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3화. 협력
*
펑!
진법이 막 발동되려 할 때 수룡들이 들어있는 소용돌이가 갈라졌다.
혼란한 백색 기류를 두른 공수구의 몸 주위로 폭풍이 불어온 듯 뇌성이 진동했다.
“아무도 떠날 수 없다고 분명 말했을 텐데?”
미소를 잃지 않은 한결같은 그의 표정에 창류궁 수사들은 더욱 소름이 돋았다.
펑! 펑! 펑! 펑!
가볍게 주먹을 쥔 공수구의 움직임에 백면서생 등이 들고 있던 영패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진법이 터져 남색 별빛처럼 떨어진 것은 당연했다.
술법을 펼치던 네 사람은 동시에 피를 뿜었고 수행이 높은 백면서생과 검은 수염 노인은 겨우 버티고 섰지만 나머지 둘은 바닥에 고꾸라졌다.
백면서생과 검은 수염 노인은 서둘러 단약을 하나씩 삼켜야 했다.
공수구의 영역 안에서는 천지원기의 흐름이 멈춰서 외부의 영기를 흡수할 수도 선원석으로 선령력을 보충할 수도 없이 오로지 단약에 의지해야 했다.
낙청해를 향해 조소한 공수구가 한립 무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창류궁 수사들 곁을 지나갈 때, 다른 수사들은 허공이 왜곡되는 것을 보았고, 바로 바닥에 쓰러진 두 명의 금선들이 육체가 허물어져 살점 더미로 변해 버렸다.
그 뼈와 살점 더미에서 남색 원영 소인 둘이 탈출해 허겁지겁 낙청해 쪽으로 날아갔으나 도중에 기류에 휩쓸려 공수구의 소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걸 본 낙청해의 미간에 힘줄이 터질 듯 솟았으나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치리초, 호언 도인, 교삼……. 너희 셋의 안건은 중죄와 관련이 있다. 특히 너!”
공수구는 호언 도인 등 세 명을 부르다 마지막으로 노파를 콕 찝어 가리켰다. 그 말에 호언 도인이 의아한 눈빛으로 노파를 쳐다보았다.
교삼이라는 호칭은 이전에 들어보았으나 노파와 동일인이라는 것은 몰랐던 것 같았다.
교삼은 공수구를 마주 보며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 옆의 노인은 안색이 달라졌다. 운예도 호언 도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던 자들이 명한선부에 다 모여 있었어. 좋다! 내가 이리저리 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겠구나.”
공수구가 즐겁게 웃으면서 시선이 금색 의자에 앉은 시체에 닿으려는데 상황을 지켜보던 한립이 때를 노려 소리쳤다.
“모두 힘을 합쳐 소진한을 죽였으니 이미 선궁과 척을 진 것과 진배없습니다! 선사대인이 영역으로 대전을 봉쇄한 것은 모두를 도살하려 함이니, 다 같이 힘을 합쳐 대항하지 않으면 전부 죽은 목숨일 겁니다!”
그의 선동에 공수구의 시선이 한립에게 닿았다.
입가에 웃음을 건 그는 전혀 반박하지 않으며 그들이 어찌 생각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대전 한쪽에서 낙청해가 쓴웃음을 지었다.
한립의 몇 마디 말로 창류궁도 이미 소진한을 죽인 죄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모두가 공생관계가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도 화가 치밀 대로 치민 상태였다.
한립의 말 중 감찰선사가 언제든 그들을 죽일 수 있게 대전을 봉쇄했다는 말은 그도 사실이라 여겨서였다.
“가몽아, 어서 이걸 삼키거라. 영역의 영향을 저항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부족한 스승이 너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낙청해가 용 눈알 크기의 남색 구슬을 불러내 남가몽에게 건네고 전음으로 비술 구결을 전수해주었다.
“스승님, 저는 아직 괜찮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가몽은 핏기가 사라진 얼굴에도 다부지게 답했다.
구슬을 삼킨 남가몽의 배에서 남색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와 보호막을 이루고 그녀를 지켰다.
“현천영역…….”
한립이 멀리서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낙청해는 무려 현천의 보물을 써서 제자가 위영역을 만들어 공구수의 영역에 대항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렇게 했다는 것은 암암리에 한립의 제안에 동의했다는 것과 같았다.
“다들 뭐 하는 것입니까? 감히 공수 선사대인 면전에서 이리 무엄하게 굴다니 천정에 대적하기라도 하겠단 것입니까!”
설앵이 위협하며 공수구 쪽으로 붙어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금선들의 시선을 피했다.
“하아, 수가 많으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로구나. 어리석은 자들……. 오늘이 지나 북한선역이 다시 예전의 광명을 되찾으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야 할꼬.”
공수구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대전 안이 웅!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 모두가 고막에 극통을 느꼈다.
이전보다 몇 배는 강한 압력이 수사들을 압박해왔다.
“너무 심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낙청해가 나지막하게 불퉁거리며 양손으로 수결을 맺어 드넓은 해양과 같은 남색 빛으로 모두를 둘러쌌다.
남색 빛 안의 수사들은 다행히 압력이 다소 줄어들었다.
“바다의 법칙……. 내가 네 죄는 그리 무겁지 않아 살길을 열어 주려 했다. 고작 백만 년만 선노(仙奴)로 삼으려 했는데 어찌 더 큰 죄를 지으려는 것이냐.”
공수구는 남색 영역을 칭찬하는 한편 고개를 저었다.
호언 도인 등도 연달아 빛의 장막을 펼쳐 다양한 역량을 펼쳤다. 그들이 공격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공수구와 설앵 두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한립은 시간영역을 펼치지 않고 있었다.
이전에 싸우면서 시간법칙의 힘을 적잖이 소모해서 함부로 낭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태을옥선을 상대하려면 법칙의 힘을 중요한 순간 사용해야 했다.
화염, 해양, 꽃 그림자 등 다양한 영역에 둘러싸여서도 공수구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가 대충 소매를 펄럭이자 금색 빛줄기가 날아올라 긴 창을 든 금갑 괴뢰 두 마리로 변했다.
금속 속성의 법칙파동을 발산하는 괴뢰들은 금선 후기의 수행을 지니고 있었다.
“가거라.”
공수구의 명에 괴뢰들은 낙청해와 호언 도인 등을 향해 흩어졌다.
“궁주님, 금갑 괴뢰는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백면서생과 검은 수염 노인이 검은 자와 백금 장검을 불러내 괴뢰를 막으며 외쳤다. 구양규산과 동문 도주도 또 다른 금갑괴뢰를 맡고 운예는 설앵 쪽으로 쇄도했다.
운예를 보는 호언 도인의 눈빛에 걱정이 어렸다. 그를 구하려다 상처를 입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명백백한 태을옥선인 공수구를 막아야 하기에 그녀를 막을 수도 없었다.
그와 한립, 교삼, 치리초 그리고 낙청해 다섯 사람이 협공해도 승산이 크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을 겁니다.”
한립의 목소리가 수사들의 머릿속에 울렸다.
“려 수사의 강력한 시간법칙도 사용을 할 때이고요.”
낙청해가 진지하게 답했다.
“물론 저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러니 수사께서도 더는 실력을 숨기지 마시지요. 분노한 해양의 힘도 이 정도는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한립의 대꾸에 말문이 막힌 낙청해가 짧게 다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공수구가 먼저 움직였다.
복잡한 수결을 맺은 그의 손에서 우윳빛 안개가 흘러나와 사람의 형상들을 갖추었다. 그걸 본 수사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하얀 안개로 이루어진 인영의 윤곽이 그들 다섯과 비슷했고 풍기는 기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설마 역령?”
눈살을 찌푸린 호언 도인이 중얼거렸다.
영역이 화령경 후기에 이르면 영역 내에서 살아있는 생물과 비슷한 역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그 성질이 괴뢰나 도병과 비슷하면서도 위력은 영역을 펼치는 수사의 법칙의 힘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그건 아닌 것도 같습니다. 역령이었다면 우리와 비슷한 용모를 지녔을 리 없지요. 다른 법칙의 힘이 발현된 겁니다.”
견문이 넓은 낙청해가 의견을 냈다. 그들이 결론을 내기 전에 백무(白霧) 인영들이 그들을 죽이려 다가왔다.
호언 도인은 붉은 화염을 일으킨 장검으로 백무 인영을 갈랐고, 상대도 손에서 화염이 일어 화염 장검을 만든 다음 반격해왔다.
화염 장검 두 자루가 교차하면서 쿵! 폭음을 일으켰다. 새빨간 화염이 치솟아 벽처럼 보였다.
낙청해와 싸우는 백무 인영도 푸른 물의 기운을 이용했다.
노파와 노인으로 분장한 교삼과 치리초 두 사람도 자신을 닮은 백무 인영에 붙들려 몸을 빼지 못했다.
청죽봉운검을 든 한립은 자신과 엇비슷한 백무 인영과 거리를 두고 대치 중이었다.
하얀 인영은 외모뿐 아니라 성격도 비슷한지 안개로 만든 장검을 들고 신중하게 그를 살피는 중이었다.
공수구는 꽤 떨어진 허공에 떠서 나서지 않고 그저 관전만 하고 있었다.
탓!
발끝으로 지면을 박찬 한립이 제 자리에서 사라져 백무 인영 오른쪽 후방에서 검을 찔러 들어갔다.
역전진륜 신통을 사용한 그의 속도는 가히 어마어마해서 움직임을 눈으로도 쫓을 수 없었다.
검끝이 백무 인영의 복부를 파고들었을 때, 인영이 흐릿하게 종적을 감추었다.
‘설마 시간을 가속할 수 있다고?’
눈썹을 꿈틀한 한립이 번득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 백무 인영이 흔적도 없이 나타나 뒤에서 장검을 찔러왔다.
탱!
한립은 괴력에 밀려났고 검을 든 백무 인영도 동시에 뒤로 밀려났다. 멀리서 공수구가 미미하게 달라진 표정으로 한립의 청죽봉운검을 보고 있었다.
한립은 자신과 흡사한 상대를 두고 미간을 좁혔다. 백무 인영은 충격으로 흩어진 장검을 금방 다시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게 대체 뭘까?’
의혹을 품은 한립은 눈동자 깊은 곳에서 남색 빛을 일렁였다. 영목 신통 아래 백무 인영이 흐릿해지면서 은은한 금빛을 띠었다.
호언 도인과 싸우는 인영은 붉은빛, 낙청해와 싸우는 인영은 물빛이었다.
한립이 진언보륜을 소환해 진실안으로 정체를 파악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머릿속에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남가몽의 목소리였다.
“선배님들, 안개로 이루어진 그림자들은 실체가 없고 체내에 숨겨진 법칙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인영의 머리에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세한 실이 감찰선사의 손가락으로 이어지고, 가슴에는 똑같은 실이 선배님들의 등에 연결되어 있어요.”
그 말에 한립이 슬쩍 팔짱을 낀 공수구의 손을 보았다.
과연 다섯 손가락이 움찔거리면서 속세의 꼭두각시놀이를 하듯 그들을 갖고 놀고 있었다.
“백무 인영과 싸우느라 힘을 빼면 안 됩니다! 전부 감찰선사가 공기의 법칙의 만들어낸 우리의 투영에 불과하니 이기려면 쉽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번득 깨달은 한립이 모두에게 경고했다.
“가몽이의 말을 듣고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어찌 대응하면 좋겠습니까?”
낙청해가 대답을 해왔다.
“싸울수록 우리의 법칙의 힘을 낭비하게 될 겁니다. 우리의 법칙의 힘을 훔쳐 움직이는 그림자에 불과하니까요.”
“어쩐지 화염의 힘이 너무 빨리 줄어든다 했지!”
한립의 말에 호언 도인도 이제야 알겠다는 듯 전음을 보내왔다.
“저자는 우리를 지치게 하려 하고 있습니다. 법칙의 힘이 고갈되는 순간 우린 죽겠지요.”
노파의 모습을 한 교삼도 전음으로 한마디를 보탰다.
“려 수사, 문제를 알아내셨으니 대책도 있으시겠지요?”
피부가 핏물에 물든 듯 빨갛게 변한 치 수사가 물었다.
“……백무 인영들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저 감찰선사의 조종에 따라 공격을 합니다. 잠시 법칙의 힘을 중단시키고 공수구 본체를 총공격하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침음하던 한립이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좋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느니 그게 낫겠지!”
“수사의 뜻대로 해보겠습니다.”
호언 도인이 가장 먼저 뜻을 모으고 낙청해도 남가몽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교삼과 치리초도 찬성이었다. 상의를 마친 다섯 사람은 즉각 행동에 들어갔다.
호언 도인은 전신의 화염을 거두고 바람처럼 백무 인영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상대도 화염이 사라지고 똑같은 모습으로 호언 도인과 충돌했다.
콰쾅!
호언 도인은 상대와 쿵쿵 충돌하며 반탄력에 의지해 빠르게 공수구와 가까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