다.

태을경 초기의 수사가 위급한 순간 불러내 사용했을 정도면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할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하얀 깃발을 거두고 다음으로 노란 영패를 들어 찬찬히 관찰했다. 신비로운 주술문자들이 반짝이는 영패에는 금전문으로 ‘감찰사’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한립이 의식으로 내부를 살피려는데 노란 광채가 표면에 퍼져 의식을 차단했다. 미간을 좁힌 그는 체내의 선령력을 움직여 영패에 불어 넣으려 했다.

우웅!

그때 주술문자들이 맹렬히 영패를 탈출해 고공으로 치솟았다.

화들짝 놀란 한립은 진언보륜을 불러내 금빛 파문으로 일대를 뒤덮었고, 연달아 튀어 나간 주술문자들이 파문에 뒤덮여 속도가 줄어든 사이 손을 뻗어 영패들을 잡아챘다.

파삭!

눈빛이 가라앉은 그는 손아귀에서 꿈틀거리는 주술문자를 힘을 줘 가루를 내버렸다. 그의 추측으로, 빛알갱이로 흩어진 주술문자들은 영패 속에 숨겨진 금제가 분명했다.

공수구 이외의 사람이 발동하려 하면 저절로 촉발되어 천정에 무언가 소식이 전해질 게 뻔했다.

한립은 한숨을 내쉬며 노란 영패를 들고 머뭇거렸다.

자신의 행적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없애야 마땅했지만 중요한 물건 같은데 용도도 모르고 없애기에 아까웠다.

그는 한참 고민한 끝에 결국 영패를 부수지 않고 여러 방법을 이용해 봉쇄한 다음 다시 넣어두었다.

물건들을 거두고 그가 이번에 살핀 것은 소진한의 저물탁이었다.

파아앗.

잠시 연화를 시키고 안에 든 것을 쏟아내자 숲 가득 번쩍번쩍한 물건들이 쌓였다.

그 중 법보만 서른 개가 넘었고 얼음 속성의 자모검(子母劍) 한 벌과 남색 깃발은 법칙의 힘을 함유한 후천선기였다.

그 밖에 소진한이 지니고 다니던 수십 병의 단약 중 일부만 원신을 배양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종류라 알아볼 수 있었고 나머지는 뭔지도 알 수 없었다.

단약들이 함유한 선령력의 양과 발산하는 약성으로 보았을 때 금선 수사들이 복용하는 보조성 단약으로 보였다.

북한선궁 궁주로 북한선역을 다스린 지 오래되었으니 지닌 보물도 꽤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그의 시선을 끈 것은 팔뚝 길이의 하얀 족자 두 개였다.

그중 하나를 불러와 펼치니 맨 오른쪽에 <화남단경(華南丹經)>이라 적힌 것을 볼 수 있었다.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은 얼른 내용을 살폈다.

잠시 후 천천히 족자를 거두는 그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족자에는 다섯 개의 단약을 제련할 수 있는 약방이 담겨 있었다.

하나같이 금선급의 단약으로 마침 그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약방에 적힌 단약에 대한 설명을 보니 그가 새로 얻은 단약 중에 이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입이 귀에 걸리려는 것을 참으며 다음 족자를 불러왔다.

족자에는 깨알 같은 글자가 5천 자 정도 적혀 있었는데 칼날로 적은 듯한 필체는 서늘한 살기를 담고 있었다.

글자들을 보기만 해도 차가운 안개에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고어로 적힌 내용은 다름 아닌 소진한이 평생 물 속성 법칙을 익히며 깨달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다.

한립은 비록 물 속성 법칙을 익히지 않았으나 지기화신이 물 속성 공법인 <흑해중수경>을 익혔고 그도 자주 중수를 사용해 한눈에 족자의 내용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물 속성 법칙을 익히는 수사라면 오매불망할 보물이었다.

한립은 두 개의 족자를 넣고는 바닥에 깔린 재료와 약재들을 쳐다보았다.

약재들은 대부분이 아주 오랫동안 자란 것들이라 금선급 단약을 제련하는데 안성맞춤이었고 재료들은 가장 가치가 높은 천조한수(天造寒水)와 오운정금(烏雲精金)를 제외하고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가 쌓여 있었다.

그밖에도 선원석이 작은 언덕만큼 쌓여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는 즐겁게 물건들을 챙기고 봉천도의 저물탁을 집어 들었다.

파아앗.

푸른 빛이 또다시 한 무더기의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각종 법기와 보물 중에는 후천선기가 3개나 되었는데, 검은 뼈로 이루어진 장도, 새까만 직사각형 벼루 그리고 종이가 넘어가지 않게 눌러두는 문진이 후천선기들이었다.

한립은 후천선기에 심어진 금제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갔다.

검은 골도(骨刀)의 양측에는 초승달 모양의 핏빛 고랑이 파여 있어 은은하게 살기를 발산했고, 별다른 문양 없이 곳곳이 갈라진 벼루는 평범해 보였는데 선령력을 불어넣자 갈라진 틈에서 검은 화염이 치솟았다.

하얀 문진은 만황사자 머리 모양을 하고 선령력을 불어넣으면 커져 산만한 웅크린 사자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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