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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741화 (1,498/2,000)
  • 1741화. 혼백이 돌아오다

    *

    몇 호흡이 지났을까.

    은빛과 금빛이 흩어지고 소음이 사라졌을 때 화로의 교룡 머리 3개가 입을 벌려 태을단을 내보였다.

    금빛이 번득이고 괴뢰 세 마리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게 각각 태을단을 하나씩 받아들었다.

    쿵!

    이와 동시에 대전의 수사들도 태을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각자 색색깔의 영역을 펼쳐 대전 안에 여덟아홉 개의 영역들이 서로 교차하기 시작했다.

    한립은 괴이한 법칙의 힘 때문에 속도가 느려졌고 다른 이들도 각종 영역, 특히 시간영역의 영향을 받아 속도가 크게 줄었다.

    눈을 반짝인 한립은 둔광의 속도를 줄여 다른 이들과 엇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했다.

    거의 동시에 대전 양측에서 회백색 석상들이 그들을 덮쳤다.

    석상 괴뢰들도 다양한 영역에 진입하면서 속도가 크게 줄어 금선들보다 더 영향을 받았다.

    바닥의 금색 진법은 시체에서 일어난 회색 기운의 폭발로 훼손이 되었는지 하얀 화염 금제는 발동되지 않았다.

    수사들이 금선 괴뢰에게 다가가자 괴뢰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주먹을 뻗었다.

    굵직한 금빛 뇌전들이 뻗어 나와 몰려드는 수사들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위력이 대단한 뇌전도 수사들에게 분산되자 위력이 크게 줄었다.

    수사들은 대부분 피하지 않고 방어를 하면서 각자 노리고 있던 괴뢰에게 달려들어 손에 든 태을단을 빼앗으려 했다.

    눈을 찌를 듯한 짙은 남색 빛을 방출한 낙청해는 다시 수행이 급증해 태을경에 이르렀고, 지팡이를 불러내 날린 빛줄기로 금색 뇌전 조각과 괴뢰의 오른팔을 동시에 잘라냈다.

    서걱!

    금색 괴뢰의 팔 아래쪽이 잘리면서 손에 들고 있던 태을단이 날아올랐다.

    호언 도인, 운예, 구양규산 그리고 촉룡도 백발 금선이 마침 곁에 있다가 태을단이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각자 광채를 휘날리며 속도를 높였다.

    눈빛이 서늘해진 낙청해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렀다.

    쿠쿠쿵!

    굵은 지팡이 허상이 횡으로 날아갔다.

    네 사람도 지팡이 허상이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녔다는 것을 보았기에 감히 태을단을 잡으러 계속 나아가지 못하고 분분히 몸을 피했다.

    이에 낙청해는 그들을 끝까지 추격하지 않고 남색 빛줄기를 날려 태을단만 챙겼다.

    한립은 호언도인 등과 함께였으나 첫 번째 태을단 경쟁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빠르게 판단을 마친 그가 급격히 속도를 몇 배로 높여 두 번째 태을단 옆에서 손을 움직였다.

    푸른 비검이 호선을 그리면서 날아간 검빛이 두 번째 괴뢰를 가르려 했지만 금빛 괴뢰가 빠르게 몸을 틀어 검빛으로 주먹을 날렸다.

    코웃음을 친 한립이 괴뢰를 가리켰다.

    푸른 비검에서 금색 수정실이 번개처럼 빠져나가 순식간에 금빛에 앞서 괴뢰와 충돌했다.

    촤르륵.

    수정실에서 금빛이 터져 나와 괴뢰를 감쌌다.

    우뚝 멈춰선 괴뢰에 날아든 검빛이 팔 한쪽을 가르자 두 번째 태을단이 날아올랐다. 희색을 드러낸 한립은 즉시 손을 뻗었다.

    “헛꿈 꾸지 마시죠!”

    그때 느닷없이 옆에서 암홍색 실들이 날아들었다.

    어느새 남려족 노파가 달려들고 있었고 남려족 노인도 핏빛 해골 머리를 뿜어 좌우에서 한립을 깨물려 들었다.

    ‘역시 저들은…….’

    한립은 피하지 않고 입에서 금빛을 분출했다.

    금색 수정실 몇 줄기가 암홍색 실들을 막아서서 강대한 법칙의 힘들끼리 충돌해 허공이 웅웅 울렸다.

    암홍색 실들이 시간정사와 맞먹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 의외였다. 그때 그의 어깨에 앉아 있던 금동이 급격히 몸을 부풀려 두 앞발을 휘둘렀다.

    쉬쉬쉬쉭…….

    수백 줄기의 금빛이 홍수처럼 핏빛 해골 머리를 덮쳤다. 두 번의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해골 머리들이 팍팍 깨져나갔다.

    한립의 몸속에서 굵은 뇌전을 휘감은 해 도인도 빠져나왔다. 해 도인은 양손에 각각 청죽봉운검 한 자루씩을 들고 힘껏 허공을 베었다.

    거목 크기의 거검으로 변한 청죽봉운검에서 큼지막한 금빛 뇌전들이 떠올라 땅을 꺼트릴 듯 폭발적인 기운을 발산했다.

    콰릉!

    표면에 수많은 뇌전 주술문자가 꿈틀거리는 거대한 금빛 거검 두 개가 노파와 노인을 베기 위해 날아갔다.

    안색이 변한 그들은 해 도인의 출현은 생각지도 못했는지 다급히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 사이 한립은 푸른빛으로 태을단을 감아 챙겨 넣었다.

    노파와 노인이 그를 지긋이 쳐다보다 다른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암홍색 실들도 더이상 한립의 시간정사와 대립하지 않고 노파의 소매 속으로 돌아갔다.

    “교삼 수사, 이곳에서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때 혈색 좋은 노파의 귓가에 한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파는 언뜻 표정이 달라진 듯했으나 멈추지 않고 날아갔고 노인이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시간정사와 청죽봉운검을 회수한 한립은 그런 노파의 뒷모습을 보면서 입가를 끌어올렸다.

    이제 그녀가 교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때 대전 한쪽에서 괴성이 들리고 검은빛이 폭발해 파도처럼 퍼졌다.

    한립이 고개를 돌리니 창류궁 금선 넷에 남가몽이 휘청거리면서 창백한 얼굴로 튕겨 나오는 중이었다.

    봉천도와 제천소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봉천도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손에 태을단을 쥐고 있었다. 그들 주변에는 금색 괴뢰가 두 동강이 나서 쓰러져 있었다.

    새로운 태을단 3개가 연단로를 떠나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회백색 조각상들은 영역들의 영향을 받아 이제야 겨우 연단로 근처에 도착했다.

    “단약을 훔치려는 자, 죽인다!”

    수십 마리의 회백색 괴뢰들이 괴성을 지르고 머리 위로 노란빛을 일으켜 거대한 바둑판을 형성해 모두를 뒤덮었다.

    조각상 개개의 실력도 강했지만 힘을 모아 만들어낸 바둑판 신통은 더 강력했다.

    놀란 수사들이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가자!”

    한립도 푸른 빛으로 금동을 휘감아 뒤쪽으로 쇄도했고, 해 도인은 흐릿하게 금빛으로 변해 그의 몸속으로 돌아갔다.

    ‘……!’

    바로 그때 뒤쪽에서 검은 사슬 두 개가 불쑥 튀어나와 그를 구속했다. 이에 한립이 멈칫하자 머리 위의 노란 바둑판에서 태산 같은 압력이 떨어졌다.

    그가 힘겹게 고개를 틀자 멀지 않은 곳에서 봉천도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허공으로 이어진 검은 사슬 두 줄기를 붙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한립은 성난 파도와 같은 금빛을 대량으로 방출했고 그 안에서 고리가 떠올라 신속하게 회전했다.

    후우웅!

    농밀한 금색 파문들이 떠올라 눈 깜짝할 사이에 봉천도와 제천소가 있는 곳까지 퍼졌다.

    금빛 파문에 둘러싸인 봉천도와 제천소는 그대로 굳어 움직임이 없어졌다.

    한립 곁의 금동과 주변의 회백색 조각상 괴뢰들 그리고 노란 바둑판 금제 절반도 마찬가지였다.

    “저건 또 무슨 신통이란 말입니까?”

    낙청해 등 수사들이 의문을 표했다.

    “설마 진언보륜?”

    촉룡도 구양규산 등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촉룡도 출신이라면 종문의 보물인 진언화륜경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간 공법을 익히는 데 성공한 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런 진언보륜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한립의 진언보륜에서는 수백 개의 시간도문이 반짝이고 있었다.

    다들 정신이 얼떨떨했지만 호언 도인만은 태연했다.

    이전에 한립이 진언보륜을 펼친 것을 보았으니 크게 놀랄 것도 없었다.

    한립은 가볍게 노란 바둑판 구역을 벗어나 봉천도와 제천소에게 다가갔다. 동작은 무척 느렸지만 분명히 겁에 질린 눈빛이었다.

    봉천도는 검은빛을 서서히 움직여 구금법칙으로 금색 파문을 밀어내려 했고, 제천소는 부식 법칙을 품은 잿빛을 동원했다.

    하지만 강대하기 짝이 없는 시간법칙의 힘을 품은 금색 파문은 어떻게 해도 흔들림이 없었다.

    “봉 장로께서는 충분히 공격하신 듯하니 이제 제 차례입니다.”

    한립이 서늘하게 말하며 소매 속에서 한 손을 저었다.

    푸른 비검 두 자루가 금빛 파문을 자유롭게 통과해 봉천도와 제천소의 보호막을 뚫고 그들의 미간을 관통했다.

    푸푹!

    구멍이 뚫린 이마에서는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으나 두 사람의 동공이 풀어졌다.

    한립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푸른빛으로 두 시체를 훑어 저물법기며 선기 그리고 검은색과 회색 원영을 하나씩 거두어들였다.

    아주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전투를 마친 그가 수결을 맺자 등 뒤의 진언보륜이 체내로 흡수되고 금색 파문도 사라졌다.

    봉천도와 제천소의 시체는 그제야 피를 뿜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두려운 자가 없던 봉천도와 북한선역 3대 종문 복릉종 종주 제천소가 이렇게 차가운 시체가 되고 말았다.

    그걸 지켜본 대전 안의 수사들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한립을 새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제는 호언 도인조차 입을 벌렸으나 눈빛에는 웃음기가 감돌았다. 한립은 그런 그들을 슬쩍 훑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많은 수사들 앞에서 진정한 실력을 드러냈으니 앞으로 성가신 일들이 생길 게 확실했다. 진언보륜의 금빛 파문이 사라지고 금동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저씨, 늙은 강시랑 외눈박이를 먼저 죽이면 어떡해요. 내가 죽인다고 했잖아요!”

    금동은 바닥에 쓰러진 봉천도와 제천소의 시체를 보고는 불만스럽게 외쳤다.

    “난 분명 기회를 주었었다. 그걸 잡지 못한 것은 넌데 나를 원망할 일이더냐?”

    쓴웃음을 지은 한립은 금동이 더 종알거리기 전에 푸른 빛으로 감싸 대전 구석으로 날아오르려 했다.

    그런데 그가 막 출발하려다 갑자기 멈춰서서 비취색 연단로를 돌아보았다.

    쿠쿵.

    화로 아래 하얀 화염이 화륵 커져 거의 화염 절반을 가리고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열기에 대전 안의 온도가 급상승하고 연단로 인근 바닥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회백색 조각상들도 하얀 화염을 두려워하는지 뒤로 물러나 노란 바둑판 금제도 흩어졌다.

    이제 다들 화로에서 떨어져 대전 양쪽으로 물러났다.

    쉬이익!

    금선들이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자니 연단로의 문양들이 비취색으로 반짝이면서 화로 뚜껑이 들썩거리며 하얀 증기 기둥을 사방팔방으로 뿜어댔다.

    이전에는 단약이 한 번 완성되면 조금 기다려야 다음 단약이 나왔는데 세 개의 태을단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게다가 화로 아래 불길이 거세진 것도 이상했다. 단약 제련을 가속하는 효과도 있지만 그러면 단약을 망칠 확률도 높아졌다.

    그때 궁전 위 하늘에 천지영기가 몰려들어 금색 구름을 이루고 또 거대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은빛 세 방울이 그 안에서 응결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궁전 곳곳에서 금빛이 떠올라 단겁을 막는 동안 수사들이 연단로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경험으로 다들 회백색 조각상 괴뢰를 자극하지 않을 안전거리를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단로의 교룡 머리 세 개가 입을 벌리고 오색 광채와 함께 태을단 하나씩을 물었다.

    다시 한번 영역들이 나타나 대전을 뒤덮고 수사들이 튀어 나갔다.

    이미 두 개를 손에 넣은 한립도 보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기에 사양하지 않고 나서려 했다.

    그때, 돌연 회색빛이 그의 몸에서 날아올라 비취색 연단로로 쏘아져 나갔다.

    회색빛은 손바닥 크기의 향로인 양혼로였고, 그가 봉인하느라 붙여둔 부적은 어둡게 변해 있었다.

    안색이 달라진 한립이 손을 뻗어 금색 거대 손으로 향로를 붙들려 했으나 회색빛은 영역들의 영향도 거의 받지 않고 쾌속으로 날아가 태을단까지 모조리 휩쓴 뒤였다.

    전광석화처럼 벌어진 일에 대전 안 수사들이 얼마 이동도 하지 못하고 멈춰 섰다.

    펑!

    양혼로가 터지면서 늙은 독사 잔혼이 나타났다.

    “허허, 녀석야! 내 너를 잘못 보지 않았어!”

    잔혼은 한립을 향해 웃으며 말하고 금색 의자에 앉은 시체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물론 잔혼이 챙긴 태을단 3개도 함께였다.

    콰르르…….

    의자 주변 바닥에서 9개의 돌기둥이 솟아올라 금빛을 발했다. 두꺼운 금색 보호막이 시체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이때, 남려족 노파와 노인이 흥분한 얼굴로 그곳으로 다가갔다.

    금색 괴뢰 세 마리가 신속히 그들을 막으려 주먹을 날렸고, 굵은 뇌전 세 줄기가 두 사람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비키거라!”

    소리를 지른 노파가 암홍색 실 아홉 줄기를 날려 칼날로 뭉쳐졌다. 그 칼날에서 느껴지는 법칙의 힘은 섬뜩할 정도였다.

    “저건…….”

    빛의 칼날을 보는 한립의 눈이 가늘어졌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괴이한 법칙은 시간법칙보다 하위의 법칙이 아니었다. 암홍색 칼날이 금색 뇌전 세 줄기를 터트리고 괴뢰의 허리까지 끊어놓았다.

    쿠앙!

    그러고도 멈추지 않아 칼날은 금색 보호막을 때렸는데 파문이 일던 금색 보호막은 진동하고 금방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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