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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44화 (1,501/2,000)

1744화. 어째서

*

낙청해 등 다른 수사들도 각자 비슷한 수법을 이용해 백무 인영을 벗어나 다른 방향에서 공수구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내 기영술(氣影術)을 알아차렸단 말인가? 너희들을 내가 만만히 보았구나……. 허나 그런다 한들 또 어떠한가.”

가볍게 웃음을 지은 공수구는 팔짱을 끼고 숨겨 두었던 왼손을 촥 펼쳤다.

백무 인영들이 무언가에 끌려가듯 순식간에 호언 도인 등 앞으로 이동해 길을 막아섰다.

“법칙의 힘을 쓰지 않는다고 이길 수 있을 듯싶더냐?”

공수구는 쥐를 쫓는 고양이처럼 흥미롭게 물었다.

그런데 그때, 등 뒤로 금색 파문이 일고 한립이 청죽봉운검을 들고 나타나 공수구의 허리를 갈랐다.

푸른 검 끝에서 금색 뇌전이 튀어나와 허리를 가른 순간, 공수구가 하얀빛으로 번득 빛나고 한립을 닮은 안개 투영으로 변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공수구와 백무 인영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백무 인영이 뇌전 검기가 두 조각이 나 흩어지고 머지않은 허공에 나타난 공수구가 동공을 수축했다.

“시간법칙의 힘……. 네가 려 가더냐?”

처음으로 인상을 찡그린 공수구의 물음에 한립은 대답 없이 기습이 먹히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촉룡도에서 도 장로의 아들 도우를 죽인 녀석의 성이 려 씨이고, 진언화륜경 등 시간공법을 익혔다던데 네가 맞느냔 말이다.”

공수구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맞습니다. 그자는 제가 죽였습니다.”

피식 웃은 한립이 당당하게 인정했다.

“내가 너를 잡아다 도 장로에게 넘겨주어도 그리 웃을 수 있는지 보겠다. 아마 네 원영과 정혼으로 영혼정(嬰魂灯)을 제련해 도우의 위패 앞에 두고 십만 년은 서서히 타들어 가게 두겠지. 그게 어떤 느낌일지 상상은 가느냐? 차라리 그냥 죽어 금혼단이 되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공수구는 금방 이전의 인자한 얼굴로 돌아갔으나 어투는 점점 더 음산해졌다.

“다른 건 모르겠고 금혼단은 맛본 적이 있습니다. 옥선의 원영으로도 단약을 제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립은 태연하게 웃으며 성큼 앞으로 나서 공수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고얀!”

얼굴을 굳힌 공수구가 왼손으로는 백무 인영들을 조종해 호언 도인 등을 붙들어 두면서 오른손으로는 가느다란 백옥 장검을 꺼내 들었다.

공기의 흐름이 뭉친 듯 어느 검기보다 가느다란 칼날이 한립을 베려 들었다.

두 눈에서 짙은 남색빛을 일렁인 공기 칼날의 이상한 궤적을 확인하면서 손에 든 장검을 마구 휘둘렀다.

채채채챙…….

푸른 검기들이 보호막처럼 겹겹이 그를 둘러싸 공기 칼날을 막았다.

한립이 놀란 것은 상대가 법칙의 힘을 이렇게 세밀하게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공수구 영역의 제약을 받으면서 겹겹이 두른 검기로 공기 칼날을 밀어내며 그는 점차 거리를 좁혔고 한 손으로 검결을 맺자 장검에서 푸른 검기가 연꽃처럼 피어나 폭우처럼 공수구에게 떨어졌다.

그걸 본 공수구는 검을 횡으로 저어 거대한 하얀 공기의 벽을 만들었다.

채채채챙…….

대전 안에 금속성의 충돌음이 울리고 푸른 검기가 하얀 공기 벽을 손가락 한 마디도 뚫지 못한 채 죄다 막혔다.

“내 너를 과대평가 했구나.”

공수구의 말에 한립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청죽봉운검 검신을 손끝으로 튕겼다.

탱!

푸른 검그림자들이 동시에 폭발하면서 푸른빛과 하얀빛이 혼재해 호선을 그리며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대전이 진동하며 기파가 출렁이고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비취색 연단로를 핵심으로 하고 있던 궁전은 금동이 그것을 먹어치우자 더는 견디지 못하고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공수구도 근거리에서 뜻밖에 일어난 폭발에 밀려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가 몸을 가누기 전에 적홍색 그림자가 홀연히 달려들었다.

기이한 각도로 몸을 튼 공수구의 눈에 호언 도인이 화염 장검을 들고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그는 즉시 오른손에 든 가느다란 검으로 호언 도인을 갈랐다.

쩡!

화염과 무형의 기류가 충돌해 기류와 화염이 흩어진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호언 도인 등 뒤의 보따리에서 붉은 호리병박이 날아올라 기울어진 것이다. 한립이 눈을 크게 떴을 때, 적홍색 호리병박 뚜껑이 스스로 퐁! 떨어져 나갔다.

크아앙!

용울음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굵직한 검은 촉룡이 호리병박을 타고 나와 시뻘건 입을 쩍 벌렸다.

“백리 도주!”

낙청해가 기함해 소리치고 한립은 이제야 여러 가지 의문이 풀렸다.

호언 도인이 별의 별수를 다 써서 어떻게든 태을단을 구하려 한 이유는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항상 품고 다니던 백리염을 부활시키기 위해서였다.

소진한의 계략에 촉룡도 금선들이 합류하는 바람에 몇만 년 내로 태을경을 앞두고 있던 백리염은 중상을 입고 달아나야 했다.

북한선궁의 추살을 받던 호언 도인이 놀랍게도 그런 백리염을 찾아내 데리고 다닌 것이다.

백리염이 변신한 촉룡이 공수구를 물어뜯으려 다가가자 호언 도인은 뒤로 빠졌다. 검은 촉룡의 입에서 검은 화염이 콰르르 흘러나와 공수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다른 수사들과 싸우던 백무 인영들은 공수구가 제대로 조종을 하지 않자 동작이 느려졌고 바로 공격해온 수사들의 공격에 허물어졌다.

십여 초 후, 입을 다문 촉룡은 급속도로 줄어들어 작은 뱀처럼 변해 붉은 호리병박에 똬리를 틀었다.

“태을단이 내 회복을 돕고 업화를 정리해 주더라도 연화를 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예요.”

“괜찮으니 어서 요양하시지요.”

백리염은 호리병박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모두 어서 공수구의 육신을 연화시켜 원영을 구속해야 합니다!”

그때 낙청해가 입을 열었다. 다들 여기서 물러나면 어떻게 될지 알기에 분분히 검은 화염으로 술법을 퍼붓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팟!

붉은 화염과 금빛 뇌전 그리고 핏빛 등이 다섯 방향에서 검은 화염 속으로 쏘아져 들어가 동그란 구슬을 이루고 공수구를 연화시켰다.

영목신통을 발휘해 구슬 안을 들여다본 한립은 공수구 주위에 반구형 공기 장벽이 펼쳐져 있어 화염과 각종 법칙의 힘을 막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공기 벽이 순간 은은한 붉은 빛을 내면서 주변 기운이 심상치 않아졌다. 한립을 포함한 놀란 수사들이 피하기도 전에 쿵! 괴성이 터져 나왔다.

포악한 기파가 땅을 뒤집어 놓을 기세로 퍼져 검은 화염과 다양한 법칙의 힘 그리고 포위하고 있던 수사들을 밀어붙였다.

쿠쿠쿵…….

안 그래도 쓰러질 듯 말 듯하던 궁전 벽이 이번 충돌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궁전이 부서져 내려앉고 사방 벽이 허물어지면서 폐허가 되고 말았다.

수사들이 폐허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 공수구는 번득 허공에 떠 있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백만 년 정도 회개할 기회를 주려 했건만……. 다들 이제 내가 무정하다 나무라지 말아야 할 것이야.”

공수구가 탄식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양손에서 새의 깃털 다섯 개를 품은 오색찬란한 빛이 떠올라 한립 등을 향해 날아갔다.

한립은 환영 같은 빛이 법칙 파동을 뿜는 것을 보고는 등골이 서늘해져 급히 검을 옆으로 들었고 낙청해는 옥 부채를 꺼내 들었다.

교삼은 고대의 문양이 새겨진 은색 팔찌를 불러내 휘황찬란한 빛을 뿜었고 치리초는 금색 방패를 꺼내 들었다.

퍼퍼퍼펑!

대전 안에서 연달아 충돌음이 들려왔다.

한립은 앞을 막은 자신의 장검에 가슴을 텅! 맞고 골짜기에 처박혔다.

옥부채 법보가 깃털에 맞아 박살난 낙청해는 어깨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교삼도 불러낸 은팔찌가 부서진 채 튕겨 나갔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큰 부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치리초의 경우 깃털에 방패가 부서지고 머리까지 뚫려 원영이 공수구의 소매 속으로 번뜩 끌려 들어갔다.

이제 막 붉은 호리병박을 거두고 있던 호언 도인의 반응이 가장 느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대응하려 했을 때는 가슴 앞에 깃털이 도착해 있었다.

피하려고 해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호언 도인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순간 누군가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운예!!”

호언 도인과 구양규산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한 사람은 다급히 그녀의 팔을 끌어 옆으로 비키게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전신이 새빨갛게 물들 정도로 혈둔술 비술을 강행해 자신이 운예 앞을 막아섰다.

푹!

오색 광채를 반짝인 깃털이 몇 겹의 보호막을 뚫고 그대로 구양규산의 미간을 뚫었다.

그는 그 즉시 머릿속이 진탕이 되어 숨이 끊어졌다.

세 사람이 겹겹이 포개져 바닥에 쿵! 떨어진 뒤 운예가 놀라고 망연한 얼굴로 구양규산을 부축했다.

이미 의식을 잃은 구양규산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걸 보는 호언 도인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운예가 호언 도인을 보았다가 구양규산을 보았다 하며 두 눈에 물기가 맺혔다.

사실 구양규산과 그녀가 먼저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왔고 동문 출신인 그들은 함께 유람했던 적도 있었다.

구양규산이 그녀를 어떻게 여기는지 운예도 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은 누가 먼저 만났는 지와는 상관없는 아주 불공평한 영역이었다.

이때 손바닥 크기의 금색 원영 소인이 구양규산의 단전에서 날아올랐다.

금빛이 어둑해진 소인은 기운이 허약했는데 두 눈만은 운예를 응시하며 맑은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왜 그랬어요…….”

운예가 붉게 물든 눈으로 안타깝게 물었다.

“평생 규칙에 얽매여 오로지 선도를 걷기 위해 내 마음대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수행이 높아져도 자유로운 삶은 더 멀어지는 것만 같더군요……. 오늘 그래도 마음 가는 대로 했으니 여한이 없습니다…….”

구양규산의 원영이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뭐가 여한이 없단 말입니까! 구양규산, 내 절대 당신을 이대로 죽게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호언 도인이 호쾌하게 웃으면서 손바닥 크기의 자단목 목함을 꺼내 들었고, 구양규산이 그를 힐긋 보고 묵묵히 그 속으로 들어갔다.

산 구석에서 빠져나온 한립도 호언 도인 옆으로 왔다.

그는 구양규산이 운예를 대신해 치명적인 공격을 맞는 것을 보고는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구양규산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치리초의 시체를 힐끔 살핀 교삼도 이쪽으로 날아왔는데 낙청해만이 기절한 것인지 죽은 것인지 움직임이 없었다.

공수구 역시 깃털 공격이 꽤 힘이 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공격을 지속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왜 아직까지 시간법칙의 힘을 사용하지 않는 거지요? 설마 실력을 아껴두었다가 홀로 달아날 때 쓰기라도 할 작정입니까?”

교삼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한립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상대를 확실히 제압할 기회를 노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전 싸움으로 힘을 많이 소모해서 함부로 사용하다가는 오히려 승산을 잃고 말겁니다.”

한립이 고개를 저으며 솔직히 답했다.

“그 말이 허언이 아니기를 바라지요.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가기만 하면 연신술의 마지막 공법을 내주겠습니다. 어차피 수사의 수행으로 홀로 태을경 수사의 추격에서 벗어나는 것도 무리지 않습니까?”

“그럼 교삼 수사께서도 더는 실력을 숨기지 마시지요.”

한립은 말을 하면서 창류궁 백면서생 무리를 살폈다.

창을 든 괴뢰는 죽였지만 그도 부상을 입어 더는 싸우기 어려운 듯 보였는데 설앵이 그들을 놔주지 않고 쫓고 있었다.

남가몽도 공격을 당해 튕겨 나가고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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